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험담, 뒷담화, 질책

아이루다 2016. 5. 30. 08:06

 

보통 험담이라고 하면, 딱히 그럴만한 이유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다른 감정으로 인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나쁜 소리를 하는 경우를 말한다. 그리고 그 다른 감정은 주로 혐오나 질투이다.

 

그래서 험담은 없는 사실을 억지로 만들거나 아주 작은 문제점을 크게 부풀리는 경우에 쓰인다. 그러다 보니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 대해서 뭔가 좋지 않은 말을 할 때, 그것을 험담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사람들은 험담 대신 뒷담화를 한다.

 

뒷담화는 험담보다는 조금 더 근거가 있다고 믿어진다. 실제로도 험담은 보통 누군가의 동의를 잘 얻지 못하는 반면에, 뒷담화는 그 대화를 하는 사람들끼리는 서로 죽이 잘 맞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이 다른 사람의 험담을 하기 보다는, 뒷담화를 하고 있다고 믿는다. 아니, 뒷담화조차도 잘 인정하지 않고, 그저 있는 사실을 그대로 말할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좀 더 근거가 있을 때 나타나는 질책도 있다. 이것은 주로 상대가 뭔가 확실한 잘못을 했다고 느꼈을 때, 면전에서 하는 행위이다. 물론 상대는 억울할 수 있지만, 이것은 보통 근거도 있고, 보통은 질책을 하는 사람이 당하는 사람에 비해서 우월적 지위를 가졌을 가능성이 크므로, 어쩔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험담에 비해서는 뒷담화가 근거가 있고, 뒷담화에 비해서는 질책이 근거가 있다. 그래서 질책이 좀 더 나아 보인다.

 

하지만 사실 험담이나 뒷담화나 질책은 그리 다를 것은 없다. 다른 사람에 대해서 나쁜 소리를 하는 것은 비슷하니까 말이다. 설령 그것에 대해서 자신과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이 잘 동의해줬다고 해서 근거가 있어지는 것은 아니다. 직원들 몇 명이 모여서 회사 사장에 대해 욕을 했다고 해서 그것이 옳은 것만은 아니란 뜻이다.

 

그래서 이런 식으로 남의 허물을 탓하는 것은 어떤 식으로든 문제를 발생시킨다.

 

아마도 그것의 가장 큰 문제는 실제로 그 사람에게 그런 허물이 존재했든지 아니면 아주 작은 부분이든 간에 그 하나가 그 사람의 평가에 너무 크게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즉, 우리 인간은 모두 장점과 단점을 가지고 있고, 더해서 단점은 어느 순간엔 장점으로 반대로 장점 역시도 어느 순간엔 단점으로 작용하고 마는데, 그것을 특정한 순간만을 기준으로 해서 모두 단점으로써만 간주해버리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게으르다면, 분명히 단점이 되겠지만, 그 게으름으로 인해서 다양하고 편리한 제품들을 개발할 수 있는 것이다. 즉, TV 리모컨이 발명될 수 있었던 이유는, 게으른 사람들 때문이란 뜻이다.

 

물론 게으름은 대부분의 경우엔 단점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사람들은 어떤 사람이 게으르다면, 그 게으름에 대해서 험담을 하거나 뒷담화를 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그들도 안다. 아니, 스스로 인식을 하지는 못하지만, 생각 깊은 곳에서 알고 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의 욕을 하고 나면 마음이 시원하면서도 뭔가 찜찜함을 남는다는 것을 말이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의 허물을 지적을 했기 때문이다. 설령 회사에서 일을 못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그로 인해서 다른 사람들이 일을 잘하는 축에 속하는 장점으로 작용한다. 그 사람이 없어지면, 누군가 또 다른 일을 못하는 사람이 생겨날 수 밖에 없다. 우리 사회는 경쟁 사회이기에 언제나 꼴등이 존재할 수 밖에 없다.

 

그것을 알면서 일을 제일 못하는 사람에 대해서 지적을 하게 되면, 그것으로 인해 어떤 문제가 발생할 수 있음을 본능적으로 아는 것이다. 그 사람이 자신이 될 수 있음을 알고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 부분이 다른 사람의 허물을 지적했을 때 나타나는 두 번째 문제점이다. 하지만 이 문제점은 매우 깊게 숨겨져 있다. 왜냐하면 기본적으로 우리는 누군가의 허물을 지적할 때는, 자신은 결코 그런 허물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믿는다. 그래서 표면적으로는 부정이 된다.

 

하지만 이것은 착각이다. 우리가 누군가에 대해서 못 생겼거나,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과 같은 단점에 대해서 지적을 할 때, 언젠간 그 지적의 손 끝이 자신을 향하게 될 수 있음을 알고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자리에 없는 친구의 뒷담화를 즐기던 사람들은, 그 자리를 떠나는 것을 본능적으로 두려워한다. 자신이 화장실에 갔을 때, 자신에 대한 어떤 대화들이 오고 갈지가 두렵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렇게 다른 사람의 험담을 하거나 뒷담화를 하거나 과도한 질책을 하는 이유는, 앞에서 말했듯이 혐오감이나 혹은 질투심에 의해서 나타난다. 즉, 이것은 정상적인 감정 반응이 아니다. 이것은 사실이나 진실을 가장했지만, 사실 아주 뒤틀린 감정 반응이다.

 

우리가 자신을 높이는 방법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자신을 높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다른 사람들을 낮추는 것이다. 그런데 자신을 높이는 방법은 무척 어렵다. 많은 노력이 필요하고, 불행하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는 주로 후자의 방법을 쓴다. 즉, 남들을 깎아 내리는 것이다. 이것은 쉽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방법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들의 목적과 달리 남을 깎아 내린다고 해서 내가 올라가지는 못한다. 이것이 문제이다. 사실 정말로 잘난 사람은, 다른 사람의 단점에 그다지 관심이 없다.

 

천재는 다른 사람의 어리석음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아니, 사실 관심이 없다. 자신의 머리 속에서 일어나는 많은 아이디어와 영감 등을 생각하기에 다른 사람의 어리석음을 불평하거나 신경 쓸 여력이 없다.

 

무엇인가를 다른 사람과 수준차이 나게 잘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그것을 잘하는지 여부에 별로 관심이 없다.

 

국가대표 축구 선수가 조기 축구에 나갔을 때, 다른 사람들이 축구를 잘하는 것에 그리 관심이 없다. 적당히 뛸 뿐이다. 거기에서 자신의 실력을 다 발휘하면 많은 골을 넣을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거기 사람들을 주눅들게 만들어서 조기 축구회에 나간 두 번째 목적, 즉 인간 관계를 맺는 일이 실패할 수 있기 때문이다.

 

회사에서도 아주 일을 잘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일을 잘하는지 여부에 별로 관심이 없다. 그는 자신이 추진하는 일에 대해서 다양한 각도의 검토를 하고, 문제가 될만한 부분을 최대한 분석하려고 한다. 그래서 만약 그 일을 같이 하는 사람들 중에서 누군가 역량이 부족해서 제대로 맡은 일을 해내지 못하면, 그때는 그 사람 탓을 하는 것이 아니라, 능력이 안 되는 사람을 거기에 배치한 자신의 판단력 부족을 탓하게 된다.

 

정말로 능력 있는 사람들은 자신이 하는 일에 어떤 문제가 생기면 이런 식으로 반응하게 된다.

 

하지만 반대로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은 다르다. 그들은 끝없이 다른 사람의 허물을 들춘다. 왜냐하면 그래야 그들이 자신과 같거나 혹은 자신보다 부족한 존재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야 자신이 더 잘난 존재가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우리들은 안다. 결국 자신이 부족하기 때문에, 자신이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남을 깎아 내려서라도 올라가려고 한다는 것을 말이다. 이미 충분히 올라간 사람들은 위로 올라갈 필요가 없다. 즉, 남을 깎아 내리는 뒤틀린 감정 반응까지 하면서 자신을 높이려고 하지 않는다.

 

그것은 잠시는 시원할지 모르지만, 자신이 남을 험담할수록, 자신이 남을 뒷담화 할수록, 다른 사람들도 자신의 험담과 뒷담화를 할 것이라는 공포심에 사로잡히게 된다.

 

그나마 여기까지도 괜찮다. 진정한 문제는 지금부터 시작된다. 바로 이 공포심이 문제이다.

 

우리는 살면서 어쩔 수 없이 의도하지 않게 실수를 하게 된다. 그런데 만약 그 실수가 하필이면 자신이 평소에 그리도 비웃었던 행동이라면 어떨까?

 

어느 직장에서 일하는 사람이 고객의 주문을 가끔 잘못 받아서 문제를 일으킨다고 가정해보자. 아마도 이 사람은 무능력하다고 낙인이 찍혀서 직장에서 은근히 따돌림을 당하고, 술자리에서 주로 뒷담화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그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신나게 이 사람의 욕을 하던 사람들 중에서, 어느 날 자신도 그런 실수를 저질렀을 때를 생각해보자.

 

사실 실수는 언제든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 단지 너무 자주 일어나면 안 되는 것 뿐이다. 그런데 평소에 실수를 저지르는 사람에 대해서 지나치게 험담을 하고 뒷담화를 하고 질책을 했던 사람은 자신이 같은 실수를 저질렀을 때, 과연 어떻게 반응하게 될까?

 

자신은 인간이기에 그런 실수를 저지를 만 했다고 여길까? 아니면 자신도 자신이 신나게 욕을 하고 비웃었던 그 사람처럼 되었다고 느낄까?

 

물론 이것은 주변 사람들의 반응에 따라 다를 것이다. 그런데 그냥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다른 사람들은 이 사람에 대해서 '평소엔 그렇게 비웃더니, 그 실수를 자기가 저지르네' 라는 시선으로 바라볼 가능성이 높다.

 

아니, 사실은 그냥 안타깝게 바라볼 수도 있다. 하지만 당사자에겐 그것이 안타까움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니라, 비웃음이나 혹은 동정으로 느껴질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의 마음 속에 이미 분노가 가득하고, 실수를 저지른 자신에 대한 짜증이 넘쳐나서 다른 사람들의 반응을 내부에서 뒤틀고 있기 때문이다.

 

이때는 다른 사람들의 그 어떤 위로도 다 비웃음으로 느껴지게 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우리가 다른 사람의 허물을 파서 적나라하게 다 들쳐내게 되면, 우리는 그 순간에는 자신이 좀 더 잘난 존재가 되었다고 느껴질지 모르지만, 그 후로는 자신이 그 사람과 같은 실수를 하게 될까 봐 본능적인 공포심을 느끼게 된다.

 

즉, 남의 허물을 심하게 들추면 들출수록, 그것으로부터 큰 쾌감을 얻으면 얻을수록, 자신이 그 대상이 될 수 있음에 대해서 더욱 더 깊은 공포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서로 비례적이다. 남을 비웃고 즐길수록 자신이 그 대상이 될 수 있음에 대한 공포심이 깊어진다.

 

이것은 평소의 삶을 뒤흔든다. 남의 험담이나 뒷담화를 하지 않았다면 느끼지 않았을 공포를, 자신의 잘남을 증명하기 위해서, 아니 사실은 그것조차도 제대로 되지도 않았고, 단지 잠시 기분이 좋아짐을 위해서 했던 행동으로 인해서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이런 경우엔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 인간은 누구나 이런 공포를 느끼길 원하지 않는다. 자신을 과도하게 긴장시키고 싶어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다른 사람의 실수나 문제점을 강하게 지적하면 지적할수록 결국 그렇게 한 행동의 두려움은 자신에게 몰려오게 된다. 우리는 잘 모르지만, 그것이 정말로 근거 있는 질책이든, 뒷담화이든, 험담이든 사실은 상관없다.

 

누군가에게 대해서 날카롭게 대하면 대할수록, 자신에게도 날카로워질 수 밖에 없다.

 

이것이 바로 긴장이고 스트레스이다. 늘 신경이 칼날처럼 서있다. 그런데 이렇게 살면 행복할까? 자신의 조그만 실수에도 연연해하고, 자신의 완벽함에 집착하면서 사는 삶, 자신이 비웃은 사람들의 모습이 될까 바 늘 조바심을 느끼는 삶이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

 

인간은 행복 하려고 산다. 그런데 행복하지 않게 되었으니 문제가 된다. 근거 있는 질책이나, 확실하고 이성적인 문제점 지적이어도 마찬가지다. 다른 사람의 허물을 이야기 하는 것의 이면엔 늘 그 대상이 자신이 될 수 있음에 대한 공포가 자라난다.

 

사실 험담보다도 뒷담화가 더 하며, 뒷담화보다도 근거 있는 질책이 더 하다. 사람이 이성적이고 합리적일수록 더욱 더 심해진다.

 

왜냐하면 아이러니 하게도 이성적이고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험담을 하고 다니는 사람은 비이성적이라고 불합리적일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근거도 없는 소문을 퍼뜨리고, 다른 사람이 잘 동의도 안 해주는 이야기를 하고 다닌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행동이 가져 올 문제에 대해서 잘 생각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처음부터 그 정도의 논리적 사고가 안되기 때문이다.

 

뒷담화를 하는 사람들은 좀 낫다. 그럼에도 조금 나을 뿐이다. 그리고 정말로 제대로 된 이성과 합리성을 가진 사람은 자신이 다른 사람에 대해서 뒤틀린 감정적 반응을 할수록, 자신이 언젠가는 그 대상이 될 수 있음을 합리적이고 논리적 판단으로 통해 예측 가능하다. 그러니 공포심은 더 커진다.

 

인간은 다양한 성격이 있고, 동일한 상황에 대해서 다양한 반응을 하는 존재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렇게나 다양하기는 하지만, 우리들 공통적인 부분은 하나 존재한다.

 

그것은 바로 행복할수록 타인에게 관대해진다는 점이다. 우리는 행복하면 더 잘 웃고, 타인의 실수에 대해서 좀 덜 신경 쓰게 된다. 음식점에서 점원이 물을 쏟는 실수를 해도 웃으면서 넘길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행복하면 그렇다. 행복하면 험담을 할 필요도, 뒷담화를 할 이유도, 설령 상대가 확실하게 실수를 했더라도 그것을 그냥 넘어가 주거나 혹은 질책이 아닌 충고를 해주는 것으로 끝낼 수 있다.

 

자신이 질책을 하면, 언젠가 그 질책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이 충고를 하면 언젠가 충고를 받을 수 있다. 이것은 정말로 다른 미래이다. 그래서 지금 당장의 행복 자체도 변한다.

 

행복한 사람은 관대해질 수 있기에 더욱 더 행복해질 수 있다. 불행한 사람은 관대해질 수 없기 때문에 더욱 더 불행해진다. 이것은 각각 행복에 대한 선순환과 악순환이다.

 

그렇다면 불행한 사람은 그 불행함을 빠져나올 수 없을까? 불행하면 날카로워지고, 날카로워지면 남의 실수를 그냥 넘기지 못하고, 그렇다 보면 그런 날카로운 반응들이 결국 자신에게 되돌아오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방법이 없을까? 그냥 생각하면 없어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있다. 그것도 쉽다. 그것은 바로 지금 이 순간에 어떤 이유든 간에 타인에게 관대해지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어떤 문제가 생겼다면, 그 문제가 그 사람의 문제가 아니고 내 문제도 일부분 있다는 것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길을 걷다가 위에서 떨어진 벽돌에 맞아서 다쳤다면, 법적으로는 모두 그런 실수를 한 사람의 문제가 맞다. 그럼에도 우리는 우리가 거기를 걸었기 때문에 사고를 당했다는 점을 생각은 하고 살아야 한다. 만약 다른 사람 때문에 아니라, 태풍 때문에 강한 바람이 불어서 뭔가가 날라와 머리에 맞아서 다쳤다면, 이때는 과연 누구를 비난해야 할 것인가?

 

물론 이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이다. 이 말을 적용하면 우리가 문제가 되지 않는 경우는 단 하나도 없다. 태어난 것이 잘못 일수도 있다.

 

그럼에도 이 말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태어난 것이 잘못 일수도 있다. 태어나지 않았다면 겪지 않았을 일을 태어났기에 겪는 것이다. 말은 안되지만, 적어도 우리들 마음 속에는 이것을 남겨 두어야 한다.

 

왜냐하면 이것이 바로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관대해질 수 있는 근거이기 때문이다. 처음엔 힘들 것이다. 내가 불행하고, 내가 힘든데 다른 사람에게 관대해지는 것은 정말로 힘들다. 그럼에도 그 방향에 대해서 희망을 놓지 않아야 한다.

 

그것은 실수를 저지르는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다. 바로 불행한 나를 위해서 그렇다. 내가 행복하고 싶다면, 남에게 관대해져야 한다. 이것을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관대한 것은 나를 위해서 그런 것이지, 그 사람을 위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우리가 남을 돕는다면 그것은 나를 위해서 그런 것이지, 남을 위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심지어 우리가 자식을 낳고 키운다면 그것도 나를 위해서 그러는 것이지 자녀들을 위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우리 인간은 완벽한 이기적 존재이다. 그래서 그 어떤 이타적 행위를 해도 그것은 모두 자신을 위해서 한 일이다. 단지 그 일이 남에게 도움을 줄 때, 우리는 그것을 이타적 행위라고 부를 뿐이다. 이런 행위는 사회의 발전에 도움을 주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권장된다. 이것은 선과 악이 아니라, 필요성에 의한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것을 도덕이라고 부른다.

 

오늘 불행하다면, 오늘 한 번의 친절을 베풀려고 노력하면 된다. 오늘 다른 사람의 실수에 대해서 한 번 더 참아 보려고 노력하면 된다. 내일은 좀 더 나아질 것이다.

 

행복하고 싶다면 해야 하는 일이다. 이것은 돈을 많이 버는 것보다, 해외여행을 떠나는 것보다, 데이트를 하는 것보다, 재미난 영화를 보는 것보다 훨씬 느린 진도를 보이지만, 결국 행복의 문을 여는 가장 궁극적 열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심리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로가 끌리는 이유, 매력  (0) 2016.06.25
고민을 잘 들어주는 사람  (0) 2016.06.14
피해의식  (0) 2016.04.22
혐오감과 연민  (0) 2016.04.09
걱정 다스리기  (0) 2016.03.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