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낯선 사람에게 고민 털어 놓기

아이루다 2016. 10. 12. 09:09

 

우리는 살다가 보면 자신이 가진 고민이나 걱정 등을 남에게 말하고 싶을 때가 있다. 말을 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냥 이야기하면서 들어주는 사람의 공감만 얻어내도 나름대로 기분이 풀리기도 한다.

 

더해서 긍정적 결과, 즉 근거는 없더라도 그저 잘 될 거야 라는 말만 들어도 왠지 힘이 나기도 한다. 물론 얼마 지나면 금세 사라지고 말지만 말이다. 그리고 혹시나 운이 좋다면 생각지도 못한 도움을 받거나 해결책을 얻어낼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저런 이유로 자신의 걱정이나 고민을 남에게 이야기 한다.

 

그런데 우리가 남에게 어떤 고민을 털어 놓 것에는 한계가 있다. 즉, 우리가 남에게 털어놓을만한 걱정이나 고민은 어느 정도 정해져 있는 편이다. 그래서 고민은 크게 남에게 말할 수 있는 것과 남에게 말 못할 것, 이 두 가지로 나뉜다.

 

이러다 보니 우리가 평소에 듣는 다른 사람들의 고민들은 다 고만 고만하다. 사람마다 차이가 나긴 하지만, 사람들 털어 놓는 고민들은 대부분 주제가 비슷하고 그 내용도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것들은 취직 문제, 결혼 문제, 육아 문제, 가정 문제, 건강 문제, 노후 문제, 직장 문제, 인간 관계의 어려움, 시댁이나 처가에 관련된 문제, 연애 문제, 사람간의 갈등 등으로 채워진다.

 

그렇다면 우리가 남에게 말하지 못하는 고민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일단 우리가 남에게 말하지 못하는 고민의 가장 큰 특징은, 그것이 매우 심각하다는 점이다. 즉, 우리는 어떤 고민이 심각하면 심각할수록 그것을 남에게 털어놓지 못한다. 특히나 해결 가능성이 거의 없는 고민이라면, 그것을 남에게 말하는 것은 괜한 짓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고민은 보통 자신에 대한 고민이다. 즉, 자신을 둘러싼 주변에 관련된 것보다는 바로 그 자신에 대한 고민들이다.

 

예를 들면 열등감, 질투심, 분노 조절 장애, 남에게 말 못할 특이한 버릇, 성적 취향, 단점 등이 바로 그런 것들의 구체적인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왜 무엇인가를 남에게 털어 놓을 수 있고, 또 어떤 것은 털어 놓을 수 없다고 생각할까? 이것을 결정하는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일까?

 

우리는 흔히 이것을 자신을 기준으로 판단한다. 그 원인이 무엇이든 간에 결국 내가 그것을 결정한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내가 그 고민을 가지고 있으며, 당연히 내가 얘기를 할지 말지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하지만 이것은 완전한 착각이다.

 

이것이 착각이라고 말한 이유는, 우리가 결코 남에게 털어 놓지 않는 고민들을 어떤 경우엔 털어 놓게 되기 때문이다. 그것도 아주 낯선 사람에게 말이다. 우리는 보통 '상담' 을 할 때 그런 이야기를 한다. 남에게 결코 털어 놓지 않는 어린 시절의 기억이나 자신의 문제점 등을 거의 모르는 사람 앞에서 이야기 하기도 한다.

 

그리고 자신이 왜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지 라고 스스로 의문을 품기도 한다.

 

우리는 대부분 자신과 가까운 가족, 친구 앞에서는 결코 이야기 하지 않을 고민들을 자신이 잘 모르는 사람 앞에서 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이와 비슷한 사례가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나타난다. 일종의 익명의 공간인 그곳에서 자신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고민에 대해서, 삶에 대해서 매우 구체적인 설명을 한다.

 

친구 앞에서 털어 놓지 못할 고민이고 가족 앞에서도 꺼내지 못할 고민을 그런 공간에서 꽤나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겉으로는 해결책을 원한다고 말하지만, 사실상 위로를 원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가능하다.

 

그렇다면 이런 결론이 나온다. 우리가 남에게 털어 놓을 수 있는 고민과 그렇지 못한 고민을 결정하는 원인은 바로 '내' 가 아닌, 바로 '들어 주는 사람' 이라는 점 말이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자신을 이해해주더라도 더 잘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바로 가족과 친구인데 말이다. 우리의 생각과 달리 낯선 사람을 더 신뢰해서 그런 것일까?

 

그것은 결코 아니다. 우리가 낯선 사람을 더 신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낯선 사람이란 말의 정의 자체가 그 정체를 알 수 없다는 의미이다. 알 수 없음은 신뢰의 가장 큰 적이다. 그러니 우리가 낯선 사람을 신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가 낯선 사람들에게 말 못할 고민을 털어 놓을 수 있는 이유는 바로 그들이 내 고민을 안다고 해서 그것이 우리들에게 어떤 영향도 끼치지 않기 때문이다. 이점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반면에 가족과 친구들이 심각한 내 고민을 알게 되었을 때는 우리들에게 반드시 영향이 오게 되어 있다. 한 마디라도 더 걱정을 듣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그것이 그다지 내키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 더 문제가 있다. 사실 이것이 더 큰 문제이다.

 

그것은 바로 그들은 결코 객관적으로 우리들의 고민을 바라볼 수 없다는 점이다.

 

쉬운 예로, 직장 내의 사람들과의 갈등으로 인해서 회사를 그만 둘 것인지를 고민할 때를 생각해보자. 우리를 잘 모르는 낯선 사람들은 이 문제를 온전히 객관적 시선으로 판단해 줄 것이다. 고민을 들어보고, 그 문제의 심각성을 판단한 후, 가장 현실적인 조언을 해줄 수 있다.

 

반면에 우리가 누군가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다고 했을 때, 즉 가족에게 직장을 그만 두고 싶다는 고민을 상담하게 되면, 일단 가족들도 낯선 사람들과 비슷한 반응으로 시작하겠지만 결국엔 모두 그것을 말릴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우리를 말리는 이유는 우리를 걱정해서가 아니다.

 

우리가 직장을 그만둘 때 자신들에게 미칠 영향 때문에 그렇다. 즉, 우리가 돈을 벌어와서 같이 먹고 살고 있는데, 만약 대책 없이 직장을 그만두게 되면 생계에 큰 문제가 생길 것이 뻔하다. 그러니 어떤 식으로든 직장에 남아 있길 바라게 되고, 그런 심리가 고민을 들어줄 때 은연 중 한쪽 편을 들어주는 것으로 나타나게 된다.

 

즉, 어떤 직장이나 비슷하다고 하면서 계속 다닐 것을 설득하려고 할 것이다.

 

남들만 그런 것이 아니다. 우리도 똑같은 행동을 한다. 우리는 상대의 어떤 결정이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결정 나길 바란다. 그것이 가족이든 친구든 마찬가지다. 사실 영향이 크면 클수록 더욱 더 그런 경향이 나타난다.

 

반면에 낯선 사람들에게 털어 놓는 고민은 휘발성을 가지고 있다. 즉, 일정 시간이 흐르면 마치 없었던 것처럼 사라져버리고 만다. 하지만 우리를 아는 사람들에게 털어 놓는 고민은 그 고민이 없어질 때까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는 끝없이 그들의 걱정을 듣겠지만, 그것이 기분이 좋을 리가 없다.

 

그리고 추가적으로 하나 더 생각해 봐야 할 것은, 우리들 자신도 주변 사람들에 대해서 어떤 가치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점이다. 즉, 주변 아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지속적으로 관계를 유지할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란 증거를 보여줘야 한다. 이것도 매우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자신의 치부, 즉 남들에게 말하기 힘든 고민들을 친구에게 말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가족은 그나마 괜찮다. 하지만 친구는 어렵다. 물론 자신을 정말로 제대로 이해해주는 친구는 괜찮다. 하지만 어느 정도 사회적 관계만 유지되는 친구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우리가 자신의 문제점을 내보이면 내보일수록 우리는 솔직한 사람으로 판단되기 보다는 사귈 가치가 없는 사람으로 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그들도 처음엔 같이 걱정을 해줄지 모른다. 하지만 어느 정도를 벗어나게 되면 그들과 우리들 사이에 어떤 벽이 생김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 벽을 만드는 시점은 우리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결정한다. 그러니 우리는 이것을 무조건 조심할 수 밖에 없다.

 

낯선 사람과 아는 사람의 차이는 바로 이런 점이다. 그것이 바로 영향력의 차이이다. 그리고 그 영향력이 얼마나 장기적이고 구체적인지에 따라서 우리가 고민을 말할 수 있느냐가 결정된다.

 

하지만 이것이 큰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하다. 그것은 바로 낯선 사람들이 우리를 더 잘 이해해준다는 착각이다. 이것도 완전히 틀렸다. 낯선 사람들이 우리를 더 잘 이해해주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그들이 우리들에게 그 어떤 감정도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즉, 냉정히 말하면 아무런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무리 능력 있는 심리 상담가도 자신의 가족을 상대로 심리 상담을 할 수는 없다. 친구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할 수도 없고 또한 해서도 안 된다.

 

우리는 관심이 있는 사람들, 즉 가족이나 친구들의 고민을 그저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말로 들어줄 수 없다. 우리는 그것들을 들을 때, 그 고민의 내용이 자신에게 미칠 영향이나 혹은 그것을 해결해줄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 등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더해서 그 고민의 내용에 따라서 그 사람에 대한 평가 자체가 바뀌기도 한다. 우리가 이것을 구체적으로 인식하지는 못해도 지금까지 살아온 경험에 의해서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반면에 모르는 사람들의 고민은 그저 듣고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조언하고 끝이다. 그러니 우리가 어떻게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그런 고민들을 털어 놓을 있을까?

 

자신에게 미칠 영향으로 인해서 우리의 고민을 객관적으로도 들어 줄 수 없으며, 해결할 능력도 없는데 해결책을 생각해야 하며, 결국 우리들 자신에 대한 평가조차도 바뀔 수 있는 위험이 있는 행동을 하기는 힘들다. 더군다나 그런 고민들은 기본적으로 남에게 말하기 힘든 내용들이다.

 

그렇다면 이것으로 끝일까? 우리는 자신이 말하기 힘든 깊은 마음 속 고민들은 오직 낯선 사람들에게만 털어 놓거나 혹은 그런 기회조차 흔치 않으니 평생 마음 속에만 담아두고 살아가야 할까?

 

사실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상담가를 만날 확률은 별로 없다. 부부인 경우 이혼을 결심하기 전 부부 상담을 받는 경험을 할 수도 있지만, 아주 특별한 경우이다.

 

그러니 우리는 평생 자신의 마음 속에 있는 고민을 남에게 이야기 하지 못하게 된다. 가족에게도 못하고 친구에게도 못한다. 그리고는 그 자신조차도 잊는다. 하지만 자신이 가지고 있던 문제들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그것들은 우리를 평생 동안 은연 중에 지배하게 된다. 그래서 가능하다면 끊어야 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밖으로 꺼내지 않음으로써 해결할 가능성을 완전히 없애 버린다. 아픈데 병원에 가지 않는 것과 같다. 머리가 아플 때 그것이 큰 병인지 아니면 단순한 두통인지는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아야 결론이 난다. 그런데 막연한 두려움으로 인해서 머리가 가끔 아파도 그냥 참고 만다. 그래서 치료가 안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상담가를 찾아가야 할까? 사실 쉽지 않는 일이다. 돈도 많이 들고 그다지 좋은 경험도 아니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우리가 이런 이야기를 남에게 했던 적이 있다. 그것은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의 친구들에게 그랬다. 한창 사춘기 때는 별별 이야기를 다했다.

 

하지만 우리는 그때 많은 상처를 받았을 것이다. 자신은 너무도 심각한 고민인데 친구는 그것을 별 것 아니라고 말하거나 혹은 자신이 힘들게 털어 놓은 고민을 또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고 다녔을 것이다.

 

사실 이런 경험들이 쌓여서 우리가 아는 사람들에게는 결코 자신의 고민을 털어 놓지 않게 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말 그대로 뒤통수를 맞은 경험이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우리가 친구들에게 그런 고민을 털어 놓을 수 있었다는 것은 지금도 그것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때에 비해서 우리가 좋아진 점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삶의 경험이 쌓여서 사람을 보는 눈이 조금 생겼다는 점이다.

 

즉, 우리는 이제 자신이 고민을 말했을 때, 그것을 제대로 들어 줄만한 사람을 고를 수 있는 수준까지는 올라왔다. 그래서 뒤통수 맞는 일은 쉽게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만한 사람이 주변에 있는 행운도 쉽지 않긴 하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의 고민을 잘 들어주는 사람들은 대부분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다. 그들도 마치 낯선 사람들처럼 사람들에게 관심이 없기에 잘 들어주는 것이다. 그러니 그들에게 자신의 고민을 이야기해봐야 그저 넋두리로 끝날 뿐이다.

 

우리는 좀 더 정밀하게 이것을 판단해야 한다. 과연 누가 자신의 깊은 고민을 제대로 들어줄 수 있을지에 대해서 말이다. 없다면 어쩔 수 없다. 자신이 괜찮은 사람을 보는 눈을 가지지 못해서 지금껏 괜찮은 사람을 사귀지 못한 점을 자책할 수 밖에 없다.

 

다행스러운 점은 꼭 그것으로 끝이 아니란 점이다. 우리는 앞으로 새로운 만남을 통해서도 그것을 이뤄낼 수 있다. 이때 가장 중요한 마음은 바로 상대에 대한 진실함이다. 누군가에게 진실되게 대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사람들과 만나게 되면 그것이 통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 왜냐하면 그 사람도 그것을 찾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엄청나게 넓은 바다 속에서 고래들이 만나 짝짓기를 할 수 있는 이유는, 서로 찾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도 우리가 누군가를 찾고 있다면, 그것이 상대의 눈에도 보일 수 있다.

 

그러니 아직은 기회가 있다. 아직까지는 자신의 고민을 털어 놓고 그것을 통해 자신이 가진 깊고 오래된 상처를 치유해 낼 수 있다. 우리는 시도하지 않은 것이지 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스스로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서 누군가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면, 그것이 가능할 것이다.

 

사실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치유이다. 우리가 낯선 사람들과의 상담을 통해서 자신이 가진 문제를 제대로 바라 보는 경험도 좋긴 하지만, 이것은 진단이다. 해결이 아니다. 그래서 한계가 있다. 해결을 하고 싶다면 우리가 가진 문제를 자신의 문제처럼 생각해 줄 수 있는 진실한 관계를 찾아야 한다.

 

그때 해결이 시작될 수 있다. 물론 어떤 상담가들은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긴 하다. 문제는 그런 사람들을 만날 가능성이 너무 작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