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철학

행복하지 않다면 살 필요가 있을까?

아이루다 2017. 1. 10. 07:52

 

행복하지 않다면 살 필요가 있을까?

 

아는 분과 대화를 나누는 중 우연히 들은 말이다. 뭐, 새로운 표현은 아니다. 예전에도 몇 번 들었던 말이고 그것에 대해서 생각도 해 본 말이다.

 

그런데 며칠 전 쓴 글 '행복하고 싶다면' 편에서 다룬 행복에 대한, 조금 다른 시점의 성찰을 접합시켜 보니 뭔가 연쇄적으로 반응이 일어난다.

 

사실 '행복하고 싶다면' 글에는 한 가지 중요한 전제가 빠져있긴 하다. 단지 그 전제가 행복에 관한 내용이 아니라 불행에 관한 내용이었기 때문에 생략했다. 만약 그것까지 다뤘다면 글이 너무 장황하게 길었졌을 것이다.

 

그 글에서 빠진 내용은 바로 불행한 사람은 어떻게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에 대한 내용이다. 행복한 사람들은 그다지 많지 않지만, 행복하지 않는 사람은 많고, 불행한 사람들도 꽤나 많은 세상이기에, 불행한 사람들을 빼고 행복을 다루는 것은 사실 반쪽자리 일 뿐인 것이다.

 

그렇게 잠시 불행한 사람들에 대해서 생각해 보도록 하겠다. 과연 불행한 사람들은 어떻게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인가?

 

정말로 불행하게도 그 답은 '없다' 이다.

 

불행한 사람들은 행복하게 살 수 없다. 물론 순간 순간 아주 짧은 행복을 경험할 수는 있다. 아무리 불행한 사람이라고 해도 인생에 아예 어떤 종류의 행복도 경험할 수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단지 그 횟수가 매우 적다.

 

사실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는 구분, 즉 불행한 사람, 행복하지 않은 사람, 행복한 사람의 차이는 바로 행복 경험의 횟수를 통해서 구분 가능하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행복한 사람일수록 행복 경험의 횟수가 훨씬 더 많아지게 된다. 자주 행복하니까 자신이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그런데 불행한 사람은 왜 행복하게 살 수 없을까?

 

인간의 불행은 워낙 다양해서 그 이유를 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뭔가 심각한 부족이 있어서 불행한 것임은 분명하다. 그것이 돈이든, 건강이든, 관심이든, 애정이든, 외모이든, 신체적 능력이든, 지적 능력이든, 성격적 결함이든, 주변 환경의 문제이든 간에 아무튼 뭔가 부족하거나 문제가 있으니 불행한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이유들은 그 자체가 어떤 식으로든 해결되지 않으면 지속적으로 불행을 야기할 수 밖에 없다. 돈이 없으면 돈이, 건강이 나쁘면 건강이, 애정이 없으면 애정이, 외모가 부족하면 외모가 채워져야 그 불행해서 빠져나올 수 있다는 뜻이다.

 

돈이 없어서 불행한데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 그러니 돈이 없는 사람은 행복해지기 위해서 노력할 것이 아니라 돈을 벌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어떻게든 돈을 벌어서 불행을 해결하고 난 후에 행복에 대해서 고민해야 한다.

 

물론 이 과정을 건너뛰고 돈의 불필요함을 깊이 성찰해서 돈 자체와 먼 삶을 살아갈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정말로 난해하고 힘든 길이며 보통 사람이라면 엄두도 내기 힘든 길이다. 그러니 이런 방법은 없는 것으로 치는 것이 좋다. 사실 듣기 좋은 뜬구름 잡는 소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말을 많이 듣긴 한다.

 

건강이 문제면 건강해져야 행복을 추구할 수 있다. 거의 모든 불행의 요소는 모두 그렇다. 그것이 해결되어야만 행복할 가능성이 높다.

 

자신의 외모가 너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불행한 사람에게, 사람에게 정말로 중요한 것은 외모가 아니라 마음이라고 백날 설득 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 그 시간에 돈을 줘서 성형 수술을 시켜 주는 편이 훨씬 더 그 불행을 빠져나올 가능성이 높다.

 

불행은 마음 먹기에 따라서 극복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원래 불행이 아니었을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이미 말했듯 불행을 마음가짐으로 극복하는 것은 물론 가능하긴 하지만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떤 종류의 불행이 닥치면 일단 그것을 해결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그리고 어떤 식으로든 불행한 사람에서 행복하지 않는 사람으로 바뀌어야 한다. 그래야 그 후로 행복을 추구할 수 있다.

 

사람들이 많이 하는 실수가 불행한 삶에서 바로 행복한 삶으로 바꾸고 싶어하는 것이다. 아주 운 좋게 그렇게 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운은 정말로 드물다. 평범한 우리들 대다수는 순서를 밟아야 한다. 불행한 삶은 행복하지 않는 삶을 거쳐서 행복한 삶으로 가야 맞다.

 

돈이 없어서 불행하다면, 10년이든 20년이든 고생할 생각으로 일단 무조건 돈을 버는데 집중하는 것이 좋다. 그렇게 해서 돈을 어느 정도 번 후에 삶을 재설계를 하든 뭐든 해야 하는 것이다. 만약 돈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점조차도 돈이 인생의 전부냐고 하면서 살다가는 결국 돈의 쫓김에 의해서 평생 동안 불행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이제 행복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또 어떤 문제가 발생할까?

 

가장 첫 번째 문제는 바로 자신이 행복해야 한다고 믿는 마음이다. 즉, 자신은 행복해야 할 권리가 있다고 믿기 때문에 불행하지 않고 단지 행복하지 않는 삶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매우 불만족스럽게 여기게 된다.

 

불행했던 사람은 행복해지지는 못했어도 자신을 불행하게 만든 그 원인만 해결되어도 세상을 얻은 듯 좋은데, 정작 그 문제가 없었던 사람은 그저 행복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인해서 삶을 매우 비관적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행복하지 않는 사람이 가진 가장 중요하고도 근원적인 문제이다.

 

그리고 그 이유로 인해서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 이것은 매우 아이러니한 문제인데, 본인이 행복할 권리가 있다고 믿기 때문에 결국 행복해지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난 글에서 설명했던, 행복을 타고나지 못한 사람들이 가야 하는 길은 결국 안정화를 거쳐 평화로움의 행복인데 그런 행복하지 못한 삶으로 인한 불만족은 결코 평화로움을 얻을 수 없게 만들고 만다. 그러니 충분히 행복할 수 있는 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평생 불행하다고 느끼면서 살게 된다.

 

그리고 언젠가는 결국 "행복하지 않다면 살 필요가 있을까?" 라고 되묻게 된다.

 

그런데 우리는 왜 행복에 대한 권리 의식을 갖게 되었을까? 원래 우리가 그렇게 태어나서 그런 것일까?

 

아니다. 우리가 행복에 대한 권리를 가진 이유는, 원래 인간의 타고난 권리가 아니라 웃기지만 바로 주변에서 그것에 대해서 수 없이 많이 반복적으로 들었기 때문에다. 인간은 누구나 같은 이야기를 하면 그것을 당연한 권리로 인식한다. 이것은 이상한 일은 아니다.

 

우리는 이 지구의 땅에 금을 긋고는 그것이 자신의 땅임을 전혀 의심하지 않는다. 이때 그 땅이 자신의 땅이란 근거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생겨난다.

 

사실 이것은 잘 생각해보면 지나가던 멧돼지가 웃을 일이다. 인간끼리 서로가 서로에게 인정해주는 꼴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런 당연함을 전혀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러니 그 땅에 멧돼지나 고라니가 와서 농작물을 헤집어 놓으면 그 동물들을 죽이는 것이다.

 

그 땅은 멧돼지나 고라니의 땅이 아니기 때문이다.

 

같은 원리로 우리가 가진 행복에 대한 권리 의식은 사실상 아무런 근거가 없는 행위이다. 농작물은 그나마 노동이라도 했으니 인정해 줄만해도, 행복해야 한다는 생각은 도대체 어떤 노력을 했기에 그런 근거를 만들었는지 알 길이 없다.

 

그냥 행복한 것이 좋으니 행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남들이 행복하게 사는 것을 보니 내가 무엇이 부족해서 행복하지 못하게 살아야 할까에 대한 억울한 생각이 드는 것이다.

 

서로가 끝없이 자신의 행복을 과장하고 그것을 자랑하는 과정 속에서 자신이 행복해야 한다는 권리 의식은 점점 더 커지기만 한다. 그리고 결국엔 행복하지 못하니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까지도 생기는 것이다.

 

불행한 사람이 불행을 견디다 못해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은 충분히 이해해 줄만 하다. 사실 돈 문제나 건강 문제로 인한 불행함을 견디기는 정말로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그것을 이겨내고 의지적으로 살아가야 한다고 조언하는 것은 웃기는 일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행복하지 않는 사람이 행복하지 않다는 이유로 삶을 마감하려고 하는 것은 이해하기 힘든 일이 될 수 밖에 없다.

 

불행은 가만히 있고 싶어도 힘들어서 견딜 수 없는 상태이고, 행복하지 않는 것은 가만히 있을 수는 있지만 그것이 지루하거나 외롭거나 심심하거나 고독한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돈이 없거나 암에 걸리면 죽지만, 지루하고 외롭다고 해서 죽는 것은 아니다. 물론 그것으로만으로도 죽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장시간 지속될 때, 우울증이라는 치명적인 병에 걸릴 수 있을 가능성도 있다. 그래서 거기까지 진행되기 전에 대책이 필요하다.

 

행복하지 못한 사람이 완전히 망가지기 전에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바로 자신의 행복 권리를 포기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안정된 삶에 익숙해질 수 있다. 물론 그 사이에 줄곳 심심하고 외롭고 고독이 밀려올 것이 분명하다.

 

당분간 그것을 견뎌내야 한다. 그것이 힘들다고 스스로 살 필요가 없다고 느끼는 것은 이해 해 줄수는 있지만,  그것이 착각임을 부정할 수도 없다.

 

그리고 그 시기가 지나고 나면 안정적으로 변하고 결국 평화로움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주변 사람들이 행복 하려고 그토록 애쓰는 모습이 안쓰럽게 보일 것이다.

 

권리가 없는데도 권리라고 느끼고 그렇지 못하면 자신의 삶 자체를 비관적으로 여기고 스스로를 비하하며 우울해지는 일을 반복하고 있는 모습이 보이기 때문이다.

 

불행한 사람은 그 불행의 원인이 해결되어야지 결코 단순히 마음먹기에 따라서 행복해질 수는 없다. 하지만 행복하지 않는 사람이 행복해지려면 반드시 마음을 고쳐 먹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행복해질 수 있다. 이것이 이 전체의 결론이 될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삶에 대한 일관성을 지키고 싶어한다. 주변에서도 그것을 기대하고 있다. 일년에 한 번 해외 여행을 갔던 사람은 평생 그렇게 살아야 행복한 삶이라고 여긴다.

 

자신이 받았던 대접, 자신의 사회적 위치, 누군가와의 관계 속의 위치 등등 우리가 언제나 지키고 싶어하는, 일종의 기득권이 존재한다.

 

비록 그것이 단순히 직장의 위치로 인해서 발생한 것이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혹시라도 자신의 기득권이 줄어들거나 하게 되면 주변에서 '그 사람도 예전같이 않네' 하는 소리를 듣기 싫어서 끝없이 그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서 노력한다. 하지만 결국 이런 노력은 추하게 늙는 결과만을 가져다 줄 뿐이다.

 

우리는 그저 원래 우리의 것이 아니었던 것을 누렸을 뿐이다. 그러니 그것을 내려 놓아야 할 때는 미련 없이 내놓아야 한다. 혹시라도 그것이 힘들다면 자신의 삶을 새로운 환경으로 옮기는 것이 좋다.

 

기존의 환경은 자신에 대한 기대치를 계속 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새로운 장소, 새로운 관계, 새로운 활동을 통해서 삶을 초기화 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바로 나이를 먹으면서도 유일하게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인간과철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너는 그렇게 살 수 있지  (0) 2017.04.11
본질과 증상  (0) 2017.03.20
행복하게 살고 싶다면 - 2  (0) 2017.01.07
행복하게 살고 싶다면 - 1  (0) 2017.01.07
사고 한계  (0) 2017.0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