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소중한 사람

아이루다 2016. 5. 31. 06:30


 

우리 인간은 모두 혼자이다.

 

태어날 때 혼자 태어나고, 죽을 때 혼자 죽는다. 삶의 시작점인 탄생과 삶의 종료 점인 죽음, 이 두 가지 사건은 각자의 삶에서 겪을 수 있는 가장 특별한 사건이다. 평생 동안 살아가면서 이보다 더 중요하고 특별한 사건은 없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는 그 모든 일들이 바로 이 두 사건 사이에 일어난다.

 

비록 태어날 때 우리는 아무런 의식이 없고 희미한 기억조차도 없다고 해도, 태어남이 없다면 그 후 우리가 경험하게 될 모든 것은 일어나지 않는다. 아니, 기억되지 못한다.

 

또한 우리들에게 죽음이 없다면, 우리가 살아서 겪는 모든 일들에 대한 의미가 없어진다. 우리는 죽기 때문에 가치 있을 수 있다. 죽음은 삶의 모든 가치를 만들어 내는 원천이다. 인류를 위해 자신의 삶을 헌신하는 위대한 희생도 죽음이 없다면, 희생이라고 평가될 수 없다. 그저 흥미로움이나 재미가 될 뿐이다.

 

그런데 이 중요한 두 가지 사건은 오롯이 홀로 겪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결국 혼자일 수 밖에 없다.

 

태어남과 죽음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는 모든 사건들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함께 어울려 노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자 즐거울 뿐이다. 우리는 함께 모여서 먹지만, 먹은 음식은 각자의 몸 속으로 들어간다. 우리는 모든 것을 함께 하지만, 결국 모든 것은 각자에게 다르게 경험될 수 밖에 없다.

 

시간은 다르게 경험되고, 기억도 다르게 기록된다.

 

하지만 우리는 혼자 이면서도 혼자가 아닐 수 있다. 정확히 말하면, 혼자인 것은 확실하지만, 혼자가 아니라고 느낄 수는 있다. 그리고 그렇게 해줄 수 있는 사람들을 '소중한 사람' 이라고 말한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그 사람은 엄마와 아빠가 될 것이다. 그리고 형제나 자매도 될 것이다. 운이 좋다면 사촌이나 더 먼 친척이 될 수도 있다. 아니면 혈연으로 아무런 관련도 없지만, 가족 이상으로 관계가 깊은 친구도 소중한 사람이 될 수 있다. 혹은 동시대에 살아가는 사람도 아닌, 이미 과거의 살다가 죽은 사람도 소중한 사람이 될 수 있다. 더 확대되면 사람이 아니라 동물, 식물, 무생물까지도 그것을 대신할 수 있다.

 

이렇게 소중한 존재들이 있기에, 우리는 비록 혼자이지만 혼자가 아닌 것처럼 느낄 수 있다.

 

초등학교 시절 학교에서 연주 발표회를 할 때, 그것을 봐 주는 사람이 없다면, 아무리 연주를 잘했더라도 우울해 할 수 밖에 없다. 똑같이 연습을 하고, 똑같이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악기를 연주 했는데, 부모가 와서 봐준 아이들은 활짝 웃지만, 아무도 없이 홀로 있어야 하는 아이들은 발표회가 끝난 후 조용히 사라지고 만다.

 

학교에서 상장을 받았을 때도 마찬가지이다. 상장을 받아서 흥분된 얼굴로 달려가 자랑하고 싶은 부모가 없는 학생의 얼굴은 밝을 수가 없다. 그래서 집에 가는 길에 애꿎은 돌멩이만 차게 될지도 모른다.

 

그랬던 우리들은 성년이 되어가면서 점점 소중한 사람의 중요함을 잊는다.

 

친구들과 노는 것이 재미있고, 게임이 재미있고, 영화가 재미가 있고, 여행이 재미가 있고, 술 먹는 자리가 재미 있고, 데이트 하는 것이 재미 있기 때문에 가족과 보내는 시간은 점점 줄어든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소중한 사람들은 우리를 잊지 않는다. 사실 이 과정은 필수적으로 필요하기도 하다. 우리도 한 명의 독립된 인간으로 자라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홀로 서는 법을 배워야 하기 때문이다.

 

즉, 우리는 우리의 원래 모습인 혼자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홀로 설 수 있으며, 누군가에게 소중한 사람이 될 수 있는 자질을 갖출 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이것을 미리 예측하고 그렇게 행동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그저 재미가 있고, 그것을 하는 것이 좀 더 강렬하고 짜릿한 것을 원할 뿐이다. 이것은 그럴 수 있기 때문에 그렇다. 이것은 욕망이기에 누구나 그것에 매달릴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는 결국 진실을 알게 된다. 욕망은 이뤄질 가능성 보다는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훨씬 높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욕망을 쫒는 시기는 강제적으로 끝이 난다. 우리는 20대가 되면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갈 준비를 해야 한다. 그리고 싫든 좋든 그 안에서 자기 몫을 해내야 한다. 그래야 돈도 벌고,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을 수 있다. 그래야 소중한 사람들을 만들 수 있고, 그것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다.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서 소중한 사람들은 우리를 돌봐줄 사람들이 아닌, 우리가 돌봐줘야 할 의무를 가진 사람들이 된다. 우리는 부담감도 느끼고, 어깨가 무거워짐도 느낀다. 그래도 우리는 도망치지 못한다. 왜 도망치지 못하는지는 모르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때 우리는 소중한 사람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는 못하지만, 자신의 삶에서 소중한 사람의 존재가 반드시 필요함을 본능적으로 안다. 그것은 즐거움일 수도 있고, 기쁨일 수도 있고, 행복일 수도 있다.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혼자 살아도 마찬가지이다. 비록 삶은 혼자 살더라도 소중한 사람의 존재는 반드시 필요하다. 그것이 꼭 아내와 남편, 아이가 될 필요가 없다. 늙으신 부모님이나, 소중한 형제나 친구도 소중한 사람이 될 수 있다. 혹은 키우는 개나 고양이도 그런 존재가 될 수 있다.

 

젊은 시절 삶의 많은 부분을 차지했던 친구들은 점점 멀어져 간다. 서로 각자 직장 일에 치여서, 결혼 생활에 충실하기 위해서, 육아를 해야 하기 때문에, 몸이 아파서, 뭔가 자신의 미래를 위해 준비할 시간이 필요해서 등등, 수 많은 이유와 각자의 사연으로 인해서 그렇게 된다.

 

내가 원한다고 해서 남아 있지도 않고, 남이 원한다고 해서 해줄 수도 없다. 다들 그렇게 자신에게 할당된 무게를 짊어진 존재가 되어간다.

 

이제 우리는 충분히 나이를 먹었다는 뜻이다.

 

우리는 이제 마냥 행복했던 어린 아이가 아니다. 우리는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 따지고 싶은 학생도 아니다. 우리는 돈이 인생이 전부냐고 묻는 그런 청년도 아니다. 우리는 이제 이 세상을 좀 더 잘 알게 되었다.

 

하지만 이것이 행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세상을 알았기에, 세상이 빛만 있는 것이 아님을 안다. 어린 시절 부모에게 말만하면 나오던 돈이 결코 쉽게 얻을 수 없는 것임을 안다. 부모님이 왜 자신을 꾸짖었는지도 이해한다. 왜 그리도 궁상맞을 정도로 아끼면서 살아가셨는지도 안다.

 

그래서 삶이 힘들다는 생각이 든다. 권리는 사라지고 의무만 남는다. 그러면 가끔 이렇게 힘든 세상을 왜 그렇게 아등바등 살아야 할지 고민이 생긴다. 뭐, 물론 늘 그런 것은 아니다. 이런 와중에서 행복이 있고, 즐거움이 있기에 살아갈 만 하긴 하다.

 

상대적으로 혼자 살면 이런 의무감은 훨씬 덜하다. 책임져야 할 사람이 자신밖에 없을 수도 있다. 그러면 삶은 좀 더 행복해질까?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책임이 덜하다는 것은 좀 더 마음 편하게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 수 있게 해주니까 말이다.

 

하지만 밖에서 아무리 즐겁게 놀다가 아무도 없는 집에 돌아오면 뭔가 허전한 마음이 생기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최대한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쓰지만, 좀처럼 쉽지 않다. 그때마다 외로움은 두려움처럼 다가온다.

 

우리는 비로서 이때 소중한 사람이 우리들에게 어떤 의미인지 알게 된다. 우리들에게 소중한 사람들은 우리가 오늘을 살고, 내일을 살 수 있으며, 우리가 오늘 하는 모든 행위의 가치를 부여해줄 수 있는 존재들임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나 자신의 삶이지만, 그 삶이 의미와 가치를 갖기 위해서는 소중한 사람들이 반드시 필요함을 알게 된다. 행복하기 위해서는 TV를 보고, 영화를 보고, 여행을 가고, 사진을 찍고, 자전거를 탈 수 있지만, 그것들이 우리들에게 살아갈 이유를 줄 수 없음을 이해하게 된다.

 

초등학교 시절 연주 발표회에서 서툰 연주를 들어주고 박수를 쳐 주던 부모님과 큰 상은 아닐지라도 상이라도 받게 되면 내 일처럼 기뻐해 줬던 부모님의 존재가 우리들 각자의 삶에서 얼마나 소중한 존재였는지를 비로소 알게 된다. 그분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존재할 수 있었음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결혼을 해서 가정을 이뤘다면, 남편이, 아내가, 아이가 그 역할을 대신하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부모님이 소중해지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저 소중한 사람이 몇 명 더 늘어난 것뿐이다.

 

소중한 사람은 나의 행운을 같이 공감해주는 사람이며, 아무런 사심 없이 축하해줄 수 있는 사람들이다. 소중한 사람은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내가 잘되길 바라고, 내가 행복하기 빌어주는 사람들이다.

 

특별한 운이 없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우리는 보통 가족 중에서 소중한 사람을 가질 수 있다.

 

우리는 소중한 사람에게 자랑을 하고, 소중한 사람에게 자신의 행운을 이야기 하고, 소중한 사람에게 인정을 받으면서 살아간다. 이렇게 소중한 사람이 우리들 각자가 살아갈 이유가 되어준다.

 

하지만 우리는 이것을 자주 놓친다. 우리는 우리의 행복을 자랑하느라 그들이 우리가 불행할 때 변함없이 우리의 곁을 지켜주고 있음을 잊어 먹는다. 자기 자랑하는 재미에 빠져서 소중한 사람이 왜 필요한지를 잊어 먹는다.

 

소중한 사람의 존재는 우리가 매일 살아갈 수 있으며, 우리가 매일 하는 행동들의 이유가 될 수 있음을 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삶은 언제나 굴곡이 있다. 우리는 언제고 불행해질 수 있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자신도 모르게 소중한 사람을 찾아가게 된다.

 

평소의 삶에서도 마찬가지다. 소중한 사람은 오늘 우리가 힘들게 일을 해서 돈을 벌고, 마트에 가서 아이스크림을 사고, 주말에 놀러 갈 여행 계획을 세울 수 있게 해준다. 그들이 없었다면, 해야 할 필요도, 하고 싶지도, 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물론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만을 위해서 그것을 다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다른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자신을 위해서 그렇게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에게 소중한 사람이 필요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만약 어떤 사람에게 단 한 명의 소중한 사람이 없다면 그리고 개나 고양이조차 없다면, 풀이나 꽃도 없다면, 해야 할 일이나 맡은 책임이 없다면, 그래서 결국 소중한 것이 하나도 없다면, 그는 결코 살아갈 수 없다. 살아야 할 이유가 하나도 없이 이 세상을 살아가기엔 가끔 삶은 너무 힘들기 때문이다.

 

그 힘듦은 단지 돈 때문이 아니다. 외로움 때문만도 아니다. 삶의 가혹함은 우리의 생각보다 잔인하다. 우리가 이 모든 가혹함을 버텨내고 살아가는 이유는, 바로 소중한 사람들이 우리를 지켜주고, 우리가 그들을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홀로 살거나 가족과 함께 살거나 상관없다. 그 소중한 사람들을 일년에 겨우 한두 번 보거나, 매일 보거나 상관없다. 아니 아예 멀리 떨어져서 수 년간 얼굴 한 번 안보고 살았다고 해도 상관없다.

 

지구 상의 어딘가, 아니 이 우주에 어딘가 소중한 사람이 있다면, 그 존재는 끝없이 우리 마음 속에서 삶의 의지를 만들어 낸다.

 

홀로 세계 여행을 다니던 어느 날, 이 지구의 모든 사람이 죽는 사건이 일어났다면, 우리는 어디로 갈 수 있을까? 여행을 계속 할까? 아닐 것이다. 우리는 집으로 가게 된다. 비록 가족들 역시 모두 죽었더라도, 혹시라도 하는 마음에 그곳을 향해 갈 것이다. 행복할 때는 여행을 하지만, 불행할 때는 집으로 향한다.

 

오늘 누군가를 돌봐야 하고, 누군가를 책임져야 하고, 누군가를 챙겨야 하는 일로 인해서 스트레스를 받을 수도 있다. 사실 이런 일들 많이 힘들다.

 

그럼에도 우리는 안다. 그들이 있음으로 오늘 내가 하루를 더 살아갈 수 있음을 말이다. 우리는 재미있고 즐겁기 때문에 이 세상을 살아가지는 못한다. 그것들은 언제고 재미 없어질 수 있으며, 언제고 즐겁지 않을 수 있다. 그런 것들은 금세 지루해지기도 한다.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 삶은 빛이 난다.

 

비록 아무런 의미 없는 삶이지만, 우리는 자신의 삶을 의미 있게 만들 수는 있다. 상대적이고 자신에게만 의미 있지만, 그것만도 어디냐. 그것조차도 못하는 사람들이 이리도 많은 세상에서 말이다.

 

누군가를 책임지고 희생하는 것은 삶을 낭비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을 위해 써야 할 시간을 남겨두긴 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누군가를 위해 사는 것을 무의미하다고 판단하지는 말자. 그리고 우울해 하지도 말자.

 

삶의 정답은 없다. 무엇을 하든 행복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주어진 시간을 자신을 위해 쓰든, 소중한 사람들을 위해 쓰든 그것은 오롯이 본인의 선택이다. 그리고 누가 어떤 선택을 했든지 간에 그것을 그 사람의 선택을 인정해주도록 하자.

 

평생을 재미있고 신나게 살아간 사람도 있고, 평생을 평탄하고 고생 없이 살아간 사람도 있을 것이다. 반대로 지루하고 많은 고생을 하고 살아간 사람도 있을 것이다.

 

우리 삶의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사건 중, 죽음이 다가올 때는 어떤 내용의 삶을 살았느냐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단지 같은 죽음이라면 아쉬움보다는 만족스럽게 죽는 것이 좋을 것이다. 회한을 남기기보다는 해야 할 일은 다 해 놓고 죽는 것이 좋을 것이다.

 

비록 어떤 노력을 해도 아무런 의미도 가치도 없는 삶이었지만, 소중한 사람들에게만큼은 의미도 있고 가치가 있는 삶이었다면 충분히 만족스럽게 눈을 감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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