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고민을 잘 들어주는 사람

아이루다 2016. 6. 14. 11:50


 

얼마나 지났을까? 아주 오래 전인 것 같기도 하고, 몇 해 정도 지난 듯 하기도 한데, 일명 행복 전도사라는 직업을 가졌던 한 분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더군다나 자신의 남편과 함께 동반 자살을 했다.

 

행복 전도사, 즉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을지를 알려주는 사람이었고 또한 TV에도 출연했었던 분 같았는데, 그렇게 자살로써 자신의 삶을 마감했다는 뉴스는 당시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과 아이러니를 느끼게 해 준 일이었다.

 

다른 사람의 고민을 들어주고, 그것을 어떻게 받아 들어야 하는지를 알려주며, 삶을 어떻게 행복하게 살 수 있는지에 대해 언제나 밝은 얼굴로 말해주던 사람은, 자신이 안고 있던 어떤 고민을 털어 놓을 곳이 딱히 없었단 말인가? 비록 직업이었지만 말이다.

 

뭐 물론 나중에 밝혀진 자살의 이유로는, 몸의 지병으로 인해 너무 힘들어서 그랬다고 한다. 건강이 행복한 삶을 위한 가장 첫 번째로 중요한 조건이니, 그녀의 불행한 삶만 남아 있는 상황에서 그런 결정을 한 것은, 나름대로 합리적인지도 모르겠다.

 

살아가다 보면, 우리는 가끔 이런 저런 문제를 안고 살아가게 된다. 그것이 자신의 욕심으로 빚어진 것이든, 누군가 주변 사람으로 인해 일어난 것이든, 어쩔 수 없는 상황이든 간에 상관없이 살아가는 동안에 문제는 생겨나고 해결되기를 반복한다. 그런데 생겨난 문제가 쉽게 해결 될 기미가 없을 때, 우리는 결국 고민에 빠진다.

 

이것은 상황에 따라서 걱정이 될 수도 있고, 고민이 될 수도 있으며, 기우가 될 수도 있다. 해결의 난이도에 따라서 그리고 실제로 걱정하던 것이 발생하느냐의 여부에 따라서 나눠지는데, 사실 대부분의 고민들은 별로 필요 없거나 혹은 아예 해결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것들을 마음 속에서 쉽게 없애지 못한다. 뭔가 찜찜한 것처럼 늘 마음 한 구석에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가 행복한 삶을 사는데 꽤나 성가시게 방해가 된다.

 

그래서 우리는 걱정을 덜고자 주변에서 자신의 고민을 털어 놓을만한 사람을 찾게 된다.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자신의 걱정과 고민을 공감해주며, 괜찮은 조언도 해줄 수 있는 사람을 찾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마음의 짐을 조금 덜어 놓을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런 현상은 남녀의 기본적 성향으로 인해서 일반적으로 여자들에게 자주 나타나는 편이다. 남자들은 여자들에 비해서 좀 더 이성적이고, 분석적이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가 강해서 누군가의 걱정과 고민을 들어주는데 부적합한 면이 있다.

 

문제를 분석해달라는 것도 아니고, 해결해 달라는 것도 아니고, 그냥 들어주고 공감 좀 해달라고 말을 하는데, 자꾸 분석하고 해결책을 제시하고, 답답해 하니 말할 마음이 안 나는 것이다. 특히나 남자들 특유의 공감 능력 부족은 말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큰 벽을 느끼게 한다.

 

내가 힘들다고 그리고 왜 힘든지 설명하는데, 자꾸 그리 힘들지 않은 것이라고, 더 힘든 남들 보라고 충고를 해대니 쉽게 말하기가 힘들다. 그것이 어떤 이유이든 간에, 어떤 상황이든 간에 힘드니까 힘들다고 감정적 차원에서 말을 하는데, 그것을 자꾸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려고 하니 서로 잘 안 맞는 것이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누군가의 걱정과 고민을 잘 들어주는 사람은 주로 여자가 더 적합하다. 그리고 이런 특징은 아마도 아이를 주로 키웠던 여자들에게 더욱 좋은 특징이었을 것이다. 아이는 비논리적이고 비이성적이면서 감정적이기에 당연히 여자의 성향이 더 낫다.

 

아무튼 남자들 중에서도 여자의 그런 성향이 있는 사람이 있을 수 있으니, 이것은 반드시 성별의 문제만은 아니다. 단지 여자들에게 좀 더 잘 나타날 수 있는 성향인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고민이 있다고 해도 아무에게나 그것을 말하지는 않는다. 사실 어느 정도는 고정되어 있는 편이다. 즉, 우리는 자신의 걱정과 고민을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을 때, 그것을 할 수 있는 사람과 할 수 없는 사람에 대해서 거의 본능적으로 파악을 하고 있다.

 

물론 그 사람의 신뢰나 그 사람과의 친밀도도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는 때로는 아주 낯선 사람과도 자신의 고민을 이야기 할 수 있다. 즉, 이것은 단지 신뢰나 친밀도만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그리고 이 상황은 사람에 따라서 다른 사람의 걱정과 고민을 잘 들어주는 사람은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그럴 수 밖에 없다. 남녀도 다른데 어떻게 사람마다 그 차이가 없을 수 있겠는가?

 

그래서 사람이 모이는 장소에는 대부분 그런 역할을 맡은 사람이 존재한다. 그것을 명시적으로 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모임이 일정 시간이 지나면 그런 존재는 반드시 정해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역할을 맡은 사람은 주로 인덕을 많이 얻기도 하고 은근히 인기도 많은 편이다.

 

그리고 그런 능력이 사회 전체적으로 증명된 사람을 멘토라고 하기도 한다.

 

아무튼 누군가의 말을 잘 들어주는 것도 꽤나 중요한 능력이다. 그래서 이런 사람을 영어로 '굿 리스너' 라는 용어가 있을 정도이다. 해석하면 말 그대도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이다.

 

그런데 잘 들어준다는 말의 의미가 무엇일까? 즉, '잘', 영어로는 '굿' 에 해당되는 조건은 과연 어떤 것이어야 할까?

 

일단 잘 들어준다는 것에는 자신에 대한 말을 적게 해야 하며, 상대의 말을 자신의 입장이 아니라 상대의 입장에서 들어줘야 하며, 적당히 공감도 해줘야 하며, 자기 생각을 최대한 감춰야 한다. 적절하게 맞장구도 쳐줘야 하고, 아주 가끔은 적당히 질책도 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상대가 울면 같이 울어줄 수 있어야 한다.

 

더군다나 이런 태도가 의도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일어나야 한다. 그러니 이 능력은 생각보다 몹시 갖기 어려운 능력이며, 외모처럼 쉽게 잘 드러나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의 가치를 많이 높여주는 중요한 능력 중 하나이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들이 이런 역할을 맡게 될까? 왜 어떤 사람은 잘 해내고, 어떤 사람은 영 서투를까?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사람이 가져야 할 가장 기본적인 조건은 바로 본인의 행복이다. 즉, 자신이 행복하지 않은 사람은 다른 사람의 고민을 들어주고 싶어도 그럴 수 있는 여력이 없다.

 

설령 성격적으로 타고난 굿 리스너라고 해도 현재 자신의 처지가 영 어려우면, 다른 사람의 고민을 들어 줄 심적 여유가 줄어들게 된다. 그 자신조차도 남에게 고민을 말하고 싶을 텐데, 어떻게 타인의 고민을, 그것도 자신의 고민에 비하면 정말로 별것도 아닌 것들에 대한 얘기를 들어 줄 수 있겠는가?

 

그래서 본인의 여유로움이 가장 중요하다. 그리고 그 여유로움은 바로 본인의 행복함을 통해 만들어 진다.

 

두 번째는 감정적 공감 능력이다. 남자도 잘 들어주는 사람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남자의 한계는 바로 공감 능력에서 드러난다. 상대가 아무리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해서 고민하더라도 들어주면서 그것을 안타까워할 줄 알아야 한다. 최근 소개팅이 잘 안되었다고 속상해 하는 친구의 고민도 진지하게 들어줘야 하는 것이다.

 

고민이란 것이 언제나 중요한 시험에 떨어진 것이나, 부모님의 건강이 급속히 악화되었거나, 남편과 사이가 안 좋아 이혼을 고려 중인 것만은 아니다. 사실을 말하자면, 사람들은 정말로 심각한 고민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지 않는다. 아니 말하지 못한다. 그래서 타인에게 말할 정도의 고민은, 일반적으로 가벼운 축에 속한다.

 

그러니 쉽게 공감할 수 있어야 이것이 가능하다. 안 그러면 고민을 말하는 사람의 고민 내용이 듣다가 화가 날 수도 있다. 남들은 인생의 진지한 고민을 이야기 하는데, 화장이 잘 안받아서 고민이라든가, 최근 살이 조금 찐 것 같아서 고민이라든가 하는 등의 고민 등은 듣다 보면 상대가 한심스러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별 것 아니면서도 중요한 것인데 타인의 고민을 공감은 하되, 무시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이것은 고민을 털어 놓는 사람들로부터 듣는 당사자를 보호하는 능력이다. 왜냐하면 고민들을 듣다가 너무 깊게 공감을 하게 되면, 자신이 그 사람처럼 되어 버리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이다.

 

너무 우울한 영화만 보다가 보면 정말로 우울해지는 것과 같은 현상이다. 사람들의 고민은 기본적으로 어둡다. 그리고 우울하다. 그러니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자주 듣다가는 자신도 모르게 염세적으로 변할 수 있다. 배신 당한 이야기, 바람 핀 이야기, 뒤통수 맞은 이야기, 말도 안 되는 차별, 도대체 왜 그러는 이해가 안가는 사람들 등등 고민 속에 나오는 사람들의 행동들은 화가 나기도 하고, 용납이 되지 않기도 한다.

 

그래서 너무 감정적으로 휩쓸리다가는 자신도 무너질 수 있다. 특히나 자신이 조금 힘든 시기에 평소처럼 그런 고민들을 듣다가 보면 자신이 무너질 수 있다.

 

그런데 정말로 재미있는 것은, 그 무너진 순간에 고민을 말하고 있던 상대는, 자신의 고민을 들어주던 사람의 고민을 결코 공감해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니 못한다. 그냥 저 사람이 오늘 왜 저렇지 라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의 고민을 들어주던 사람은 실제로 자신의 고민이 생겼을 때는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은 그것을 들어 줄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으로 인해 고민을 들어주던 사람은 큰 상처를 받을 수 있다. 남들이 힘들 때 많은 이야기를 들어줬는데, 정작 자신이 힘들 때는 아무도 자신의 말을 들어주지 않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큰 배신감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자기 착각이다. 이미 말했듯 고민을 들어주는 것은 능력이다. 할 수 없는 사람은 하고 싶어도 못한다. 자신은 그 능력이 되기에 지금껏 들어왔던 것이었다.

 

그래서 평소에 타인의 고민을 들어도 그냥 그 순간에만 집중하고 가능하면 빨리 날려버려야 한다. 그래야 자신도 건강하고, 나중에 자신이 힘들 때 괜한 기대를 갖지 않게 된다. 상대가 자신처럼 금세 날려버릴 것이란 것을 안다면 딱히 고민을 말할 필요가 있겠는가?

 

사실 보통 고민을 말하고 듣는 과정은 일종의 감정 청소의 과정일 뿐이기 때문이다.

 

이미 말했듯이 사람들은 진짜 고민은 말하지 않는다. 아니 말하더라도 정말로 신뢰할 수 있는 사람에게만 한다. 왜냐하면 그만큼 무겁기 때문이다. 알려지지 않는 문제는 자신만 감당하면 되지만, 알려진 문제는 타인의 시선과 판단까지 감당해야 한다. 완전히 자신의 편이 아닌 사람들이 안타까움이든 비웃음이든 잘됐다는 식의 반응을 보이면 꽤나 견디기 힘들다.

 

명절날 친척들의 취직이나 결혼에 대한 질문들이 바로 그런 종류이다. 그들은 걱정하는 척 하지만, 사실 그들이 얼마나 걱정하겠는가? 진짜 걱정은 부모님만 해줄 뿐이다.

 

네 번째는 신뢰 있는 성격이다. 즉, 자신의 고민을 말해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지 않을 것 같은 사람들이어야 한다. 이것은 필수적이면서도 필수적이 아닌데, 사실 자신의 고민이 퍼지는 것은 좋지 않지만, 그 고민이 그리 무거운 것이 아니라면, 알려지는 편이 좋을 때도 있기 때문이다.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소리를 내어 하는 기도와 유사하다. 자신의 고민이기도 하겠지만, 이루고 싶은 것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다가 보면, 도움의 손길이 올 가능성도 있다. 즉, 타인의 도움이 필요한 고민들은 알려지는 편이 낫다.

 

즉, 힘든 일이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 예상치 못한 편의를 제공 받을 수도 있다. 또한 남들에게 말할 정도의 고민이라면 딱히 다른 사람들이 알아서 나쁘지 않을 수도 있다. 사실 정말로 신뢰할만한 사람에게 중대한 고민을 털어 놨는데, 그것이 소문으로 퍼지면 그때가 정말로 상처를 받을 때이다.

 

우리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우리는 그런 상처를 받은 경험을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도 했을 것이다. 혹은 의도치 않게 친구의 비밀을 소문 낸 당사자가 되었을 수도 있다. 아무튼 어린 시절을 통해 경험했던 기억으로 인해서, 자신의 진짜 문제나 고민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결코 말하지 않게 된 것이다.

 

그러니 누군가에게 고민을 말할 때는 이미 소문이 나도 크게 문제가 될 여지가 없는 것들만 말하게 된다. 따라서 자신의 고민을 들어주는 사람이 위에서 나열했던 특징들, 잘 들어주고, 순간 공감을 잘해주고, 금세 잊어먹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자신 조차도 고민을 말한 것을 잊기도 한다.

 

아무튼 만약 주변에 가끔이라도 자신의 고민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이 하나쯤 있다면, 평소에 그 사람에게 감사하게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그들은 꽤나 힘든 역할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 고민은 주로 우울한 내용이 많기 때문에, 그것에 자주 노출되는 것은 개인에게 결코 긍정적인 일은 아니다.

 

그 사람은 매일 다양한 사람들에게서 다양한 고민을 듣고도 자신의 중심이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다. 물론 기본적으로 행복하게 살고 선한 성격일 가능성이 높다. 질투심도 거의 없고 공감 능력도 뛰어난 편이니까 말이다.

 

단지 고민을 들어주는 사람이 착각하지 말아야 할 점은, 자신이 타인의 고민을 잘 들어주면서 잘 공감하고, 걱정해주고, 같이 슬퍼해 줄 때, 자신이 어떤 이득도 추구하지 않고 타인에게 도움을 주는 이타적인 성향이라고 판단할 수 있는데, 결코 그것은 아니다.

 

사실 고민을 들어주는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아주 큰 이득을 얻고 있다. 그것은 바로 타인의 불행한 이야기를 통해서 상대적 행복을 얻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친구에게 문제를 설명해주는 학생과 비슷한데, 물론 설명을 들은 학생은 도움이 되었겠지만, 사실 이때 정말로 큰 이득을 얻는 것은 바로 설명을 해주는 학생이다. 그 학생을 설명을 해주면서 그 문제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정확하게 알게 된다. 원래 설명하려면 제대로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몰랐던 것도 설명을 하다가 이해를 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

 

고민을 들어주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수 많은 고민거리들을 듣다가 보면 자신의 문제점도 발견할 수 있고, 불행한 상대와 비교되는 상대적 행복도 듬뿍 얻을 수 있다. 그래서 그런 처지가 아닐 수 있는 자신의 삶에 감사하게 될 수 있다. 이것은 바로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이 되어 준다.

 

더군다나 좋은 사람이란 평가도 받고, 다양한 사람들과 일반적인 관계보다는 좀 더 깊은 관계를 맺을 수도 있고, 그들을 통해서 좀 더 행복한 사람이 될 수도 있다.

 

그러니 다른 사람들의 우울한 고민 얘기 듣는다고 해서 결코 손해를 보는 것이 아니다. 사실 진정한 이득은 바로 고민을 들어주는 사람이 얻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이 능력은 눈에 잘 안 띄지만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정말로 중요한 능력 중 하나이다.

 

아무나 고민을 들어줄 수는 없지만, 자신을 좀 더 굿 리스너로 만들기 위해 노력해보는 것은 나름 괜찮다. 이것을 통해서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계기도 되고, 좋은 평가도 받을 수 있고, 행복해질 수도 있다.

 

행복하고 싶다면 최대한 자신의 입을 막고 상대의 말을 들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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