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알아서 해주길 바라는 마음

아이루다 2016. 7. 8. 08:17


'성의 있는 태도'

 

이 말은 우리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가능하다면 상대에게 바라는 것 중 하나로, 이 태도의 유무로 인해서 상대가 나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판별할 수 있는 유력한 근거 중 하나이다.

 

그 이유는 바로, 인간은 원래 말은 쉽고 행동은 어렵기 때문이다. 상대의 진심을 알고 싶을 때는 말은 그다지 의미가 없다. 상대가 나에게 어떤 행동을 할 때, 어떤 태도로 그것을 하는지가 훨씬 중요하다.

 

입으로는 정말로 하고 싶다고 하지만 정작 실제로는 무성의한 태도로 일관하는 모습을 보면, 그 말을 믿기는 힘들다. 반면에 말은 없지만 충분히 성의 있는 태도를 보이면, 그것은 천 마디의 말보다도 훨씬 더 진실되게 느껴진다. 사실 무성의하고 억지로 하는 듯한 태도는 아예 안 하는 것이 낫다.

 

원래 '성의' 라는 단어에 쓰인 한문 '誠' 자 자체가 바로 '정성' 혹은 '참된'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러니 성의는 말 자체가 바로 정성스럽고 진실된 마음인 것이다.

 

'알아서 해주길 바라는 마음'

 

이 말 역시도 상대에게 바라는 것 중 하나이며, 성의 있는 태도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누군가 우리 자신을 의미 있는 존재로 생각하고 귀하게 여긴다면, 당연히 마음 씀씀이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마음 씀씀이라고 한다면, 무엇보다도 상대가 무엇인가를 요구하기 전에 그것을 이미 짐작하고 알아서 해주는 것만큼 확실한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사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입 밖으로 꺼내기도 전에 상대가 이미 그것을 예상해서 해준다면, 그것이야 말로 자신에 대한 상대의 진정한 성의 있는 태도라고도 할 수 있다.

 

실제로도 상대가 나를 더 잘 알고, 나에게 관심이 있을수록 알아서 해주는 것은 늘어날 수 밖에 없다. 반면에 상대가 나에 대해서 잘 모르고, 나에게 관심이 없다면 알아서 해줄 수 있는 것들은 당연히 줄어든다. 더해서 설령 뭔가 알아서 해줬다고 해도 그것은 우리가 원한 것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어서 생일 선물로 가방을 받고 싶다고 생각해서 넌지시 그 뜻을 말했는데, 상대가 기능성이 아주 좋은 등산 가방을 사왔다면, 좋아하기 보다는 화를 내게 될지도 모른다. 이럴 때는 가방의 가격이 문제가 아니다. 누가 등산 가방을 평상시에 들고 다닐 수 있겠는가?

 

그런데 과연 이 심리는 온전히 정당한 것일까?

 

사실 인간 심리에 대한 정당성을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럼에도 이것을 생각해봐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상대에게 뭔가 알아서 해주길 바라는 마음이 오직 자신을 잘 알고, 자신에 대해 관심이 있어야 하기 때문일까에 대한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이 의문의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말한 겉으로만 들어난 심리만을 가지고는 부족하다. 우리는 좀 더 깊은 심리를 살펴 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렇게 보다가 보면, 우리가 상대가 알아서 해주길 바라는 마음 중에는 스스로 주장하는, 나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것 이외에 숨겨져서 스스로도 잘 인식하지 못하는 이기적 심리가 존재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본인이 인식하지 못하든 상관없이 말이다.

 

모든 인간관계는 기본적으로 주고 받는 관계이다. 관계 중 가장 밀접한 것으로 알려진 부부나 부모와 자식간에도 마찬가지다. 물론 거기엔 사랑, 존경, 따뜻함, 관심 등등, 수 많은 좋은 감정들이 있지만, 모든 감정의 기반엔 바로 주고 받는 이득 혹은 행복이 숨겨져 있다.

 

원래 모든 인간관계 중 한쪽만 이득을 보는 관계는 무조건 깨지게 되어 있다. 부부든 부모와 자식관계이든 마찬가지다. 끝없이 돈을 뜯어가는 부모나 자식은 천륜이 아니라 웬수이다. 부부는 따로 설명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주고 받는 관계에서 반드시 발생하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이 바로 받을 때 생기는 '빚'이다. 물론 이 빚은 물질적인 것만은 아니다. 사실 심리적인 경우도 많다.

 

흔한 예로, 옆집에서 떡을 했다고 해서 가져다 주면, 그 빈 그릇을 돌려줄 때, 그냥 돌려주지 않는다. 거기에 간단히 라도 먹을 것을 채워서 돌려주는 것이다. 물론 처음 떡을 준 사람이 그것을 바란 것은 아니다. 하지만 돌려주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아주 작은 빚이라도 그것을 갚는 것이 마음 편하다.

 

이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라서, 우리는 이런 마음 씀씀이를 '인정' 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리고 이런 빚에 대한 이런 심리는 이웃만이 아니라 모든 관계에서 동일하게 발생한다. 그래서 그리 친하지 않은 상대가 고가의 선물을 해오면, 좋기 보다는 부담스러움을 느낀다. 그리고 이 부담스러움이 바로 빚을 진 사람에게 느껴지는 심리적 압박이다.

 

그런데 원래 선물은 상대가 나에게 선심을 쓰는 행위이다. 즉, 내가 바란 것도 아니고, 나하고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오직 상대의 의도이다. 그런데도 그것이 필요는 없을지라도 부담스러움을 느끼는 것은 사실 조금 이상한 것이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부담을 느끼는 이유는, 내가 전혀 원하지 않은 것을 받을 때 조차도 빚을 진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즉, 세상에는 공짜라 없다는 말이다. 그래서 그냥 뭔가를 받는 것은, 그것을 원하든 원하지 않았던 어떤 식으로든 나중에 갚아야 할 빚이 되고 만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이렇게 누군가에게 빚진 상태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중에 상대가 어떤 잘못을 했을 때, 그것에 대해서 제대로 따지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혹은 상대가 무리한 요구를 해왔을 때, 그것을 단칼에 거절하기도 힘들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뇌물을 주고, 투표를 앞두고는 돈 봉투를 돌리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말하고 상대가 그것을 들어주는 것과, 자신이 말을 하지 않았는데도 상대가 알아서 그것을 들어주는 것에서 각자를 통해 발생하는 빚의 무게는 결코 비슷한 수준이 아니다.

 

전자는 당연히 온전히 '빚' 이 된다. 친구에게 받고 싶은 생일 선물을 말해서 받았다면, 반드시 그 친구 생일에 참석해서 상대가 원하는 선물을 사줘야 한다. 이것을 하지 못하면 왕 싸가지가 되고 만다.

 

후자도 빚이긴 하지만, 조금 성격이 다르다. 말 그대로 상대의 성의이기에 그 사람의 생일에 안 갈수도 있고, 자기 마음대로 선물을 줄 수도 있다. 즉, 그것은 상대처럼 우리 자신의 성의이기에, 어떤 것을 줘도 상관없다. 설령 상대가 전혀 원하지 않는 것을 사줬다고 해도 그것은 단지 센스 부족일 뿐이다.

 

사실 조금 뻔뻔하다면, 받고 끝내는 경우도 많다. 그리고 이런 성격일수록 알아서 해주길 바란다.


이렇듯이 상대가 뭔가를 알아서 해줬다면, 우리가 느끼는 마음의 빚은 훨씬 가볍게 된다. 그러니 누군들 원하는 것이 있을 때, 자신이 부탁하기 보다는 당연히 상대가 알아서 해주길 바라지 않겠는가?


그리고 사실 이 두 가지 태도는 동일하다. 우리가 뭔가 원하는 것이 있고, 그것을 상대가 해줬다는 점은 온전히 같다. 단지 그것을 우리가 부탁해서 해줬느냐, 상대가 미리 짐작해서 해줬느냐의 차이만 날 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흔히 이 두 가지 입장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알아서 해주는 것을 성의 있는 태도와 같은 마음이라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사실 정확히 말하면, 이 둘은 서로 아예 성격이 다르다.


혹시라도 이것이 같으려면, 상대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알아서 해주지 않을 때, 상대에 대한 그 어떤 비난도 해서는 안된다. 당연히 실망하는 마음도 없어야 한다. 오직 그럴 경우에만 같다.

 

일반적으로 성의 있는 태도는 오직 상대의 의지이다. 즉, 그것은 온전히 상대의 심리이며, 상대의 마음이며, 상대의 생각이다. 우리는 그것을 바랄 수도 있고, 그것을 요구할 수도 있지만, 그것을 실제로 결정하고 행하는 것은 상대이다.

 

반면에 알아서 해주길 바라는 마음은, 상대의 심리가 아니다. 상대의 마음도 아니고, 상대의 생각도 아니다. 그것은 오직 나의 마음이며 생각이며 요구이다. 내가 상대에게 원하는 것이다.

 

하지만 비슷하게도 우리는 그것을 바랄 수도 있고, 요구할 수도 있다. 그리고 실제로 그것을 결정하고 행하는 것도 상대이다. 그러니 이 둘이 마치 같은 것처럼 느껴진다.

 

상대는 나에게 자신의 마음대로 성의를 표현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상대의 성의를 근거로 상대를 판단한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성의를 보여라' 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하지만 흔히 이런 경우는 그저 상대보다 갑의 위치에 있을 때 하는 요구이다. 즉, 성의라는 말을 썼지만, 사실상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서 알아서 해주길 바라는 마음인 것이다.

 

혹은 무성의하다고 책망하기도 한다. 이것 역시도 기대치에 부흥하지 못하는 상대를 질책하거나 혹은 피해의식을 느끼고 그것을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과정에서 나오는 말이다.

 

성의에 대한 이 두 가지 입장은 모두 성의 그 자체의 의미를 퇴색시키는 말이다. 다른 말로 하면, 나에게 더 진실해야 한다고 강요하는 꼴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이것을 상대에게 원할 수 있을까?

 

쉽게 말해서 엎드려서 절 받기라는 뜻이다. 설령 강요를 해서 상대가 성의 있어 보이는 태도를 보였다고 해서 정말로 진정한 의미의 성의가 될까? 당연히 아니다. 성의는 오직 그 상대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이다. 반면에 알아서 해주길 바라는 마음에는 상대의 진심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알아서 해주길 바라는 것에는 그저 그 결과만 얻을 수 있으면 된다. 심지어 상대가 짜증을 참고 하든, 상대가 하기 싫은데 억지로 하든, 상대가 어떤 명백한 목적을 가지고 하든 상관이 없다. 그저 원하는 것만 얻었다면 그것으로 끝이다.

 

그리고 더해서 자신이 상대가 원하는 것을 가지고 있을 때, 그것을 미끼로 해서 상대가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해주길 적극적으로 바라기도 한다. 그리고는 나중에 상대가 왜 자신이 이렇게까지 했는데 자신이 원하는 것을 주지 않는지 따지면, 당신이 스스로 원해서 한 것인데 왜 그러냐고 되 묻는다. 즉, 상대의 행위를 성의라고 강제로 해석한다.

 

어떤 여자가 밤 늦은 시간에 남자에게 전화를 해서 비도 오고, 택시도 안 잡힌다고 하소연을 한다. 남자는 기다려보라고 한다. 택시가 올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여자는 통화가 지속될수록 점점 더 짜증을 낸다. 택시가 안 잡힌다고 한다. 무섭다고 한다.

 

결국 그러다가 여자는 화를 내고는 전화를 끊는다. 남자는 자다가 일어났지만 짜증내지 않고, 택시가 곧 올 것이라고 위로도 하고, 졸리지만 여자의 투정을 들어주기도 했지만, 결국 상대에게 기분 나쁜 소리만 잔뜩 듣고 전화가 끊겼다. 더 안 좋은 것은 잠이 깨버린 것이다.

 

여기에서 알아서 해주길 바라는 심리가 극명하게 나타난다. 여자는 남자가 차를 끌고 자신을 데리러 오길 바란 것이다. 그런데 사실 여자 역시도 그것이 좀 무리한 것임을 안다. 만약 자신이 그것을 요구하게 되면 그것은 꽤나 큰 빚이 생기는 것이다. 그러니 그런 말을 하기가 많이 꺼려져서 간접적으로 설명했는데 남자는 모른 척 하고 있는 것이다.

 

여자는 그래서 남자가 생각만큼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여긴다. 성의가 없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바란 그 심리는 어디에다 다 파묻어 두고는, 오직 비 오는 늦은 밤에 택시가 안 잡혀서 두려운 자신을 그냥 뒀다는 생각만 한다. 사랑한다면,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여자는 자신은 남자에게 와 달라고 한 것도 아니고, 그냥 무서워서 대화를 하고 싶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직접적으로 와달라고 말하지 않은 이유는, 빚을 지는 것이 싫어가 아니고 오직 미안해서 그렇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남자가 차를 끌고 오겠다고 하다면 말렸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잠시 생각해보니 정말로 그랬을지도 모른다고 생각이 언뜻 스친다. 왜냐하면 자신은 남자와는 달리, 상대를 진정으로 아끼고 사랑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단지 사랑하는 마음과 성의에 대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남자가 한없이 원망스럽다. 결국 남자는 자다 일어나 여자를 사랑하지 않고 성의도 없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사실 이때 여자는 남자가 좀 짜증이 났더라도 차를 끌고 와서 자신을 태워주고 들어갔다면, 남자가 좀 툴툴거려도 참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원래 알아서 해주길 바라는 것은 그 목적만 달성하면 되기 때문이다. 물론 남자가 너무 툴툴거린다면 당연히 '그렇게 툴툴거릴 거면 왜 왔어' 라고 따지겠지만 말이다.

 

이런 일은 연인관계에서 아주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그리고 늘 사랑하는 마음과 성의 있는 태도의 증거로써 활용이 된다.

 

하지만 이것은 아주 큰 착각이다. 정말로 상대를 사랑한다면, 아니 모든 제대로 된 관계라면, 알아서 해주길 바라는 마음 자체를 가져서는 안 된다. 빚을 졌다면 갚아야 한다. 그것을 대충 넘기려 하는 것은 완전히 자기만을 위하는 이기적 심리이다.

 

우리가 알아서 해주길 바라는 마음을 가져야 할 곳은 오직 일을 할 때뿐이다. 협업을 할 때 서로 각자가 맡은 부분을 알아서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서로의 역할이 어느 정도 고정적으로 정해졌을 때, 알아서 해주길 바라는 것이 가능하다. 그것은 빚이 아니다. 그것은 일이 되게 하기 위해서는 그래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보통의 인간관계에서는 이렇게 정해진 역할은 없다. 누군가는 선물을 하는 역할, 누군가는 가정 일을 하는 역할, 누군가는 운전을 하는 역할, 누군가는 육아를 하는 역할, 그런 것은 없다. 그러니 그저 서로가 서로를 위해 더 잘할 수 있도록 노력하면서 사는 수 밖에 없다.

 

모든 인간관계의 진리는 하나뿐이다. 성의 있는 태도를 원한다면 스스로 성의 있어야 한다. 진실한 사람을 얻고 싶다면, 스스로 진실해져야 한다.

 




'심리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부분의 비판은 질투심에서 시작된다  (0) 2016.08.07
착한 사람들이 착한 이유  (0) 2016.08.02
서로가 끌리는 이유, 매력  (0) 2016.06.25
고민을 잘 들어주는 사람  (0) 2016.06.14
험담, 뒷담화, 질책  (0) 2016.05.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