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이야기들

장작 사는 날

아이루다 2016. 10. 7. 06:32

 

딱히 이유는 모르겠지만 슬 정신이 들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때 정신이 들었음을 나중에 알았다. 그리고 지금 시간이 몇 시쯤인지, 다시 자야 하는지, 지금은 생각도 안 나는 여러 가지 잡생각들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얼마나 그 상태였는지 모르겠다. 경험 상 이럴 때는 더 자려고 노력하는 것이 그다지 성공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늙으면 잠이 준다고 한다는 말이 머리 속에 떠오른다.

 

결국 손을 뻗어 밤 사이 충전을 시켜 둔 내 전화기를 보면서 시간을 확인했다. 눈은 부시지만, 불을 켜지 않고도 시간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는 참 좋은 시계이다.

 

4 50.

 

나는 보통 6시쯤 일어나니, 한 시간 가량 일찍 일어난 셈이다. 어차피 잠은 깬 것 같고 시계를 본 김에 뉴스 기사를 몇 개 보았다. 보다가 보니 한숨만 나온다. 괜히 봤다.

 

개인적으로 바라는 것이 하나 있다면, 우리나라 뉴스를 안보고 사는 것이다. 좀 더 나이를 먹고, 좀 더 스스로의 삶이 충만해지고, 좀 더 지금보다 관대해질 수 있다면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20분 정도 그렇게 있을 듯 하다. 잠은 다시 올 것 같지 않고, 그렇다고 뉴스를 계속 읽기도 그렇다. 그래서 그냥 나와서 내가 오늘 하려고 하는 일에 대해서 쓰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오랜만에 '소소한 이야기들' 이란 카테고리에 글 하나를 적어 보고 싶었다.

 

이 글이 속한 '소소한 이야기들' 주로 개인적 경험이나 생각 혹은 창작한 이야기들로 채워지는 분류이다. 다른 분류들에 자주 글이 적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글이 적기도 하다. 그래도 이렇게 한 번씩 글을 쓸 때마다 괜히 마음이 좋다. 그냥 편하게 내 이야기를 쓸 수 있어서 그런 듯 하다.

 

하지만 또한 쓰고 싶다고 느끼는 순간이 참 적다. 오늘은 우연히 일찍 일어났고, 가을이 성큼 왔고, 장작을 사는 날이라서 글이 쓰이는 듯 하다.

 

영월에 있는 시골집은 겨울을 나기 위해서 매년 장작을 산다. 첫 해는 1톤 분량을 샀는데, 부족해서 그 후로는 거의 2톤 분량을 산다. 그러면 겨울이 끝나고 나서 봄/여름/가을 동안 밖에서 삼겹살을 구워 먹을 정도로 장작이 남는다.

 

작년까지만 해도 장작은 근처 제천에서 샀다. 그런데 매년 장작이 상태가 안 좋아지더니, 작년엔 조금 썩은 장작들이 왔다. 그래서 올해는 새로운 곳으로 바꿨다. 배송비가 좀 더 들긴 하지만, 전문적으로 참나무 장작을 파는 곳인 듯 하니 아마도 장작 상태는 좋을 듯 하다.

 

시골집의 난방은 기름 보일러와 장작을 때는 벽난로 두 가지를 혼용한다. 물론 대부분은 벽난로의 열기를 이용한다. 그게 싸고 분위기도 있고 그렇다.

 

탁탁 타면서 열기를 뿜는 벽난로와 함께 보내는 겨울 밤은 꽤나 운치가 있다. 더군다나 거기에 봄에서 가을까지 열심히 키운 고구마를 구어서 먹을 때는 참 좋다.

 


문제는 있다. 벽난로는 보통 새벽녘에 꺼진다. 그래서 아침에 일어날 때 꽤나 춥다. 그리고 아무래도 불을 때서 그런지 실내가 꽤나 건조하다. 그래서 겨울 아침에 일어나면 목이 조금 칼칼하다. 나는 그나마 둔해서 잘 버티는데 아내는 기침을 많이 한다. 그래도 좋다고 한다.

  

오늘은 올해를 지내기 위해서 주문한 장작이 오는 날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 아침에 영월로 출발할 생각이다. 아내는 퇴근 후 저녁에 오기로 했다.

 

아마도 꽤 힘든 하루가 될 것이다. 2톤 분량의 장작을 쌓는 것이 생각보다 힘들다. 재작년인가에는 하고 나서 며칠을 고생했었던 듯 하다.

 

그리고 이번 방문 때부터는 조금씩 장작을 때야 할 듯 하다. 시골의 밤은 일찍 춥다. 그리고 난로 불을 때는 것이 좋기도 하다.

 

이것도 올해가 마지막이다. 영월 집이 올해로 마지막이기 때문이다. 지금 집이 있는 곳에 군부대가 들어오기로 해서 어쩔 수 없이 나가야 할 형편이다. 그래서 내년엔 새로운 집 터를 알아봐야 한다.

 

처음엔 많이 속상했는데, 긍정적으로 생각하니 집을 두 번 짓는 경험을 할 수 있어서 좋은 면도 있다. 아무래도 아무것도 모르고 지은 집은 이래저래 문제가 있다.

 

살아보니, 그런 것이 눈에 들어온다.

 

누군가 다 지어 놓은 집에 들어가는 것도 아니니, 할 수 있다면 최대한 나에게 맞춰서 집을 꾸며야 한다. 그것이 맞다.

 

또 다시 언제 집을 짓고, 또 다시 언제 장작을 주문하게 될 지 모르겠다. 아마도 몇 년은 걸리지 않을까 싶다. 그때가 언젠가는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시골에 집을 짓고 보내게 되는 4번 째 겨울이다. 첫 해는 눈이 많이 와서 눈썰매도 탔었는데, 그 후로는 눈이 그리 많이 안 온다. 마지막을 보내는 겨울엔 눈이 좀 많이 왔으면 좋겠다. 그래서 눈썰매를 탔으면 좋겠다.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수 없이 만나고, 수 없이 헤어진다. 그것이 잠깐의 만남이기도 하고 영원한 헤어짐이기도 하다.

 

시골집과 나는 잠깐 만난 것인지 오랜 시간을 함께 한 것인지 잘 모르겠다. 아마도 잘 해야 같이 보낸 시간이 5년 남짓 할 듯 하니까 말이다.

 

그런데 내 기억에는 오래 만난 것으로 기록될 듯 하다. 사람이 그렇다. 나도 그렇다. 좋은 것들은, 소중한 것들은 그렇다. 나는 지금도 가끔 한 달 키운 토끼 나루가 기억난다.

 

지금보다 더 시간이 지나면 이젠 추억이 되어 버릴 것이다. 나와 아내가 함께 했던 공간은 사라지고 오직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게 될 테니까 말이다. 아예 사라져 버리는 곳이기에, 다시 찾아가 볼 수도 없을 것이다.

 

인간은 잊혀지는 순간이 정말로 죽는다는 누군가의 말처럼, 우리 두 사람이 이 집에 대해서 잊을 때가 이 집이 사라지는 때일 것이다. 그러니 잊지 않으면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냥 그렇게 우기기로 했다.

 

그리고 이 헤어짐은 또 다른 새로운 집과의 만남을 만들어 줄 것이다. 어느 곳에, 어떤 인연으로, 어떤 과정을 통해 맺어질지는 지금은 전혀 모르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사실 하나는 2층 집이 될 것이다. 이 조건은 아내의 유일한 희망이다.



6시 30분.


짧은 글이었는데도 시간이 많이 걸렸다. 사진을 고르기가 힘들었다. 벽난로 사진을 제대로 찍어 놓은 것이 단 한 장도 없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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