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철학

행복하게 살고 싶다면 - 2

아이루다 2017. 1. 7. 08:49


[이전 편에서 계속]


이것이 끝이 아니다. 더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그것은 바로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을 모방하라고 부추긴다. 이것은 자신이 원래 모방이 아닌 진짜 원본이라고 주장하는 일이다. 즉, 자신이 행복한 사람이라고 스스로 여기는 일이다.
 
하지만 아무리 주장을 해도 모방자는 결국 모방자일 뿐이다. 그럼에도 그것들을 통해 부족했던 행복감을 채울 수 있기에 그런 행동들을 멈출 수가 없다.
 
또한 이런 행동의 아주 좋지 않는 부정적 결과를 만들어 내고 만다. 주변에 자신의 행복 경험을 자랑하거나 혹은 자신을 모방해야 한다고 말하는 행위들은 결국 다른 사람들의 욕망이 크게 자극하게 된다. 그래서 원래는 없어도 되는 욕망들이 자꾸 들러 붙게 된다.
 
서로가 서로에게 그런 짓을 한다. 추가적으로 행복 하려고 행복을 자랑하고 행복 하려면 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서로에게 자꾸 욕망을 덧붙인다.
 
행복 공식에 의하면 행복하기 위해서는 욕망이 줄어야 한다. 그런데 거꾸로 아무 것도 하지도 않았는데 욕망만 늘어나면서 점점 덜 행복해지게 된다. 서로가 서로를 점점 더 불행하게 만드는 것이다.
 
행복하지 못한 우리들이 매일 하고 있는 일이 바로 이런 것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계속 욕망을 부채질하고 자신은 정말로 행복한 사람들이 하는 행동을 계속 모방한다.
 
이렇게 늘어난 욕망들을 어떻게 처리 해야 할까? 당장 쉬운 해결책은 최대한 더 돈을 버는 것이다. 돈을 벌면 벌수록 모방을 더욱 더 그럴 법 하게 할 수 있다.
 
이런 원리로 인해서 우리는 끝없이 가진 것이란 개념을 돈으로 수렴시킨다. 가진 것을 욕망으로 나눈 것이 행복이라고 했는데, 그 가진 것이 오직 돈이면 다 된다고 여기게 되는 것이다. 돈만 있으면 평생 모방을 하면서 살 수는 있으니 그럴 법 하기도 하다.
 
하지만 냉정하게 바라봐야 한다. 모방자는 결코 원본을 따라갈 수 없다.
 
그래서 모방자는 하는 일이 하나 더 있다. 그것은 바로 생각하는 것이다. 생각은 자신이 경험한 행복 대상에 대한 분석으로 이어진다. 영화를 보면 영화를 분석하고, 여행을 하면 여행 과정을 분석하고, 음악회를 다녀오면 음악회를 품평한다.
 
그런 행위를 통해서 자신이 경험한 모방 행복을 뭔가 가치 있는 것으로 만들고자 애쓴다. 하지만 원래 행복한 사람들은 그것을 느끼고 난 후 잊는다. 그리고 모방자들이 분석을 하고 있을 시간에 또 다른 행복을 경험한다.
 
책이 너무 좋아서 책을 수만 권 읽은 사람은 사람들이 대단하다고 칭찬하는 말에 어쩔 줄을 몰라 한다. 그저 행복해서 한 일인데, 단지 그것이 독서였을 뿐이다.

 

하지만 책을 많이 읽은 사람으로써 존경을 받고자 하는 사람은 매일 책을 읽어야 한다는 강박증에 사로 잡혀서 살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수만 권의 책을 읽었음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그러니 틈만 나면 자신이 책을 많이 읽었음을 자랑하려 든다. 그렇지만 언젠가는 그 누구도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게 된다. 그 자랑이 지겹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모방자가 하는 그 어떤 행복에 대한 시도도 결국 모두 물거품이 되고 만다.
 
그렇게 행복하고자 생각하고, 행동하고, 돈도 쓰는 노력을 하는데 쉽게 행복해지지 않는다. 그렇지만 우리는 언제나 돈이 부족해서, 더 행동하지 않아서, 더 노력하지 않아서 행복하지 못한 것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돈이 더 있고, 더 노력해서 더 많은 모방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진정으로 행복해질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결국 실패하고 만다. 모방자의 좋지 않은 최후이자 우리들 대부분의 최후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행복은 타고나는 것이니 포기하고 불행하거나 행복하지 않게 살아야 할까? 아니면 어쩔 수 없이 모방 행복이라도 경험해야 할까?
 
다행스럽게도 여기엔 어떤 해결책이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다. 그것이 바로 앞에서 설명한 무엇인가를 하고 싶다면 그것을 제대로 알고 이해해야 한다는 점을 생각해 보는 것이다. 이 점이 가장 중요하다.
 
즉, 우리는 이런 행복이 가진 속성을 제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즉, 지금까지 자신이 온 생애에 걸쳐서 해왔던 행복할 것이라고 믿고 실제로도 행복했던 그 모든 경험들이 사실은 모두 모방에 불과했으며 결국 진짜로 행복한 것은 아니었다는 점을 스스로 인정해야 한다.
 
이것은 뼈를 깎는 듯한 고통이 밀려오는 일이다. 자기 부정이기 때문이다. 분명히 기억 속에 있는 해외 여행은 행복했다. 분명히 언젠가 맛난 음식을 먹는 순간 행복했다. 우리의 행복 기억이 그리도 명확한데 어떻게 그것이 가짜 행복임을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사실 그때 행복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모방 행복도 어느 정도까지는 행복하다. 문제는 행복의 강도가 상대적으로 작으며 그것이 금세 소모되어 버린다는 점이 문제이다. 그것이 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을 흉내 냈기에 생기는 문제다.
 
무엇인가를 정말로 좋아하는 사람은 똑같은 것을 반복해도 계속 행복하다. 산에 오르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같은 산을 반복해서 올라도 행복하다. 하지만 모방자는 계속 새로운 산을 올라야 한다. 따라 한 사람은 금세 질리고 언제나 더 커다란 것을 해야만 같은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결국 한계는 분명히 있다.
 
그러니 같은 행복을 얻기 위해서 점점 더 많은 시간과 많은 돈이 들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언젠가는 더 이상 해볼 수 없는 상황에 놓인다. 이렇게 물질적 한계에 부딪히면 자신이 더 이상 행복하지 못한 이유는 오직 시간과 돈이 부족해서 그렇다고 판단하게 된다. 즉, 돈만 있으면 더 행복할 수 있는데, 돈이 없어서 불행하다고 느낀다. 그러니 돈을 더 벌어야 한다는 결론이 난다.
 
지금 말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이 거대한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뜻이다. 행복을 결정하는 것은 돈, 시간, 노력 등이 아니다. 행복을 결정하는 것은 이미 태어날 때 주어졌다. 결코 노력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부정하고 싶은 이야기이다. 자신의 불행함을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너무도 힘든 일이다.
 
그럼에도 이것을 인정하게 되면 몇 가지 이미 있는 변화가 일어난다.
 
가장 첫 번째 변화는 오랜 시간 동안 행복 하려고 노력해왔던 수 많은 불필요한 노력을 줄일 수 있게 된다. 이것은 시간의 낭비, 돈의 낭비, 노력의 낭비 모두 줄여준다. 그래서 매우 좋은 점이 있다. 우리가 삶을 사는데 필요한 필수 비용이 현저하게 줄어든다. 즉, 아주 작은 돈으로도 살아갈 수 있게 된다.
 
그래서 그렇게까지 돈,돈 거리면서 살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이것이 다는 아니다. 살려면 행복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음 변화가 필요하다.
 
두 번째로 일어나는 변화는 다른 사람에게 자신이 행복하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노력하는 행동이 줄일 수 있다. 더해서 누군가 자신의 행복을 자랑하고 자신을 모방하라고 이야기 할 때, 그것이 가진 의미를 알기에 훨씬 덜 흔들릴 수 있다. 즉, 욕망이 덜 자극되는 것이다.
 
이것은 행복할 수 있는 조건, 즉 가진 것은 아무런 변화가 없지만 단지 욕망이 줄었기에 좀 더 행복해질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긴다.
 
세 번째로 일어나는 변화는 앞의 두 개의 변화의 조합으로 인해 생겨난다. 그것은 바로 삶이 훨씬 안정적으로 변한다.

삶을 살아가는데  필수적인 돈이 많이 줄어들고, 욕망이 덜 자극됨으로써 시간과 돈과 노력을 써서 해야 할 일이 줄어든다. 그러니 좀처럼 흔들리지 않는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여기까지 진행되었을 때 문제는 심심함이나 지루함이다. 자극이 없으니 당연한 결과이다.
 
그래서 이 변화는 중간에 고통스러움을 경험할 수 밖에 없다. 이것은 마치 중독에서 벗어나는 과정과 비슷하다. 욕망의 중독에서 벗어나려면 당연히 거쳐야 할 과정인 것이다.
 
그러니 참아 내야 한다. 심심함, 지루함, 권태를 참아야 한다. 삶이 무료하고 무의미함을 참아 내야 한다. 다른 사람을 만났을 때 그들처럼 신나게 한바탕 행복 자랑을 하고 싶은 욕구를 참아 내야 한다. 예전처럼 설령 모방이라도 해도 행복 경험을 하고 싶은 욕구를 참아 내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힘든 시간이 지나고 나면 안정적인 삶은 이제 본격적으로 평화로운 삶으로 바뀐다. 그리고 이렇게 안정적이고 평화로운 삶은 다른 사람에 대한 관대함으로 이어진다. 이것이 바로 진짜 행복이 된다.
 
우리는 너무 많은 자극에 노출이 되어 살아왔기 때문에 평화로움이란 단어에 대해서 거의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요즘 3초만 시간이 나도 스마트폰을 보려고 한다. 그냥 가만히 있는 것을 정말로 참지 못한다. 이것이 너무 익숙해서 도대체 다른 삶이 있을 수 있나 싶다. 하지만 스마트폰이 없었던 시절은 불과 10년도 지나지 않았다. 우리는 지금 스마트폰이 없으면 살기가 힘들듯 여기지만, 10년 전만 해도 그러지 않았다.

지난 십년간 도대체 무슨 변화가 일어난 것일까? 우리는 과거로 돌아갈 수 없을까? 아니다 있다.
 
우리는 누구나 평화로움을 통해 행복함을 얻을 수 있는 능력이 분명히 있다. 그렇지만 평생 자극 속에서만 살아왔기에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 자체를 잊어 먹고 말았다.
 
이제는 그것을 다시 되찾아야 할 때이다.
 
행복하게 태어난 사람들은 행복하게 살다가 죽으면 된다. 하지만 행복하게 태어나지 못한 사람들은 결국 평화로움을 얻음으로써 최종적으로 행복해질 수 있다.
 
이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행복하게 태어난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치명적 단점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바로 위기 관리 능력이다. 행복하기에 위기를 대비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행복할 수는 있지만 운이 나쁘면 그것으로 인해 삶이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
 
행복하지 않게 태어난 사람들은 위기 관리 능력이 상대적으로 뛰어나다. 즉, 비관적으로 태어났기에 끝없이 위기를 대비하려고 한다. 그러니 행복하기가 힘든 것이기도 하다. 머리 속에는 언제나 좋은 일보다는 걱정이 가득하다. 걱정을 잊으려면 정말로 크게 좋은 일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럴 경험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은 매우 낮다. 그러니 어떻게 행복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 행복하지 않게 태어난 사람이 걱정이 없는 평화로움을 얻게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나겠는가? 그야말로 행복할 수 밖에 없다.
 
이것은 아주 당연하고도 명확한 길이다. 행복하지 않게 태어난 사람이 행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어쩔 수 없이 삶이 좀 지루할 수는 있다. 심심하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평생 모방을 통해서 행복하고자 그렇게 많은 불필요한 노력과 헛된 희망을 품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추가적으로 지루함과 심심함을 달래기 위해서 자신만의 소소한 행복 한 두 개쯤을 만들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아무리 행복하지 않게 태어난 사람이라고 해도 좋아하는 것은 하나쯤 있기 마련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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