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고씨의 인문학개론

3강, 나는 누구인가를 왜 알아야 하지?

아이루다 2017. 1. 23. 08:04

 

안녕하세요. 다시 또 저 빙고입니다. 벌써 세 번째 강의 시간입니다. 요즘 며칠 사이에 눈이 많이 내리고 있는데, 다들 미끄러지지 않게 조심하세요. 넘어져서 뼈라도 다치면 고생합니다.

 

그리고 고양이가 뼈에 좋다는 말은 낭설이니 절대로 믿지 마세요! 그거 개들이 퍼트린 소문입니다. 참고로 개가 뼈 붙는데 좋다는 얘기를 어디서 들었던 적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해요.

 

, 또 강의를 나가 보도록 하죠.

 

첫 시간과 지난 시간을 통해 저는 인간이라면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을 평생 성찰하면서 살아가야 한다고 나름대로 강력하게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혹시 이런 질문이 떠오르지 않습니까?

 

그건 바로 나는 누구인가를 알면 뭐가 달라지지? 라는 질문이요. 그러니까 왜 내가 누구인지를 평생 동안 성찰해야 하는지 이유가 과연 무엇일까요? 그냥 순수하게 궁금해서 그럴까요?

 

이것을 그냥 넘기면 말 그대로 이론을 위한 이론이 됩니다. 이것은 마치 행복하게 살려고 노력하세요 라는 말고 같습니다. 그 말엔 도대체 왜 행복해야 하며, 행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무런 정보가 없습니다.

 

우리는 이런 말들을 아주 자주 접합니다. 왜 하는지, 어떻게 하는지 이유도 모르고 합니다. 남들이 하니까 합니다. 그리고 지금 이 강의실에서는 제가 '나는 누구인가' 를 알아야 한다고 하니까 그냥 그래야 하나보다 라고 생각합니다. 일종의 무의식적 반응이죠.

 

그러지 마시죠. !

 

인간이라면 의식적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지적 존재로써 할 수 있으며, 해야 할 일이기도 하죠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고양이도 질문을 던지는데 인간이라면 더욱 더 그래야 하죠.

 

아무튼 나는 누구인가를 왜 알아야 할까요? 지금도 전혀 궁금하지 않으세요?

 

혹시나 지난 글에서 제가 너무 설득력 있게 설명했나요? , 중요하지 않습니다. 아무튼 이번 강의는 바로 그것에 대한 설명을 할 것입니다. 설명을 듣기 전에 잠시만 그것에 대해 생각해 보세요. 그리고 다음 설명을 들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네요.

 

, 이제부터 설명이 나갑니다. 집중하세요.

 

사실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서 생각해 봐야 합니다.

 

그것이 각각 무엇일까요? , 손들고 한번 말씀해 보세요.

 

, 편하게 부담 없이.

 

역시 아무 말도 없군요. , 괜찮습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아마도 답을 했을 수도 있으니까요.

 

첫 번째는 바로 '' 가 속한 인간 전체에 대한 질문입니다. ,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에 관한 질문이라고 해야죠. 인간은 왜 이 지구라는 행성에서 살아가고 있는지인간은 과연 무엇을 목적으로 존재하게 되었는가 에 대한 질문입니다. 매우 어려운 질문이죠.

 

이것은 인간 존재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의미합니다. 인간이 존재하는 목적만 알 수 있다면 '나의 정체' 쯤은 쉽게 파악이 될 수 있으니까요. 망치가 존재하는 것은 못을 박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면 망치의 정체는 쉽게 파악이 되지요. 물론 망치는 다른 용도로도 사용될 수 있긴 합니다만.

 

두 번째는 순수한 의미로 나 자신에 대한 질문입니다. 내가 인간인 것은 알겠지만, 도대체 개별적인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입니다. 나는 왜 그것을 원하고, 나는 그것을 왜 싫어하며, 나는 왜 그것에 흥미를 느끼는가, 그런 것들에 대한 질문입니다.

 

흥미롭게도 이 두 가지 입장은 각각 학문적으로도 다르게 대응됩니다. 첫 번째인 인간이 무엇인지를 연구하는 학문을 인간 사회에서는 철학이라고 부르죠. 그리고 내가 누구인지를 알려고 노력하는 학문은 심리학이라고 합니다.

 

이 두 학문은 친 형제와 같지만 많이 성격이 다르죠인간에 대한 관심과 나에 대한 관심의 차이니까요.

 

사실 저는 고양이이긴 하지만 첫 번째 질문에 대해 관심이 많습니다. , 철학적 접근을 하는 편이죠. 하지만 이번 강연은 그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을 예정입니다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칼로 물 베듯이 나뉘지는 않겠지만, 아무튼 이 강의가 너무 광범위한 주제로 번져나가길 원하지는 않습니다.

 

, 이제 다시 하던 설명을 이어가 보도록 하죠.

 

이제 인간이 '나는 누구인가' 를 알아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를 설명해드릴게요.

 

그것은 바로 '내가 누구인지 모르니까' 입니다. , 모르니까 당연히 알아야 하죠!

 

인간이 자신에 대해 모르는 이유는 뭘까요? 자신과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낸 존재가 바로 자신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왜 자신에 대해서 잘 모를까요?


이것을 이해하려면 사람들이 평소에 나누는 대화 내용을 살펴봐야 합니다. 사람들은 어떤 얘기들을 나누고 살죠? 잘 생각해보세요.

 


잘 살펴보세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 대화 할 때 자기 자신에 대한 얘기를 거의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주로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얘기합니다. 친구 얘기, 직장 동료 얘기, 연예인 얘기, 정치 얘기, 스포츠 얘기, 가족 얘기, 친척 얘기, 쇼핑 얘기, 제품 얘기, 먹을 것 얘기 등등을 하는데, 결국 거기엔 자기 자신에 대한 얘기는 거의 나오질 않습니다.

 

물론 자신에 대해 얘기할 때도 있죠. 오늘 속상했던 얘기, 상처받은 얘기를 합니다. 하지만 이때조차도 자신이 왜 상처를 받았는지, 속상함을 느꼈는지에 대한 내용보다는 나를 상처받게 만든 사람에 대한 비난이나, 내가 속상하게 된 원인에 대한 한탄만을 얘기 할 뿐입니다. 그러니 그것 역시 남에 대한 이야기일 뿐입니다.

 

, 어디에도 나는 없죠. 남들만 있습니다. 그나마 혼자 있을 때는 자신에 대해 생각할 기회가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런 상황이 되면 무척 심심해 합니다. 결국 그래서 TV를 켜고, 스마트폰을 보고, 영화를 보고, 게임을 하고, 인터넷 사이트를 뒤적거립니다. 그러니 자신과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고도 결국 자신에 대해서 알지 못하게 되는 것이죠.

 

그런데 사람들은 자신이 정말로 자신에 대해서 모른다고 생각할까요?

 

아닙니다. 다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살아갑니다. 자신의 이름도 알고, 자신이 할 줄 아는 것, 자신이 하지 못하는 것, 자신이 좋아하는 것, 자신이 싫어하는 것 등등을 알고 있기 때문이죠.

 

그런데 이것이 정말로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상태일까요? 아닙니다. 사람들은 정말로 중요한 한 가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실체입니다. 자신의 진짜 모습을 모르고 있습니다. 이것이 무슨 말이냐고요?



당신을 포함해서 거의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신에 대해서 어떤 기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그것을 '되고 싶은 나' 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결코 실제의 나는 아닙니다. 실제의 나는 따로 있습니다.

 

즉, 우리는 대부분 '되고 싶은 나' '실제로 나' 사이의 갈등 속에서 평생을 보냅니다. 그리고 그 차이가 크면 클수록 삶이 우울해집니다. 그로 인해서 불행해집니다.

  

이것은 마치 볼링을 치는 것과 같습니다. 사람들이 볼링장에 가서 우연히 아주 높은 점수를 받을 수도 있죠. 300점 만점에 250 점 정도요. 그런데 어느 날은 100점도 안 나오는 날도 있습니다. 아주 가끔 치는 볼링이기에 어떤 것을 자신의 실력을 해야 할지 가늠하기 힘듭니다.

 

하지만 우리는 보통 250점까지도 나온 자신을 ''로 정의 합니다. 그래야 기분이 좋거든요.

 

비슷한 예도 있습니다. 바로 셀카를 찍을 때죠. 사람들은 셀카 사진을 수백 장을 찍은 후, 가장 잘 나온 사진을 자신의 프사로 사용합니다. 우연히 잘 나온 사진 한 장이 자신의 외모를 가장 제대로 표현한 사진이 되는 것이죠. 이런 일은 비일비재 합니다. 사람들은 어느 날 우연히 뭔가 잘 맞아 떨어져 운 좋게 이룬 것을 자신의 능력으로 인정하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아닌 것을 아닌 것이죠. 그리고 그것을 인식하게 되는 날, 사람들은 아주 기분이 나쁩니다. 슬프고 우울합니다. 상처를 받고 어찌할 줄을 모릅니다. 신경질이 나고 화가 나며 자신의 진실을 알게 해준 그 상황이 너무도 싫다고 생각합니다. 혹시 사람이면 그 사람이 싫어집니다.

 

인간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뭔가 조언을 할 때도 자주 그런 행동을 합니다. 자신이 실천하는 것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거나 그래야 한다고 믿는 것들을 다른 사람에게 당당하게 조언합니다. 그것도 아주 자연스럽고 쉽게 합니다.

 

남자친구와 헤어져서 너무도 힘들어하는 친구에게 이 세상엔 남자 많다고 위로합니다. 그게 사실이라고 해도 그 말이 위로가 됩니까? 남자가 많으니 헤어진 남자를 잊으라는 말이 위로가 되요? 본인이 상대의 입장이면 그 말로 위로가 될까요?


보이스 피싱을 당한 사람을 보고는, 왜 저렇게 쉽게 속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각종 사기를 당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본인은 정말로 안 당할 수 있을까요?

 

사람들은 남의 일에 대해서는 대단할 정도로 이성적이고 합리적입니다. 하지만 자신이 그 입장일 때는 전혀 다르게 너무도 감정적이면서 불합리한 판단을 합니다.

 

이것도 역시 '자신이 상상하는 자신' '실제의 자신' 의 차이로 인해 생겨납니다. 생각하는 것으로만 보면 사람들은 너무도 똑똑하죠. 현명하고 슬기롭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다르죠.

 

정신분석학 박사가 가족과 아주 잘 지낼 수 없습니다. 물리학 박사가 당구를 아주 잘 칠 수는 없습니다. 이론과 현실은 다릅니다.

 

자신의 머리 속의 나는 이론입니다. 그리고 실제의 나는 현실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론과 현실의 차이로 인해서 발생하는 복잡한 문제를 어떻게 다룰까요? 이 점이 참 재미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과거에 있었던 일을 현재의 결과를 기반으로 재해석하는 것이죠. , 자기 합리화를 합니다. 공부를 할 때 천원이 없어서 컵라면을 도둑질을 했던 과거는 시험에 합격하면 고생한 과거로 치장이 되는 것이죠. 시험에 떨어지면 결국 도둑질일 뿐인데 말이죠.

 

이 사람은 결국 처지가 어려워지면 언제라도 도둑질을 할 수 있는 수준의 사람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성공했기에, 비참한 과거를 이겨낸 불굴의 의지를 가진 사람이 되는 것이죠. 이것이 바로 합리화의 과정입니다. 이 사람만 그럴까요? 아닙니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그래야 되고 싶은 나와 현실의 나의 괴리감이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당신도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면 자기 합리화의 달인이겠죠. 하지만 너무 걱정 마세요. 제가 계속 강조하지만, 그런 모습은 지극히 정상입니다저도 고양이지만 저 역시도 그렇습니다.

 

그럼 이것이 어떤 문제를 일으킬까요?

 

결론적으로 말해서 상상 속의 나와 현실에 나가 가까울수록 행복한 삶을 살고, 반대가 될 수록 불행한 삶을 삽니다.

 

다르게 표현하면, 자기 기대치가 높은 사람은 불행할 가능성이 높고, 자기 기대치가 낮은 사람은 행복하게 살 가능성이 높습니다.

 

물론 차이가 크거나 기대치가 높은 사람이 늘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이 어떤 노력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니까요. 그 차이를 없애려고 열심히 노력하다가 보면 정말로 없어질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운이 좋다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죠.

 

하지만 사람들은 대부분 노력하길 별로 달가워하지 않죠. 그렇다고 해서 기대치가 낮아지는 것도 아니죠. 한번 찍은 잘 나온 사진이 사라지지 않는 듯 말이에요.

 

더군다나 그것을 그만두고 싶어도 쉽지 않아요. 그것은 바로 주변 사람들의 기대치가 있기 때문이죠. 사람들은 자꾸 기대를 해요. 그나마 기대는 긍정적인 것이지만, 더욱 좋지 않는 것이 하나 있어요.

 

그것은 바로 자극입니다. 서로에게 자극해요.

 

너는 적어도 어떤 대접을 받아야 할 사람이다. 사람이라면 이 정도는 누려야 한다.

 

사람들이 얼마나 자주 그런 얘기를 하는데요. 죽기 전에 가봐야 할 여행지 100, 봐야 할 영화 100선 등등 그런 것들은 넘치고도 넘쳐요. 왜 살아 생전에 그런 것을 해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래요.

 

자꾸 어떻게 살아야 한다라는 말을 합니다. 결혼을 해야 한다, 아이를 낳아 봐야 한다, 젊어서 고생해 봐야 한다 등등 많습니다.


나에 대한 정의가 타인에 의해서 내려지느 현장이죠. 그리고 그렇게 주입된 나에 대한 정의는 곧 스스로도 그렇게 믿는 내가 됩니다. 내가 타인으로부터 정의될 때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설령 그것이 맞는 말이라고 해도 사람들마다 모두 이루지지는 않죠. 그래서 사람들은 결국 상처받아요.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에게 실망해요. 그것도 못하고, 그것도 못 누리고, 그것밖에 안 되는 것 같아서 속상해 해요.

 

이것이 바로 차이가 크거나 기대치가 높으면 불행하게 되는 이유가 되요. 괜히 기대치를 높여 놓고서는 그것을 이루지 못할 때마다 속상해 하고 힘들어 해요. 그냥 처음부터 갖지 않으면 되는 것을 말이에요.

 

자신은 100억을 벌어야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100억을 벌지 못하면 불행해 해요. 왜 그러죠? 100억을 벌어야 하죠? , 다양한 이유를 대겠죠. 그런데 그 이유들은 도대체 왜 필요하죠? 남을 돕고 싶어서 그렇다고 해요.

 

그럼 왜 남을 돕고 싶은데요? 어떤 사람은 그것이 인간으로써 해야 할 일이니까 라고 하기도 하죠. 그런데 인간이라면 왜 해야 하죠? 안 하는 사람은 인간이 아닌가요? 이것이 죽기 전에 가봐야 할 여행지 목록과 뭐가 다르죠?

 

결국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사람들은 평생 힘들어요. 질투도 생기고, 화도 나고, 짜증도 나요. 관대하기도 힘들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기도 힘듭니다. 자신에게 자꾸 실망하고, 자신을 미워하는데 어떻게 관대하며, 어떻게 사랑하겠어요. 그것은 불가능해요.

 

그래서 이것을 어떤 식으로든 해결해야 합니다. , 이제 해결책을 알아보죠.

 

높은 위치에 있는 원하는 자신과 낮은 위치에 있는 현실의 자신의 차이를 줄이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기대치를 낮추는 방법입니다. 물론 매우 고통스러워요. 자신을 인정해야 하니까. 못난 존재이고, 별로 희망도 없는 존재 같으니 화도 나고 우울해져요. 그래서 무척 힘들어요.

 

다른 하나는 현실을 기대치 수준으로 높이는 것이에요. 심각한 노력을 하는 것이죠. 이 역시도 힘들고 고통스러워요. 대신 성공하면 많이 편해지긴 합니다.

 

둘 다 모두 힘든데, 비교하면 노력하는 것이 훨씬 더 힘들어요. 그리고 노력한다고 해서 언제나 원하는 결과가 나오는 것도 아니기에 더 힘들어요.

 

그래서 사람들은 노력도 하지 않고 기대치를 낮추지도 못해요. 그래서 변화될 수 없죠. 바뀌지가 않고 평생 동안 상처를 안고 살아가게 되요. 상처를 입을수록 점점 더 외부에 강력한 벽을 만들어요. 자신을 보호해야 하기 때문이에요. 이런 모습은 결국 고집, 신념 등으로 포장되죠.

 

, 이제 어떻게 하고 싶어요? 노력하고 싶어요? 아니면 기대치를 낮추고 싶어요? 아니면 현재 그대로 계속 그렇게 살고 싶어요? 어떤 선택을 원하나요?

 

나는 누구인가를 알아가는 것은 나의 한계를 이해하고 인정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노력하지 못하는 것 조차도 받아들이세요. 아무나 노력할 수 없어요. 그러니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일려고 해보세요.


사실 그것은 당신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당신을 포함한 모든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에요. 그러니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을 기분 나빠 하지 마세요. 인간은 원래 완성을 위해 살아가야 하는 존재입니다. 행복하고 싶다면 말이죠.

 

행복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니까요. 사실 '나는 누구인가' 를 알아야 하는 가장 궁극적인 이유가 바로 행복하기 위해서니까요. 그러니 행복하고 싶다면 재미있는 것, 가치 있는 것만 찾아 다니지 말고, 가만히 제자리에서 '나는 누구인가' 를 스스로 묻고 답해 보세요.


그리고 그렇게 해서 찾아진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세요. 아끼고 사랑해주세요. 자꾸 뭐라고 하지 마세요. 왜 그것밖에 안되냐고 다그치지 마세요. 속상해 하지도 마세요. 자기를 자꾸 높게 올려놓고 왜 거기에 못올라 가냐고 비하하지 마세요. 그럴 시간이 있으면 차라리 노력하세요. 여려운 노력하지 말고, 쉬운 것부터 하세요.


,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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