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철학

자기 합리화 그리고 자기 용서

아이루다 2016. 11. 21. 08:30

 

사람은 살아가면서 다양한 형태의 잘못을 저지른다. 그리고 잘못은 크게 의도로 일어난 경우와 실수로 일어난 경우로 나뉜다.

 

의도한 잘못은 그것이 잘못임을 알면서도 하는 경우인데, 비록 잘못은 했지만 그것을 통해 어떤 이득을 얻을 수 있을 경우 하는 경우가 보통이다. 이때 얻는 이득은 반드시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닌 것처럼 착시 현상을 보이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서 다수의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 전염병이 걸린 소수의 사람들을 격리 시키는 것과 같은 행동들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따져보면 이 역시도 최종적으로는 그런 결정을 한 사람의 이득을 위한 것이다. 이 행위를 한 사람이 한 나라의 책임자였다면, 그 사람은 자신의 역할을 다함으로써 사람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 그런 행위를 한 것이다.

 

실수로 일어난 잘못은 분명히 의도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실수를 하게 되면 결국 자신이 손해를 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그 손해가 반드시 당장 자신의 손해만은 아닌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 역시도 결국 손해로 이어진다.

 

사람들에게 어떤 회사의 주식이 오를 것이라고 조언해줬다가 실제로는 떨어져서 손해를 입히는 경우가 그런 예가 된다. 비록 자신은 그 회사 주식을 사지 않아서 손해를 입지는 않았지만, 어떤 식으로든 사람들에게 신뢰를 잃게 되어서 원망을 듣게 되고 결국 어떤 식으로든 손해를 보게 된다.

 

이것을 정리하면 의도한 잘못은 이득을 가져다 주고, 의도하지 않는 잘못은 손해를 일으킨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의도한 경우라도 손해가 되거나 의도하지 않은 잘못이 이득이 되는 경우도 꽤나 되기도 한다.

 

아무튼 어떤 목적이든 간에 상관없이 최종적으로 '잘못' 이라고 판단된 경우라면 그것을 한 사람은 어떤 식으로든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물론 잘못을 바로 잡는 노력을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것이 쉽지 않다. 왜냐하면 많은 잘못들은 대부분 이미 엎질러진 컵과 같기 때문이다. 즉, 다시는 원래 그 상태로 되돌릴 수 없는 경우가 흔하다.

 

설령 되돌릴 수 있다고 해도 너무 손해가 막심하거나 그걸 해 내기가 결코 쉽지 않는 경우도 많다. 엎질러진 물을 다시 담는 것은 가능은 할 것이다. 단지 많이 힘들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잘못을 저지른 후 다른 해결 방법을 찾으려고 한다. 그것은 실제적인 행동을 통해서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잘못이라고 판단된 결과를 재해석 함으로써 해결하려는 시도이다. 이것은 직접 해결하는 것에 비해서 매우 간단해 보인다. 왜냐하면 생각만 바꾸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의도한 잘못은 자기 합리화를 통해 해결이 되고, 실수로 저지른 잘못은 자기 용서라는 과정을 통해서 해결이 된다. 우리가 매일 하고 있는 일이 이런 일이다.

 

우리는 그것을 잘 인식하지 못하지만, 사실 우리는 매일 어떤 식으로든 선택적이든 실수로 하든 상관없이 잘못을 저지르고 있으며, 이것을 매 순간 합리화 하거나 용서를 한다. 특히 자기 합리화는 정말로 빈번하게 일어난다.

 

자기 합리화를 위해서 우리가 하는 흔한 행동이 바로 다른 사람의 뒷담화이다.

 

우리는 자신이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어떤 문제가 생길 때마다 주변 사람들에게 그 사람이 저지른 잘못을 비난함으로써 자기 합리화를 한다. 우리는 이성적으로 그리고 합리적으로 그것을 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팔은 안으로 굽는다. 그래서 이 합리화 과정에서는 자신의 잘못은 작게, 상대의 잘못은 크게 해석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이 방법은 문제가 있다. 왜냐하면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복구하려고 노력한 것이 아니라, 해석만 바꾼 것이기 때문이다. 자기 합리화는 그 잘못이 사실은 잘못이 아니라고 재해석한 것이다.

 

그러니 어떤 사람이 자신의 해석을 반박하거나 논리적 문제를 지적하게 되면 금세 흔들리고 만다. 물론 자신도 합리화 할 때 나름대로 어떤 논리나 사실을 근거로 했겠지만, 원래 처음부터 왜 그것이 잘못된 일이라고 판단을 했겠는가? 당연히 훨씬 더 직관적으로 잘못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다른 사람의 지적을 반박하기가 결코 쉽지 않다. 혼자서는 했지만, 다른 사람의 공격엔 매우 취약하다는 뜻이다.

 

그러니 결국 끝없이 흔들리게 된다. 아니, 다른 사람들의 비판을 듣고 싶어 하지 않게 된다. 즉, 귀를 막아 버리는 것이다. 이러면 해결된 것일까?

 

아니다. 잘못은 잘못이다. 우리가 겉으로는 그것을 부정해도 깊은 마음 속으로는 알고 있다. 아무리 합리화를 해도 해결이 되지 않는다. 이것은 인간의 고유한 특성이다. 심지어 우리는 아무런 잘못이 없어도 다른 사람들이 오해를 해서 비판을 하는 경우라고 해도 그것을 쉽게 넘기지 못하고 살아 가기도 한다.

 

그나마 우리의 기억은 점점 망각을 하게 되고, 우리를 비판하는 사람들도 역시 그것을 잊어가게 되며, 한 번씩 비판을 받을 때마다 겪는 마음 고생으로 인해서 우리는 스스로 적당한 처벌을 받았다고 믿게 됨으로써 이 문제는 해결되어 간다.

 

즉, 그 동안 마음이 충분히 괴로웠으니 자신이 저지른 어떤 잘못은 어느 정도 처벌을 받았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망각과 처벌, 이것이 합리화의 근거가 된다. 원래 합리화는 적절한 이유와 이성적 판단이 근거가 되어야 하는데, 자기 합리화에는 이런 조건은 필요가 없다.

 

이런 식으로 자신이 의도적으로 저지른 잘못은 거의 대부분 오랜 시간에 걸친 자기 합리화를 통해서 나중엔 당시엔 어쩔 수 없는 결단이라든가 심지어는 비록 손해를 입은 사람들도 있지만 그 일로 인해서 크게 이득을 본 사람들이 더 많으니 결국엔 잘한 일이 아니라고 당당하게 되묻기도 한다.

 

이것은 특별한 사람들만이 하는 행위가 아니다. 보통 사람들에게 일어나고 있는 아주 흔한 일이다.

 

자기 합리화만큼 흔한 일은 아니지만 어떤 실수를 저지른 후 그 일이 어쩔 수 없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자기 용서 과정이다. 비록 그 실수로 손해를 입었다고 해서 계속 그것을 생각하다간 하루를 완전히 망칠 수도 있다. 그러니 어느 시점에는 자기 용서를 통해서 그것을 망각해야 한다. 어차피 지난 일이고 복구가 불가능하다면 그래야 할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실수로 인한 잘못은 쉽게 해결되지는 않는다. 의도적 잘못은 적어도 이득에 대한 목적이 있었기 때문에 이득을 얻었고, 그래서 합리화의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실수로 저지른 잘못은 대부분 손해를 일으키기 때문에 그것의 결과가 심각하면 할 수록 당사자의 심적 압박은 훨씬 커지게 되며, 잘 없어지지도 않는다.

 

이것이 자기 용서가 힘든 이유이다. 사람이 어떻게 손해만 보고 끝난 일을 그리 쉽게 잊을 수 있겠는가? 우리는 한번 저지른 실수를 평생 동안 그것을 후회하기도 한다. 그 실수로 인해 입은 손해가 치명적이면 치명적일수록 더욱 더 그렇다.

 

이것은 꼭 자기 손해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에게 입힌 손해도 포함이 된다. 운전 중 실수로 사람을 치어서 죽게 만들었다면 그 기억은 평생 동안 남아 있게 된다. 물론 그렇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자신의 손해가 아닌 타인의 손해에 대한 기억은 양심에 따른 문제이다.

 

하지만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자기 용서를 해야 한다. 특히 자신의 실수로 자신이 손해를 입은 경우를 너무 심하게 자책하게 되면 삶이 너무 힘들어 진다.

 

그러니 적당한 선에서 자기 용서를 해야 한다. 물론 쉽지 않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자기 비하에 빠지고, 자책감에 시달리며 끝없이 불행함 속에서 허우적거린다.

 

자신이 저지른 잘못의 쉬운 해결책은 자기 합리화이다. 자기 용서 과정은 몹시 느리고 고통스러운데 반해서 자기 합리화는 훨씬 빠르고 쉽게 해결이 가능하다. 그야말로 자기 합리화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기 합리화는 불안정한 해결책이며, 그것으로 인해서 어떤 사람의 삶이 완전히 뒤틀릴 수도 있다. 즉, 분명히 자신의 잘못인데 그것을 자꾸 자신의 잘못이 아닌 것으로 바꾸면 원래 잘못이 아니었던 부분이 잘못으로 되어야 한다.

 

이것은 어쩔 수 없다. 사람들에게 투자를 하라고 했다가 큰 손해를 입혔다면, 이 손해의 근본적 이유는 각각의 투자자들이 스스로 내린 결정의 문제라고 결론 내어야 한다. 물론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이것이 다는 아니다. 처음부터 그 사람들은 왜 자신의 말을 믿었을까 에 대한 부분은 언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합리화는 자신이 아닌 세상을 뒤틀어버리는 현상을 만들어 낸다. 그래서 너무 자주 자기 합리화에 빠지게 되면 세상을 보는 눈이 완전히 뒤틀려 버린다.

 

그래서 어떤 잘못을 해결하는 방법은 가능하다면 자기 용서가 되어야 한다. 물론 가장 좋은 방법은 원래 잘못을 완전히 복구 시키는 것일 것이다. 하지만 쉽지 않기 때문에 결국엔 대부분의 잘못은 자기 용서 과정을 밟아야 한다.

 

자기 합리화와 자기 용서는 언뜻 듣기에 매우 유사한 행위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둘 사이엔 거대한 벽이 있다. 그것이 바로 잘못을 인정하지 않느냐 인정하느냐의 차이이다. 이것은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근원적인 차이점을 만들어 낸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때는 느리고 고통스럽지만 자기 용서 과정을 밟을 수 있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을 때는 빠르고 쉽게 자기 합리화를 해낼 수 있다.

 

그리고 이 차이는 각자가 가진 양심에 따라 결정이 된다.

 

양심의 역할이 큰 사람일수록 자기 합리화가 힘들고 반대로 양심의 역할이 작은 사람은 자기 용서를 하는 경우가 드물다. 그전에 이미 자기 합리화가 끝나버리기 때문이다.

 

사실 이 두 가지 방법 중 어떤 것이 더 정답이라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단지 자기 합리화가 가진 어떤 면에서는 치명적인 문제, 즉 뒤틀려버린 삶의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 더해서 추가적인 잘못을 저지를 가능성을 생각해야 한다. 원래 자기 합리화를 쉽게 하면 할수록 다음 잘못을 저지르는데 있어서 별로 신경을 쓰지 않게 된다. 그리고 이것을 결국 더 많은 잘못을 저지르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

 

반면에 자기 합리화를 쉽게 못하는 사람들은 한번의 실수를 아주 오랫동안 기억하게 된다. 그래서 고통스럽지만 삶을 뒤틀지는 않는다. 그리고 덕분에 다음 잘못을 저지를 가능성을 현저하게 낮춘다.

 

그러니 가능하다면 자기 용서를 통해서 잘못을 해결하는 방법이 조금이라도 더 낫다. 삶의 진실에 조금이라도 더 다가가고 싶다면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기 용서가 자기 합리화에 비해서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지는 못하다. 사실 자기 합리화를 잘하는 사람들이 훨씬 더 행복할 가능성이 높다.

 

단지 행복의 관점에서만 보면 그렇다. 단지 자기 합리화를 한 후 자신이 옳다고 믿는 착각에서는 벗어나야 한다. 이것은 자신의 삶을 뒤틀어버리는 결과를 낳는다. 그래서 결국엔 최종적으로 불행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잘못은 그냥 잘못이다. 이것을 합리화 하거나 용서 한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다. 단지 가능하다면 그 잘못으로 인해서 자신의 삶이 영구히 변형되는 일만은 막아야 할 것이다. 우리가 자기 합리화를 정말로 조심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결코 쉽지 않다. 그래서 이 세상엔 이것을 실패한 사람들이 넘쳐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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