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철학

너는 그렇게 살 수 있지

아이루다 2017. 4. 11. 08:36

 

 

우리는 살아가면서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다양한 형태의 삶에 대해서 듣게 된다. 그것은 TV 속에서, 신문 기사 속에서, 회사 동료들과의 대화 속에서, 친구들과의 만남 속에서, 가족들과의 삶 속에서, 그냥 지나다가 우연히 듣기도 할 정도로 자주 있는 일이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를 듣게 되면 자연스럽게 자신과 그것을 비교하게 된다비교의 결과가 긍정적이냐 부정적이냐 여부와 상관없이, 다른 사람들의 삶은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삶의 정당성 혹은 방향성을 판단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기준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혼자 산다면 자신의 삶을 판단하기가 불가능하다자신의 선택이 옳은 일인지 아니면 잘못된 일인지를 결정하는 것 자체도 무의미하다.

 

우리는 타인과 비교하지 않는 삶이 좋은 것이란 조언을 많이 듣지만, 사실 타인과 어떤 비교도 없이 혼자 사는 삶은 그것에 대한 확신을 갖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적어도 책이라도 읽어야 한다.

 

그런데 이때 사람마다 그 영향은 매우 다르게 나타난다.

 


어떤 사람들은 ', 그렇게 사는 사람도 있구나' 하고 금세 잊는다

 

어떤 사람들은 '왜 그렇게 살지?' 라고 의문을 품는다

 

어떤 사람들은 '그렇게 살면 안 된다' 라고 생각하면서 비판이나 비난을 한다.

 

어떤 사람들은 '나도 그렇게 살고 싶은데' 라고 부러워한다.

 

이런 반응들 중에서 그나마 첫 번째 반응이 제일 나아 보이긴 한다. 남에 대한 비난이나 부러움 혹은 의문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결국 본인이 행복하지 않음을 스스로 인정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원래 자신에게 온전히 만족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사는 모습에 의해서 거의 흔들림이 없다. 이 말은 좋아 보이지만, 사실 관심이 없기에 흔들림이 없다는 씁쓸한 진실이 감춰져 있다. , 정말로 행복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이 없다.

 

설령 그렇더라도 그것이 낫다. 남을 신경 쓰고, 비교하고, 부러워하고, 비판하는 삶은 비록 남에게 관심이 있다고 해도 결코 좋은 관심이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마냥 쉽지만은 않다. 그래서 남에게 완전히 무관심할 정도로 행복한 사람은 무척 드물다.

 

그러다 보니 자꾸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삶이 귀에 들어온다. 그리고 자꾸 그것이 신경쓰인다. 안 들었으면 좋겠지만, 인간 세상에 속해서 살면서 그것을 듣지 않을 방법이란 없다. 매일 사람들이 모여서 나누는 대화 속에 언제나 다른 사람들의 삶이 다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그것을 인식하든 못하든 사람들이 매일 서로 대화를 나누고, 책을 읽고, 신문 기사를 보고, 해외 토픽을 보고, TV을 보고 하는 과정은, 다른 말로 끝없는 다양한 삶에 대한 설명, 관찰, 분석평가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너무도 많고 복잡해서 도대체 어디까지 설명이고, 어디까지 관찰이며, 어디까지 분석인지, 어디까지 평가 인지를 구분해서 볼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또한 누가 이야기를 하고, 누가 듣고 있는 것 인조차도 구분하기 힘들다.

 

그런데 이런 다양하고 복잡해 보이는 삶에 대한 이야기라고 해도 잘 살펴보면 사실 명확한 흐름이 있다.

 

모든 사람들이 각자 자신의 삶이나 타인의 삶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모든 이야기는 자신의 삶에 만족하는 사람들로부터 시작해서 자신의 삶에 불만족스러운 사람들에게로 흘러 든다.

 

그런데 이런 현상은 잠깐만 생각해도 이것은 너무도 당연한 흐름이다.

 

사람들이 자신의 삶에 만족하든 만족하지 못하든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지만, 자신의 삶에 만족하는 사람들은 들어도 그냥 넘기기 때문에 아무 것도 남질 않는다.

 

하지만 반면에 불만족스러운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삶을 자꾸 귀담아 들으려고 한다다른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를 통해서 자신의 삶을 평가하거나 조금이라도 더 개선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하면 만족하는 사람들은 작가가 되고, 불만족스러운 사람들은 독자가 되는 것이다. 이런 특징을 서점에 가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서점에 가면 많은 작가들이 쓴 다양한 삶에 대한 책이 있다. 그리고 그것을 읽는 사람들도 많다.

 

그리고 이런 종류의 책들은 공통적으로 한 가지를 말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어떤 식으로든 자신만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한다. 사회적 편견이나 혹은 자신이 살아온 삶의 규칙 등에 얽매여서 스스로의 삶을 고정시키지 말고,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찾아서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많은 사회적 통념으로부터 조금이라도 자유로워져야 한다고 조언해준다. 그리고 그것의 가치성과 진실성 여부를 자신의 경험들을 통해서 설명한다.

 

결혼을 선택하지 않고 사는 이야기, 수 많은 여행을 하면서 사는 이야기, 인생의 고비에서 새로운 도전을 해서 전혀 다른 삶을 개척한 이야기, 가정에서 서로의 성 역할을 바꿔서 사는 이야기, 남녀의 보이지 않는 차별을 이겨내서 새로운 분야의 선구자가 된 이야기 등등 거기엔 수 많은 종류의 이야기들이 있다.

 

이런 종류의 이야기들은 듣는 이에게 희망을 준다. 자신의 한계를 벗어나서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었던 다른 사람들의 경험은 당연히 그런 긍정적 효과를 주는 것이다.

 

하지만 이 이면에 숨겨진 불편한 진실을 하나 간과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너니까 그렇게 살 수 있다는' 진실이다.

 

이것은 삶을 이야기 해주는 사람도, 삶을 듣는 사람도 모두 무시하고 있는 진실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착각의 이면엔 사람들이 어떠한 형태의 삶이든 그것을 선택했다는 오류가 존재하고 있다.

 

,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해서 살았다는 착각이다.

 

이것은 마치 세계적으로 성공한 육상 선수가 자신이 육상 선수로써 삶을 살게 된 이야기를 적어 두고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런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과 비슷하다.

 

물론 이 육상 선수는 달리기를 해야 한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그는 아마도 자신이 타고난 재능을 단련하고 꿈을 향해 달려가야 한다고 말할 것이다.

 

여기에서 한 가지만 생각하고 넘어가자.

 

공부를 안 하는 아이들은 공부를 안 하는 것일까? 못하는 것일까?

 

물론 그냥 안 하는 아이들도 있다. 하지만 대다수의 아이들은 공부를 못해서 안 한다. 원래 못하는 것을 열심히 하기가 무척 힘들기 때문이다. 인간은 원래 못하는 분야에서 경쟁하는 것을 견뎌내기를 무척 힘들어 하는 존재이다.

 

이것은 음치를 데리고 노래방에 가는 것이며, 술을 전혀 못하는 사람을 끌고서 1, 2, 3차 술집을 끌고 다니는 것이다.

 

사실 무척 잔인한 짓이다.

 


사람은 각자 타고나는 재능이 있다. 이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재능의 탁월함 여부는 전혀 다른 이야기다. , 공부를 잘하는 아이는 어느 정도 있지만, 공부를 정말로 잘하는 아이는 정말로 적다. 사실 당연하다. 그렇게 탁월하니 정말로 잘한다는 소리를 듣는 것이다.

 

서점에 책을 낸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어느 정도는 잘난 사람들이다. 대학 교수들도 많고,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도 많다. 또한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세상을 향해 도전하거나, 남들과는 전혀 다른 정신 세계 속에서 사는 사람들도 있다.

 

, 이들은 기본적으로 자신이 타고난 재능 분야에서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주변을 잘 살펴보면, 남들보다 탁월하거나 눈에 띄게 괜찮은 재능을 타고 난 사람은 무척 드물다. 사실 전체의 1%로 안될 것이다.

 

쉽게 말해서 책을 쓸 수 있는 사람은 백 명 중 한 명이고, 나머지 99명은 언제나 독자 입장일 뿐이다. 주변을 잘 살펴봐라. 만약 주변 사람들이 대부분 책을 한 권이라도 낸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이미 성공한 무리에 속한 사람이며, 그 사람도 책을 낼 수 있는 가능성은 무척 높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는 인맥 중에서 책을 낸 사람이 손에 꼽힌다. 우연히 유명한 사람을 개인적으로 알고 있을지 모르지만, 대부분은 알지도 못하고, 안다고 해도 매우 좁은 범위에서만 알고 지내게 된다.

 

그럼에도 1%는 끝없이 삶을 이야기 한다. 자신을 보라고 한다. 자신이 어떻게 노력하고, 꿈을 가지고 있으며, 열정적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설명한다.

 

설령 이것이 아니라고 해도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삶이 얼마나 고귀한 것인지, 삶이 얼마나 살아 볼만한 것인지 설명하려고 애쓴다.

 

삶에 대한 좋은 자세들과,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무엇이 중요한지를 말해준다. 자신의 생각에 자신의 경험을 더해서 설명한다. 그래서 나름대로 그럴 듯 하다.

 

그렇게 해서 뚜렷하게 차별되는 재능 하나 없이 흔하디 흔하게 살아가야 하는 다수에게 희망을 준다. 그리고 다수는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는 자신도 뭔가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는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 서로 알면서도 혹은 서로 모르면서 진행되는 일종의 정해진 무의식적 교환이다. 한쪽은 희망을 팔고, 한쪽은 희망을 산다. 진짜 돈으로 교환된다.

 

말을 하는 사람도 말을 듣는 사람도 그것이 사실은 말을 하는 사람에게만 유효할 것임을 알고 있지만, 그것을 의식적으로 인식하지는 못한다. 말을 하는 사람들도 그렇다. 말을 할 때는 마치 자신이 하는 말을 다른 사람들이 듣고 영향을 받거나 변화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못할 것임을 안다. 하지만 역시 의식적으로 그것을 인식하지 못한다.

 

만약 말을 하는 사람의 이야기가 말을 듣는 사람들에게 정말로 영향을 끼쳤다면 이 세상에는 이미 그런 종류의 책들이 단 한 권도 없어야 옳다. 책은 이미 충분히 많이 나왔고, 읽은 사람의 숫자는 엄청나게 많다.

 

하지만 오늘도 그런 책들이 나오고, 그런 이야기들이 들려오고 있다. 이 사실이 모든 것을 증명한다.

 

다른 사람들의 삶에 대해서 듣는 것은 그리 나쁜 것은 아니다. 적어도 인간에 대한 이해를 할 수는 있기 때문이다. 또한 자신은 결코 생각하지 못하는 그 어떤 것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할 수 있는 계기도 될 수 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겪은 경험은 온전히 그 사람의 몫이다. 그런 외모, 그런 성격, 그런 지적 능력, 그런 신체적 능력, 그런 환경, 그런 부모, 그런 친구들이 있었기에 경험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그런 경험을 통해서 설득하고 있는 말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그저 우연히 경험하게 된 운 좋은 일에 대한 해석에 불과하다.

 

그러니 그것이 그들이 착각하고 말하는 것처럼 어떤 삶의 이정표는 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자동차를 타고 가는 사람이 걸어가는 사람에게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 법을 설명해주는 것과 같다. 두 사람의 부산까지의 여행은 전혀 다른 궤적을 그리게 된다. 모든 것이 다르다.

 

정말로 말하는 자가 되고 싶다면, 더 이상 말하는 것을 멈춰야 할 것이다. 이것을 스스로 인식하지 못한다면, 아마도 평생 동안 더 많은 말을 하면서 살게 될 것이다. 듣는 사람들이 듣기 원하는 말 말이다. 그리고 사실은 자기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하는 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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