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돈과 만족

아이루다 2016. 5. 15. 06:49

 

예전에 어느 철학 강의에서 들었던 말인데, 우리는 가치 측정의 본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즉, 우리는 살아가면서 매 순간 가치를 측정한다는 뜻이다.

 

흔히 가치는 유형의 것, 즉 어떤 물질적인 물건을 대상으로 매겨진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사실 가치는 우리가 행하고, 접하고, 경험하게 되는 그 모든 종류의 것을 대상으로 한다. 그래서 정신적인 것부터 물질적인 것까지, 시간적인 것부터 경험적인 것까지, 의미적인 것부터 행복한 것까지 모두 망라한다. 즉, 우리가 살아가는 그 자체를 의미하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는 자신의 삶 그 자체의 가치도 평가한다. 행복의 가치도 평가하고, 사람의 가치도 평가한다.

 

또한 매일 같은 행위를 반복하면서도 그것의 가치를 평가한다. 그래서 음식을 먹었다면 음식의 가치를, 영화를 봤다면 영화의 가치를, 여행을 떠났다면 여행의 가치를, 어떤 제품을 샀다면 그것의 가치, TV를 보았다면 자신이 본 프로그램의 가치를 측정한다.

 

그런데 우리는 왜 이렇게 모든 것의 가치를 측정하려고 할까?

 

이 질문의 답은 쉽다. 그것은 바로 자신이 가진 어떤 종류의 자원을 소비했기 때문이다. 즉, 시간, 노력, 돈 등의 개인에게 무척 중요한 자원 중 일부를 소비했기 때문에 그것이 제대로 쓰였는지 확인하려는 행동인 것이다.

 

우리 인간은 모두 유한한 자원을 가지고 있다. 100년 남짓한 시간, 평생 벌어서 쓸 수 있는 돈, 자신이 할 수 있는 노력의 한계점, 주변의 상황, 타고난 능력 등등 우리의 한계는 제법 명확하다.

 

우리는 화성에 가고 싶다고 생각해도 여러 가지 요소에 의해서 그것을 해낼 수 없다. 그것을 아무리 가치 있다고 생각해도 불가능 한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일을 하면서 자신의 가진 유한한 자원의 일부를 소모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완전히 소모되어서 다시는 채울 수 없다. 특히 시간 같은 자원이 그렇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경험하면서 소비한 시간은 평생 다시는 오지 않는다. 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

 

그러니 우리는 자신이 쓴 자원이 얼마나 제대로 쓰였는지를 확신하고 싶어한다. 그래서 가치 평가의 욕구가 생겨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왜 그것이 제대로 쓰였는지를 알고 싶어할까?

 

이 답 역시 쉽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자신의 자원을 쓰고 난 후, 그것에 대해서 '얼마나 만족' 했느냐를 알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즉, 우리가 어떤 중요 자원을 소비해서 무엇인가를 했다면, 우리는 그것의 가치를 계산한 후, 자신이 쓴 자원이 얼마나 만족스럽게 쓰였는지를 확인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 만족감의 최종 목표는 바로 행복이다.즉, 우리는 한정적 자원인 시간, 노력, 돈 등을 들여서 가치를 평가하고, 그것을 통해 만족감을 얻은 후, 행복해진다.

 

이것이 우리가 행복해지는 원리 중 하나이다. 어떤 제품을 샀다면, 그 제품을 사는 즐거움도 있고, 쓰는 즐거움도 있다는 뜻이다. 살 때는 기대치에 대한 행복이고, 사용할 때는 만족에 의한 행복이 되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가 단순한 어떤 제품을 샀을 때도, 참 유용하고, 잘 만들어졌으며, 가격도 싸다면, 우리의 만족도는 금세 수식으로 상승하고 더해서 기분도 좋아지게 된다. 심지어 어떨 때는 왜 이렇게 싸게 팔까 하는 의문이 들면서 만든 회사에 감사할 지경이 되기도 한다.

 

지금까지 쓴 내용은 사실 누구나 알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을 배경으로 해서 우리가 지불하는 돈에 대한 가치를 바라보도록 하자.

 

우리는 어떤 제품을 살 때나 음식을 먹거나 영화를 볼 때마다 돈을 지불한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 돈을 지불할 때마다 만족도를 생각한다. 그러니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당연히 만족도가 낮은 것이다. 반대로 돈이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당연히 만족도가 높은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무엇인가가 비싸다고 느끼는 생각은 원래 돈 자체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완전히 만족도만의 문제이지, 결코 돈의 문제가 아니다.

 

즉, 비싸다는 말 자체가 돈의 양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만 원짜리 당근을 살 때 비싸다고 느끼는 것은 돈 자체가 아니고, 만원의 가치를 하지 못할 것이라고 예상된 만족도의 문제란 뜻이다.

 

그래서 수 억을 주고 산 집과 천 원을 주고 산 과자 중에서 정말로 돈이 아까운 것은 집이 아닌 과자일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우리가 무엇인가를 소비할 때 돈의 액수는 사실 아무런 의미가 없다.

 

여기까지는 이야기는 누구나 수긍하는 것이고 또한 더해서 사실 이것을 돈이 아깝다고 여겨도 딱히 아무런 문제가 없다. 개인적인 입장에서 돈이 아깝다고 느낄 때, 그것이 만족도의 문제냐 돈 자체의 문제냐를 따지는 것은 사실 별 의미 없다는 뜻이다.

 

진짜 문제는, 그것이 자신의 입장이 아닌, 타인이 소비하는 돈을 바라볼 때 생겨난다.

 

그때 우리는 과연 무엇을 기준으로 다른 사람들의 소비를 판단하고 있을까?

 

그런데 웃기게도 우리는 이때 돈을 기준으로 판단한다. 우리는 자신이 별 필요가 없어 보이는 것을 비싸게 주고 사는 사람을 보면 돈이 아깝다고 생각한다. 아주 비싼 카메라를 사거나, 아주 비싼 등산 장비를 사거나, 아주 비싼 가방을 사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평가한다.

 

도대체 왜 저렇게 쓸데없이 돈을 쓸까 하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면 자신이 그 제품을 샀다면 만족도가 거의 없을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만족도의 문제로 보지 않고, 돈의 문제로 본다.

 

그래서 그것이 비싸다고 말한다. 카메라가 너무 비싸다, 가방이 너무 비싸다, 등산 장비가 너무 비싸다라고 하면서 과소비를 하고 있다고 비난한다.

 

해외여행을 가는데 천 만원을 썼다고 해서 그 돈이면 국내 여행을 열 번은 가겠다고 비난하고, 비싼 차를 타는 사람을 보면 돈이 남아 도니까 샀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물론 사람들이 허영심으로 인해 그런 소비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허영심조차 자신의 만족감이 있기에 하고 있는 것이다. 이 세상 사람 그 누구도 자신의 돈을 함부로 쓰지 않는다. 어떤 식으로든 만족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소비를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사람이 자신이 산 제품에 만족하냐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그 제품을 샀을 때의 만족도를 기준으로 해서 그 사람을 판단한 후, 비난의 근거를 마련한다.

 

사실 정확하게 표현해서, 우리는 다른 사람의 만족도를 알 방법이 없다. 이것은 오직 개인적 영역이다. 사람마다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에, 어떤 것을 더 가치 있어서 하는지를 알 수는 없다. 물론 대화를 통해서 무엇을 가치 있어 하는 지까지는 짐작이 가능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이 그것을 얼마나 가치 있어 할지를 정확히는 알 수 없다.

 

이렇게 상대가 느끼는 가치를 제대로 알 수 없는데, 어떻게 그 사람의 만족도를 알 수 있겠는가?

 

그나마 우리는 그것을 추리해보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냥 자신의 기준에서 만족도를 계산하고는 그걸로 상대가 쓸데없는 곳에 돈을 썼다고 평가해버리고 만다.

 

그러다 보니 사람마다 각자 추구하는 가치에 따라 전혀 다른 평가를 하게 된다.

 

사람간의 관계가 가장 중요하다고 믿는 사람은, 취미 생활 등 자기 자신을 위해 많은 돈을 쓰는 사람을 보면서 혀를 찬다. 물론 그것을 대 놓고 하지는 않지만, 도대체 왜 저렇게 쓸데 없는 곳에 돈을 쓸까 라고 생각을 하면서 바라본다. 그 돈이면 부모님에게 용돈이나 더 주지 하는 생각을 한다.

 

반대로 남을 위해 돈을 쓰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자신의 행복이 최우선이지, 남에게 잘해봐야 결국 남 좋은 일만 된다고 믿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한다.

 

이 두 사람은 각자의 입장에서 옳다. 그런데 자신의 입장을 기준으로만 보기 때문에 상대를 이해할 수 없다. 서로가 서로를 이상하게 바라본다. 서로가 쓰는 돈을 아깝다고 느낀다.

 

그나마 이것이 속으로만 생각되고 끝나면 상관이 없다. 문제는 이것이 말이나 글로 표현되기 시작한다. 서로가 서로의 가치를 평가하고 비난하고 조언한다. 가치는 스스로 평가하는 것이어야 하는데, 남의 가치를 자신이 평가 해준다. 해달라고 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리고 서로 충고나 조언이란 명목으로 행한다. 누가 조언을 원한 것도 아닌데, 나서서 한다. 듣고 싶어 하지 않는 조언도 서슴지 않고 한다. 자신의 기준으로 세상을 바라본 후, 그것을 상대에게 맞춰야 한다고 강요한다.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 잘 지내는 것이 행복의 길이라고 주장하고, 다른 사람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것이 행복의 길이라고 주장한다.

 

이 둘은 각자는 맞지만, 서로에게 조언이 되는 순간 틀리게 된다.

 

이 모든 문제는 시간, 노력, 돈 등을 아깝게 여기거나 아깝지 않게 여기는 중심에 분명히 '만족' 이 있고, 이 만족은 당연히 개인적 가치관과 입장 그리고 행복의 방향에 따라 사람마다 정말로 다른 입장임에도 불구하고, 자신만의 입장에서 상대를 판단하는 데서 출발한다.

 

자신의 만족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것, 이것이 가장 큰 문제인 것이다.

 

그 어떤 경우에도 우리는 결코 돈이 아까운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돈을 아까워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야 자신의 주장이 개인적 입장에서 느낀 만족의 문제가 아닌, 마치 돈의 가치라는 객관적 입장에서 평가하고 있다는 식으로 포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상대가 산 제품을 두고 이 제품은 내 맘에 들지 않는다 라고 말해야 옳은데, 그래 봐야 내가 쓸 것인데 왜 너의 마음에 들어야 하느냐 라는 어이없어 하는 말을 들을 것이 뻔하므로, 그것을 돈이 아깝다고 변형해서 표현하는 것이다. 그래야 같은 마음이라고 해도 표현에 따라 어이없어 하는 말을 듣지 않을 수 있다.

 

지금까지는 단지 돈에 대한 예시를 했으나, 사실 이것은 우리가 가치를 매기는 모든 행위,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는 모든 행위, 삶을 통해서 경험하게 되는 모든 것들의 만족도 같은 맥락이다.

 

즉, 우리가 경험하고 느끼고 판단하는 그 모든 것은 오직 개인적 영역에서만 유효하다는 뜻이다. 그래서 그것을 타인에게 얘기하는 것은, 특히 조언이나 충고의 형태를 띠는 것은 모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물론 누군가 판단을 하기가 힘들어서 조언이나 충고를 원할 경우가 있다. 그럴 때는 조심스럽게 자신의 생각을 타인에게 말해줄 수는 있다. 하지만 우리들 대부분은 상대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일단 입 밖으로 낸다. 상대의 가치를 마음대로 평가한다.

 

상대가 소비한 자원의 가치를 자신의 기분으로 마구 평가하여 내뱉고는 금세 잊어 먹는다. 상대가 어떤 기분을 느꼈을 지를 생각도 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자신도 그런 평가를 받고는 속으로 화가 난다.

 

끝없이 서로가 서로를 상처 주고 있는 것이다.

 

인간인 이상, 이것을 하지 않을 수는 없다. 우리가 자신의 것이든, 남의 것이든 무엇인가 끝없이 가치 평가를 하는 것은 거의 본능적이다. 그러니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해도, 그것을 최대한 표현하지 않으려고는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나마 그것이 우리를 좀 더 지혜롭게 살게 해줄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 중에는 매우 근검 절약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돈을 적게 쓰는데 큰 만족을 느끼는 사람들이다. 즉, 돈을 안 써야 만족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이들은 다른 사람들이 돈을 쓰는 것, 그 자체를 비난한다.

 

자신이 돈을 쓰지 않는 만족감을 느끼니, 그런 것이다. 물론 근검절약은 사회적 미덕일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타인을 비난할 근거가 될 수는 없다. 모든 사람이 근검 절약하면 그 나라 경제는 망가진다.

 

술이 몸에 좋지 않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술을 안 먹으면 술집도, 주류회사도, 대리운전 기사도 망한다. 모든 사람이 건강해지면 건강보험공단도, 병원도, 약국도, 건강식품 판매 회사도 망한다.

 

세상은 그것을 구성하는 이치가 있고, 지금까지 모두 각자의 가치를 추구하다 보니 여기까지 온 것이다. 우리들 모두는 그것의 일부를 유용하게 혜택 받고 있다. 아픈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면, 우리가 어떻게 이렇게 높은 의료 기술을 가질 수 있었겠는가?

 

근검절약만 하던 사람이 아프면, 과연 누가 그 병을 고쳐주겠는가? 이때 그 병을 고쳐주는 것은 바로 평소에 자기 돈을 써가면서 스스로의 몸을 망쳤던 사람들이 자신의 소중한 목숨을 걸고 발전시킨 의료기술 덕인 것이다.

 

그러니 타인의 가치 추구에 대해 비난하는 것은 스스로에게도 좋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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