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철학

복수로 정의되는 나

아이루다 2016. 12. 4. 06:34

 

'나는 단수가 아니다'

 

1990년대 후반 모뎀을 통해 접속하던 PC 통신 문화가 태동 될 무렵, 우리나라 판타지 문학의 획을 긋는 작품이 하나 나왔었다. 이영도라는 이름을 가진 작가가 올린 '드래곤 라자' 라는 연재 소설이 엄청난 조회수를 기록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나는 단수가 아니다' 라는 글귀는 이 책에서 나오는 대사 중 하나이다. 아무 생각 없이 들으면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이 말이 지닌 진정한 의미를 생각해보면 정말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글귀이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꼽는 드래곤 라자의 작품의 명 대사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것은 바로 인간이란 존재가 가진 정체성이 실체가 과연 어떤 형태일까에 대한 근본적인 지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각자 자신을 하나의 정체성으로 정의하는데 매우 익숙하다. 이것은 당연한 일인데, 우리는 각자 단 하나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사실 정체성이란 말 자체가 가진 의미도 그렇다. 그것이 하나로 일관성 있게 정의되어야지 정체성인 것이지 여러 개를 갖게 되면 그것은 일종의 정신병이 된다. 즉, 다중 인격자나 해리성 정체 장애자가 되는 것이다.

 

이것은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시점을 나로부터 다른 이들에게 옮겨가 보자. 그때도 우리는 여전히 하나의 정체성만 가지고 있을까? 이것을 잘 생각해봐야 한다. 과연 우리는 모든 사람들의 머리 속에서 단 하나의 모습으로만 존재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이것은 원한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부단히 일관성 있는 존재로써 인식되기 위해서 노력하지만 그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나를 해석하는 것은 내가 아닌 남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특별한 초능력이 없는 한 다른 사람의 생각과 판단에 관여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결코 일관성 있는 존재가 될 수 없다. 우리가 느끼는 정체성은 그저 우리 머리 속에만 존재하는 혼자만의 착각이다. 우리는 우리가 속하는 수 많은 관계 속에서 모두 다르게 정의된다.

 

크게 보면 우리가 소속된 단체의 역할로 구분이 되는데, 예를 들어서 가족의 관계에서는 엄마나 아들로써, 친구들과의 관계에서는 솔을 매우 좋아하는 존재로써, 직장 구성원으로는 대리로써, 각종 모임의 관계에서는 회장이나 참여자로써 정의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단체의 역할 말고도 수 많은 상황에서도 지속적으로 변환된다. 그래서 낮에는 손님이 되기도 하고 밤에는 직원이 되기도 하며, 어떤 장소에서는 참여자가 되기도 하고 전혀 상관없는 방관자가 되기도 한다. 우리는 우리가 어떤 상황, 어떤 관계 속에 놓였느냐에 따라 서로 다른 정체성을 가질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보면 우리는 우리를 아는 모든 사람의 머리 속마다 서로 다른 정체성으로 정의된다. 즉, 우리는 우리를 아는 사람 수만큼 다양해지고 만다. 더군다나 그런 모습들은 도저히 같은 사람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 서로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회사에서는 호랑이 같은 사람이 집에서는 토끼 같은 모습이 될 수 있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한없이 엄격한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할 때면 버터처럼 부드러울 수도 있다.

 

사실 우리는 아이에서 학생으로 직장인으로 아내나 남편으로 그리고 아빠나 엄마로써 지속적으로 바뀌며 나중엔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된 후 죽음을 맞이한다. 즉, 우리는 평생 동안 변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어느 순간의 우리는 우리가 단수라고 믿는다. 그리고 그렇게 되고 싶어한다. 하지만 이 착각이 우리가 많은 혼란과 고민 그리고 자기에 대한 많은 잘못된 판단을 하는 이유가 되고 만다.

 

우리는 자신이 용기가 있다고 믿으면 언제 어디에서든 용기가 있다고 믿고 싶어한다. 그래서 죽음 앞에서조차 용기를 보여주려고 애쓴다. 그러다가 죽기도 한다.

 

우리는 자신이 선하다고 믿으면 어떤 경우에도 선하게 행동하려고 애쓴다. 하지만 우리는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울 지경이 되면 언제 선했냐는 듯 자기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 별 짓을 다하게 된다. 하지만 그래서 목숨을 구하고 나면 자기 부정이 일어나서 정신이 파괴되기도 한다.

 

이런 경우는 참 많다.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자신을 정의한 후, 그것을 자기 자신과 일치화 시킨다. 그리고 그것을 자기 정체성으로 믿고 살아간다. 그 덕분에 우리는 각자 '나는 어떤 사람' 이라고 믿는 무형의 믿음이 생긴다. 즉, 자기를 하나의 어떤 것으로 정의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말했듯이 우리는 결코 하나로 정의될 수 없는 존재이다. 우리는 결코 단수가 될 수 없다. 우리는 무조건 복수이다. 사람들 머리 속마다 모두 다르게 정의되기도 하고, 세월의 흐름에 따라서 우리의 머리 속에서도 끝없이 변하며, 어떤 환경에 놓였느냐에 따라서도 즉각적으로 변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일관성이 있고 싶으며 신념이 있고 싶어한다. 우리는 왜 그럴까?

 

사실 우리가 이러는 이유는 매우 실용적이다. 우리가 그렇고 싶은 이유는 우리가 일관성에 대한 가치나 신념의 가치를 믿어서가 아니다. 우리가 진짜로 그러고 싶은 이유는 신뢰를 얻고 싶어서 그렇다.

 

우리는 일정한 반응을 보이는 사람을 신뢰한다. 어제와 오늘과 내일이 늘 같을 때 우리는 그 사람을 신뢰하면서 상대할 수 있다. 매번 반응이 다른 사람은 신뢰를 하기도 힘들고 상대하기도 힘들다.

 

우리는 보통 상대의 반응을 보면서 대응 수위를 맞추기 때문에 그렇다. 매번 같은 행동 양식을 보이면 그것이 다소 쉽지만 매번 예측할 수 없는 반응을 보이면 마치 늘 처음 보는 사람처럼 긴장된 상태로 그 사람을 지켜봐야 하기 때문에 힘들다.

 

더해서 예측하기 힘든 사람을 신뢰하기는 어렵다. 돈을 꿔가면 늘 갚는 모습을 보여줘야 그 사람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중엔 큰 돈을 꿔줄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일관성과 신념이 가진 힘이다. 우리는 이것들을 통해서 신뢰를 결정한다. 그리고 신뢰는 우리가 관계를 맺을 때 가장 근본적인 요구 조건이다.

 

인간에게 있어서 최고의 관계라고 알려진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도 무조건 신뢰를 기반으로 한다. 즉, 신뢰가 부족한 사랑은 아무리 감정적으로 충만해도 결국 깨질 수 밖에 없다. 물론 사랑의 강렬함으로 인해서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신뢰를 믿는 사람들도 꽤나 있긴 하다. 즉, 객관적으로 전혀 믿을 수 없는 사람을 혼자만 믿는 사람들이 있다는 뜻이다. 우리는 사랑에 이들을 눈이 멀었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신뢰는 사랑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맺는 모든 인간 관계에서 기본이 된다. 그리고 정말로 많은 비용 절감도 시켜준다. 도둑이 전혀 없는 마을엔 경찰이 필요가 없다. 반대로 신뢰가 부족한 곳일수록 비용은 급상승 하게 된다. 끝없이 뭔가가 더 보완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신뢰는 같이 모여서 일을 하는 것에도 큰 역할을 한다. 우리는 누군가를 믿을 수 있을 때 따른다. 그러니 어떤 일을 하고자 하는 사람은 같이 하는 사람들에게 믿을만하게 보여야 한다. 그리고 이럴 수 있을 때 큰 일을 할 수가 있다. 그래서 보통 큰 일을 할 때는 신념이 무척 중요하다. 우리는 신념이 강한 사람일수록 더욱 더 신뢰할 수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신뢰의 중요도는 아무리 설명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그러니 우리가 우리를 그렇게 단수로 정의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결국 어떤 위치에, 어떤 상황에, 어떤 역할에 있느냐에 따라서 끝없이 변화하게 되며, 그것으로 인해 심각한 정신적 충격을 받을 수도 있다.

 

이것을 매우 조심해야 한다. 우리는 끝없이 변하는 존재이지 결코 하나로 정체된 존재가 아니다. 그러니 신뢰를 위해서 최대한 일관성 있게 행동해야 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정말로 일관성이 있거나 신념이 있는 존재라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원래부터 그런 존재가 아니다.

 

자신의 변화 가능성과 자신이 상상하기도 힘들만큼 다양하게 정의될 수 있다는 점을 받아들이게 되면 자신에 대한 그릇된 착각이나 잘못된 판단을 하는 일이 많이 줄어들 것이다. 그리고 그때 비로소 자신의 진정한 정체에 대해서 받아들임이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

 



'인간과철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람을 움직이는 세 가지 힘  (0) 2016.12.16
무의식적 의식  (0) 2016.12.06
행복해야 할 이유  (0) 2016.11.29
자기 합리화 그리고 자기 용서  (0) 2016.11.21
관성적인 삶  (0) 2016.1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