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철학

행복하게 살고 싶다면 - 1

아이루다 2017. 1. 7. 08:30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조건은 무엇일까?

 

많은 것들이 있을 수 있지만, 그 무엇보다도 자신이 원하는 것의 정체를 제대로 알고 이해 할 필요가 있다. 물론 그것을 제대로 알고 이해한다고 해서 반드시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오해나 착각으로 인해서 그것을 위해서 헛된 노력을 반복하거나 관련된 많은 것들을 갖췄으나 정작 가장 중요한 포인트를 놓쳐서 결국엔 실패로 끝나는 일을 훨씬 덜 할 수 있게 된다.

 

인간에게 있어서 행복은 가장 원하는 것 중 하나이다. 그래서 오늘도 모든 사람들은 행복해지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그런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행복한 사람은 많지 않다. 왜 그럴까?

 

이 이유가 바로 처음 설명한 원리가 적용된다. 바로 행복이 과연 무엇인지를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해서 그렇다. 그러니 행복하고 싶어서 하는 많은 노력이 허사가 되거나 혹은 행복했더라도 매우 순간적인 경험으로 끝나고 만다. 즉, 행복 지속성이 매우 낮다.

 

물론 우리들 대부분은 그것이라도 있으니 자신은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가 그럴수 있는 이유는 그저 정말로 행복한 삶을 살아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다. 혹은 자신의 삶이 행복하지 않는 삶이라고 인정하기가 힘들어서 그렇다.

 

하지만 사실 우리들 대부분은 행복하지 않다. 이것이 부정하고 싶지만, 결코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다. 그래도 너도 나도 우리도 모두 그러니 너무 크게 상심할 필요는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행복하지 않으니 행복하고 싶은데 말이다. 뭔가를 원한다면 대상을 제대로 알고 이해해야 한다.

 

행복한 삶을 원한다면 가장 먼저 행복이 과연 무엇인지 제대로 알고 이해해야 한다. 행복은 보통 개인적 경험이기에 그것을 객관화 하여 설명하긴 어렵지만, 그래도 행복하게 사는 삶에는 분명히 어떤 원리가 숨겨져 있다. 그것을 이해함으로써 행복이 과연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 좀 더 알고 이해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과정이 우리가 행복을 위한 해왔던 많은 헛된 노력과 불필요한 행동들을 막아 줄 수 있을 것이다. 더해서 자신의 행복의 행복이란 목표를 향해서 훨씬 더 빠르고 정확하게 도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행복을 이해하기 위해 알아야 할 중요한 두 가지 원리가 있다. 이 두 가지를 제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 때 행복에 대한 많은 이해가 가능해진다.

 

첫 번째 원리는 행복은 가진 것을 욕망으로 나눈 값으로 평가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분모인 욕망이 클수록, 분자인 가진 것이 적을수록 행복은 줄어들게 된다. 반대로 욕망이 적을수록, 가진 것이 많을수록 행복해진다.

 

이 행복 공식은 흔히 알고 있는 행복에 관한 일반적인 설명인데, 좀 더 정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여기에서 가진 것이란 말의 의미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생각해 봐야 하기 때문이다.

 

하나는 이미 타고난 것을 의미한다. 외모, 성격, 능력, 감성, 재능 등이 바로 그것이다. 다른 하나는 우리가 살면서 노력에 의해 얻을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 돈, 명예, 권력, 다른 사람들의 인정 등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들 대부분은 이 두 가지 종류의 가진 것 중에서 노력에 의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행복에 훨씬 더 크게 작용한다고 믿고 살아간다. 그래서 평생 더 많은 돈을 벌고 싶어하고, 권력을 갖고 싶어하고, 명예를 얻고 싶어하고,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으려고 애쓴다.

 

하지만 실제로 행복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로는 타고난 것이 훨씬 더 크게 작용하는 것이 숨겨진 진실이다.

 

세계 최고의 부잣집에 태어나 최고의 권력을 갖게 된 아이보다 가난해도 예쁘고 성격 좋고 머리 좋고 할 줄 아는 것이 많은 아이가 훨씬 더 행복할 가능성이 높다.


유명한 연예인이 되어서 돈도 많이 벌고, 사람들이 모두 알아본다고 해서 그 사람이 행복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런 삶을 살면 행복할 것이라고 지레짐작을 한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이라면 최고의 부잣집에서 태어나 권력을 갖는 삶이나 성공한 연예인의 삶을 선택하고 싶어할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행복에 대해서 너무도 많은 오해를 많이 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행복을 얻기 위한 수단일 뿐, 결코 직접적으로 행복이 될 수는 없다.

 

이런 행복의 특징으로 인해서 두 번째 원리가 자연스럽게 전개된다.

 

그것은 바로 모든 종류의 행복은 이미 타고난다는 것이다. 즉, 많은 사람들이 하고 있는 행복 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거의 이루지 못하는 노력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슬프지만 이것을 인정해야만 새로운 가능성이 생긴다.

 

더해서 선천적으로 타고나면서 행복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특징이 하나 더 있다. 그것이 바로 본능에 의한 행복이다. 즉, 성욕, 식욕, 수면욕 등을 만족시키면서 얻는 행복이다.

 

그런데 이 본능적 욕구들은 사람에 따라서 많은 편차를 보인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맛있는 밥만 먹어도 세상을 다 얻은 행복감을 느끼는 반면, 어떤 사람은 밥은 그저 생존하기 위해서 귀찮지만 먹어야 하는 것이 되어서 거의 행복을 얻지 못한다.

 

매일 세끼 밥을 먹는데 누군가는 그때마다 행복을 경험하고, 누군가는 귀찮음에 의해서 사실상 불행함을 느낄 수도 있게 되는 것이다. 이 차이는 매우 크다.

 

성욕도 마찬가지다. 누군가는 섹스를 할 때마다 상상하기 힘들 정도의 강한 오르가슴을 느끼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좋은 느낌은 전혀 없이 고통스러운 과정이라고 여길 수 있다. 그래서 섹스는 아이를 낳기 위해서 해야 하는 힘들고 역겨운 일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수면욕도 마찬가지다.

 

타고나는 것에는 또 다른 것도 있다. 그것은 바로 타고난 감각 기관의 차이로 인해서 발생한다.

 

인간의 오감인 청각, 시각, 후각, 촉각, 미각은 모두 사람마다 편차가 크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특별하게 한 가지 감각이 발달한 채 태어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은 그 차이로 인해서 다른 사람들은 전혀 경험하지 못하는 행복을 경험하게 된다.

 

미세한 음의 차이를 구분하고 그것을 통해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음악인이나 남들은 구분하지 못하는 색감을 구분할 수 있는 미술가나 냄새, 맛 등을 기가 막히게 느낄 수 있는 요리사 등이 그런 예가 된다.

 

이것은 단지 감각의 차이가 아니다. 이것은 다른 사람들은 전혀 느끼지 못하는 행복을 경험하는 차이가 된다. 그래서 특출 나게 뛰어난 감각 능력 하나만 타고 태어나도 그것을 통해 평생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가능성도 생긴다.

 

여기까지 이해하면 행복한 사람들은 어떤 특징을 가졌을 지를 정리가 가능하다.

 

첫 번째, 사람을 끄는 매력이 있어야 한다. 외모나 지능 그리고 각종 다양한 재주가 여기에 해당된다.

 

두 번째, 타고난 본능을 통해서 큰 만족감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 어떤 종류이든 상관없다.

 

세 번째, 감각이 뛰어나야 한다. 이것은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지만, 남들과는 탁월하게 다른 감각적 능력을 타고난 사람은 음악, 미술, 자연, 여행 등을 통해서 보통 사람보다 큰 행복을 얻을 수 있다.

 

네 번째, 성격이 타고나야 한다. 같은 행위를 해도 훨씬 행복하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하루 종일 인형의 눈알을 붙이는 일을 해도 신나게 할 수 있다.

 

지금 이 순간 본인이 여기에 속하는지 아닌지를 따져보라. 만약 하나라도 속한다면 복 받은 것이다. 행복하게 사는 삶을 살 수 있는 기회를 부여 받은 사람이다.

 

그런데 여기에 속하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 사실 매우 적다. 이것이 우리 인간의 비극이다.

 

혹시 지금도 헷갈린다면 몇 가지 질문을 통해서 여부를 알 수도 있다.

 

첫 번째 질문은 바로 이것이다. 살아가는 동안 행복하고 싶어서 무엇인가를 노력하고 있는가?

 

이 질문에 '그렇다' 라고 대답을 했다면 역설적으로 행복하지 않는 사람이란 뜻이다. 정말로 행복한 사람들은 행복하고 싶어서 뭔가를 하지 않는다. 그냥 뭘 해도 행복하다. 행복은 순간적 경험이다. 과거에 지나간 기억을 되살리면서 미래에 할 일을 계획하면서 '나는 행복한 사람이야' 라고 정의 내리는 것이 아니다.

 

행복하면 그저 그 순간 행복해야 한다. 스스로 행복한 것인지 인식도 하지 못하고 그냥 행복해야 한다.

 

두 번째 질문은 이것이다. 지금 행복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가?

 

사실 이 글을 읽고 있다는 자체가 본인이 행복하지 못하다는 말의 증명이 된다. 행복한 사람은 그냥 삶이 행복 그 자체라서 행복에 관심이 없다. 그러니 이런 길고 복잡한 글에 관심도 없다. 행복하지 않으니 행복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되고, 생각도 많아지게 된다. 진짜로 행복해지면 생각이 없어지고 행복에 대한 관심도 줄어든다.

 

우리는 언제나 부족한 것에 관심을 갖기 마련이다. 이것은 부정할 수 없는 인간의 성향이다.

 

행복한 사람과 행복하지 못한 사람 사이에는 또 다른 명백한 차이점이 있다. 행복한 사람은 무엇을 할 때 그것을 해도 행복하니까 한다. 하지만 행복하지 못한 사람은 그것을 해야만 행복하다. 이 두 표현은 비슷한 것 같지만 완전히 다르다.

 

행복한 사람은 무엇을 할 때, 그것을 해도 되고 사정이 생겨서 못하거나 안 해도 된다. 늘 대안이 있다. 하지만 행복하지 못한 사람은 반드시 해야만 행복할 수 있으며, 혹시나 못하게 되면 불행해지고 만다. 대안이 없다.

 

행복한 사람은 행복을 경험하고, 행복하지 않은 사람은 자신의 행복을 판단한다.

 

아마도 이 정도까지 생각해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은 행복하지 않은 사람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그래도 너무 걱정할 필요가 없다. 우리들 대부분이 그런 성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결코 자신이 이상한 것은 아니란 뜻이다.

 

이 세상은 이런 식으로 소수의 행복한 사람들과 다수의 행복하고자 하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다수의 행복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행복을 판단하여서 행복한 사람이라는 결론을 내고 있다. 즉, 사실상 행복하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자신이 아는 행복 조건들을 갖추고 난 후, 행복한 사람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행복한지 여부를 물어보면 그 대답의 비율이 꽤나 높게 나온다. 적어도 행복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춘 사람들이 꽤나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행복하지 못한 사람들은 자신을 행복한 사람이라고 여기게 할 수 있는 비장의 무기가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정말로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이 하는 행동을 똑같이 따라서 하는 것이다.

 

행복한 사람들이 여행을 가서 행복해 하면 자신도 가서 행복해 하고, 행복한 사람들이 맛난 것을 먹고 행복해 하면 자신도 그것을 먹고 행복해 한다. 그들이 책을 보면서 행복해 하면 자신도 책을 보고 행복해 하고 그들이 사람들을 만나서 행복해 하면 자신도 사람을 만나서 행복해 한다. 그들이 피아노를 치면 자신도 치고, 그들이 그림을 그리면 자신도 그린다. 그들이 사진을 찍으면 자신도 찍고, 그들이 산에 오르면 자신도 오른다.

 

즉, 행복하지 않은 사람들은 그들의 삶 자체가 행복한 사람에 대한 모방으로 이뤄진다. 이것은 우리가 매일 보는 모습들이다.

 

하지만 이 모방에는 근본적 문제가 있다.

 

예를 들어서 타고난 호기심으로 낯선 환경에 대한 기대치가 매우 높으며 탐구심이 왕성한 사람일 경우 운 좋게 해외 여행을 갔을 때는 그 새로운 장소는 마치 보물창고처럼 느껴지게 된다. 이런 종류의 새로운 경험은 이 여행자를 거의 무한대로 행복하게 해준다. 그래서 여행 하는 것이 너무도 행복하다고 느끼게 된다. 그리고 이 행복감으로 인해서 낯선 곳에서 느낄 수 있는 두려움이 별로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사람을 따라 한 모방자는 다르다. 비슷한 것을 약간 느끼긴 하는데 그렇게까지 행복하지는 않다. 또한 낯선 곳이 두렵기도 하다. 그러니 누군가 이미 다녀간 코스를 따라 가거나 최대한 사전 조사를 통해서 두려움을 없애려고 한다. 이것은 분명히 안전함을 가져다 주긴 하지만 진정한 낯선 것들을 접했을 때 느낄 수 있는 두근거림을 날려 먹을 수 있다.

 

이런 차이로 인해서 똑같은 장소를 똑같은 일정으로 다녀와도 두 사람이 여행에서 느끼는 행복감은 수십 배 차이가 날 수도 있다.

 

문제는 이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이 행복감 차이로 인해서 더 안 좋은 일들이 생겨난다. 그것이 바로 본전생각이다.

 

행복한 사람은 들인 비용과 시간에 비해서 충분히 만족스러운 행복을 얻었기에 전혀 본전 생각이 나질 않는다. 그래서 더 자유롭게 여행을 즐길 수 있다. 여행 중에 사정이 꼬이거나 일정에 차질이 생겨도 큰 문제가 아닌 것이 된다. 그런 우연함도 행복한 일로 작용한다.

 

하지만 모방자는 행복 만족도가 떨어지기에 본전 생각이 절로 난다. 그래서 일정이 하나라도 틀어지게 되면 매우 기분이 상한다. 뭔가 많은 손해를 본 느낌이 든다. 이런 태도는 여행 중에서 경험하게 되는 여러 가지 사건으로 인해 안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내게 된다.

 

그리고 여행 후에도 전혀 서로 다른 태도를 보인다. 이미 충분히 행복을 경험한 사람은 다음 여행을 계획하거나 또 다른 행복한 일들을 하려고 한다.

 

하지만 모방자는 시간과 비용에 비해서 덜 행복했기에 그것을 채워야 한다고 느낀다. 그것을 위해서 하는 행동이 주변에 자신의 행복 경험을 이야기 하고 다니는 일이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부러움이라는 추가적인 행복을 얻고자 한다.

 

사람들을 만나 여행이 얼마나 좋았는지를 설명하고 그들의 긍정적 반응, 즉 부러움을 얻어내야 한다. 만약 자신의 경험에 별 관심이 없거나 딴지를 거는 사람들이 있으며 그들은 관계의 블랙 리스트에 올라가게 된다.

 

요즘 많은 유행을 하고 있는 SNS 가 이것을 위해 최적화된 도구이기도 하다. SNS를 하는 많은 사람들이 하는 일이 바로 자신의 매일 하고 있는 행복하다고 여겨지는 경험들을 전시하는 일을 하고 다른 사람들의 부러움의 반응을 얻어내고자 한다.



[다음 편이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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