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고씨의 인문학개론

2강, 나는 누구인가?

아이루다 2017. 1. 21. 08:39

 

안녕하세요. 벌써 두 번째 시간입니다. 하루가 지난 셈인데, 100년 가까이 사는 인간에게 하루는 10년 정도 사는 고양이에게는 열흘 분에 해당 되는 시간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참 오랜만입니다.

 

지난 강의에서 저는 '나는 누구인가' 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서 최대한 많이 생각해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에 대해서 나름대로 설명을 드렸습니다.

 

인간이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그것이 바로 자신의 정체를 정의하기 때문입니다. , 정체를 모른다는 것은 사실상 아무것도 모른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살아오면서 '나는 누구인가' 를 정의해 본적이 전혀 없을까요? 하루 동안 생각해 봤을 테지만 지금 또다시 생각해 보세요. 정말로 한번도 그런 적이 없었을까요?

 

제가 이렇게 물으니 불안하시죠? 뭔가 있었어야 할 것 같다는 느낌도 들죠? 아마 직접 얼굴을 보고 질문을 들었다면 더욱 더 그랬을 것입니다.

 

맞습니다. 있었습니다. 언제냐고요? , 사람마다 그 경험은 다를 것입니다.

 

우리는 가끔 모임에 참석해서 그런 경험을 합니다. 그것을 바로 '자기 소개' 라고 하죠. 인간은 자기 소개를 통해 '내가 누구인지' 를 정의하게 되죠. 그리고 자기 소개는 꽤나 흔한 일이기도 합니다. 처음 친구들을 만난 자리나, 회사에 입사했을 때나, 각종 모임에서 서로를 처음 봤을 때, 어색하지만 자기 소개를 합니다.

 

그런데 자기 소개 자리에서 각자는 무엇을 말함으로써 자신을 정의할까요?

 

흔히 이름, 나이, 사는 곳, 가족 관계 등등 일명 호구조사 라고 하는 것들을 얘기하죠. 더하면 취미, 좋아하는 영화, 감명 깊게 읽은 책, 앞으로의 목표, 다짐 등을 더하기도 하죠. 이것은 사람마다 많이 다르기에 어떤 형태로 정형화 하긴 힘듭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나는 누구인가' 를 남들 앞에서 하는 경험을 이미 했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죠. 과연 그런 설명들이 '나는 누구인가' 에 대한 답이 될까요? 그런 자신의 정보들을 남들에게 설명하면 그 정보들을 통해서 상대가 내가 누구인지를 알 수 있게 될까요?

 

아니라는 것, 이미 다 알고 계시죠?

 

그렇습니다. 아닙니다. 인간 개개인은 단지 그런 정보들의 나열로 정의될 수는 있을 만큼 단순한 존재가 아닙니다. 사실 어떤 한 사람이 나이, 성별, 태어난 곳, 졸업한 대학 등등에 의해서 정의되어 버린다면 얼마나 슬픈 일입니까?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여기에 좀 더 인문학적인 감성적 정보들을 섞습니다. 좋아하는 색, 좋아하는 소설, 감명 깊은 소설, 존경하는 인물 등등이요. 그런데 이런 감성적인 부분을 섞으면 뭔가 더 나아지나요? 물론 인간적으로 느껴지기에 기분은 좋아질 것입니다.

 

하지만 이 역시도 감성적일 뿐, 그렇다고 그것이 각자를 정의할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이쯤에서 멈춥니다. 자신이 먹고 자고 싸는 수준의 생명체가 아니라, 느끼고 생각하고 감각하는 존재로써 의미가 있다고 여기면서 스스로를 뭔가 다른 존재로 정의 합니다. 어린왕자 속에 나온 보아뱀에 관한 이야기를 서로 주고 받으면서 그렇게 합니다.

 

하지만 완전히 착각입니다. 제가 고양이이기에 그렇게 단언할 수 있습니다. 저는 온전히 객관적입니다.

 

그래도 이런 정보들이 각자를 판단하는데 있어서 도움을 주는 정보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죠. 각자가 누구인가를 정의할 수는 없지만, 누군가를 정의하는데 있어서 힌트는 되는 것이죠.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나를 정의할 수 있을까요? 나는 누구일까요?

 

이 질문의 답을 찾으려면 방금 말한 내용 중에서 '판단' 이란 말을 주의 깊게 봐야 합니다. 왜냐하면 생각보다 이 판단과 연결되어 있는 숨겨진 진실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 지금부터 제가 하는 말을 주의 깊게 들으세요. 나름대로 중요한 부분입니다. 여기에서 빨간 줄을 진하게 쳐줘야 합니다.

 

사람은 각자 역할이 있습니다. 이것도 일종의 자기 정의이기도 한데, 자식으로써, 부모로써, 학생으로써, 직장인으로써 고유한 역할이 있습니다. 명백하지는 않아도 친구들 사이에서도 역할이 있습니다. 누군가는 주로 모임을 만들고, 누군가는 술자리를 재미있게 하고, 누군가는 웃고, 누군가는 계속 당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적절하게 어울릴 때 그 모임이 지속됩니다. 그런데 이 역할은 자신이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계속 변합니다. , 우리는 단수로 정의되는 것이 아니라 복수로 정의됩니다.

 

집에서는 아빠로써 엄마로써, 직장에서는 대리로써 부장으로써, 모임에서는 총무로써 단순 참여자로써, 카페에서는 카페장으로써 임시 회원으로써 정의됩니다. 그리고 각각의 그룹에 따라서 우리들은 마치 다른 인격적 존재가 된 듯 행동하기도 합니다.

 

직장에서는 굽실거리다가도 집에 가면 왕 노릇을 합니다. 친구들 모임에서도 어디에서는 주도권을 잡고 있지만, 어디에서는 눈치를 보고 지냅니다.

 

인간은 자신이 얼마나 아쉬운지 여부에 따라서 전혀 다른 사람처럼 굴기도 합니다.

 

이것이 좀 더 세분화 되면 이제는 각각 개인별로도 달라집니다. , 인간은 자신이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각각 다른 역할을 합니다. 이 말은 인간은 자신이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다르게 정의가 된다는 점을 뜻합니다. 모르는 사람은 모르기에 모른다는 정의를 하겠죠.

 

그러니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에 대해서 인간은 자신이 아는 사람 숫자만큼의 정의를 얻습니다. 사실 너무도 많습니다.

 

누군가를 나를 좋은 사람이라고 하겠죠. 누군가는 나를 사기꾼이라고 하겠죠. 누군가는 나를 기분 나쁜 사람이라고 하겠죠. 누군가는 나를 적당한 거리에서 사귀어야 할 사람이라고 하겠죠. 누군가는 나를 이용해 먹기 좋은 사람이라고 하겠죠. 누군가는 나를 어벙벙한 사람이라고 하겠죠. 누군가는 나를 냉정한 사람이라고 하겠죠.

 

나는 하나인데, 나는 수 없이 많이 다르게 정의됩니다.

 

, 이제 아까 한 질문, 나를 어떻게 정의해야 하는가, 이 질문이 가진 진정한 의미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나는 단 한번도 나를 정의한 적이 없습니다. 물론 자기 소개는 했죠. 대신 나는 이미 수 많은 다른 사람들에 의해서 정의 당했습니다.

 

, 내가 나를 정의한 적은 없더라도 나는 이미 정의된 상태입니다. 그런데 그 정의가 너무도 많고 다양합니다더군다나 사람마다 상충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좋은 사람이기도 하다가 나쁜 사람이 되기도 합니다. 도대체 이것을 어떻게 하나로 묶을 수 있을까요?

 

당연히 불가능합니다. 정의는 단수로 내려져야 합니다. 중의적인 의미를 갖게 되면 이해하기가 힘듭니다.

 

이 말은 거꾸로 인간이 왜 그렇게 '나는 누구인가' 를 정의하려고 할 때 어려운 것인지를 설명해줍니다. 도대체 무엇을 근거로 정의해야 할지 혼란스럽습니다.

 

저의 입장에서 보면, 제가 얼마나 매력적인 고양이인지를 판단하기 위해서 오늘 처음 만났다가 차인 고양이를 기준으로 해야 할까요? 아니면 1년 전 만나서 나를 무척 따랐지만 결국 내가 찬 고양이를 기준으로 해야 할까요?

 

나는 인기 있는 남자 고양이일까요?

 

사실 그것을 증명 받으려면 저는 제가 사는 동네에 있는 모든 여자 고양이들에게 자주 수작을 걸어줘야 합니다. 아니,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여자 고양이에게 그래야겠지요.

 

당연히 그것은 불가능하죠. 제가 아무리 잘생긴 고양이라고 해도 말이죠!

 

그렇습니다. 인간이 자신에 대한 정의를 타인을 통해 하려고 하게 되면 이런 문제가 발생합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평가를 받아야 하고, 그것이 좋은 쪽으로만 나와야 확실한 정의가 가능합니다. 그런데 모든 인간들에게 100% 동일한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누구일까요?

 

인간들 중에서 성인들이라고 알려진 예수님이나 부처님도 욕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도대체 누가 그 테스트를 통과할 수 있을까요?

 

, 이것을 잘 기억하세요. 인간은 결코 남에 의해서 정의될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것은 아예 불가능한 목표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의 모든 인간들은 매일 그것을 위해서 최선을 다합니다.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서 노력하죠. 평판을 좋게 하고, 명예를 얻길 바랍니다. 남들이 자신을 좋게 봐주길 바라면서도 그로 인해서 손해는 입고 싶지 않습니다. 이득이 걸리지 않을 때는 서로 웃지만, 이득이 걸리면 끝없이 경계합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서 각자가 살아갈 때 끝없이 주변의 눈치를 보게 만드는 문제가 파생됩니다. 그러니 주변 사람들이 하는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한 마디에 조차 끝없이 흔들립니다.

 

왜냐고요? 남을 통해서 나를 정의하니까 그렇습니다. 만난 시간으로 정확히 따져보면 가장 친한 친구조차도 1년 이상을 같이 보낸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 그보다도 훨씬 덜 시간을 보낸 사람들이 그냥 내뱉는 평가에 의해서 흔들립니다. 자신의 20년의 세월이, 50년의 세월이 흔들립니다.

 

자기 자신만큼 자신과 오래 지낸 사람이 누구입니까? 자기 자신만큼 자신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그런데 자신을 얼마 보지도 못한 사람이 하는 그리 중요하지도 않고, 많은 생각도 하지 않는 판단에 흔들립니다. 자존심이 상하기도 하고, 기분이 나쁘기도 합니다. 물론 반대도 있습니다. 좋은 평가는 기분을 좋게 해주기 때문이죠. 또 그것에 중독되어서 외면하지도 못합니다. 칭찬 한마디 들으려고 참 많은 노력을 합니다.

 

그러기에 오늘도 남들에게 어떻게 하면 잘 보일지를 끝없이 신경 씁니다. 그래야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에 대해서 타인이 해주는 긍정적 답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으니까요.

 

지금 뭐가 문제인지 느끼시나요? 여기까지 설명했는데 못 느꼈다면 좀 실망입니다!

 

제 실망에 또 흔들리셨나요? 그러지 마세요. 저는 아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을 전혀 모릅니다. 그런데 제가 실망하면 상처를 받으시나요?

 

제발 좀 그러지 마세요.

 

좌절하거나 혼란스러워하지 마세요. 이 문제는 당신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이 동일하게 가지고 있는 문제입니다. , 고양이인 저를 제외한 모든 인간이 가진 문제입니다. 물론 저도 조금 가지고 있습니다만

 

살다가 보면 확신이 있어 보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마치 자신이 누구인지 확실히 알고 있는 사람처럼 행동합니다. 생각이나 행동에 있어서 머뭇거림이 없고 뭐든 거침없이 합니다. 그래서 보고 있으면 부럽습니다.

 

이런 사람은 그러면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있을까요?

 

천만에 말씀입니다. 이 세상에 자기 확신이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모든 사람은 속으로 불안감에 휩싸여 살아갑니다. 단지 그것을 어떻게 표현하느냐의 문제입니다. 누구나 겁이 나고, 누구나 불안해 합니다. 이것은 절대적 사실입니다.

 

그러니 지금 흔들림이 있다고 해도 절대로 스스로에게 상처주지 마세요. 사실 이 강의가 목적으로 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인간에 대해서 좀 더 깊게 이해하면, 사실상 많은 것들이 생각보다 아무것도 아님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자신을 좀 더 괴롭힐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좀 더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모든 것이 더 나아질 것입니다.

 

말이 좀 샜는데, 아무튼 인간이 타인을 통해서 자신을 정의한 것이 최초의 문제입니다. 인간들 각자는 결코 그렇게 정의할 수도, 정의 될 수도 없습니다.

 

그러면 도대체 나는 누구일까요?

 

, 다시 생각해 보세요. 이 질문의 답을 과연 누가 내야 할까요? 강의를 하는 제가 내야 할까요?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당신입니다!!! 당신이 살아온 세월만큼 당신을 알고 있는, 당신이 겪은 경험, 상처, 행복을 모두 함께 한 바로 당신입니다.

 

나는 누구일까에 답은 그 누구도 대신 내어줄 수 없는 답입니다. 그것은 무조건 자신이 생각해 내어야 하는 답입니다. 그러니 저는 답을 드릴 수가 없습니다.

 

단지, 저는 그 답을 찾는 과정이 매우 중요하다고 설명해줄 역할 밖에 못합니다. 그래도 이 정도면 참 많은 도움이 되는 조언 아닙니까?

 

그리고 그래야 하는 이것이 당연한 이유는, 내가 누구인지를 스스로 정의 내릴 때 인간은 흔들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스스로 이미 정의를 내렸다면 누가 뭐라고 하든 흔들릴 필요가 없겠죠. 이 모든 전개가 너무도 자연스럽지 않습니까?

 

비록 저는 당신이 누구인가에 대한 답은 드릴 수 없지만, 이쯤 되면 왜 '나는 누구인가' 에 대한 답을 스스로 찾아야 하는지를 충분히 이해하셨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 질문은 오늘 내일 생각한다고 해서 답이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이 질문은 죽는 그 순간까지 담아 두고 살아야 할 질문입니다. 그래야 자신의 삶에 대한 주도권을 쥘 수 있습니다. 그래야 주변에 의해서 끝없이 흔들리는 자신을 지켜낼 수 있습니다.

 

그 흔들림을 결코 타인에 대한 두꺼운 방어막이나 질긴 똥고집이나 자신만의 신념으로 막아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오직 자신에 대한 깊은 성찰로써 막아야 합니다. 이 점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남이 나를 함부로 평가하게 놔두지 마세요. <== 이런 말들은 처음부터 잘못된 조언입니다. 인간은 끝없이 다른 사람을 평가하게 됩니다. 물론 화를 내서 그만하라고 할 수는 있겠죠.  귀를 막을 수도 있고요.

하지만 진정한 해답은 남들이 나를 평가하든 말든 상관하지 않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최종 목표여야 합니다. 그때까지는 그냥 흔들리세요. 흔들림도 중요합니다. 고정되면 썩습니다.

 

오늘도 감사합니다.





제 모습이 궁금하시죠? 제가 찾은 저랑 제일 닮은 그림입니다. 시비는 사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