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철학

행복한 사람의 문제점

아이루다 2016. 10. 9. 07:32

 

인간이 행복을 추구하는 존재이다. 그래서 다들 각자 행복 하려고 애쓰기도 하고,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고 해도 행복 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면 자신도 모르게 응원을 하기도 한다. 물론 그렇기에 자신이 원하는 목표를 이미 이룬 사람, 즉 행복한 사람을 보면 부러워도 하고 질투를 하기도 한다. 그리고 어떨 때는 그런 자신의 질투심을 감추기 위해서 사실상 아무런 관심도 없는 사람의 행복이 가진 문제점을 걱정해주기도 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행복하고자 하는 목표를 이뤘다고 가정해 보면 어떨까? 인간으로 태어나서 이루고자 한 최종 목표를 이룬 상태, 즉 행복한 상태 말이다.

 

이것에 대해서는 두 가지 생각해 볼 점이 있다.

 

하나는 '정말로 그 목표를 이뤘는가' 에 대한 생각이다. 행복한 것은 상태이다. 즉, 감정이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까지는 감정을 측정할 장치가 없다. 행복한가에 대한 판단은 시험을 보고 채점을 하고 합격 여부가 결정되는 그건 구조가 아니다. 그러니 자신이 정말로 행복한지에 대해서 깊은 성찰을 해봐야 한다.

 

또 하나는 '행복하면 이제 아무런 문제가 없는가' 에 대한 생각이다. 인간의 유일한 최종 목표, 그 행복을 이뤘다면 우리는 이제 모든 것을 이룬 상태가 된 것이다. 그런데 그러면 끝인가? 사람이 행복하다면 그 어떤 문제도 없는 상태인가에 대한 생각을 해봐야 한다.

 

이 두 가지 질문은 각자 인간의 삶에서 한번쯤은 제대로 다뤄져야 할 중요한 주제이기도 하다. 자신이 진정한 행복을 찾았는가에 대한 여부와 진정한 행복을 찾았다고 해서 그것으로 끝인가 에 대한 성찰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생각해 보기 위해서 일단 행복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에 대해서 생각해보도록 하자.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자신이 진정한 행복을 찾았는지 여부를 알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 문제점들이 없다면 당연히 제대로 행복한 사람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증상이 없다면 병에 걸린 것이 아니다.

 

행복한 사람의 첫 번째 문제는 바로 사람에 대한 무관심이다. 즉, 우리는 행복해지면 대부분 사람에게 무관심해진다. 이 말은 거꾸로 사람들에게 관심이 많은 사람은 불행하다는 증거가 되기도 한다. 여기에서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것은 사람을 많이 사귄다고 해서 사람에게 관심이 있다는 것도 아니고, 사람을 거의 안 만난다고 해서 사람에게 관심이 없다는 것도 아니란 점이다. 이 둘은 서로 완전히 다르다.

 

사람을 만나도 그만, 안 만나도 그만이지만 수 없이 많은 사람들과 만나는 사람들도 있고, 사람을 너무도 만나고 싶은데 만날 사람이 없거나 능력이 되질 않아서 홀로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물론 분명히 행복하지만 사람에게 관심이 있는 사람들도 있다. 소수이지만 분명히 존재한다. 이런 사람들은 대부분 과거에 불행했던 시절을 깊게 경험했던 사람들이다. 그래서 자신의 행복이 늘 유지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알고 있다. 그래서 자신이 누리는 행복을 지키기 위해서 끝없이 주변에 관심을 가지려고 애쓴다. 그럼에도 보통 사람에 비해서는 사람에 관심이 현저하게 떨어진다.

 

이들보다 더 행복한 사람들, 즉 원래부터 타고난 행복한 사람들은 타인들에게 거의 무관심하다. 물론 자신의 주변 사람들에게는 관심이 있어 보이긴 하다. 하지만 그 관심은 매우 전형적이다. 즉, 표면적인 관심만 있다. 어떤 면에서 그저 서로간의 예의를 지켜 주는 수준의 관심이다. 기념일을 챙기고, 선물을 한다.

 

행복한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에 무관심한 이유는 아주 단순하다. 이미 행복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이상 행복하기 위한 노력을 할 필요가 없다.

 

우리가 행복하기 위해서 가장 흔하게 노력하는 것이 바로 다른 사람들과 관계 맺기이다. 인간이 행복을 얻을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이고 확실한 방법이 바로 다른 사람들과의 교류이다. 우리는 타인과의 교류를 통해서 참으로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그런 만큼 매우 위험하기도 하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관계에 실패한 후 깊은 상처와 외로움 속에서 살아가기도 한다.

 

관계는 양날의 검이다. 관계를 맺는 것은 큰 행복이기 하지만 또한 그런 만큼 어렵고 힘든 면도 있다. 사람들마다의 고유한 특성을 이해해줘야 하기도 하고, 하기 싫은 일도 다수가 하면 따라서 해야 할 경우도 있다. 그래야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다른 사람들도 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노래를 부르는 것을 좋아하지만 술은 싫어하는 사람은 노래방에 가기 위해서는 술자리에 참석해야 한다. 술자리에 가지 않고 노래방만 가려고 하면 사람들이 싫어한다.

 

관심 없는 주제에 대해서 말을 하기도 해야 하고, 상대의 끝없는 자랑이나 넋두리를 들어주기도 해야 한다. 자신과는 전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과도 같이 대화를 나눠야 한다. 더해서 자신을 은근히 괴롭히는 사람과 같은 공간에 있어야 할 경우도 있고, 대 놓고 자신에 대해서 질투를 하거나 혹은 자신이 질투심을 느끼는 상대와 마주해야 할 경우도 많다. 좋은 만큼 싫은 것도 많다.

 

그런데 이미 행복하다면 왜 관계 맺기를 위해 노력해야 할까? 잘해야 행복하고 잘못하면 큰 상처를 입게 되는 일을 할 필요가 있을까? 이미 그 목표를 이뤘는데 말이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서 노력하는 이유는 그것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돈이 충분히 많은 사람은 돈을 벌기 위해서 노력하지 않는다. 부부나 연인이 서로에게 충분히 만족하고 있다면 다른 이성에게 관심을 가질 필요도 없고, 그렇게 하지도 않는다.

 

더해서 행복한 사람은 관계 맺기에서 기본적으로 주도권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행복은 전파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행복한 사람들은 보통 여유롭고 관대하기에 주변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든다. 그렇게 행복은 주변으로 퍼져나간다. 즉, 행복한 사람과 어울리다 보면 행복해질 수 있다.

 

그러니 행복한 사람들은 어디에서든 환영을 받는다. 그러니 딱히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기 위해서 노력을 할 필요가 없다. 그러니 관심을 가질 필요도 없다. 그런 것이 없어도 주변에 언제나 사람들이 충분하다. 물론 부러워하거나 질투나 시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로 인해서 좀 힘들 수 있지만 금세 해결된다.

 

사실 이론적으로만 보면 행복한 사람들은 주변에 거의 관심이 없어야 정상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는 않다. 왜냐하면 행복한 사람들도 자신이 누리는 행복이 결코 영원한 것은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의 행복을 유지할 수 있는 정도로만 주변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진다.

 

행복한 사람들의 두 번째 문제는 고정되어 버린 삶이다. 이것도 역시 어떤 노력과 관련된 것인데, 우리는 충분히 만족스러우면 더 이상 무엇인가를 위해서 노력하지 않는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하고 싶다는 욕망을 품고 노력을 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현재의 부족함 때문이다. 그리고 그 부족함을 느끼는 원인이 바로 행복에 대한 욕구이다. 그러니 우리는 행복하기 싶기에 자신을 채찍질 한다. 물론 그러다가 지쳐 나가 떨어질 수 있거나 혹은 오르지 못할 나무를 쳐다봐서 결국 더 불행해지는 경우도 많지만, 기본적으로 삶 자체를 능동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

 

물론 고정된 채 노력하지 않는다고 해서 이미 충분히 행복하다면 그것이 문제라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렇지만 삶은 뭔가 좀 더 능동적이고 찬란해야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꼭 그것이 욕망이 아니더라도, 꼭 그것이 부족함으로 인해 발생한 것이 아니더라도 순수한 호기심과 탐구심 등으로 인해서 우리의 눈은 좀 더 초롱초롱 하는 것이 좋아 보인다.

 

따뜻한 봄 날 늘어지게 자고 있는 개의 늘어진 눈빛은 비록 행복해 보여도 그리 부럽지는 않다. 우리는 그것보다는 좀 더 생기 있는 삶을 살아야 할 필요가 있다. 늘어진다는 것은 결국 권태와 지겨움을 불러올 수 밖에 없다.

 

행복한 사람의 세 번째 문제점은 세상에 대한 무관심이다. 이것은 첫 번째와 연결되는 내용이기도 한데, 사실 사람에 대한 무관심보다 훨씬 더 문제이다.

 

사람에 대한 무관심은 그나마 어느 정도 형식적으로 처리가 된다. 주변 사람들의 생일 선물을 챙겨준다거나 지인들의 결혼식에 참석 한다든가 하면서 자연스럽게 표면적이라도 유지가 된다.

 

하지만 세상에 대해서는 알려고 하지도 않고 알고 싶어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그렇게 사는 것이 자연스럽고 쉽다. 설령 알 기회가 있더라도 머리 속에 남겨지지 않는다. 세상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은 주로 불행함과 관련이 되어 있기에 남겨봐야 아무런 도움이 되질 않는다. 부자가 가난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기분만 상한다.

 

그런데 우리 인간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공감을 느끼려면 기본적으로 자신도 그런 경험을 해야 한다. 즉, 우리는 자신이 경험한 것들을 기반으로 다른 사람을 공감한다. 하지만 행복한 사람들은 세상의 불행에 대해서 그다지 많은 경험을 하지 못했다.

 

바람 핀 배우자에 대해서 경험해보지 못했고, 이상한 시부모를 만나서 마음 고생을 한 것도 아니다. 공권력에 의해서 너무도 억울한 일을 당한 적도 없고, 기득권들에게 큰 피해를 입은 적도 없다. 왕따를 당한 적도 없으며, 자살을 심각하게 생각해 본 적도 없다. 능력 부족으로 직장에서 잘려 본 적도 없고, 큰 병에 걸렸는데 병원비가 없어서 울었던 적도 없었다.

 

그렇기에 이런 이야기들을 들으면 머리로는 이해는 가지만 마음으로는 공감이 가지 않는다. 즉, 지식적으로만 이해하는 것이다. 그래서 기억만 남고 끝난다.

 

그렇기에 어딘가에 가서 대화 중 이런 주제들이 튀어 나올 때, 지식적으로 알고 있기에 마치 자신이 공감하는 척 하면서 이야기를 나눌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 철저하게 남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뿐이다.

 

그래서 행복한 사람들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수 많은 부조리를 바꾸겠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다. 그래 봐야 생각만 많아지고 불행해질 뿐이다. 행복한 사람들은 그저 자신의 행복만 지키면서 살면 된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행복한 사람들은 이 세상에 어떤 문제가 있음을 아예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이 보는 세상은 언제나 맑고 따뜻하고 싱그러운 봄이다. 그러니 세상에 대한 무관심은 행복한 삶의 필수적 증거가 될 수 있다.

 

행복한 사람들의 마지막 문제점은 바로 생각 없는 삶이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성찰 없는 삶이다. 물론 인간이 인간으로써 살아갈 때 존재적 의문이나 혹은 삶의 가치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것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 결론적으로는 그래 봐야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하지만 이것은 일종의 삶에 대한 의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지적할 만 하다.

 

조금 이해하기 어려운 말일 수 있지만, 이것은 하나의 존재로써 태어나서 살아가 죽을 때, 그것이 인간의 삶이라고 부를 수 있는 그 어떤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평생 행복하다가 죽는 삶은 사실 평생 먹다가 죽는 행복한 돼지의 삶과 무엇이 다를 것인가?

 

물론 다르다고 말하고 싶을 것이다. 우리는 돼지가 아니니까 말이다. 이때 우리가 그런 반발을 느끼는 원인이 바로 각자가 지닌 존재의 가치에 대한 본능적 반응이다. 즉, 우리는 비록 돼지와 똑같이 살면서도 돼지는 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우리는 인간이고 싶어한다. 하지만 생각 없이 행복한 삶과 생각 없이 행복한 돼지의 삶이 다른 점을 찾기는 불가능하다.

 

적어도 인간으로 태어났다면, 동물의 삶과는 다른 무엇인가가 필요해 보인다. 하지만 사람이 행복하면 생각이 없어진다. 우리는 대부분 불행을 통해 삶을 관찰할 수 있다. 자신이 불행해야 불행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고, 그럼으로써 삶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계속 행복하면 생각이 시작되지 못한다. 생각이 시작되지 못하니 그 후로 모든 사유가 중지 된다.

 

지금까지 행복한 사람들의 문제점을 나열했다. 사실 정확히 말하면 행복하면 끝이기에 이런 문제점을 나열하는 것은 별로 의미는 없다. 단지 이것을 통해서 한 가지 알 수 있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두 가지 생각 주제 중 첫 번째 질문이었던 '자신이 정말로 행복한가' 에 대한 스스로의 판단이다. 이것은 이미 말했듯이 행복한 사람의 문제점이 자신에게 나타나고 있는지를 살펴봄으로써 알 수 있다.

 

첫 번째, 일단 주변 사람들에게 부단히 관심이 많은 사람이나 혹은 주변 사람들이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주길 바라는 사람은 결코 행복한 사람이 아니다. 행복하면 다른 사람에 대해서 관심이 사라진다. 심지어 연락 안 했으면 하는 생각도 들 지경이 된다. 이런 식으로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이 없기에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게 관심을 갖는 것이 꽤나 부담스럽다. 상대가 자신에게 관심을 써주면 그만큼 갚아야 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지금 뭔가 다른 것을 하고 싶다는 욕구를 끝없이 느낀다면 행복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어딘가를 떠나고 싶다거나, 무엇인가를 사고 싶다거나,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 싶다거나 하는 마음이 지속적으로 든다면, 당연히 행복한 사람이 아니다. 행복한 사람들은 그저 현재 상태가 영원히 유지되길 바랄 뿐이다.

 

그래서 서로에게 완전히 폭 빠진 연인은 그 순간 시간이 멈췄으면 하고 바라게 된다.

 

세 번째, 세상에 대해서 끝없이 관심을 가지고 말하는 사람들은 행복하지 않음을 스스로 끝없이 증명하는 사람들이다. 행복하지 않으니 세상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진다. 물론 자신의 행복을 지키기 위해서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도 있으니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세상에 대해서 너무 과도한 관심이나 혹은 도대체 타협할 수 없는 고집을 가지고 있을 경우라면 그럴 가능성이 높다.

 

네 번째, 평소에 생각이 많은 사람은 불행할 가능성이 높다. 기본적으로 행복한 사람은 생각을 많이 할 필요도 없고 틈도 없다. 우리는 너무 행복하면 머리 속이 하얗게 변한다. 아무런 생각도 안 난다. 그러니 자신이 자꾸 뭔가 생각하고, 고민하고, 성찰하고 있다면 스스로 불행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행복한 사람들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모두 이런 문제를 가지고 싶어한다. 우리는 진정으로 배고픈 소크라테스보다 행복한 돼지가 되고 싶어한다.

 

이 말을 부정하는 사람은 아직도 자신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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