빙고씨의 인문학개론

12강, 상처 - 1부

아이루다 2017. 2. 10. 10:21

 

빙고에요.

 

그러고 보니, 오늘이 벌써 12번째 강의네요. 시간이 참 빠르죠.

 

우리는 지난 시간까지 다양한 감정들에 대해서 중점적으로 알아봤어요. 특히 나쁜 감정들을 주로 살펴봤죠원래는 좋은 감정들에 대해서도 살펴봐야 하는데, 사실 누가 좋은 감정에 관심이 있겠어요.

 

사람들은 원래 불행한 것, 나쁜 것, 불운한 일을 당했을 때만 그것들에게 신경 쓰죠. 좋은 것들은 그저 그것을 누리고 끝나요. 이런 사실이 좋은 것만은 아니지만, 행복이 인간의 최종 목표이니 그러려니 해야죠.

 

지난 시간에 말씀 드렸어야 했는데감정에 대한 이야기는 지난 열등감 편에서 끝났어요. , 좀 더 있긴 한데 그렇게 중요한 감정들이 아니라서 따로 얘기할 거리가 별로 없을 듯 하네요.

 

그리고 오늘부터는 조금 다른 것들에 대해서 살펴볼 생각입니다. 이런 주제들이 딱히 어떤 것들이라고 정의하긴 그렇지만, 이 강의를 하는, 듣는 가장 중요한 이유, '나는 누구인가' 에 대해서 더 많은 이해를 위한 것들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네요.

 

앞으로 오늘 이야기 할 주제인 '상처' 를 비롯해서 '피해의식' '확대해석' 등이 연속적으로 다뤄질 예정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가장 민감하고 가장 중요한 주제이기도 해요

 

, 그러면 본론으로 들어가볼까요? , 오늘 강의부터는 분량이 좀 늘어날 것이에요. 중요한 것들 것 많아서 그래요. 듣기 힘들겠지만, 저도 어쩔 수 없네요. 이해를 바래요.

 

'상처'

 

비록 이 강의에서는 정신적 상처만을 다룰 생각이지만, 상처는 육체적이든 정신적이든 참 아파요. 그리고 육체적 상처와 정신적 상처는 서로에게 꽤나 많은 영향을 끼친답니다. 몸이 너무 아프면 괜히 마음도 아프고, 마음이 너무 아프면 몸도 심하게 아파요.

 

그래서 상처는 그것이 정신적이든 육체적이든 참 조심스럽고 또한 진지하게 다뤄야 할 대상이 됩니다. 특히 육체적 상처는 다들 알아서 잘 다루죠. 다친 곳도 명확하고 아픈 것도 확실하니까요. 그런데 정신적 상처는 딱히 치료를 받을 곳도 마땅하지 않고, 어디가 아픈 것인지를 아는 것도 쉽지 않아요.

 

결국 그런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오늘 이 순간에도 상처를 주고 받은 후, 그것을 어떻게 처리하지 못해서 아픈 상태 그래도 삶을 살아가고 있어요. 그리고 매일 그 상처로 인해 생겨난 나쁜 감정들로 인해서 행복한 삶을 살기가 힘들다고 느끼죠. 그래서 자신의 정신적 상처는 특히나 더욱 더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야 합니다.

 

물론 처음부터 상처를 받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만, 그럴 수 있다면 저 같은 고양이가 해주는 강연을 듣고 있지는 않겠죠. 안 그래요인간님들?

 

상처는 인간이 가진 많은 문제들의 시작점이기도 해요. 그것 말고도 사람에게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은 바로 '불운' 이에요. 그래요. 상처와 불운, 이 두 가지는 인간이 경험하는 거의 대부분 문제의 원인이 됩니다.

 

사람들은 상처를 받기에 분노하고 외로워지고, 불운하기에 질투와 열등감을 느끼죠. 이런 식으로 많은 나쁜 것들이 바로 이 두 가지로 인해 일어나고 있답니다. 그런데 상처와 달리 불운은 인간이 감당할 영역이 아니에요. 신이 있다면, 신의 영역이죠. 그래서 결국 오직 상처에 대해서만 어떤 식으로든 해결책을 찾아볼 수 있어요.

 

그리고 자신의 상처를 어떻게 다루냐에 따라 삶의 많은 부분이 변화돼요. 성격 자체도 바뀌고요. 

 

그런데 상처에 대해서 살펴보다가 보면 놀라운 점이 하나 있어요. 상처가 이렇게나 중요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자신이 상처를 받고 있다는 사실조차도 잘 모르고 살아요. 그래서 지금 현재 자신의 성격이 바로 상처를 나름대로 극복하는 과정 속에서 형성되었다는 사실도 잘 이해 못하죠. 자신의 성격이 그냥 원래 그랬던 것이라고만 생각해요.

 

아니에요. 정말로 그건 아니에요. 당신의 성격 중 절반 이상은 상처를 경험함으로써 형성되었어요. 설령 상처를 거의 받지 않았다고 해도, 그것이 상처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성격이란 점을 잊지 마세요.

 

자신이 상처를 받는 것을 의식하든 못하든 인간이라면 누구나 상처를 받아요. 언제요? 어린 시절부터 받아요. 경쟁, 차별, 패배, 좌절, 실망, 배신감 등등, 어른들이나 경험할 것 같은 것들을 어린 아이들도 모두 경험해요. 그리고 커 가면서 어떤 식으로든 해결을 해요. 물론 포기하고 중간에 삶을 마감하는 아이들도 있죠.

 

이런 과정 속에서 상처는 어떤 형태나 방식으로 각자의 삶에 스며들어요. 그리고 결국 성격에 영향을 미치고 결국 성격 그 자체가 되고 말죠. 그리고 상처를 많이 받을수록, 그것을 제대로 다루지 못할수록 신경질적이고, 방어적이며, 못된 사람이 될 가능성이 높아요. 자존감도 낮고 삶이 우울하며 불행한 삶을 살게 되죠.

 

이제 상처를 제대로 다루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이해하시겠죠? 그런데 이런 생각도 들어요도대체 인간들은 왜 그렇게 서로에게 상처를 줄까요?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그다지 악한 존재들이 아니에요. 사실 선하죠. 물론 조건부이긴 하지만, 선한 존재에요. 사실 동물들도 그래요. 맹수들도 배가 부르면 발톱을 숨겨요. 더군다나 무리 생활을 하는 인간은 선함을 매우 전략적으로 선택했어요. , 사람들이 모여 살 때 선함은 매우 중요한 가치가 됩니다.

 

개인의 선함과 그것이 모인 사회의 선함은 사회 전체의 생존 목표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치거든요. 악한 사람들이 많은 사회는 결국 도태될 수 밖에 없어요. 그래서 망하지 않고 살아남은 사회는 기본적으로 선한 사람들이 많아요.

 

 그런데  이상하죠. 왜 그런 선한 사람들이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받게 될까요?

 

인간이 상처를 주고 받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인간이 악한 존재가 아니라 연약한 존재이기 때문이에요. , 겁이 많아요. 두려움도 많고요.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에요. 원래 인간은 그런 존재였어요. 아주 여린 존재죠.

 

그런데 인간들은 자신들이 원래 그랬다는 사실을 완전히 까먹었어요대단한 문명을 건설하고견고한 울타리를 친 후, 자연계에서 최고의 포식자 지위로 올라온 지가 꽤나 되었기 때문에 마치 자신들이 너무 강해서 도대체 대적할 존재가 없다고 생각해요.

  


맹수인 사자나 호랑이 그리고 고양이를 봐도 그냥 호기심으로 볼 뿐이죠. 귀엽다고 생각하기도 해요. 그런데 정말로 그럴까요? 아니죠. 그런 맹수들을 야생에서 만나게 되면 인간은 그저 한끼 식사거리가 될 뿐이죠. 그러니 인간이 연약하고 두려움을 가진 존재라는 것은 당연해요. 그래서 그런 특징으로 인해 상처를 받는 것 자체는 큰 문제가 아니에요. 실제 문제는 따로 있죠.

 

진짜 문제는 바로 자신이 상처를 받고 있다는 사실조차도 인식하지 못한다는 점이에요. 그리고 그 다음 문제는 상처를 입었을 때 그것을 너무 단순하게 다루려고 해요. 이 두 가지 문제로 인해서 사실은 그냥 단순한 상처로 끝날 상황이 아주 큰 문제로 변화되어 버리고 말아요. 그래서 결국 사람을 영구히 변화시키는 것이죠.

 

사람은 누구나 상처를 받습니다그러니 상처를 받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마세요. 이 말을 꼭 기억하세요.

 

위에 말한 것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인간이 상처를 받는 상황을 몇 가지 적어볼게요.

 

첫째,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했을 때 상처를 받아요. 잡힌 약속을 깨는, 작은 배신도 그래요.

둘째, 자신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평가하는 사람의 말을 듣고 상처를 받아요.

셋째, 자신이 숨기고 싶은 단점을 지적하거나 비밀을 떠벌리는 사람의 행동에 상처를 받아요.

넷째,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인기가 없거나 호감을 얻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상처를 받아요.

다섯째, 누군가 자신을 불평등하게 대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상처를 받아요.

여섯째, 자신을 무시하거나 이용해 먹으려고 하는 사람의 의도를 알게 되면 상처를 받아요.

 

많네요. 더 있는데, 대충 여기에서 마무리 하죠. 아마도 이 강의를 듣는 분들 중에서 이 여섯 개 중에 최소 한 개 이상의 경험을 가지고 있을 것이에요. 혹시 없으면 오히려 그게 더 큰 문제입니다. 인간관계가 거의 없었거나 자신이 상처를 받고 있는 것인지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거든요. 그리고 대부분은 후자입니다.

 

, 다양한 상처를 받는 상황들을 열거했는데, 여기에 뭔가 공통점이 보이시나요, 그래요. 상처 역시도 두려움을 기반으로 해서 생겨난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죠.

 

배신은 말할 것도 없고, 자신에 대한 나쁜 평가, 자신의 존재감에 대한 의문, 불평등함을 경험하는 것, 무시를 당하는 것 등등 모두 인간의 근원적 두려움을 이끌어 내는 상황들이에요바로죽음이죠.

 

사실 물리적 상처도 마찬가지에요. 몸이 많이 아프면 죽죠. 정신적 상처도 같아요. 정신적 상처를 많이 받게 되는 상황에 놓였다면, 즉 스트레스가 심해지면 죽을 가능성이 높아져요.

 

그러니 물리적이든 정신적이든 상처는 최소화 시키는 것이 중요해요. 그런데 그럴 때 그것을 해결하는 방법으로써 보통 '멘탈' 을 강하게 하라고들 해요. 남이 나를 상처 입히지 못하게 하라고요.

 

처음 이 말을 들으면 속이 뻥 뚫려요. 뭔가 답이 되는 것 같아요. 얼마나 멋진 말이에요. 항상 상처를 받고 힘들어 하며 사는 나인데, 그것이 나의 잘못이 아니라 상처를 주는 사람의 잘못이라고 해주니까 말이죠. 더해서 상처를 받지 않게 강해지라고 하니 정말로 마음에 드는 해결책이에요.

 

그런데 이것이 정말로 옳은 해결 방법일까요물론 멋져 보이긴 해요. 상처받지 않을 자유, 책 제목으로는 꽤나 그럴 싸 하네요. 하지만 그것은 일단 쉽지도 않고요, 더 큰 문제는 제대로 된 해결책도 아니에요.

 

강한 멘탈은 그저 몸을 둘러싼 육중한 갑옷에 불과합니다. 그렇게 하면 당장 상처를 입지 않을 수도 있겠죠. 상처를 주는 사람에게 그야말로 사이다 발언을 할 수도 있고, 웬만한 말에는 꿈쩍도 안 할 수도 있어요.

 

그런데 이 말을 다시 표현하면 이렇게 되요. 남의 말을 듣지 않는 안하무인이며 더해서 매우 공격적인 사람이 되죠. 사실 사이다 발언이 그래요. 공격적인 발언이에요. 더해서 이 문제만 있는 것이 아니에요.

 

그것은 외부와의 단절을 의미해요. , 외부와 단절되고 그 갑옷의 무거움으로 인해 움직이기가 쉽지 않아요. 많은 사람들이 그런 해법을 써서 마치 자신이 상처로부터 자유로워진 것처럼 행동하지만, 사실 그것은 아주 커다란 착각입니다.

 

그것은 그저 갑옷 안의 자유일 뿐입니다. 갑옷을 없애야만 할 수 있는 것들을 하지 못해요. 사람은 사람들과 어울릴 때 행복할 수 있어요. 어울림과 공감이 되어야죠. 그런데 그런 두꺼운 갑옷을 입고, 잘 듣지도 않고, 공격적이면 누가 그 사람과 어울리려고 하겠어요. 그럼에도 그냥 상처 받는 것이 싫으니 이 해결책을 선택하겠다고 하면 말릴 수는 없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끝이 아니에요. 이 해결책의 가장 큰 문제점이 나타나요. 그것은 바로 이젠 본인이 상처를 받는 입장이 아니라 상처 입히게 입장이 된다는 점입니다. 자신이 싫어했던 그 다른 사람의 모습이 되어 버리죠. 나는 다르다고요? 정말로요? 당신은 다를까요? 당신은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 않을까요?

 


미안한데, 그것은 당신이 판단할 일이 아니에요. 상처는 주는 사람이 주는 것이 아니라, 받는 사람이 받는 것이기 때문이에요. 칼은 오직 자를 뿐이요자르는 것이 당근이나 양파면 좋은 것이지만, 그것이 사람의 몸이면 안 되는 것이에요. 그때만 문제에요.

 

그래서 인간은 상처를 줄 수 밖에 없고, 받을 수 밖에 없어요. 지금부터 그 이유를 설명해드릴게요.

 

일단 첫 번째로 사람마다 각자 상처를 받고 안 받는 범위가 달라요. 이해하고 있는 단어의 해석 자체도 다르고요.

 

이제 갓 의사 실습을 하게 되는 인턴이 병원에서 실무 경력을 쌓을 때 정말로 상처를 많이 받게 되죠. 급박하게 돌아가는 상황에서 작은 실수라도 좋게 말이 나가지 않거든요. 선배 의사들은 자신들도 그런 경험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후배 인턴들에게 혹독하게 해요. 상처 주는 말도 아무렇게나 내뱉고요.

 

이때 자세히 보면 인턴들마다 각자 차이가 나게 반응을 하게 됩니다. 누군가는 엄청나게 상처를 받고, 누군가는 잠시 시무룩했다가 금세 복구가 되요. 특별한 누군가는 처음부터 아무렇지도 않은 듯 행동하기도 하고요. 같은 말에 다른 상처죠.

 

사람들은 자신이 이해하는 단어를 상대도 똑같이 이해하고 있다고 아주 심하게 착각해요. , 자신이 '바보' 라는 말을 기분 나쁜 말로 이해하고 있다면, 상대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상대에게 '너 바보 같다' 라고 말을 들으면 크게 상처를 받아요.

 

하지만 상대는 어쩌면 '바보' 라는 말이 조금 어수룩하지만 순수하다는 의미로 쓴 것일 수도 있어요기분 나쁜 말이 아닌 것이죠. 오히려 좋은 평가를 한 것일 수 있어요.

 

이런 식의 상황이나 단어에 대한 서로 다른 이해는 자신이 살아 온 환경과 경험에 따라 모두 달라요. 시대에 따라집안 분위기에 따라, 어느 지역에서 자랐느냐에 따라, 다녔던 학교에 따라, 소속된 직장에 따라 달라요. 이것이 어떻게 같겠어요.

 

며느리들이 시댁에 처음 가서 겪는 일명 '문화 쇼크' 도 마찬가지에요. 각자 집마다 고유한 특징이 있기에 그래요. 자신의 집에서는 결코 허용되지 않는 일들이 버젓이 벌어지고 있기도 하거든요. 하지만 이때도 상처를 받아요.

 

험한 말이 넘치는 장소도 있고, 한 없이 부드러운 말만 하는 장소도 있어요. 여기에서 옮고 그름은 없습니다. 그저 서로 다른 환경인 셈이죠.

 

그렇지만 사람들은 그것과 상관없이 상처를 받아요. 그래서 상대가 쓰는 단어나 표현 하나에도 과도한 해석을 하고 있는 것이죠.

 

두 번째로 사람들이 상처를 받는 이유는 이미 상처를 주는 사람이 기분이 나빠져 있기 때문이에요. 그사람이 오늘 뭔가 불행한 일을 당했거나그 사람도 어디에선가 상처 받는 말을 들었거나자신이 질투나 열등감을 느껴서 결국 기분이 상한 상태라서 그렇다는 뜻이에요.

 

, 공통적으로 기분이 나쁘면 말이 곱게 안 나옵니다. 불행하면 나타나는 증상이에요. 이해의 폭이 좁아지고 관대함이 줄어듭니다. 그래서 평소에는 그냥 넘기던 것들도 괜히 한 마디 더 하죠. 그리고 이것을 듣는 사람은 얼떨결에 상처를 받죠.

 

방금 전까지 기분 좋게 있다가 갑자기 날벼락 맞은 듯 한 소리를 들어요. 이런 경험 모두 있으시죠? 그래서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누군가 평소와 다르게 저기압 상태면 눈치보고, 괜히 웃고, 피하려고 해요.

 

그리고 그것이 반복되면 그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게 기피 인물이 되고 맙니다. 이것은 그 사람에게 또 다른 상처의 원인이 되요. 그러니 누가 상처를 받는 것을 좋아하겠어요. 그러니 멘탈이 강해지고 싶어합니다.

 

[잠시 쉬는 시간, 2부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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