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철학

행복해야 할 이유

아이루다 2016. 11. 29. 09:14

 

세상에 행복해야 할 이유를 찾는 것만큼 쓸데없는 짓이 있을까 싶다. 사람들이 행복해야 하는 것은 사실 그 어떤 이유가 필요하지 않다. 그것은 마치 숨을 쉬어야 하는 이유와 같다. 물론 숨을 쉬어야 할 이유는 있다. 몸에 산소를 공급해서 우리가 질식해 죽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행복해야 할 이유도 있긴 할 것이다. 그런데 이 답을 찾을 필요가 있을까?

 

사실 단순히 생각하면 당연히 없다. 그럼에도 행복해야 할 이유를 생각해 봐야 하는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사실상 행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즉, 행복하다면 별로 신경 쓰지 않아도 될 이유이지만, 보통 우리는 행복하지 않기 때문에 이것을 생각해야 한다.

 

또한 자신이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역시도 행복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행복한 것과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생각보다 일치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행복하고 싶다는 욕구가 너무 강해서 행복한 삶조차도 이미 욕망화 시켜놨다. 즉, 자신이 행복하다고 믿고 싶고 남들에게도 그렇게 보이고 싶어한다. 그 덕분에 실제로는 행복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최면처럼 행복하다고 믿고 사는 사람들이 다수 존재한다. 이런 심리는 요즘 세상에 그 수 많은 SNS가 유행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러니 자기의 행복에 대해서 보다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결론적으로 자신이 현재 행복하든 안하든 행복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생각해 볼 필요는 있다. 그것은 행복하지 않는 사람은 행복하기 위해서,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신의 행복이 진짜로 행복한 것인지 스스로 진단을 해보기 위해서 필요하다.

 

자, 이제 답을 내보자. 우리는 왜 행복해야 할까?

 

답은 말할 것도 없이 단순하다. 행복하면 좋기 때문이다. 인간은 행복한 상태를 무척 좋아한다. 어떤 사람이 어떤 상황에 놓였든지 상관없이 행복하면 끝이다.

 

우리는 행복의 조건으로 많은 것을 따지지만, 사실 돈이 많든 적든, 건강하든 아프든, 많이 배웠든 아니든, 머리가 똑똑하든 아니든, 외모가 잘났든 못났든 상관없이 결국 행복하면 그것으로 끝이다. 도심의 고층 아파트에 사는 사람이나 산속에서 움막에서 사는 것이나 상관없이 본인이 그것에 만족하고 살면 그것으로 끝이다.

 

단지 돈이 많거나, 건강하거나, 많이 배웠거나, 머리가 똑똑하거나, 외모가 잘나면 행복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니 우리가 그건 것들을 갖고 싶어하는 것이다.

 

하지만 행복만 하다면 그런 조건들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런 조건들은 말 그대로 더 나은 조건일 뿐이다. 그것이 행복한 삶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조건은 아니다.

 

행복하면 기분이 좋고 몸도 건강해진다. 모든 것이 좋아진다. 행복해서 나쁜 것은 거의 없다. 주변 사람들에게 상대적 불행함을 안겨주는 것 말고는 말이다. 행복은 질투심이나 부러움을 유발할 수 있다는 문제 말고는 거의 완벽하게 장점만 가진 것 중에 하나이다.

 

그리고 행복하면 부수적으로 좋아지는 것들이 있다. 그 중 참 좋은 것 하나는 우리가 별로 느끼고 싶지 않아하는 다른 사람에 대한 부러움이나 질투를 느끼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그렇게 될 수 있으면 다른 사람들의 행운을 진심으로 축하해 줄 수도 있다. 이것은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정말로 중요한 것 중 하나이다.

 

우리는 원래 늘 부러움을 느끼고 질투하는 존재가 아니다. 우리는 배가 고플 때나 밥을 먹는 사람이 부럽다. 이미 많이 먹어서 배가 터질 지경일 때는 다른 사람의 먹는 모습을 보면 토할지도 모른다. 같은 원리로 우리는 불행하기 때문에 남을 질투하게 된다. 이미 충분히 행복하면 다른 사람의 행복이 전혀 신경 쓰이지 않는다.

 

행복해지면 이런 좋지 않은 마음이 사라진다. 이것은 참 좋은 일이다.

 

행복하면 부수적으로 좋아지는 또 다른 한가지는 바로 관대해진다는 점이다. 이것은 반드시 당사자에게만 좋은 것은 아니다. 주변 사람들에게도 좋다. 그리고 당연히 당사자에게도 좋은데, 행복할 때 베풀어 놓은 관대함은 언젠가 되돌아 올 가능성이 있다. 즉, 주변에 대한 관대함은 일종의 행복 저축이 된다.

 

그래서 나중에 불운에 빠져서 힘들 때, 자신이 저축해 놓은 관대함의 힘으로 그것을 벗어날 수 있다. 즉, 타인에 대한 관대함은 미래의 행복을 위한 보험과 같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관대할 때 그것을 의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행복하기에 관대해지는 것은 온전히 무의식 중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그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관대함을 인간다움의 중요한 가치로 꼽는 경우도 많다. 그리고 우리 인간이 온전히 이타적으로 행동할 수 있다고 믿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의 행동 밑에 깔린 깊게 숨겨진 심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그렇다. 우리는 결코 그런 이타적 존재는 될 수 없다.

 

우리가 관대한 이유는 이미 행복해서 그렇다. 충분히 만족스러울 때 우리는 충분히 관대해질 수 있다. 아무리 관대한 사람도 수 일을 굶겨 놓으면 더 이상 남에게 자신의 먹을 것을 내놓지 못한다.

 

원래 부러움이나 질투를 느끼지 않거나 타인에게 관대해지는 것은 행복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부수적인 현상이다. 이것들은 몹시 좋긴 하지만 행복해야 할 이유 그 자체가 될 수는 없다. 질투심을 느끼지 않기 위해서라든가 관대해지기 위해서 행복 하려고 하는 사람은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것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왜냐하면 여기에서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한 조금 다른 접근이 가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우리는 이 연관 관계를 조금 다른 시점에서 바라봄으로써 행복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해 볼 수 있다.

 

사람이 행복할 수 있다고 알려진 것들은 참 많다. 돈을 벌거나, 승진을 하거나, 원하던 시험에 합격 하거나, 꼭 사고 싶었던 어떤 제품을 샀거나, 맛난 것을 먹거나, 여행을 떠나거나, 사람들과 만나 수다를 떨거나 하는 것 등이 흔한 예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것을 할 때 행복하다. 하지만 하고 싶어도 못하는 경우도 많고 원하는 대로 되었다고 해도 기대한 수준의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이것이 우리가 행복해지기 힘든 가장 큰 원인이다. 원하는 것이 거의 대부분 이뤄지는 사람은 행복하지 않을 수가 없다.

 

우리가 불행한 이유는 대부분 원하는 것들이 다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이것이 끝이 아니다. 불행함은 또 다른 불행함을 불러온다.

 

불행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행복에 부러움과 질투를 느끼기도 하고 관대해지지 못한다. 그로 인해서 불행은 더욱 심화된다. 즉, 불행이 단지 그 불행 자체로 끝나지 않고 연쇄적으로 더 큰 불행함을 불러 온다.

 

이것은 마치 너무 배가 고픈 날 끓은 라면을 바닥에 엎은 것과 같다. 배가 고파서 끓은 라면이 엎에 되면 배고픔을 해결하지 못해서 화가 나기도 하지만 바닥에 쏟은 라면을 치울 생각을 하면 더욱 더 짜증이 난다.

 

이것은 그저 일어날 가능성이 낮은 불운한 일 같지만 생각보다 이런 일은 일상에서 자주 반복된다.

 

우리가 화를 낼 때를 잘 생각해보면, 우리를 화나게 시점은 사실 단순하다. 회사에서 상사에게 깨졌거나, 실수를 해서 어떤 일을 망쳤을 때이다. 그러면 자신도 모르게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그날 만나는 사람들에게 무의식적으로 날 선 태도를 보이게 된다.

 

약속에 늦은 친구에게 관대하지 못해서 화를 내고, 누군가 큰 행운을 얻은 친구에게 괜히 필요도 없는 걱정을 해주면서 기분을 망치려 든다. 이런 태도는 원래 기분이 좋았다면 나타나지 않았을 모습이다. 단지 낮에 있었던 기분 나빴던 일이 저녁의 친구와의 약속을 망치는 것이다. 연인도 그렇다.

 

그리고 이것이 반복되면 결국 친구와는 멀어지고 연인과는 헤어지며 부부는 이혼을 하게 된다. 그야말로 작은 불행이 엄청난 불행함으로 커져 버리는 경우가 된다.

 

불행함은 이런 특징이 있다. 어떤 불행함이 생기면 그것으로 인해서 추가적인 불행함이 야기된다. 그래서 원래 불행함은 상대도 안될 정도로 크게 불행해지고 만다.

 

이것을 불행의 악순환이라고 할 수 있는데, 우리 삶에서 생각보다 많이 나타난다.

 

우리는 불행해졌기에 질투심을 느낀다. 그러면 질투심을 느낀 사실 자체 때문에 더 기분이 나빠진다. 우리는 불행해졌기 때문에 남에게 관대해지지 못하고 날 선 반응을 보이게 된다. 그런데 그런 행동을 하고 나면 마음 한 켠이 씁쓸해진다. 남을 불행하게 만들면 우리도 역시 불행해진다. 이 역시도 불행의 증폭 현상이다.

 

이것이 악순환의 무서움이다.

 

반면에 우리가 행복해져서 질투심을 느끼지 않거나 관대해지는 것은 일종의 선 순환이다. 즉, 행복이 행복을 불러오는 것이다. 행복하니 다른 사람의 행운을 진심으로 축하하고,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눌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그들로부터 무엇인가 보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더 행복해진다.

 

이것이 선 순환의 좋은 점이다.

 

여기에서 순환이란 용어의 뜻을 제대로 집어 보자. 행복이 행복을 부르고, 불행이 불행을 부르는 것이 바로 순환 구조이다. 그런데 순환은 원형 구조이기 때문에 그 시작점이 딱히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즉, 원의 어느 부분이라도 그리기 시작하면 원은 완성 시킬 수 있다.

 

이 말은 정말로 중요하다. 왜냐하면 행복해야 할 이유가 행복 그 자체가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행복하고 싶다면 악순환을 끊고 선 순환을 하면 된다.

 

우리는 그 동안 수 없이 많은 행복하고자 하는 노력을 해왔다. 그런데 그 결과가 그다지 신통하지 않다. 즉, 행복하지 않거나 불행한 삶을 살고 있다. 행복하고자 했으니 그런 것이다. 욕망이 과하거나 능력이 부족하거나 운이 없어서 그랬을 것이다.

 

아무튼 할 수 없는 일을 한 것이다. 그러니 이젠 행복의 선 순환을 시키기 위해서 시작 지점을 바꿔보자. 즉, 행복하면 질투심을 없애고 그러면 더 행복해지고 그러면 관대해지고 그러면 더 행복해지고 하는 순환에서 행복한 것을 시작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질투심을 느끼지 않고 관대해지는 것을 시작 지점으로 삼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말했듯이 질투심을 느끼지 않고 관대해질 수 있는 것은 행복함의 부수적 결과이다. 그래서 이것이 결코 쉽지는 않다.

 

하지만 그럼에도 희망은 될 수 있다. 행복한 삶을 살고 싶다면 자신이 품은 질투심을 없애고 관대해지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사실 질투심을 없애는 것은 어렵다. 그럼에도 질투심을 최대한 숨기려고 노력하는 것은 중요하다. 또한 관대해지는 것도 어렵다. 그럼에도 가능하다면 자신보다 더 불운한 사람들에게 온정을 베풀려고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은 어렵지만 선 순환을 이끌어 내는 유일한 시작 지점이 될 수 있다. 다른 이들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그들의 삶을 인정해주며, 불운한 사람에 대한 연민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 된다면 우리는 행복해질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긴다. 즉, 행복의 선 순환을 시작할 수 있다.

 

그래서 이제는 행복해야 할 이유를 바꿔서 질투심을 느끼지 않고 관대해지기 위해서 라고 정하는 것이다. 즉, 우리는 이제 행복 그 자체를 위해서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행복의 부수적 결론을 위해서 행복해지는 것이다.

 

이것은 말도 안되지만, 정말로 행복해지고 싶다면 그래야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실제로도 효과가 있다.

 

이것이 소위 마음을 비우는 일이다. 나를 비우면 질투심은 줄어들고 관대함은 늘어난다. 이것은 우리가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한 아주 중요하고 필수적인 환경을 갖출 수 있게 만들어 준다.

 

수 많은 노력을 통해서 결국 행복 얻기에 실패했다면 행복에 관한 이런 새로운 관점의 접근이 필요하다. 이것은 단지 뜬구름 잡는 소리가 아니다. 이것은 진정 행복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선택해야 할 거의 절대적 과정이다.

 

정말로 행복하고 싶다면 말이다.

 

지금의 불행 속에서 과거에 수 없이 많은 시도를 통해 실패한 바로 그 일을 이제는 성공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그대로 살아도 된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충분히 많이 실패했다. 그리고 남은 삶이 무한한 것도 아니다. 우리는 시간이 별로 없다.

 

주변에 정말로 행복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유심히 바라봐야 할 것이다. 그들은 행복하기에 다른 사람의 행운을 질투하지 않고 관대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쩌면 그들은 다른 사람의 행운을 질투하지 않고 관대하기 때문에 행복한 것일 수도 있다.

 

그들이 우리가 믿는 것과 같이 행복을 위한 그 많은 조건을 갖췄는지 잘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생각보다 그런 조건들이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은 아니다. 어떤 면에서 행복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전혀 다른 원리로 만들어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남을 위해서 질투를 숨겨야 하는 것이 아니다. 그 무엇보다도 우리 자신을 위해서 질투심을 최대한 느끼지 않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남을 위해서 관대해지는 것이 아니라. 그 무엇보다도 우리 자신을 위해서 관대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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