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고씨의 인문학개론

첫 시간, 강의 시작

아이루다 2017. 1. 20. 06:42

 

안녕하세요. 저는 오늘부터 "빙고씨의 인문학개론" 을 맡아서 강의를 하게 된 빙고라고 합니다. 저는 원래는 고양이였으나, 사람의 말을 할 줄 아는 관계로 이번 강의를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인간이 아닌 고양이임에도 불구하고 이번 강의를 하게 된 가장 첫 번째 이유는 아이러니 하게도 바로 제가 인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인간이 아니기에 그 어떤 인간보다도 인간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괜히 인간의 편을 들어 주거나, 인간을 이해해주거나, 인간을 포장하거나, 인간을 위로해주지 않습니다.

 

말 그대로 있는 인간 그 자체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것이죠. 이것은 매우 중요한 배경입니다. 어떤 것에 대해서 제대로 알려고 할 때, 객관적 태도는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니까 말이죠.

 

오늘은 이 강연의 첫 시간입니다. 강의 제목은 인문학 개론이지만, 사실 이 강의는 인문학이 무엇인지를 가르치는 것은 아닙니다. 솔직히 말해서 제가 무엇을 가르칠지도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강의가 끝날 때쯤 되면 제가 무엇을 가르치려고 했는지 알게 될 것입니다. 물론 저도 그때 알게 되겠지요.

 

일단 이 강의는 이 블로그에 이미 쓰여진 수 많은 글들을 정리하는 구조로 진행될 것입니다. 그러니 혹시 강의를 보다가 의문이 나는 분들은 질문을 던져 주시고, 저는 그 질문을 본 후 거기에 합당한 블로그 글을 찾아서 연결시켜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혹시 없다면 새로 써드리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니 부담을 갖지 마시고 마음껏 질문해주세요.

 

소개가 좀 길었네요. 아무튼 지금부터 강의를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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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이 질문을 보시죠. 

 


아주 단순한 질문입니다. 인간은 왜 살까요? 많이 들어 보기도 했고, 그것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봐야 할 것 같은 질문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다시 한번 생각해봅시다. 사람들은 과연 정말로 이런 질문을 던지고 싶을까요?

 

인간이 스스로에게 아니면 또 다른 누군가에게 '나는 왜 살아야 할까' 를 묻는 상황에 놓였다면 이것이 정말로 정상적인 상황일까요?

 

단순히 생각해도 그렇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강하게 듭니다.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왜 사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이 쓴 글이나 책을 보기도 합니다. 혹은 영화나 각종 문화 상품들을 통해서 그것에 대한 간접적 답변을 보기도 합니다.

 

대문호라고 일컬어지는 톨스토이는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라는 책을 통해서 인간이 왜 사는지에 대해서 그 나름대로의 답을 내기도 했습니다. 물론 무엇으로 사는가 라는 말과 왜 사는가 는 그 질문의 취지가 다르긴 합니다만, 그래도 참고할 만 합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정말로 왜 살고 있을까요?

 

지금부터 각자 답을 내어보도록 하죠. 일단 앞에 있는 당신부터 그 답을 내보도록 하죠.

 

혹시 답하기가 많이 어려운가요?

 

만약 답하기가 어렵다면, 이 질문을 너무 어렵게 생각해서 그렇습니다.


인간은 사실 왜 사는가에 대한 이미 아주 많은 답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내나 남편 때문에 살기도하고, 아이때문에 사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부모 때문에 사는 사람도 있고, 지키고 싶은 것이 있어서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고 싶은 일이 많은 사람도 있고, 꼭 해보고 싶은 일이 있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살아야 할 이유는 반듯이 필요한 조건입니다.

 

그래서 이런 것들은 모두 왜 사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의 후보가 될만합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이유만 될 수 있다면 정답이 될 수 있겠죠.

 

그런데 이렇게 답이 단순하다면 그 오랜 시간 동안 왜 사는가 에 대한 질문이 그토록 반복적으로 질문되지는 않았겠죠. 사실 그것이 문제입니다.

 

무엇인가에 대한 진짜 이유를 알고 싶다면, 그것이 상황에 따라서 입장에 따라서 바뀌어서는 안되겠죠? 마치 중력의 법칙이 지구의 어느 곳에 있느냐에 따라 달라지면 안 되듯이 말입니다.

 

그런데 앞에서 예를 든 것들은 모두 개인적인 이유입니다. , 주관적인 입장에서 낸 답안들이란 뜻이죠. 그러니 그것은 상황에 따라, 사람에 따라, 입장에 따라, 시기에 따라 계속 달라집니다. 그러니 답의 후보일 수는 있지만, 답이 될 수는 없습니다.

 

앞에서 저를 소개할 때 고양이라고 했습니다. , 저는 왜 사는지에 대한 인간 전체에 해당되는 객관적인 입장을 요구합니다.

 

인간은 왜 살까요?

 

이것은 존재론적 질문입니다. 도대체 인간이 왜 존재해야 하는지에 대한 당위성을 묻는 질문입니다.

 

, 한가지 빼먹었는데, 부탁하건데 이 강의 시간 동안에는 당신이 가진 그 어떤 종교적 믿음도 일단 한쪽 구석에 접어 두시기 바랍니다. 종교는 인간에게는 유효하지만, 고양이에게는 멸치보다도 가치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래야만 이 강의를 계속 들을 수 있습니다.

 

혹시나 절대로 종교적 입장을 배제할 수 없는 분이라면 조용히 이 강의실을 나가시면 됩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 강의가 개종을 강요하거나 혹은 종교를 버려야 한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단지 무엇인가에 대해서 좀 더 제대로 알려고 할 때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는 종교나 신념은 결코 도움이 되질 않는다는 점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일단 열린 마음으로 듣고 나서 필요가 없다면 그냥 버리시면 됩니다. 그리고 한 가지 좋은 일은, 이 강의를 모두 다 듣고 제대로 이해하고 나면 아마도 당신이 믿는 그 어떤 종교나 신념이라고 해도 그 깊이는 한층 더 깊어져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지극히 정상적입니다.

 

, 다시 강의를 이어나가 보죠.

 

인간은 왜 사는가에 대한 당위성을 가장 먼저 종교를 통해 찾아냈습니다. 하지만 종교적 입장에서 주장하는 존재론적 당위성은 아직 명시적이지 않습니다. 종교 그 자체가 의심을 받을 수도 있기에 그렇습니다.

 

인간이 왜 사는지에 대 궁극적 답은 주관적이거나 상대적이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반드시 객관적이고 절대적 입장에서의 답을 요구합니다. 그래서 답이 어려운 것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종교는 주관적이고 상대적입니다.

 

자, 더 생각해보죠. 인간은 왜 살까요?

 

사실 좀 미안하긴 합니다. 제가 왜냐하면 당신이 죽는 그날까지 생각해도 답을 낼 수 없는 질문을 의도적으로 던졌기 때문입니다인간에게 있어서 살아가야 할 그 어떤 객관적, 절대적 이유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 질문은 답이 없는 질문입니다. 그것은 마치 이 우주가 왜 존재하고 있을까를 묻는 것과 비슷합니다. 물론 신이 만들었으니 존재한다고 답을 한다면 쉽겠죠. 하지만 이미 말했듯이 이 강의에서는 종교적 입장에서 내 놓은 해답은 일단 배제합니다.

 

인간 모두가 오늘부터 죽는 날까지 그것만 생각하더라도 답을 낼 수 없습니다. 그러니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질문을 던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당신은 왜 사는지에 대한 답을 찾을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앞으로의 삶에서 이런 질문은 던지지 마십시오. 혹시나 이 질문이 머리 속에 떠오른다면, 그저 불행해서 그렇다는 점을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인간은 한그루 사과나무를 심기 위해서라도 내일을 살 수 있습니다.

 

대신 당신은 이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 두 번째 질문이 나왔습니다. 그것은 바로 어떻게 살 것인가 입니다. 이 질문은 왜 사는가에 대한 질문보다 훨씬 더 쉽고 명확합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을 받으니 뭔가 답을 할만 하다고 생각되지 않습니까? 이것은 삶의 가치에 대한 질문입니다.

 

누군가는 즐겁게 살길 바라겠고, 누군가는 업적을 남기기 위해서 살려고 할 것입니다. 누군가는 아이를 낳아서 키우기 위해서 살고, 누군가는 세계 모든 곳을 여행하기 위해서 살 것입니다.

 

질문이 에서 어떻게로 바뀌면 답은 참 많이 나옵니다. 그리고 이것은 매우 실질적이고 반드시 필요한 질문입니다.

 

당신은 어떻게 살고 싶습니까? 그 답을 해보시죠.

 

딱히 듣지 않아도 그 답을 예측할 수는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아무튼 할 수 있는 일을 하려고 하겠죠. 그리고 그것을 통해 자신만의 가치를 찾는 일이라면 아주 좋겠죠.

 

뭐라고요? 어떻게 라는 질문에서 왜 가치라는 말만 언급되냐고요? 타당한 질문입니다. 가치와 또 하나가 더 있긴 하죠. 그것은 재미나 즐거움으로 표현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치와 재미를 합치면 바로 행복이란 단어로 바뀝니다. , 당신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질문 받을 때, 당신은 자신은 무엇을 통해 행복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받은 셈이 됩니다. 어떻게는 행복으로 가는 길을 묻는 질문입니다.

 

그래서 다음으로 다시 세 가지가 더 붙습니다.

 


바로 언제, 어디에서, 무엇을 라는 것이죠.

 

이 세 가지 질문은 방법론에 관한 것입니다. 왜 사는지에 대한 답은 찾을 수 없었지만, 어떻게 살 것인가를 통해 삶의 방향성을 잡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언제, 어디에서, 무엇을 통해서 그것을 실현할 구체적인 방법을 강구할 수 있습니다.

 

이로써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어떻게, 언제, 어디에서, 무엇을 열거해보니 많이 보던 것이 아닌가요? 일명 육하원칙, 영어로는 5W1H 라고 부르는 것이죠.

 

그런데 한가지가 빠졌네요. 그것은 바로 누가(Who) 입니다.

 

, 누가 라는 단어를 통해 질문을 만들면 바로 이런 질문이 됩니다.


나는 누구인가?


단순히 하나가 빠졌다고 생각했는데, 직접 해보니 엄청난 질문이 나타났습니다. 왜냐구요?


사람들은 살아오면서 단 한번이라도 나는 누구인가를 질문 던져본적이 있을까요? 각자 스스로들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은 정말로 자신이 누군인지를 궁금해 해본적이 있나요?

 

, 어린 시절에 아주 가끔 해봤을 수는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춘기 시절의 질문 말고, 성인이 된 후 정말로 진지하게 이 질문을 생각해 본적이 있습니까?

 

혹시 "" 라고 대답을 하신다면, 당신은 이미 충분히 생각을 많이 하고 사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혹시 방금 한 말인 생각을 많이 하고 산다는 것이 칭찬으로 들렸다면, 당신은 아직 생각이 많이 모자라다는 뜻입니다. 생각이 많은 것은 결코 좋은 일이 아닙니다. 그 이유는 이 강의를 듣다가 보면 이해가 갈 것입니다.

 

,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보죠. 나는 누구일까요?

 

사람들은 왜 라는 질문은 패스했고, 그 후로 어떻게, 언제, 어디에서, 무엇을에 대해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사람들은 정말로 가장 중요하고, 반드시 우선적으로 답을 내어야 할 질문에 대해서 거의 생각을 해보지 않았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만약 사람들이 '나는 누구인가' 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한 채 다른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고 있다면, 그것은 마치 주어가 없는 서술어들뿐인 문장입니다.

 

"나는 파리에 있는 지금 이 순간 너무나도 행복하다"

 

예를 들어서 이 문장에서 "나는" 이란 말이 앞에서 제거되며 어떤 문장으로 변할까요? "나는" 을 대신해서 "너는", "철수는", "빙고는" 이란 말들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것은 전혀 다른 의미가 됩니다.


하지만 파리가 로마로, 지금이 어제로, 행복이 즐거움으로 바뀌는 것은 큰 차이가 없습니다. 주어가 바뀐다는 말이 가진 의미가 바로 그것입니다. 경험과 기억의 주체가 바뀌는 것은 내가 아닌 다른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근본적으로 "누구" 라는 말은 정체를 뜻합니다. 정체가 무엇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그 다음 무엇에 대해서 알 수 있을까요?

 

그러니 인간은 내가 누구인지를 가장 먼저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후로 다른 질문들을 던져야 합니다. 하지만 현대 사회를 살고 있는 인간들은 어떻게, 언제, 어디에서, 무엇을 에 대한 질문만 던집니다. 그 질문만이 다 인줄 압니다.

 

그래서 그것에 대한 답들이 과연 자신에게 해당되는지조차 스스로 정확히 파악하지 못합니다. 그러다 보니 인간은 내가 아닌 네가 행복한 일을 하거나, 철수가 원하는 장소에 갑니다. 사람들은 끝없이 다른 누군가의 위하거나, 다른 누군가가 조언해 준 행동을 합니다.

 

이것은 시작부터 틀렸다는 뜻이 됩니다. 당신은 이제 주어를 찾아야 합니다. 나를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 '나는 누구인가' 에 대한 최대한 많은 생각을 해야 합니다.

 

정말로 나는 누구일까요?

 

이 질문을 마지막으로 오늘 강의를 마칩니다. 다음 시간까지 최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 노력해보세요.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