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고씨의 인문학개론

12강, 상처 - 2부

아이루다 2017. 2. 10. 10:21


[1부에서 계속]


, 이 상황을 좀 더 진행시켜 보죠.

 

어떤 이유든 간에 별 생각 없이 뱉은 말은 결국 상대를 상처 입혀요사람들은 누군가 심한 말을 하면 어쩔 수 없이 상처를 받게 되거든요. 그것이 진실이냐 아니냐는 상관없어요. 듣고 그것에 대해서 반발해서 적극적으로 화를 내도 마찬가지에요.

 

일단 기분 나쁜 말을 들으면 일정 시간 동안 기분이 나쁜 상태로 있어야 해요.

 

어느 날 누군가 뜬금없이 '회사 사람들이 너 별로 안 좋아하는 것 알아?' 라고 말하면 자신도 모르게 걱정이 되요. 이때 진실 여부는 어떻게 알 방법도 없어요. 주변 사람들 하나씩 붙잡고 물어볼 수도 없으니까요. 설령 물어 본다고 해서 사람들이 진실을 말해줄 리가 없죠누가 거기에서 '그래, 나 너 싫어' 라고 답을 하겠어요.

 

그러니 괜히 전전긍긍하게 되요. 이것이 바로 상처죠. 불안해진 것이에요. 두려운 것이에요.

 

그러면 기분이 상하고 화가 나기도 해요. , 여기에서 연쇄적으로 문제가 발생해요. 그것은 바로 우연히 옆에 있게 된 어떤 사람에게 일어날 일이죠. 그 사람은 원래 약간 눈치가 없었던 사람인데, 보통 기분이 좋을 때는 그냥 넘어가요. 그런데 그렇게 기분이 상한 날엔 그런 눈치 없는 사람의 행동이 그냥 넘어가지지가 않아요. 그래서 꼭 한 소리라도 해야 해요.

 

이 말은 그 눈치 없는 사람에게도 상처를 줘요. 그러면 이제 그 사람이 역시도 기분이 나빠져요.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요? 한 사람의 상처를 주는 말이 계속 주변으로 퍼져나가고 잇어요. 이렇게 상처는 마치 전염병처럼 번져요. 최초의 상처 유발자가 만들어 낸 상처는 주변 사람들에게 번져가요. 그러니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살 때 상처를 받지 않을 방법이 있나요? 평생 감기에 안 걸리겠다는 소리죠. 그러니 당연히 불가능 해요.

 

오직 모든 인간 관계를 단절한 사람만이 상처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어요. 하지만 그 사람은 외로움이라는 또 다른 근원적 두려움과 마주하게 되죠.

 

그래서 자신이 상처를 주거나 받을 수 있고, 실제로 상처를 주고 받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세요. 그것은 인간의 숙명입니다. 당신이 아무리 착하고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살았다고 해도 다를 바 없어요. 너무 착해도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를 줘요. 다른 사람이 당신을 질투하고, 당신에게 열등감을 느끼는 것은 당신이 해결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주변 사람이 재수 없는 일을 당해서 기분이 무척 나쁠 때 우연히 옆에 있었던 것도 당신 잘못이 아니죠. 세상의 원리가 그래요. 어쩔 수 없어요.

 

더군다나 당신을 포함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말로 쉽게 상처를 받아요. 왜냐고요? 말했죠. 인간은 연약한 존재라고요. 두려움이 가득 찬 존재라고요. 그러니 상처를 받는 것에 대해서 자신이 약하다고 생각하지는 마세요. 그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오직 자신의 목숨이 소중하지 않는 사람만이, 언제든 죽어도 된다고 믿는 사람만이 상처를 받지 않을 수 있어요. 외롭지 않을 수 있어요. 그런데 당신은 그럴 수 없잖아요.

 

그래서 상처는 받지 않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다루는 법이 중요해요. 그러니 자꾸 강한 멘탈을 가지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마세요. 강한 멘탈은 허황되고 사실상 나쁜 것입니다. 강한 멘탈은 결국 두꺼운 갑옷에 날카로운 가시를 돋게 만듭니다. 그래서 그저 움직이기만 해도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줘요.

 

자신이 상처를 잘 안 받는다고 믿으니 상대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고는 자꾸 말과 행동을 함부로 해요. 사람들은 오직 자신의 입장에서만 상대를 공감할 수 있거든요. 자신이 그 상황에서 추울 것 같아야 상대가 춥고 불쌍해 보이죠. 자신이 상대 입장일 때 시원할 것 같으면 오히려 부럽기까지 해요.

 

강한 멘탈을 가진 사람은 자신이 그것을 가지려고 힘든 노력했기에 누군가 상처입고 힘들어 하면, 그런 것 따위에 상처 받냐고 비웃어요. 물론 겉으로 드러나는 태도는 정중한 조언이죠. 하지만 마음 속에는 상대를 못났다고 생각하는 마음이 깔려 있어요. 그러지 마세요.

 

두꺼운 갑옷을 입고는 자신의 몸이 튼튼하다고 자랑하는 꼴이에요. 그러다가 물에 빠지면 어쩔려고 그래요.

 

, 그러면 상처를 어떻게 해야 할까요? 멘탈을 강하게 하는 것이 답이 아니라면 다른 해결책이 있나요? , 있어요. 사실 더 쉬울 수도 있어요.

 

자신이 상처를 받는 것을 그냥 인정해요. 인간은 모두 연약하고 평생 두려움 속에서 살아가요. 그러니 당연해요. 그리고 나서 상처를 주고 받는 과정을 다시 한번 이해해 보세요. 사실 상처를 주고 받는 과정을 보면 당신이 잘못하고 있는 것은 없어요. 물론 상대 잘못도 아니에요.

 

그 상대가 끝없이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이라고 해도 마찬가지에요. 당신은 그저 불운한 것뿐입니다. 그것은 그저 견디느냐, 견디지 못하느냐의 차이만 있어요. 그 사람 성격이 그렇게 지랄 같아 진 것에 당신이 잘못한 것은 하나도 없어요. 그 사람도 상처를 너무 많이 받아서 그렇게 된 것이기도 하고요.

 

그러니 당신은 그저 재수가 없었을 뿐이에요. 오늘 불운한 일이 있었거나, 불행한 일을 당한 사람의 곁에 있었거나, 당신을 질투하고 당신에게 열등감을 느끼는 사람이 옆에 있었던 것뿐이에요.

 

알아요. 그것을 안다고 해서 상처가 없어지지 않죠. 대신 그 상처를 스스로 덧나게 긁지는 않을 수 있어요. 그래서 그 상처로 인한 기분 나쁨으로써 주변에 또 다른 사람들에게 그것을 옮기지 않을 수 있어요.

 

이것만 해도 정말로 대단한 것이에요.

 

그리고 나서 정말로 중요한 것을 하나 해야 해요. 여기서부터는 조금 어려워요. 왜냐하면 바로 '상처 바라보기'를 해야 하니까요. 아픈 것은 우연히 일어난 일이니 인정하더라도 치료는 제대로 해야죠. 그런데 의사가 없어요. 그래서 혼자 치료해야 해요.

 

사람들은 보통 치료를 위해 위로를 원해요. 상처받은 자신을 위로해달라고 해요. 서점에 위로에 관련된 책들이 그렇게나 많이 나오고 잘 팔리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에요. 그 현상이 바로 그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상처를 받고 있으면, 한결같이 그렇게 위로를 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방증하죠.

 


그렇지만 이것은 치료가 아니랍니다. 그것은 마약 성 진통제를 먹는 효과에요. 통증이 느껴질 때, 통증 자체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통증이 느껴지지 않는 방법을 선택하는 것이죠. 물론 효과는 매우 좋아요. 금세 통증이 사라지니까요.


상처받지 않을 권리나 자유 같은 것은 없어요. 그것은 감기에 걸리지 않을 권리와 같아요. 누가 그런 권리를 줘요. 그런거 존재하지 않아요. 당신은 감기를 치료할 권리만 있어요.

 

하지만 상처를 제대로 치료하는 과정은 힘들고 고통스럽죠. 그러나 진통제를 먹으면 단 몇 시간 안에 멀쩡해져요. 그러니 누가 그것을 치료를 하려고 하겠어요. 그저 진통제를 먹죠. 하지만 진통제는 분명히 한계가 있습니다. 특히나 '적응' 은 무서운 현상이에요. 그래서 점점 진통제가 잘 안 들어요. 그럼 점점 더 강한 진통제를 찾죠.

 

상처 받은 당신을 잘못했다고 질책하는 책을 읽으면서 카타르시스를 느껴요. 더 강한 멘탈을 가져야 한다는 강의를 들으면서 전투 의욕을 고취시켜요. 자신은 상처 따위는 받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마음 먹죠. 그 누구도 나를 상처입하게 가만 두지는 않겠다.

 

그런데 이 말을 제대로 해석하면 어떤 말이 될까요나는 지금부터는 두려움을 느끼지 않겠다. 좀 더 적나라하게 해석하면 나는 결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겠다는 말이죠당신은 이것이 과연 가능하다고 믿어요?

 

당연히 불가능하죠. 그러니까 그러지 말아요. 그 동안 많이 해봤잖아요. 더군다나 상처를 입지 않겠다고 다짐해놓고 결국 상처를 입으면 그 충격이 두 배로 돌아와요. 상처 자체로 아프고, 상처를 받았다는 사실로 인해서 더 아파요. 미래에 또 그런 상처를 받을 것이라는 걱정이 밀려오면서 심각한 두려움에 빠져요.

 

그러니 제발 좀 이제 다른 방법 좀 찾아봐요.

 

원래 깊은 상처에 대한 해결책은 장시간의 심리적 요법을 통해서 처리해야 해요. 저는 당신이 그런 심리적 상처를 가지고 있는지 여부는 알 수 없어요. 어린 시절에 부모님으로부터의 방관, 학대, 차별 등을 경험했는지, 누군가로부터 강한 충격을 받는 행동을 당했는지 여부를 고양이인 제가 알 수는 없죠.

 

그래서 그런 종류의 상처는 좀 더 힘들고 더 오랜 시간에 걸쳐서 바라봐야 해요. 그러니 이 강의에서는 뭔가 구체적인 해결책을 제시해 줄 수 없네요. 그냥 기회가 된다면 심리 상담을 받아보라고 권유해드려요.

 

그것 말고 그냥 살면서 받게 되는 다양한 상처들은 오직 그것을 '바라봄' 으로써 만 유일하게 해결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말씀드릴 수 있어요.

 


물론 바라보면 무척 아파요. 찢어진 살을 보고 있는 면 내 살이 아니더라도 아프죠. 그러니 상처를 바라보고 있는 일이 얼마나 아프겠어요. 정말로 견디기 힘들 정도로 고통스러워요.

 

하지만 그렇게 상처를 바라봄으로써 그 상처를 준 진정한 원인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어요.

 

만약 당신이 못에 찔려 무척 아플 때, 분명히 원인은 못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못을 탓할 수는 없죠. 못은 원래부터 목적에 맞게 뾰족하게 만들어졌을 뿐이에요.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당신 잘못인가요? 물론 부주의해서 찔렸을 수 있으니 당신 잘못일 수도 있어요.

 

그렇다고 자책 한다고 해서 그 상처가 빨리 나아요? 아니죠. 그냥 빨리 열심히 치료하는 것이 제일 좋아요.

 

, 정리하면 상처를 다루는 법은 이렇게 정리가 돼요.

 

일단 상처를 받았다는 것을 인정해요. 그리고 상처의 원인에 대해서 깊은 성찰을 해야 해요. 이때 상처를 준 누군가는 그저 못일 뿐이에요. 물론 그 사람 탓을 할 수 있어요. 왜 그랬냐고. 하지만 그 사람 역시도 그날 뭔가 기분이 안 좋은 것이에요. 혹은 당신을 질투하거나 요.

 

그것은 당신이 어쩔 수 없는 일이에요. 못이 뾰족한 것에 대해서 당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없어요. 그러니 상대를 못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잘 안되죠. 말하는 저도 잘 안 돼요. 안 되지만 해야 해요. 그래야 다음에 조금이라도 더 나아지거든요.

 

모든 것이 한번에 나아지지는 못해요. 그런 마법은 없어요. 어느 날 갑자기 두꺼운 갑옷을 입고는 나는 더 이상 상처 받지 않는다 라고 선언할 수는 없어요.

 

그렇게 급작스럽게 만들어진 것들은 당신의 것도 아니고, 또한 언제든 사라질 위험도 있어요. 그러니 무엇을 하더라도 오랜 시간에 걸쳐서 꾸준히 해야 합니다. 그래야 정말로 당신의 것이 만들어져요.

 

그 과정 중에서 당신은 끝없이 상처를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될 것이에요.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상처와 결코 감당하지 못할 상처가 있다는 것을요. 무조건 견디는 것이 능사가 아니에요.

 

못이 뾰족하면 못을 치워야 해요. 대신 부드러운 것들을 주변에 놔둬야 상처를 안 입죠.

 

누군가 당신에 반복적으로 상처를 입힌다면 그 사람과의 관계를 끊으세요. 어렵죠. 하지만 당신이 정말로 자신의 상처를 제대로 바라보고 고통스러워했다면 사실 그런 일은 아무 것도 아니에요.

 

원래 사람은 자신이 고통스러운 만큼 다른 사람에게 성질을 부릴 수 있거든요. 그러니 만약 관계를 끊는 것이 두렵다면 그것은 본인이 상처라 견딜 만 한 것이라는 점을 의미해요.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는 견디지 못할 상처를 스스로 견디고 있다고 착각해요. 어떻게요? 바로 위로를 받고요. , 그저 진통제를 먹으면서 자신이 그 상처를 잘 치료하고 있다고 믿어요.

 

이것이 위로가 가진 가장 치명적인 문제에요. 그러지 마세요. 아프면 아프게 놔둬요. 위로 받으려고 하지 마세요. 그것은 당신을 망치는 행위에요. 갑옷을 입는 것도, 위로를 받는 것도 모두 그래요. 당신은 당신의 상처를 있는 그대로 보고 그 고통을 그대로 느낌으로써 그것을 치료해 낼 수 있어요.

 

그리고 어쩔 수 없이 발이 썩기 시작하며 잘라야 해요. 그래야 몸이 살아요.

 

이 세상에서 어떤 관계도 끊지 못할 관계는 없어요. 충분히 고민하고 성찰한 후에 나온 결정이라면, 그렇게 하세요. 당신은 상처받지 않을 권리는 없지만, 원하는 관계만을 맺을 권리는 있어요.

 


그렇게 주변 관계를 정리하세요. 그리고 이후로도 다른 사람들을 만날 때 그 점을 꼭 유의하도록 하세요. 이미 상처를 너무 많이 받아서 끝없이 주변에 상처를 주는 사람들이 있어요. 아무 이유도 없고, 아무 목적도 없어요. 마치 사방으로 가시가 튀어나온 것과 같아요. 존재 자체가 상처에요.

 

이런 사람은 그냥 멀리 하는 게 최선이에요. 물론 그 사람을 아끼고 사랑해줘서 그 사람을 치유해줄 수도 있어요. 그런데 그렇게 할 능력이 돼요? 아니죠. 괜히 감당하지도 못할 일을 벌이지 마세요.

 

아주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면, 보통은 관계를 끊는 태도를 보이면 자연스럽게 멀어져요. 그것이 직장이라도 같아요. 오직 학교만이 힘들죠. 그래서 청소년들이 참 힘들어요. 상처를 엄청 받는데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기가 결코 쉽지 않거든요.

 

그래요. 그때는 어쩔 수 없다고 치고, 이제 스스로 독립되었고 그리고 다들 자신이 원하는 것이 있어서 모이잖아요. 직장이든, 모임이든 뭐든 말이에요. 그런데 거기에서 누군가 반복적으로 자신에게 상처를 입히는 언행을 한다면 그냥 끊어 버려요.

 

가족도 그래요. 부모 자식 간에도 끊을 수 있어요. 천륜이라고 포장되었지만 세상에 끊을 수 없는 관계는 없습니다. 상처입고 불행하게 사느니, 끊고 행복하지 않게 사세요잘못된 사회적 통념에 얽매어서 살지 마세요.

 

사람에게 있어서 관계는 생존에 관한 문제입니다. 하지만 그런 관계가 없다고 해서 죽지는 않아요. 이것은 오래된 착각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강의 후반에 좀 더 자세하게 다룰 예정입니다.

 

그리고 이런 노력은 주로 외적인 치료에요그래서 추가적으로 내적인 노력도 필요해요. 그것은 바로 상처를 받는다고 느끼는 주체가 바로 그 누구도 아닌당신이기 때문이죠.

 

모든 상처는 결국 내가 받아요. 그래서 같은 말을 들어도 누군가는 웃고, 누군가는 상처받죠. 그 차이는 오직 각자 내부에 있어요.

 

그러니까 사실상 상처에 대한 최종 책임은 모두 각각에게 있다는 뜻이에요. 못에 찔린 발은, 결국엔 발의 잘못이란 뜻이에요. 물론 이것은 도덕적인 책임을 말하는 것은 아니에요.

 

하지만 상처를 입히고는 '너는 왜 그런 일에 상처를 받니' 라는 말 따위는 하지 마세요. 칼로 사람을 찌르고 너는 왜 칼에 찔리냐고 묻는 꼴이에요. 이 말은 인간들이 하는 말 중에서 가장 뻔뻔한 말 중 하나에요.

 

설령 그것은 알고 있다고 해도 결국 찔린 것은 당신이에요. 그러니 아픈 것도 당신이죠. 그러니 최대한 칼에 찔리지 않거나 찔릴 기회가 없는 사람이 되는 수 밖에 없어요.

 

이것을 이뤄내기 위해서는 단 하나의 방법밖에 없어요. 그것은 바로 진정한 의미의 자기 성찰입니다.

 

즉, 자신이 가진 두려움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야 합니다. 이것은 무의식적으로 가진 두려움의 실체를 의식적으로 바라 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그것이 사실은 여리고 약한 무의식이 가진 고지식한 두려움임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이때 유일한 해결책이 생겨납니다.

 

이 해결책은 질투, 분노, 외로움, 열등감과 같은 나쁜 감정을 해결하는 방식과 동일합니다. 당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나쁜 것들에 대한 해결 방법은 결국엔 단 하나로 수렴되거든요.

 

혹시 어떤 공통적인 해결책이 보이시나요? 아니면 아직도 뜬구름 잡는 이야기 같은가요?

 

상관없어요. 아직 그것에 대해서 좀 더 설명을 해드릴 강의가 몇 편 남아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겨우 자신이 가진 문제가 무엇이지 10% 정도 이해한 수준이에요.

 

다음 시간에 다룰 피해의식과 확대해석은 두 편의 강의는 아마도 당신이 가진 최고 수준의 문제점들을 다루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이해함으로써 진정으로 '내가 누구인가' 를 아는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어요.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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