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착함의 역습

아이루다 2016. 12. 19. 10:13

 

한 남자가 있다. 그리고 이 남자는 결혼을 했다.

 

결혼한 남편은 참으로 가정적이어서 퇴근 후 최대한 빨리 집에 돌아오고, 집에 와서도 열심히 집안 일을 돕는다. 그리고 자주 아내를 웃게 만들어서 아내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능력도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참 좋은 사람이었고 탁월한 남편이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한 가지 단점이 있었고 그로 인해서 그 수 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아내는 자신의 남편과 계속 살아야 할 지를 고민할 상황에 놓였다. 그것은 바로 남편이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한 번씩 한번 화가 나면 감당하기가 힘들 정도로 심하게 화를 낸다는 점 때문이었다.

 

그는 화가 나면 아내에게 큰소리로 윽박지르기도 하고 툭하면 리모콘이나 기타 집안 물건을 집어 던지기도 했다. 그리고 심할 경우 접시를 깨거나 최악은 집안 물건을 부수기도 했다. 그래서 그녀의 집에 있는 TV는 이미 두 번 새로 사야만 했다.

 

아내는 평소에는 너무도 만족스럽고 좋은 남편이지만, 어떤 일로 인해서 일단 화가 나게 되면 한계가 없이 폭발하는 남편의 성질로 인해서 당황스럽고 공포심까지 느낄 정도였다.

 

하지만 남편은 화가 풀리면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 자책하면서 진심으로 용서를 빌었고 더해서 그 점을 빼고 남편은 평소엔 너무도 좋은 사람이었기에 아내 입장에서는 쉽게 이혼을 생각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아내는 지금 현재 이 문제로 매우 고민스러워 하고 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은 어떤 사람들은 남편이 '분노 조절 장애' 라고 말하면서 그것은 쉽게 고칠 수 없다는 얘기를 해주기도 했다. 사실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한가지 궁금한 점이 있다. 도대체 이 남자는 왜 그렇게 심하게 화를 내는 것일까? 사실 부부가 싸우는 일은 참 많은데, 보통은 그리 큰 문제는 아닐 경우가 대부분이다. 현실 속에서 부부들은 정말로 단순하고 별 것 아닌 이유들로 싸운다. 그래서 그냥 싸우고 며칠 지나면 왜 싸웠는지 조차 기억이 나질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다면 이 남자는 왜 그렇게 심한 화를 내는 것일까? 그리고 평소의 행동을 보면 그렇게 심하게 화를 낼 사람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데 말이다.

 

여기에서 예전부터 전해오는 말 한 구절을 꺼내 봐야 할 것 같다. 그것은 바로 착한 사람이 진짜로 화가 내면 정말로 무섭다는 이야기이다. 이것은 실제로 어느 정도 맞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왜 평소에 좋은 사람이 화가 나면 더욱 더 심해지는 것일까? 답은 어려울 것 같지만 사실 매우 단순하다.

 

그것은 바로 보상 심리 때문에 그렇다. 즉, 자신이 평소에 착하게 살았다는 자신감이 이미 나기 시작한 화를 폭발적으로 증폭시키는 것이다.

 

아마도 화가 났다고 해도 상대가 금세 미안하다고 하면 멈출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보통 싸움이 나면 한쪽이 물러서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니 계속 서로의 감정을 자극하게 되고 이때 자신의 정당성에 대해서 끝없이 확인을 하려고 하는데, 평소에 착하면 착했을 수록 더욱 더 자신은 화를 낼 자격이 된다고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런 생각이 바로 멈추지 않는 폭발력을 만들어 낸다.

 

사람들이 화를 낼 때 모두 다른 반응을 보이는 것 같지만, 사실 사람들이 처음 화가 나는 순간은 보통 비슷한 수준의 감정 변화를 겪는다.

 

예를 들어서 비 오는 날 길을 걷다가 지나가는 차로 인해 물이 튀어 옷이 젖게 되었다면 다들 어느 수준 정도의 짜증이 난다. 물론 현재 자신의 기분이 어떤 상태였는지에 따라서는 달라지겠지만, 비슷한 상황이라면 비슷한 수준으로 화가 난다.

 

실제 문제는 그 다음부터 일어난다.

 

그날 잘 차려 입고 중요한 면접을 보러 가던 사람은 짜증이 열 배 이상 부풀려진다. 하지만 비옷을 입고 걸어가던 사람은 약간 짜증이 나긴 하지만 금세 잊어 먹는다.

 

이 두 사람은 사실 같은 사람일 수도 있다. 즉, 같은 사람이라도 자신의 현재 상황에 따라서 전혀 다른 태도가 나타나는 것이다. 이것은 이중적인 태도가 아니다. 이것은 그저 사람들에게서 보여지는 아주 흔한 모습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증폭 현상이다. 최초의 화를 유발시킨 상황에다가 자신이 현재 처한 상황이나 혹은 과거로부터 연결되어 있는 다양한 형태의 기존 기억들이 더해서 현재 발생한 화가 거의 무한대로 확장되는 현상을 만들어 낸다.

 

평소에 아내에게 잘해주던 남자는 아내가 어떤 일로 인해 자신의 심기를 거스르게 되면 평소에 자신이 얼마나 잘해줬냐는 기억을 상기시키면서 아내에게 심하게 서운함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즉, 이 남자가 화가 나면 그렇게 물불을 안 가리는 이유는 바로 평소에 자신이 아내에게 잘해줬기 때문이란 뜻이다. 이것은 웃기지만 사실이다.

 

물론 이 사람이 정말로 분노 조절 장애자일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로 그런 경우는 별로 없다. 대부분의 분노 조절 장애자처럼 보이는 사람들은 그저 자신이 그럴 수 있는 상황이기에 그러는 것이다. 머리에 총을 겨누고 있어도 화를 계속 낼 수 있는 사람들이야 말로 진정한 분노 조절 장애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명의 위협을 받게 되면 금세 화를 누그러뜨린다. 아니 적어도 화를 참는다. 이것은 바로 우리가 감정을 제어하려고 노력하는 이성적 능력을 가지고 있기에 가능하다. 그리고 우리들 인간은 대부분 이성적이다. 이성적일 때 좀 더 생존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착한 사람이 화를 내면 무섭다는 말은 당연한 결과이다. 평소에 자신이 착하게 행동했다는 것으로 인해서 화를 내게 될 때에는 반드시 배신감과 무력감 그리고 절망 더해서 자신의 화가 정당하다는 믿음까지 더해진다.

 

평소에는 정말로 착한 사람이었기에 가능하다. 그렇게 착하게 살았는데도 그런 자신이 화를 낼 수 있을 정도의 일을 당했다면 당연히 그럴 것이다.

 

얼마나 자신을 화나게 만든 상대가 원망스럽겠는가 그리고 얼마나 자신에 대한 정당성이 넘치겠는가?

 

이 심리는 그리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고 이해할 수도 있다. 사실 여기에서 흥미로운 점은 바로 착한 사람들이 화를 낼 때 느끼는 심리적 지지대의 존재이다.

 

즉, 쉽게 말해서 착한 사람들은 누군가 자신을 착하다고 칭찬하면 아니라고 겸손을 떨지만 사실은 자신들이 착하게 살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알고 있다는 것을 유추해낼 수 있다. 그러기에 화가 났을 때 그렇게 감당하기 힘든 화를 내는 것이다.

 

만약 어떤 착하다고 평가 받는 사람이 자신이 착하게 살고 있다는 점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면 이런 증폭 현상은 결코 일어날 수 없다. 증폭이 일어나는 유일한 이유는 바로 과거 자신의 행위에 대한 본전 생각이기 때문이다. 분명히 본전에 대한 확실한 기억이 존재하기에 증폭이 된다.

 

이 말은 착한 사람들이 평소에 자신이 착하게 살고 있을 때 그것은 매일 자신에게 쌓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나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자신이 화가 날 상황에 놓이면 이 착함의 기억은 돌연 모두 폭탄으로 변해서 거대한 폭발을 일으키고 만다.

 

이것과 비슷한 예가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잘생기고 예쁜 사람들은 자신이 그렇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는 점이다. 설령 자신의 외모에 그리 신경 쓰지 않는 듯 보이는 사람들도 모두 알고 있다. 그리고 더해서 자신이 어떻게 하면 멋지고 예쁘게 보이는 지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평소엔 외모에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듯 행동하지만, 그 행동 안에는 자신의 외모를 더욱 더 나아 보이게 하는 잠재적 의도가 숨겨져 있다.

 

이런 식으로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장점을 모두 잘 알고 있다. 그것을 의식적으로 인식하든지 아니면 무의식적으로 인식하든 상관없이 알고 있다. 장점이 가지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데 그것을 알지 못한다는 것은 완전히 거짓말이다.

 

그리고 그런 자기 인식을 통해서 자신의 가치를 평가한다. 그리고 자신이 어떤 대접을 받아야 할 지를 판단한다. 결국 이 판단이 바로 자신이 무시를 받느냐 혹은 대접을 받느냐 여부를 결정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원래 사람이 착하다는 것은 좋은 것이다. 하지만 그 착함을 모두 폭발력 있는 원인으로 쓰고 있다면 사실상 그것은 당장 쓰고 있는 현금이지만 실제로는 빚과 같다. 그래서 언젠가는 폭발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면에서 보면 평소에 그다지 착하지 않지만 쌓아두지 않는 사람이 더 나을 수도 있다. 그럴 경우 착한 사람은 아닐지라도 화가 났을 때 감당하기 힘든 사람은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착하게 살고 싶다면 착함을 쌓아두어서는 안 된다. 매일 일어나는 선행이 남지 않고 그저 사라져버리고 말아야 한다.

 

사실 이 말은 가치를 만들지 말아야 한다는 말과 같은 의미가 된다. 착한 사람이 더 크게 화를 내는 이유는 바로 착함을 자신의 가치화로 만들어버렸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것들은 우리가 살아가는데 행복함의 열쇠가 되어 주기도 한다. 그래서 평생 화를 내지 않을 것이라면 좋다. 하지만 결국 단 한 차례의 화를 내게 될 때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화를 내게 되어서 결국 누군가를 죽이거나 혹은 자신을 망치는 결과를 불러 온다면 과연 이것이 온전히 좋기만 한 것인지에 대해서 스스로 되돌아 봐야 한다.

 

착한 일을 하고 살 때 그것을 남기지 않고 날려 버리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우리는 누구나 주고 나면 받길 바라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것은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우리가 이런 특징을 가졌다는 점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때, 우리는 조금이라도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화를 덜 증폭시킬 수 있다. 사실 그것만 가능해도 삶을 살아가는데 아주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각자 어떻게 살더라도 우리는 결코 절대적으로 정의로울 수는 없다. 그것은 사실 우리들의 착각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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