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철학

확대해석에 숨겨진 본질 - 2

아이루다 2016. 8. 11. 10:25


[1편에서 계속]


아무튼 이런 식으로 평가는 매일 이뤄지고, 어떤 경로를 통해서 어떤 판단이 내려졌던 간에 결국 평가는 자신에 대한 자신감으로 작용한다. 그리고 자신감이 강할수록 뭔가 좀 더 적극적으로 행동할 수 있게 되고, 이것은 삶을 좀 더 능동적으로 살 수 있게 해주는 힘이 된다.

 

물론 과도한 자신감으로 인해서 실수를 반복적으로 하게 되면 급격히 의기소침해지는 경우도 있긴 하다. 그럼에도 자신감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 중에서는 있는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기가 좀 더 낫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자신에 대한 평가를 잘 내리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또한 그래서 우리는 매일 자신이 좀 더 나은 존재라고 인식되고 싶어한다.

 

그래서 셀카를 찍더라도 수백 장을 찍어서 그 중에서 제일 잘 나온 사진만을 공유하려고 하고, 우연히 먹게 된 맛있고 비싼 음식의 사진을 찍어서 그것이 일상인 냥 다른 사람과 공유하려고 한다.

 

이 모든 과정이 자신에 대한 타인의 평가를 조금이라고 끌어 올리려는 노력이고, 그로 인해서 타인들로부터 자신에 대한 평가가 좀 더 낫게 나오길 바라는 행동이다. 물론 여기엔 문제가 있다. 그것은 바로 우리는 타인에 대한 평가를 좀처럼 잘 바꾸지 않으려고 한다.


평가가 가진 가장 근본적인 특징이 바로 이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더 나은 평가를 원한다. 그런데 이 평가는 순위를 기반으로 한다. 그래서 누군가의 평가 상승은 누군가의 평가 하락으로 이어진다. 그러니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남들의 평가가 높아지면 자신의 평가가 하락하고, 남들의 평가가 낮아지면 자신의 평가가 상승한다.

 

이것은 생각보다 무서운 특징이다. 왜냐하면 이 특징으로 인해서 우리는 자신의 평가를 높이려고 그리도 많은 노력을 하지만, 남들은 우리들의 평가가 올라가는 것을 결코 쉽게 용납하지 않게 된다. 물론 우리들 자신도 남들에 대한 평가를 결코 쉽게 올리려고 하지 않는다는 점은 동일하다.

 

그리고 반대로 남들의 평가를 내리는 일에 대해서는 매우 적극적이다.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의 뒷담화를 할 때를 보라. 얼마나 적극적으로 즐거워하는지를 말이다. 또한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비판할 때 얼마나 열변을 토하는지를 떠올려 보라.

 

이것은 마치 서로 당기고 있는 줄다리기와 같다. 자신은 자신의 평가를 높이기 위해서 매일 노력한다. 그리고 남에 대한 평가는 높이지 않기 위해서 노력한다.오히려 떨어뜨리기 위해서 노력한다. 각자 모두가 그런 노력을 하면서 하루를 보낸다.

 

물론 모든 학생들이 같은 시간을 공부한다고 해서 모두 같은 성적이 나오지는 않는다. 그래서 우리가 각자 서로 그런 노력을 한다고 해서 그 결과는 같지 않다. 결국 누군가는 평가 순위가 오르고, 누군가는 평가 순위가 하락하긴 한다. 이것은 어쩔 수 없이 타고난 능력으로 인해 결정된다.

 

그럼에도 우리는 서로 당기고 있는 줄을 놓을 생각을 하지 못한다. 아무리 힘들어도 그 줄을 놓는 순간 자신이 줄다리기에서 질 것이라고 생각하고 또한 지면 불행할 것이라고 예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죽어라고 그 줄을 당기려고 한다. 하지만 상대도 마찬가지다. 그들 역시도 그 줄을 놓으면 죽을 것처럼 군다.

 

그러니 서로 평가를 잘해달라고 매일 새로운 증거를 내밀면서 노력하지만, 서로 매번 최대한 그것을 무시한다.

 

그나마 이것은 매우 일상적인 상황이니 견딜 만 하다. 문제는 상대가 너무도 확실한 증거를 가져와서 쉽게 무시할 수 없는 상황에 놓였을 때이다. 이때는 어쩔 수 없이 순위에 대한 재조정을 해야 한다.

 

그런데 이 사람이 원래 자신의 위에 있던 사람이면 큰 문제가 아니다. 자신보다 높은 순위에 있던 사람이 더 높이 올라간 것은 자신의 순위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그 사람이 영향을 미치는 범위는 그 사람의 당시 순위에서 새롭게 올라간 순위 사이에 있는 사람들이다.

 

100명 중 40등을하고 있었는데 20등이었던 사람이 5등이 되었다면, 40등에게는 아무런 영향이 없다. 하지만 60등이 30등으로 올라가면 40등은 41등이 되고 만다.


즉, 만약 우리들보다 밑에 있다가 자신보다 더 높이 올라간 사람이 나타나면 우리는 크게 흔들리게 된다. 그것이 사회적 지위이든, 회사 내 직위이든, 가진 재산이든, 각자의 자식들이 받아 든 성적표이든 상관없이, 무엇인가 순위 변동이 일어나면, 변동이 일어난 사람들이 사이엔 풍랑이 일어나게 된다.

 

이럴 경우 사람들은 두 가지 태도를 취한다.

 

하나는 인정하는 것이다. 객관적으로 증거가 나왔으니, 어쩔 수 없이 밑에 있던 상대를 위로 올려 준다. 물론 완전히 승복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다음 기회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당장은 마음에 들지 않아도 고개를 숙인다.

 

둘째는 무시하는 것이다. 즉, 그 객관적 증거를 그 사람과 분리시켜 바라본다. 그냥 운이 좋았다든지, 잠시 그럴 뿐이라고 생각한다. 말은 그럴 듯 하지만 사실 질투하는 것이다. 그래서 상대의 순위를 변경시키지는 않지만, 질투심으로 인해서 기분이 많이 나쁘게 된다. 원래 원칙대로 순위를 재조정해야 하는데, 하지 않으니 나타나는 부작용인 것이다.

 

그럼에도 이것이 번번히 이뤄지는 이유는, 한 사람의 순위가 한꺼번에 오르면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순위가 떨어지기 때문에 그렇다. 그래서 그 중 하나라도 그 순위 재조정을 하지 않으려고 그 성과를 부정하면, 다른 이들도 덩달아서 그것에 찬성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것이 집단 따돌림 현상으로도 나타나기도 하며, 우리는 이것을 경험적으로 알기에 남들이 쉽게 인정하지 못하는 큰 행운이 있을 경우 그것을 숨기려고 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서 어떤 학교에서 어떤 학생이 최근 시험에서 갑자기 높은 점수를 받았다고 가정해보자. 그래서 그 학생이 오른 만큼 성적이 한 단계씩 떨어진 학생들은 과연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이때도 마찬가지다. 소수의 학생들은 그것을 축하해줄 것이고, 다수의 학생들은 축하하는 척 할 것이다. 그리고 몇몇은 그것을 대놓고 질투할 것이다. 이때 가장 사심 없이 이 학생을 축하해줄 수 있는 학생은 바로 1등일 것이다. 1등은 성적이 오른 학생이 자신을 누르고 1등이 되기 전까지는 그럴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 가지 가정을 더 해보자. 만약 성적이 오른 그 친구가 최근 아주 비싼 과외를 받아서 그랬다는 것을 다들 알게 된다면 어떨까?

 

아마도 더 많은 사람들이 성적이 오른 것을 인정하려 들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이미 공부를 잘했던 애들이 같은 과외를 받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사실 그 과외는 너무 비싸서 웬만한 애들은 받고 싶어도 못 받는데, 성적이 오른 친구 역시도 같은 입장이었다가 최근에 집안에 좋은 일이 있어서 돈을 많이 벌어서 그 과외를 받을 수 있게 된 것이었다. 그 덕분에 성적이 크게 오른 것이다.


이때 이 학생이 성적이 오른 이유는, 바로 부모가 돈을 많이 번 것 일뿐이라고 평가되게 된다. 즉, 그 학생이 열심히 공부를 해서 성적이 오른 것이 아니라, 부모가 운 좋게 돈을 벌어서 그런 것이라고 평가 절하가 된다. 그래서 결국 그 학생은 성적은 올랐지만, 결국 평가는 그 자리에 머물게 된다.


이런 일은 우리 사회에서도 아주 빈번히 나타난다. 갑자기 성공한 사람들은 수 많은 질시를 받게 되고, 그 과정에 어떤 문제점이 있었음이 드러나면, 그것이 아무리 작은 사건이라고 해도 크게 부풀려져서 그 사람이 이룬 성과 자체가 모두 부정당하게 되는 일이 일어난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그것은 단지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평가를 높이기 싫어하는 우리들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뿐이다. 즉, 질투심이다.

 

이것은 자신과는 수준이 다르게 뛰어난 사람들에 대해서는 그들을 인정하고 심지어 그런 사람들과 알고 지내는 것을 영광으로 여기는 반면,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과는 끝없는 평가를 통해서 언제나 질투하고 비교하며 지내고, 자신과는 비교가 안되게 낮은 평가를 받는 사람들은 아예 그 존재 자체를 무시하는 모습으로도 확연하게 드러난다.

 

자, 이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좀 더 원론적인 질문을 던져보자. 그것은 우리는 왜 평가를 통해서 행복할까에 대한 질문이다.

 

물론 평가는 미래 행복 가능성을 예측할 수 있게 해주고 더해서 평가 자체로 자신의 잘남을 증명 받기 때문에 실제로 행복한 것은 맞다. 그런데 그 안에 숨겨진 진짜 원리는 어떤 것일까?

 

여기에서부터 조금 어려워진다. 왜냐하면 매우 깊게 숨겨진 심리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럴 수 있는 이유는, 자신이 이룬 그 성과 자체를 바로 자신과 동일하게 간주하기 때문이다. 어려운 말이긴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이해가 간다.


앞에서 예를 들었던 공부를 잘하게 된 학생의 경우, 분명히 새롭게 받은 과외가 영향을 준 것은 맞다. 그럼에도 그 학생은 자신이 높아진 성적이 그저 운 좋게 얻어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고액의 과외를 받았다고 해도 누구나 자신처럼 성적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때 학생은 자신의 성적이 높아진 이유로는 바로 좋은 부모님을 가진 것과 자신이 열심히 노력한 과정을 꼽을 것이다. 이것은 그 학생이란 존재와 완전히 겹치는 것들이다.


하지만 만약 이 학생이 그 과외를 받을 수 있었던 이유가 부모의 나쁜 짓, 즉 도둑질이나 혹은 사기를 친 것이거나 횡령을 통해 얻은 돈과 과외 선생의 강압적 태도로 인해서 무서워서 공부를 한 결과라면 어떨까?


이때는 그 학생과 그것들이 겹치는 범위가 훨씬 줄게 된다. 즉, 그 학생은 그것으로 인해서 자신의 평가가 높아질 수 있다는 생각을 훨씬 덜하게 된다.


이 부분이 중요하다. 우리는 우리가 무엇인가를 이뤘을 때, 그것이 자신의 의지가 많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그래서 그것이 자신과 많이 겹쳐지면 겹쳐질수록, 그것을 자신과 동일시한다. 자신과 자신이 이뤄낸 것이 동일시되면 될수록 우리는 자신의 평가가 높아진다고 느끼는 것이다.


하지만 냉정하게 생각해보자. 과연 우리가 가진 것들이나 우리가 이뤄낸 것들 중에서 정말로 우리 자신과 동일시 할 수 있는 것이 있을까?


우리는 각자 그저 태어났다. 거기엔 그 어떤 의지도 없다. 부모도 아니고, 우리들 자신도 아니다. 그리고 어떻게 태어났냐 가 거의 나머지 삶을 결정한다. 물론 태어나고 한 3년이 시기가 중요하다고 한다. 후천적 성격이 결정되는 시기이다. 그런데 이때도 마찬가지다. 부모가 아이를 어떻게 키웠느냐는 그저 부모의 성격 문제이다.


그런데 이 성격도 결국엔 할아버지 할머니로부터 온 것이다. 어디까지 되돌아가야 할지 모르겠다. 결론은 하나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우리 의지가 아니다. 노력하는 것도 타고난 성격이다. 노력 자체가 성격인데 어떻게 의지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을까?


그러니 우리가 해내는 모든 일은 사실 우리 자신이 아니다. 그것은 오직 유전자가 결정해준 아주 임의적인 결론이다. 물론 유전자는 가능하다면 좋은 결과를 내고 싶어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자신이 낸 결과를 자신의 것으로 평가한다. 물론 이것은 거꾸로 왜 그러면 안되냐는 반문을 받을만한 설명이다. 우리 각자가 낸 성과는 과연 누구 것이어야 할까? 사실 그 누구의 것도 아니어야 하지만, 우리는 쉽게 이것을 인정하기 힘들다.


이 전체적인 과정에서는 이런 일이 일어난다.


어떤 사람이 누구나 인정할만한 성과를 냈다고 해보자. 그럴 경우, 이 사람은 스스로의 평가도 올라가고, 남들의 평가도 올라간다. 이때 일어나는 일이 바로 자신이 낸 성과와 자신을 일치화 시키면서 그것을 확대해석 하는 것이다.


즉, 우연히 타고난 능력으로 우연히 어떤 일을 이뤘는데, 그것을 자신이 이뤄낸 성과라고 확대해석을 하면서 자신 그 자체로 동일시 하는 것이다.


돈을 많이 벌었다면 그 돈을 자신과 동일시하고, 돈을 많이 번 자신이 뛰어난 존재라고 확대 해석한다. 높은 지위에 오르면 높은 지위와 자신을 동일시하면서, 높은 지위에 올라간 만큼 자신은 뛰어난 존재라고 확신한다.


자신에게 어떤 좋은 일이 있으면, 그것을 모두 자신에 대한 가치로 바꾼다. 자신이 좀 더 중요하고, 자신이 좀 더 가치가 있고, 자신이 좀 더 의미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좋은 것들은 모두 자부심으로 확대 된다. 자신의 잘남을 증명하는 증거가 된다.


사실 이런 확대는 너무도 많아서 그냥 삶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지경이다.


뭐든 다 자신과 동일시 한다. 그리고 그것을 확대해석 하여 자신의 뛰어남을 증명하는 근거로 사용한다. 뭐, 물론 여기까지는 괜찮다. 어떻게 생각하고 살든 각자 영역이니까 말이다.


[3편으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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