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이야기들

비싼 낭만

아이루다 2015. 9. 13. 06:43

 

어스름하게 밤이 다가오자, 주섬주섬 잔가지를 챙겨서 불을 붙인다. 어제 내린 비로 인해 잔가지들이 좀 덜 마른 듯, 불이 잘 붙지 않는다. 연기는 많이 피어 오르지만, 불꽃은 시원하게 오르질 않는다.

 

콜록콜록 기침을 하고 눈에서 눈물도 흐르지만 종이를 더 넣고, 부채질을 하고, 이리저리 위치를 바꾸다 보니, 어느새 발갛게 불꽃이 오르기 시작한다. 그리고 같이 넣어 둔 굵은 나무에도 불이 붙는다. 이내 그들은 탁탁 소리를 내면서 타 오른다.

 

나무에 불이 붙자 주변이 따뜻해진다. 9월 초입이지만, 시골의 밤은 금새 차갑게 식는다. 그래서 모닥불의 온기가 더욱 더 소중하게 여겨진다.

 

하늘을 보면, 아무것도 없던 그 공간에 밝은 별들이 하나씩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리 안보이던 별은, 일단 보이기 시작하면, 왜 저기 있는 별을 보지 못했는지 의문이 들 정도이다. 사실 별들은 이미 준비하고 있었지만, 보지 못한 건 나의 능력 부족일 뿐이다.

 

가을, 모닥불, 맑은 하늘과 아주 가끔 떨어지는 별똥별 그리고 예상치 못한 반딧불이 내가 머무는 공간에 낭만이란 단어를 칼로 새기 듯 그렇게 느껴지게 해준다.

 

하지만 그런 낭만도 오래가질 못한다. 점점 떨어진 기온에 입고 있던 긴 팔 옷도 견뎌내질 못한다. 나와, 같이 있는 우리는 집에서 자꾸 이불을 하나씩 둘씩 가지고 나온다.

 

이불을 덮으면 한결 낫다. 그리고 누워서 한없이 하늘을 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빠진, 음악을 틀어 본다. 이런 밤에는 역시나 광석이 형 노래가 제격이다. 누가 그의 목소리만큼 이런 밤에 어울릴 수 있으랴.

 

명곡들이 지나간다. 별똥별이 하나쯤 떨어지길 바라는 마음과 무슨 소원을 빌까 하는 마음이 오락가락 한다. 그러다가 금새 별똥별 하나가 떨어진다. 보고나니 별똥별을 보면서 소원을 비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새삼 느껴진다.

 

 

 

모닥불, 맑은 하늘, 반딧불, 광석이 형의 노래, 쏟아지는 별들과 희미하게 보이는 은하수 그리고 그런 밤을 같이 보낼 수 있는 사람들. 이것이 낭만의 조건이 되고 있다.

 

그런데 사실 이런 조건은 그리 어려운 것은 아니다. 아니, 돈으로만 따지면 그렇다.

 

하지만 사실 이런 조건은 매우 어렵다. 그나마 우리가 의지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모닥불 피우는 것과 노래를 듣는 일뿐이다.

 

그 시간이 가을일 수 있으려면 기다려야 한다. 그 시간에 하늘이 맑으려면 운이 좋아야 한다. 그 시간에 은하수가 보이려면 또한 운이 좋아야 한다.

 

아니, 그 모든 조건들을 갖추고도 그것을 할 수 있는 장소가 없다면 무용지물이 된다. 그곳은 다른 걱정이 없이 안전한 곳이어야 한다. 그곳은 언제라도 돌아오고 싶다면 돌아올 수 있어야 한다. 그곳은 추우면 언제라도 이불을 꺼내올 수 있어야 한다.

 

사실 너무 춥거나, 안전하지 못하거나, 돌아올 수 없는 곳에서 낭만은 존재하기 힘들다.

 

낭만은 착각이기 때문이다. 낭만은 현실 부재가 주는 행복함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는, 우리는 낭만을 꿈꾼다. 모닥불이 탁탁 소리를 내고 타면서 밤 하늘에 별이 가득한 그런 시간을 꿈꾼다. 그리고 그런 시간이 오면 가끔 눈물이 나기도 한다. , 무엇 때문에 그런지 모르지만 그냥 그렇다.

 

그것에 대해서 잠시 생각해보면, 그냥 아름다움에 눈물이 나는 듯 느껴진다.

 

그래서 이런 생각이 든다. 이런 밤에 느껴지는 낭만은 싸면서도 비싼 낭만이다 라는 생각이다. 우리가 도시의 생활에서 얻은 편안함 대신, 우리가 잃을 수 밖에 없었던 행복이다. 그럼에도 아주 가끔 그런 행복을 볼 수 있음에 감사한다. 그리고 어쩌면 가끔 볼 수 있어서 더욱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가을이 점점 더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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