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이야기들

장마비는 내리고

아이루다 2016. 7. 1. 16:07

 

오늘은 요즘은 불금이란 말로 자주 불리는 금요일이다. 그런데 비가 온다. , 대부분의 불금 행사들은 실내에서 이뤄질 테니까 별 상관은 없을 것이다.

 

오늘은 제법 비가 내린다. 마른 장마라더니 이번 주말 동안은 비가 한참 올 모양이다. 다행이다. 장마철에는 비가 많이 오는 것이 좋다. 농사를 지어보니 그것을 좀 더 잘 알게 되었다.

 

나는 오늘 저녁에 시골집으로 갈 생각이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지난 4년간 주말마다 해 온 일이다. 비가 오기에 비 오는 야간 운전이 될 수 있어서 약간 걱정은 되지만, 긴장 풀지 않고 가면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요즘 회사 일은 조금 한가하다. 그래서 오늘 해야 할 일은 이미 다 끝냈다. 남은 일은 시골집에 가서 먹을 시장을 봐야 하는 것이다. 어느 정도 귀찮은 일인데, 비까지 오니 더 귀찮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맛있게 먹으려면 시장을 갔다 오는 것이 좋을 것이다. 빗줄기가 조금 가늘어지면 다녀와야겠다. 안 다녀오면 누군가에게 원망 섞인 눈길을 받을 것이다.

 

작년에 천문 카메라 장비가 고장 난 후, 별 사진 찍는 것도 한참 중단해왔다. 사실 여러 가지 한계도 있고, 장비 문제까지 겹친 상황이다. 언제 다시 시작하게 될지 모르겠다. 그래도 그 덕분에 저녁 시간이 조금 한가해졌다. 예전 같으면 해만 지면 촬영 장비 설치하고, 밤새 촬영한다고 바빴는데, 지금은 그런 것이 없다.

 

좋은 것도 있고 좋지 않은 것도 있다.

 

오늘이 7월의 첫 날이다. 이제 정말로 여름이 시작된다. 그리고 작년 여름에 세상을 떠난 매형에 대한 생각도 난다. 벌써 1년이란 시간이 다 되어간다. 하루 하루는 그리 빠르지 않는데, 지나고 나면 일주일, 한 달이 이렇게 빨리 흐른다. 나이를 먹어서 그런 것일까?

 

비가 오니 창문을 통해 가끔 찬 기운이 들어온다. 맑은 날이라면 뜨거운 기운이 들어 올 터인데, 비가 오니 시원해서 좋다. 여름에 장마가 없었다면, 우리나라에서 여름 나기가 정말로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인터넷에 '비 오는 날 음악' 을 검색해보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좋은 음악을 많이 선정해두었다. 그리 좋지 않는 PC용 스피커지만, 배경으로 깔아 두고 들으니 한껏 마음이 좋다. 오늘은 피아노 음악을 골랐다.

 

그 제목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피아노를 누가 치는지도 알지 못한다. 아니, 사실 관심도 없다. 그냥 스피커를 통해 나오는 그 소리가 좋을 뿐이다. 그래도 고맙다. 누군가는 작곡을 하고, 누군가는 이렇게 치고, 누군가는 이렇게 모아 두었으니 말이다. 나는 인터넷을 연결할 수 있는 PC 한대와 매달 내는 인터넷 접속 요금만 지불한 채 이렇게 호강을 한다.


 

몇 주 전부터 이런 심심한 글을 한편 쓰고 싶었다. 머리 복잡한 분석 글이나 나도 잘 이해하지 못한 어떤 것들을 정리해 두려고 고민하지 말고, 그냥 써지는 데로 쓸 수 있는 이런 글을 쓰고 싶었다.

 

어떤 면에서 보면 제일 쓰기 쉬운 글인데, 이상하게도 이런 글은 시작이 제일 어렵다. 차라리 인간 심 분석 글이나, 사회 현상 분석 글, 인간에 대한 이해를 쓰는 편이 쉽다. 왜 그럴까? 내용도 딱히 어렵지도 않고, 읽는 사람은 좀 심심하겠지만, 딱딱하지 않아서 좋은 글을 쓰는 게 왜 이리도 힘들까?

 

내 머리는 지금 이순간에도 이런 분석을 하고 있다. 좀 분석 좀 하지 않고 글을 쓰고 싶었는데, 글을 쓰다 보니 제 버릇 개 주지를 못한다. 슬프지만 웃기기도 하다.

 

내 삶은 또 다른 변곡점을 향해 가는 느낌이다. 무엇에서 무엇으로 변해가는 변화인지 모르지만, 그냥 가끔 과거의 나를 떠올리면, 그 사람은 분명히 나이면서도 내가 아닌 것 같다. 그리고 왜 그랬는지 잘 이해도 가지 않는다. 나는 너무 나를 몰랐다. 아니, 나는 겁이 너무 많았다. 그리고 나의 삶이 무엇을 그려야 하는지, 그리고 싶은지도 몰랐다.

 

지금도 모른다. 만약 내가 뭔가를 알았다고 말을 한다면 둘 중 하나일 것이다. 하나는 내가 진정으로 원한 어떤 것을 찾았거나, 혹은 나도 모르게 오만해져서 그럴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후자일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나는 내가 무엇인가 찾았다고 생각하길 바라지는 않는다. 사실 못 찾아도 그리 상관은 없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단지 그 상태로 삶을 지속해야 하는 것이 스스로 좀 안쓰러울 뿐이다.

 

아예 모르고 살았다면 좀 더 행복했을 수 있는 삶이었을 것이다.

 

그나마 한 가지 나아지고 있는 것은 관계의 늪에서 빠져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힘들지만, 아주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 나는 이제 사람들에게 잊혀질 준비가 되어가고 있다. 이제는 그것을 어느 정도는 받아들일 수 있다.

 

내 삶이 가진 그 어떤 가치나 내 삶이 만들어 놓은 그 어떤 의미도 내려 놓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온전히 진심은 아니라서 아쉬움에 자꾸 뒤돌아보겠지만, 그래도 다시 가서 줍지는 않을 수 있다. 마음이 비어갈수록 점점 더 그것이 쉬워짐을 느낀다.

 

그런데 외로움은 어쩔 수 없다. 아니 이제 그것이 외로움이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사실 외로울 것은 없다. 나는 그저 심심한 것뿐이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생계를 위해 해야 하는 일 때문에 빚어지는 몇 가지 문제들로 인해 그렇다는 생각도 든다.

 

만약 그런 것들로부터 조금 더 자유로워 질 수 있다면, 나는 조금 덜 심심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당연히 외로움도 없이 말이다.

 

사람은 사람들과 같이 지내야 외롭지 않다고 한다. 하지만 어떨 때는 사람들 사이에서 더 큰 외로움이 느껴진다. 그들은 나와는 다른 세상에 살고 있다. 그들은 세상의 행복 속에서 살아간다. 그런데 나는 이제 그런 행복들을 거의 공감하지 못한다. 앞에서는 고개를 끄덕이고, 들으면 머리로는 이해가 가지만, 마치 참전 용사의 전쟁 이야기를 듣는 듯 하다. 그것들은 나하고는 너무 먼 얘기들이다.

 

아마도 그들 역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래서 만나봐야 서로가 불편할지도 모른다.

 

그나마 예전엔 그런 상태에서조차도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가끔 했다. 만나서 내가 생각하고 느낀 것들을 쏟아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쌓인 자랑을 늘어 놓고 나서 내 말을 듣고 뭔가 생각에 빠진 상대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만족감에 당분간은 기분이 좋아질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 욕구를 인식하면서도 그것을 인정하고 막아내는 것만도 수 년 이상이 걸린 듯 하다. 그만큼 힘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나만 힘든 것이 아닐 것이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생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이제 내 전화기에 기록된 번호들을 다 지워도 될 듯 하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두 개의 번호는 지우지 못한다. 하나는 어머니이고 다른 하나는 아내의 번호이다.

 

내가 세상과 연결되는 거의 마지막으로 남은 두 개의 고리이다.

 

모르겠다. 살다가 보면 또 새로운 고리를 만들게 될지도 말이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그때가 아니다. 난 아직 준비가 되지 못했다. 나는 아직도 남은 여정이 한 가득 이다.

 

지금 영월에도 비가 오길 바란다. 거기에 자라고 있는 옥수수가, 매운 오이 고추가, 수박과 호박이, 고구마가, 당근이, 대파가, 상추가 이 비를 맞고 기분이 좋았으면 좋겠다.  아이들이 상쾌함과 시원함을 즐겼으면 한다.

 

한적한 금요일에 이렇게 장미비가 내리니 이렇게 편한 글 한편을 쓸 수 있어서 좋다. 음악도 좋다. 글은 끝나지만 나는 한참 그 여운 속에 남아 있을 듯 하다.

 

비가 오니 착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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