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철학

인간 등급과 수준

아이루다 2016. 6. 17. 08:08

 

우리는 모두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는 동등한 인간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모두 등급화 되어 있다. 즉, 우리는 실제로는 모두 같은 인간은 아니다.

 

과거엔 이 땅에서도 양반, 평민, 백정 등의 등급으로 나뉘었었고 다른 많은 나라에서도 어떤 식으로든 신분제도가 존재했었다. 그리고 현재까지도 그것이 암암리에 유지가 되고 있는 나라들도 꽤나 있다. 대표적으로 인도가 그런 나라 중 하나이다.

 

하지만 지금 말하고 싶은 등급화는 이런 제도적, 관습적 분류가 아니다. 이것은 분명히 존재하긴 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그런 어떤 것이다.

 

이것이 존재하면서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바로 모두 개인적 관점이기 때문이다. 즉, 과거 신분 제도처럼 누구나 인정하는 그런 분류가 아니고, 개인이 개인의 관점에서 개인의 가치 기준에 따라 자신도 모르게 분류한 그런 것이다. 그렇기에 개인별로 매일 경험하거나 알게 된 정보로 인해서 등급에 속한 사람들은 끝없이 재편성되고 있다.

 

기본적으로 등급을 나누는 기준은 바로 각자의 '나' 이다. 즉, 우리는 자신을 기준으로 타인들을 분류한다. 그리고 등급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된다.

 

첫 번째는 바로 나보다 윗 등급의 사람들이다.

두 번째는 바로 나와 비슷한 등급의 사람들이다.

세 번째는 바로 나보다 낮은 등급의 사람들이다.

 

여기에서 첫 번째와 세 번째 등급에 속한 사람들은 각자의 삶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나보다 윗 등급의 사람들은 접할 기회 자체도 많지 않으며, 혹시나 접하게 되더라도 그냥 딴 세계 사람들이라고 느낀다. 혹은 아주 운이 좋다면 그 세계로 들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현재의 시점에서 들어갈 수 있는 조건은 바로 많은 돈이다. 하지만 돈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뭔가 더 필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현대 사회에서는 존재할 것 같지 않는 '타고난 신분' 이다. 즉, 돈만 많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뭔가 다른 것이 필요하다. 그것이 보통은 집안이다.

 

세 번째 등급에 속한 사람들을 바라볼 때 우리는 주로 연민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그것도 기분이 좋을 때나 그렇고, 기분이 나쁘거나 혹은 좋지 않는 일을 당하면 연민은 금세 혐오감으로 변할 수 있다. 그러니 이것은 기본적으로 좋은 감정이 아니다.

 

각자에게 있어서 자신보다 낮은 등급에 있는 사람들의 존재는 삶에 있어서 거의 고려되지 않는 존재들이다. 사실상 우리가 길을 가다가 개를 보는 것과 비슷하다. 어떤 개는 귀엽지만, 어떤 개는 영 정이 가지 않는다. 그리고 설령 개에게 어떤 감정을 느꼈더라도 일정 시간만 지나면 금세 잊어 먹는다. 즉, 사실상 무관심하다.

 

우리 삶에서 중요한 사람들은 주로 두 번째 등급에 있는, 나와 비슷한 등급의 사람들이다. 그리고 이 등급은 다시 미묘하게 분류된다.

 

첫 번째는 나보다 조금 나은 수준의 사람들이다.

두 번째는 나와 거의 비슷한 수준의 사람들이다.

세 번째는 나보다 조금 모자란 수준의 사람들이다.

 

나보다 조금 나은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질투의 대상이 된다. 이것은 상대의 성격에 따라 다른데, 상대가 착하고 남에게 잘 베푸는 성격이면 질투를 느끼기 보다는 애정과 호감을 느낄 수 있고, 반대로 이기적이고 자기 자랑이 심하면 질투심이나 분노를 느낄 수 있다.

 

나와 거의 비슷한 수준의 사람들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좋은 친구가 되기 좋다. 가끔은 질투도 나고, 가끔은 우월감도 느낄 수 있지만, 행복과 불행이 계속 반복되는 인간의 삶의 특징으로 인해서 그것들은 모두 일시적으로만 존재한다.

 

그리고 자신과 비슷한 입장에서 자신과 비슷한 고민을 하면서 살아가는 존재는, 나이를 먹을수록 점점 동반자적 관계가 될 수 있다. 누구보다도 자신을 잘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은 끼리끼리 모이게 된다. 혼자 사는 사람들은 혼자 사는 사람들과 모이고,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은 또 다른 아이의 부모들과, 노인은 노인들과 아이들은 아이들과 모여서 논다. 적어도 어떤 식으로든 비슷한 입장이기에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이야기 주제들도 많고 사는 수준이 비슷하기에 특별하게 질투를 느낄 필요도, 특별하게 우월감을 느낄 이유도 없다. 즉, 감정 소모가 훨씬 덜 하다.

 

마지막으로 나보다 조금 모자란 사람들은 보통 내가 우월감을 느끼는 대상이 된다. 즉, 이것은 마치 우리들 자신에게 있어서 첫 번째는 나보다 나은 사람의 입장이 되는 것과 같다. 그래서 약간 내려다 보면서 표현은 잘 안 하려고 하지만, 결국 마음 속으로는 상대적 행복감을 느끼는 대상이 된다.

 

그리고 상대가 너무 질투심을 보이지만 않으면, 혹은 잘 따르면 좋은 관계가 될 수 있다. 우리는 상대를 응원해주고 더 잘 되라고 말해주기도 한다. 하지만 정작 그 상대에게 큰 행운이 찾아와서 자신보다 더 나은 존재가 되면 그때는 불타는 질투심을 보이게 된다.

 

그래서 결국 그런 경우 관계가 끊기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큰 행운으로 인해서 자신에게 큰 변화가 일어난 사람이 겪는 인간 관계 문제이다. 이들은 큰 행운으로 좋아졌지만, 사실 많은 사람과 관계가 뒤틀려버린다.

 

우리들은 처음 만날 때 보통 어떤 식으로든 상대를 탐색한다. 그리고 이 탐색의 기준은 바로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보편적 가치 기준을 따른다. 요즘은 직업이나, 재산, 나이 등등이 그것이 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 사람을 어떤 등급과 수준으로 분류한다.

 

보통 분류는 그 사람과 함께 있는 사람을 기준으로 이뤄진다. 즉, 친구가 자신의 친구를 데리고 나왔다면, 그 새로 만나 사람은 기본적으로 데리고 나온 친구와 같은 등급과 수준으로 분류된다. 그리고 딱히 어떤 추가적인 정보가 없는 한, 그 사람의 등급과 수준은 그렇게 고정된다.

 

하지만 중간에 새롭게 안 사실들로 인해서 등급이나 수준이 바뀔 수도 있다. 친구와 다르게 돈이 많은 사람이거나, 꽤나 괜찮은 직업을 가지고 있거나, 남들이 안 하는 특이한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을 아는 순간 그 사람에게 부여된 등급과 수준은 크게 흔들릴 수 있다. 특히나 등급은 별로 거의 안 변하는데, 수준은 자주 변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한번 분류한 등급이나 수준을 잘 바꾸려고 하지 않는다. 특히 위로 올리는 데 있어서 매우 인색한데, 상대가 위로 올라가는 순간 상대는 어떤 식으로든 나보다 더 나은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누군가보다 낮다는 것은 원래 매우 기분 나쁜 일이다. 또한 질투심을 유발할 아주 중대한 사유가 된다. 그러니 이것을 싫어하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가 이런 식으로 다른 사람들을 등급화 시키는 것에는 이미 언급한 돈 이외에도 몇 가지 기준이 있다. 보통은 그것이 돈으로만 보이지만, 사실 숨겨진 기준이 훨씬 더 확실하게 선행되어 작용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기준들은 우리의 등급 분류 대상 자체를 아예 축소시켜 버리는 역할을 한다.

 

어떤 단체에 아주 예쁜 여자가 한 명 새롭게 들어왔다고 가정 해보자. 보통 이럴 경우 기존의 여자들은 경계심을 갖는 것이 보통이다. 그것을 대 놓고 표현하지 않아도 기본적으로는 그렇다. 그 여자가 예쁘면 예쁠수록 더욱 더 그럴 수 있다.

 

하지만 남자들의 경우엔 전혀 그렇지 않다. 남자들은 호감을 가진다. 그리고 예쁘면 예쁠수록 더욱 더 호감을 가지게 된다.

 

이것이 바로 성별의 기준이다. 우리는 상대의 성별에 따라서 등급 자체를 매기지 않는 경우가 있다. 즉, 이성은 기본적으로 비교 대상이 되질 않는 편이다. 물론 모두 그런 것은 아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질투심은 같은 성별에서만 일어난다. 그것이 설령 외모가 아닌 돈이라고 해도 그렇다. 돈이 많은 이성은 질투심의 대상이 아니라 결혼을 할 수 있는 대상이기 때문이다.

 

이와 비슷하게 우리는 나이에 따라서도 이런 패턴을 보인다. 젊은이는 돈이 많은 노인을 질투하지 않는다. 여기엔 두 가지 큰 이유가 있는데, 하나는 돈 주고도 못사는 '젊음' 이 있기 때문이고, 또 하나는 바로 아직 자신은 그 노인이 될 때까지 살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그 돈이 많은 노인은 실제로 자신의 모습일 수도 있다. 인생은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니, 돈이 많은 것도 하나의 가능성 있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반대로 노인 역시도 젊은이에게 질투를 느낄 필요가 없긴 하다. 단, 제대로 살았어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다. 하지만 문제는 요즘 노인들 대부분이 제대로 살지 못했다. 그래서 그들은 주로 자신이 가진 어떤 가치, 주로 돈이나 자녀들의 가치를 최고라고 여긴다.

 

그러니 젊은이들이 그 가치를 벗어나서 자신의 행복을 찾는다고 돈을 안 벌고 엉뚱한 일을 하거나, 결혼을 하지 않고 살거나, 아이를 낳지 않고 사는 모습을 보면 그 누구보다도 불안해 한다. 왜냐하면 늙은 자신을 유일하게 지탱해주고 있는 가치, 즉 돈, 가정, 자녀 등의 가치가 부정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꾸 조언을 한다. 돈을 벌어야 한다고, 가정을 이뤄야 한다고, 아이를 낳아야 한다고 말한다. 젊은이들이 자신들의 가치를 따라오려고 할 때 자신의 우월적 지위가 유지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결국 제대로 살지 못하고 늙기만 한 사람들의 모습이다. 이것은 바로 늙은이의 질투심인 것이다.

 

만약 제대로 현명하게 늙은 사람이라면 단 한가지 진실만 존재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것은 바로 인간은 그저 '행복하길 바라는 존재' 라는 것이다. 그래서 각자 자신만의 행복을 추구하고 있을 뿐이라고 말이다. 그러니 자신을 지탱해주는 가치 같은 것은 사실 행복의 조건일 뿐, 결코 절대적 기준이 될 수 없음을 인정하고 있어야 한다.

 

이런 분들은 타인이 추구하는 가치들, 즉 젊은이들이 추구하는 가치를 부정하지 않는다. 또한 그들이 그것을 통해 행복하다면 응원을 해줄 수 있다. 비록 자신과는 전혀 다른 가치를 추구하고 있더라도 아무런 불안함 없이 응원을 해 줄 수 있다. 또한 자신의 길을 제대로 찾지 못해서 헤매는 젊은이에게 행복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해줄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기본적인 등급 기준, 성별과 나이를 설명했다. 우리는 성별을 기준으로 나와 동성이냐 이성이냐를 나누고, 나이를 기준으로 나와 비슷한 세대이냐 아니면 나이가 많으냐 적으냐를 나눈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동성이면서 나이가 비슷한 사람들만이 분류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 조건과 나와 비슷한 등급의 사람들의 교집합이 바로 인간 관계의 경계선이 되어 준다.

 

하지만 이것이 다가 아니다. 우리는 문화적, 민족적, 나라적 기준도 가지고 있다. 즉, 기본적으로 다른 문화권이나 다른 민족이나 다른 나라에 사는 사람들은 비록 동성에 비슷한 나이에 비슷한 생활 수준을 가졌다고 해도 우리들의 인간 관계 범주에 들어오지 않는다.

 

여기엔 기본적으로 그들을 접할 기회가 거의 없고, 접해도 언어적으로 불가능하며, 또한 자주 접하기도 힘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생각 자체가 달라서 아예 다른 종류의 사람들이라고 여길 수도 있다.

 

이런 식으로 나이, 성별 그리고 방금 언급한 문화적, 민족적, 나라적 기준으로 보면, 아예 등급 외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사실 우리의 등급 분류에는 아예 등급 외 분류에 속한 사람이 숫자가 가장 많다고 볼 수 있다. 인간의 대부분 그리고 자신이 살아가는 나라에서도 사실 등급의 대상은 많아야 백 명도 넘기가 힘들다. 일단 사람을 알아야 등급을 매기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생성되는 인간 등급은 우리가 어떻게 질투심, 우월감, 열등감이 가지게 되었는지에 대한 본질적 원인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등급을 매기지 않을 수는 없다. 설령 노래만 좋아하는 사람이라서 노래만이 최고의 가치라고 여기는 사람조차도 노래를 기준으로 등급을 매긴다. 즉, 가치를 추구하는 모든 사람들은 그 가치를 통해서 등급을 매기는 것이다. 그러니 자신보다 음악적 재능이 더 뛰어난 사람에게는 질투와 열등감을 느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가치를 추구하고 그 가치를 통해 등급을 매기고 결국 질투심이나 열등감을 만들어 낸다. 상대를 자신과 같은 등급이라고 분류했는데, 실제로는 자신보다 높은 수준의 사람임을 알게 되면 그때 가장 크게 질투심과 열등감을 느낀다.

 

그나마 음악이나 미술과 같은 것들은 그것의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적어서 만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예 등급 외 분류가 되기 때문에 문제가 별로 없다. 문제는 거의 모든 사람이 추구하는 바로 '돈' 과 같은 치는 언제 어디에서 사람을 만나도 대부분 분류 내로 들어온다.

 

이 말을 다시 해석하면, 우리가 돈과 같이 다수가 추구하는 가치에서 벗어나서 사람들에 대해서 다른 분류법을 적용할 수 있게 되면, 뭔가 전혀 다른 형태의 분류가 나올 수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럴 수 있을 경우, 대부분의 사람들을 등급 외 분류에 넣을 수 있는 기회가 만들어 진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질투심과 열등감에서 벗어날 수 있는 참 좋은 해결책이다. 그리고 질투심과 열등감만 없애도 삶을 행복하게 사는데 아주 큰 도움이 된다. 우리가 느끼는 수 많은 불필요한 감정 소모가 바로 이것을 통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원래 화가 나고, 기분이 나쁘고, 우울하고 하는 등등의 감정이 거의 대부분 질투심과 열등감으로 인해 만들어진다.

 

물론 현재의 가치 기준을 고수하면서 그 안에서 승자의 입장이 되어 질투를 하기 보다는 질투의 대상이 되는 것도 나름 좋은 해결책일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경쟁이기에 쉽지 않다. 또한 언제 불운이 찾아올 지 모르기에 언제나 불안하다.

 

나이를 어느 정도 먹은 사람들은 이미 경쟁의 결과가 대략 나왔다. 그러니 이제 선택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자신이 추구하지만 사실상 성공하지 못한 가치의 끝을 잡고 미련을 가지고 살아가든지 아니면 아예 자신만의 고유한 가치를 추구하든지를 선택할 수 있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누구나 가치의 변화를 겪었다. 어린 시절엔 로봇이나 인형이, 학교다닐 때는 친구의 숫자나 성적이, 대학생이 되었거나 취직이 되었을 때는 어떤 대학교에 다니느냐, 어떤 회사에 다니느냐를 기준으로 했던 적도 있다. 단지 나이를 어느 정도 먹고나니 그것이 다들 돈으로 변한 것 뿐이다. 그리 절대적으로 보이는 돈 조차도 어린 시절엔 별 것 아니었다. 그러니 노력하면 다른 가치 기준을 만들지 못할 이유가 없다.


돈이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 아니다. 돈이 가치 없다는 뜻도 아니다. 근데 행복하고 싶지 않은가? 돈이 있어야 행복한데, 돈이 없으니 의지적으로라도 다른 길을 찾아야 한다는 뜻이다. 이미 돈이 없다면, 돈을 기준으로 등급을 매겼을 때, 나보다 못한 사람을 찾기 보다는 나보다 나은 사람을 찾을 가능성이 훨씬 높다.

 

물론 새로운 가치를 추구하는 것은 매우 어렵고 힘든 일이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원래 어렵고 힘들어야 가치가 만들어질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돌보다 돈이 더 가치 있는 이유는, 돈을 구하기가 어렵고 힘들기 때문이다. 그것 말고 그 어떤 이유도 없다. 돌을 구하기 힘들면, 돈을 주고 사야 한다.

 

모든 가치는 바로 노력과 고통을 통해서 만들어 진다. 아무리 가치 있어 보이는 것도 무한정으로 쉽게 마법처럼 만들 수 있다면, 그것은 가치가 될 수 없다.

 

그러니 가치를 찾고 싶다면, 가치의 대상을 정하고 힘들게 노력하면 된다. 거기엔 시간과 돈과 노력이 자연스럽게 스며들 것이다. 텃밭을 가꾸든, 개를 키우든, 자전거를 타든 상관없다.

 

그리고 그렇게 가치가 만들어지고 나면, 각자의 인간 등급은 완전히 재편될 것이다. 이젠 돈으로 등급을 매기지 않고, 텃밭에서 자라는 상추의 크기로, 얼마나 강아지를 잘 돌봐주고 있는지로, 얼마나 많이 그리고 멀리 자전거를 타고 다녔는지를 기준으로 등급을 매길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때 우리는 비로소 질투심과 열등감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될 수 있다.

 

하지만 이럴 때 조차도 텃밭의 크기로, 강아지의 품종으로, 가진 자전거의 가격으로 비교를 하게 되면 답이 없다. 이것은 돈의 가치가 조금 변형된 것뿐이다.

 



'인간과철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개, 돼지론  (0) 2016.07.11
인간관계로부터의 자유  (0) 2016.06.30
집중과 몰입  (0) 2016.06.13
나는 누구인가?  (0) 2016.05.20
두 개의 질문  (0) 2016.05.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