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이야기들

화요일의 일상

아이루다 2017. 1. 17. 16:25

 

화요일이다. 그리고 오후이다.

 

나에게 있어서 화요일은 조금 특별한 날이다. 매주 반복되는 화요일이지만, 그렇다. 그리고 그 이유는 그다지 좋은 것은 아니다.

 

나는 요즘 월//금 삼 일을 수영을 다닌다. 그리고 토/일은 주말이니 특별한 일이 없으면 영월에 가고 그렇지 않으면 서울에서 해야 할 일을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온종일 아내와 함께 있다.

 

매주 목요일은 사무실에 간다. 아직도 일은 약간 하기 때문에 당분간 이것은 유지될 듯 하다. 그래서 남은 날이 화요일이다. 화요일은 나에게는 아무런 일이 없다.

 

좋은 의미로 나는 하루 종일 자유롭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나는 하루를 보내기가 수월치 않음을 느낀다.

 

그래서 요 몇 주는 수영을 갔다. 자유수영을 끊어서 들어갔었다. 그런데 오늘은 오전에 소설에 집중하다가 보니 시간을 놓쳐 버렸다. 아니 어떤 면에서는 자유수영을 가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점심을 먹고 씻고 나와보니 수영을 가기엔 너무 늦어 있었다.

 

그래서 그냥 포기하고 잠시 미드 한 편을 보았다. 그리고 이후로 이런저런 시간을 보내다가 2시가 다 되어서 산책을 갔다. 근처에 있는 공원이다. 원래는 나지막한 산을 오르는데 오늘은 무릎이 그다지 좋지 않아서 밑에서만 돌아가 왔다.

 

우연히 고라니 두 마리가 뛰어가는 것을 본 것 이외에는 특별한 일이 없었던 산책이었다. 산을 오르지 않으니 금세 끝나기도 했다.

 

오늘 길에 어딘가 들러 차를 한잔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그런 날 부담 없이 찾아갈 수 있는 그리고 뭔가 마음을 붙일만한 그런 장소가 있었으면 했다. 하지만 우리 동네엔, 아니 서울 시내에서 그 많은 커피 가게를 통틀어도 그런 집을 발견할 수는 없었다.

 

그러다가 문득 최근에 동네에 생긴 북카페 형 커피 가게가 생각이 났다.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그곳에 갔다.

 

낮이라서 그런데 손님은 나를 제외하고는 단 한 테이블뿐이었다. 그것도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여자 아이들 셋이서 숙제를 하고 있었다.

 

라떼 한잔을 주문한 후, 물어보니 책은 마음대로 읽어도 되고 시간 제한도 없다고 했다. 주인은 젊은 사람이었는데, 분위기는 괜찮아 보였다. 벽에 그려진 그림을 보니, 혹시 미술을 전공한 사람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아무튼 그는 스탬프에 도장을 찍어 주면서 다섯 개를 찍으면 책을 한 권 준다고 했다.

 

너무 과한 스탬프가 아닌가 싶었다.

 

아무튼 나는 책을 쭉 살펴 보았는데, 다양하긴 했지만 내 마음에 드는 책은 그다지 없었다. 하기야 있는 것이 더 신기할 지경이지만 말이다. 그래도 우연히 한쪽 구석에서 "지란지교를 꿈꾸며" 를 찾았다.

 

고등학교 시절에 읽었던 수필이다. 사실 내 삶에서 그 시절만큼 수필을 많이 읽었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어느 날부터 수필이란 장르를 완전히 끊어 버렸다. 보기엔 좋았지만, 그 안에 적히지 않는 현실이란 존재와의 심한 괴리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읽어보는 그 책이었다.

 

나도 이제는 글을 쓰는 처지에서 그 책을 읽었다. 지금 보니 내용이나 표현이 더 좋았다. 같은 단어를 쓰는데도 어쩌면 그렇게 써 낼 수 있는지 경이롭기까지 했다.

 

하지만 나는 오래지 않아 어떤 지겨움을 느꼈다. 그것은 마치 아주 달디 단 케이크를 먹는 기분이었다. 너무도 화려한 표현으로 인해서 오히려 식상해졌다고나 할까?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 책의 내용이 나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내 삶의 두 번째 시기에 본 그 책은 또 다른 의미로 나와 잘 맞지 않았다. 나는 요즘은 담백한 글이 좋다.

 

글쓴이 스스로 요즘 말이 너무 많아졌다는 표현이 눈에 들어왔다. 그렇다. 글을 쓰는 사람이 말이 많아지면 안 된다. 자꾸 설명하려고 한다. 자꾸 멋들어지게 꾸미게 된다.

 

손님으로 있던 아이들 중 한 아이가 먼저 나간다. 그리고 한 아주머니가 떡볶이와 오뎅을 사 들고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주인과 아는 사이인 듯 그 두 사람은 그것을 먹는다. 늦은 점심인 모양이었다.

 

손님으로 온 내가 카페의 분위기에 빠져 있을 때, 주인인 두 사람은 현실 속에 머무른다. 남은 두 아이의 이야기 소리가 들린다. 무슨 클럽을 만들겠다고 둘이 열심히 아이디어를 내고 있는 중이었다. 아무래도 이름을 짓는 모양이었다.

 

한 아이가 '뮤즈', '아쿠아', '러즈 어쩌고' 등의 아이디어를 낸다. 그리고 또 자꾸 낸다. 최종 결정이 무엇으로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뮤즈가 가장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카페엔 오래 머물지는 않았다. 삼십 분 정도 있다가 나왔다.

 

나오면서 집 근처에 이런 카페가 있어서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창 밖으로는 복잡한 거리와 경찰서가 보이지만, 그래도 내부엔 커피와 책이 있다.

 

다음엔 노트북을 들과 와서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으로 오는 길에 시장에 들렀다. 원래 소 불고기거리를 사다가 저녁을 하려고 했는데, 그 사이에 아내에게서 연락이 왔다. 오늘 상가 집에 가야 해서 늦는다고 했다. 그래서 저녁은 안 해도 된다.

 

혼자 먹을 것이니 간단히 먹을 것만 준비하면 되었다.

 

호빵과 청포도 음료를 하나 샀다. 그리고 내가 유일하게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인 생귤탱귤을 7개나 샀다.


 

화요일 오후 4시가 조금 넘어가는 시간이다. 아내는 늦을 것이니 아마도 저녁 10시가 넘어서 들어올 듯 하다. 나는 그때까지 온전히 혼자 지내야 한다. 심심하기도 할 것 같다.

 

그래도 그리 신경 쓰이지는 않는다. 내가 이것에 익숙해지는 것인지, 아니면 그저 운이 좋은 것인지 잘 모르겠다.

 

어떤 식으로 길을 찾아 갈 것 같기도 하다. 오늘 우연히 발견한 카페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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