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이야기들

요즘 나에게 일어난 일들..

아이루다 2016. 2. 29. 08:05

 

지난 주 영월에 다녀왔다. 그리고 2 27일 아침엔 눈이 많이 내렸었다. 눈으로 보기에 10cm는 훌쩍 넘어 보이는 눈이 자는 동안, 밤 사이에 내렸다.

 

아무런 소리도 없이 내렸다.

 

아침에 눈을 뜨고 나는 잠시 헷갈렸다. 밖이 하얀데, 밝아서 하얀 것인지, 눈이 온 것인지가 구분이 되지 않았다. 안경을 찾아 쓰고 난 후에야 눈이 온 것을 알았다.

 

최근 눈이 거의 오지 않아서, 눈이 온 영월 집 사진을 찍지 못한 것이 아쉬웠는데, 나름 좋은 기회였다. 아마도 영월집과 나와의 인연은 올해가 마지막인 듯 하니, 눈 속에 파묻힌 이 집의 사진을 찍기 위한 마지막 배려인 듯싶었다. 그 존재가 누구든 간에 말이다.

 

지난 주에는 유진이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어느 정도 예상은 되었던 죽음이기에, 그다지 놀라지는 않았다. 그리고 삼 일간의 장례식이 있었다.

 

장례식장은 슬픔보다는 다른 것들로 부산했다. 아니, 부산하다고 표현하기엔 손님도 별로 없었다. 그곳은 그냥 뭔가 서글픔이 있었다. 삶과 죽음 그리고 그 사이에서 각자가 옳다고 믿는 대로 살아가고 있는 수 많은 인간들의 모습이 있었다. 나는 장례식 내내 마치 보던 영화 속에 들어온 느낌을 받았다. 그것도 블랙 코미디 류의 영화에 말이다.

 

그렇게 한 사람이 떠났다. 고통이 심해서 고생 많이 하셨으니, 믿으시는 대로 좋은 곳 가셨기 바란다.

 

<떠난 할머니의 선물일까? 아니면 영월집이 준 선물일까? 물론 이도 저도 아니겠지만 말이다>



최근 몇 달 동안 나는 어떤 변화를 겪는 중이다. 뭐라고 정확히 설명하긴 힘들지만, 대충 이런 느낌이다.

 

나는 내가 좀 덜 부끄럽다.

 

사실 나는 과거에 나를 많이 부끄러워했다. 물론 그 부끄러움은 예쁜 여자 앞에서 보이는 부끄러움이 아니다. 그것은 좋은 느낌의 부끄러움이 아니고, 나 자신에 대한 실망으로 인해서 생겨난 부끄러움이다.

 

나는 조금 더 용감해야 했고조금 더 능숙해야 했으며, 조금 더 순수하거나 덜 계산적이어야 했다. 나는 억지 주장을 하거나, 잘 모르는 것이 별로 없어야 했고, 주장을 했다면 그것이 맞았어야 했다. 나는 좀 더 침착해야 했으며, 화를 덜 내야 했다. 나는 조금 더 완성된 사람이어야 했다.

 

사실 나의 이런 기대는 나의 잘남에 대한 끝없는 욕망이다. 나는 잘나고 싶었다. 그리고 가끔 잘났다고 느꼈을 때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못난 순간이 기억에 남으면, 그것이 잊혀지지 않고 나를 부끄럽게 했다.

 

어떤 기억들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있다. 생채기가 난 것인지, 아니면 흔적이 남은 것인지 모르겠다. 그냥 문득 문득 그런 부끄러운 생각이 떠오른다. 그리고 그때마다 자기 혐오감이 따라 온다. 이것은 좋지 않다. 사람을 화나게 만든다. 부족한 나는 나를 사랑하기 힘들게 만든다.

 

많은 좋은 책에서 말했던, 자신을 사랑해야 행복할 수 있다는 말을 실감한다. 하지만 단지 자신을 사랑하라는 말은 너무 관념적이다. 추상적이기도 하고, 억지스럽기도 하다.

 

자기를 사랑하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자신을 받아들여야 한다. 못나고, 모자라고, 평범하고, 비겁하고, 속이 좁고, 질투하고, 자기 잘난 맛에 살고, 무엇을 해도 이기적일 수 밖에 없고, 아무리 멋진 이유를 갖다 붙여도 결국엔 살고 싶어서 살고 있고, 꽤나 괜찮은 가치를 추구하지만 결국 행복하고 싶다는 다른 이들과 똑같은 목적으로 살고 있는 자신을 인정해야 한다.

 

나는 이것들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래서 나를 미워했다. 나의 부족함이 싫고 심지어 혐오스럽기까지 했다. 이렇게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행복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그 불행함은 나를 더 많은 생각을 하도록 밀어 붙였다. 그리고 지금은 조금씩 더 나를 받아들이고 있다. 있는 그대로 보고, 무리한 욕심을 내려고 하지 않는다. 실수를 해도, 마음에 들지 않아도 그냥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하려고 한다.

 

실수는 실수만으로도 좋지 않은데, 자꾸 나를 스스로 비난하니 견디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비난을 조금 멈추니 숨통이 트인다. 그래서 마음이 조금 더 편해진다. 이것이 나를 조금 더 행복하게 해준다. 왜 그렇게 자신을 비난했는지 지금은 이상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지금 나는 삶의 답을 찾은 것은 아니다. 뭔가 목적을 가진 것도 아니다. 지금 나는 단지 내 삶에서 그런 것들이 없음을 조금 받아들였다. 하고자 하는 것은 있으나, 그것이 정답이라서 하는 것은 아니다. 도달하고자 하는 목표는 있으나 반드시 도달해야 할 필요는 없다.

 

매일 매일 긴장되는 일들도 있고, 걱정이 되는 것들도 있다. 단기적이든 장기적이든 그런 것들은 늘 존재한다. 그것은 돈 걱정일 수도 있고, 해야 할 일에 대한 걱정일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 겪어야 할 일일 수도 있고, 진행을 해야 할 일도 있다.

 

사실 이것이 우리의 삶이다. 가끔은 나에게 뛰어난 집사가 있어서 이런 자질구레한 일들을 모두 처리해줬으면 하는 바램이 있지만, 그렇게 하고 나면 과연 나는 무엇을 하고 살아갈 수 있을까 싶다.

 

그것이 귀찮은 일이든, 부담되는 일이든, 걱정되는 일이든 간에 그것들은 모두 삶을 구성하는 부속품과 같다. 걱정이 없으면 걱정이 해결된 후 느끼는 안도감도 없을 것이고, 부담이 없다면 부담에서 해방된 기쁨도 없을 것이다. 귀찮은 일이 없다면 그것을 한 후 느낄 홀가분함도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불행함이 없다면 행복을 느낄 수 없을 것이다. 돈 많은 백수가 마지막으로 할 일은 마약밖에 없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알면서도 돈 많은 백수가 되길 바란다. 그냥 걱정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이것은 나뿐만이 아니라대부분 사람들의 소원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이뤄지지 못할 소원이다. 또한 이뤄져서는 안될 소원이기도 하다. 우리는 평생 맨 몸으로는 단 한번 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은 추락이고, 그 결과는 죽음이다. 그래서 날아서는 안 된다.

 

누군가 지금 이 시점에 행복의 비법을 묻는다면 이렇게 답을 할 것이다.

 

자기를 받아들이고 자신에게 관대해져야 한다고 말이다.

 

하지만 포기와 받아들임을 잘 구분해야 한다. 단지 무시하는 것인지 안으로부터 제대로 인정하고 있는 것인지를 잘 바라봐야 한다. 자신이나 다른 이들을 불쌍히 여기는 것인지 관대한 것인지도 잘 생각해야 한다. 이런 것들은 생각보다 어렵고, 스스로 그럴 것이라고 착각을 하기가 쉽다.

 

그리고 이 답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평생 유효할 것이다. 뭔가 더 나은 답을 찾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아마도 여기까지가 나의 한계일 듯싶다.

 

2 29일이다. 4년에 한 번 돌아오는 윤년이다. 100년마다 한 번은 해당이 안 된다. 하지만 400년 마다 한 번은 해당이 된다. 그래서 조금 특별한 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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