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걱정 다스리기

아이루다 2016. 3. 25. 09:17


 

보통 사람들의 마음을 어둡게 만드는 것은 두 가지이다. 그 하나는 후회이고, 다른 하나는 걱정이다. 그리고 이 두 개는 언제나 우리들 머리 속에 존재하고 있다.

 

그런데 살다가 보면, 후회도 걱정도 많이 안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우리는 이런 순간을 '행복하다' 라고 한다. 즉, 머리 속에 후회와 걱정에 대한 별 다른 생각이 들지 않을 때, 우리는 행복하다. 아니, 정확히 말해서, 행복한 상태가 되면, 같은 후회와 걱정은 생각도 안 나고, 설령 생각난다고 해도 크게 느껴지지도 않는다.

 

하지만 반대로 불행한 상태에 놓이면, 후회와 걱정은 훨씬 커져버린다. 그래서 우리는 반드시 행복해져야 한다. 행복하지 못하면 후회와 걱정에 눌려서 삶이 망가져버릴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는 도대체 후회와 걱정에서 벗어날 길은 없는 것일까? 이 중에서 후회는 지난 번에 다룰 기회가 있었으니, 오늘은 걱정에 대해서 생각해보기로 하자.

 

후회는 과거에 일어난 사건에 대한 감정이다. 반면에 걱정은 미래에 일어날 사건에 대한 감정이다. 그래서 이 둘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이 둘 중에서 후회가 그나마 다스리기가 쉽다. 왜냐하면 이미 일어나서 고정되었기 때문에 사실상 할 수 있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받아들이면 된다. 미련을 버리면 된다. 그나마 노력을 해야 한다면, 과거의 후회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노력하거나, 과거로 인해 틀어진 현재를 고치려고 노력하고 살면 된다.

 

그런데 걱정은 이렇게 단순히 해결이 안 된다. 걱정은 미래에 일어날 사건이며, 아직 고정되지 않은 사건이다. 거기엔 오직 불확실한 가능성만이 존재한다. 그래서 걱정은 다루기가 좀 더 어렵다.

 

물론 걱정은 그만의 장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걱정되는 일이 실제로 일어나지 않을 수 있다는 가능성이 있다는 긍정적인 면이다. 하지만 걱정의 본질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더해서 고정할 방법도 없다는 점이다. 그것이 걱정의 정체이다. 결코 할 수 없는 영역인 것이다. 우리는 할 수 있는 일은 걱정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과연 걱정을 어떻게 바라봐야 좋을까? 우리는 평생 살아가는 동안 걱정을 하고 후회를 하면서 결국 불행함을 경험하게 되는데, 이런 삶의 고리를 끊을 방법은 없을까?

 

결론적으로 말해서 '없다' 아니, 있는데 실행이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쉽게 포기가 안 된다. 좀 덜 걱정하고 살아가고 싶기 때문이다. 그래서 걱정을 좀 더 이해해 보도록 하자.

 

걱정은 크게 세 가지 종류로 나뉜다.

 

첫 번째는 걱정이 되어서 노력을 하게 되면, 상황에 따라서 그 일이 벌어지지 않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즉, 노력 여부에 따라서 걱정되는 일 자체가 발생되지 않게 하거나, 혹은 발생되더라도 그 피해가 최소화 되게 할 수 있다.

 

사실 인간의 대부분의 걱정은 여기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있다. 과연 그 노력 여부가 어디까지 해야 하는지에 대한 부분이다. 걱정이 되는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목숨을 내놔야 한다면, 그것을 노력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목숨을 내 놓는 노력이란 과연 어느 정도일까? 이것을 결정하는 것이 큰 문제이다.

 

두 번째는 아무리 걱정을 해도 해결이 불가능한 일이다. 이런 일들은 참 많다. 가장 흔한 예가 바로 죽음이다. 우리는 평생 죽음을 걱정하면서 살지만, 평소엔 그것을 잊은 듯 행동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늘 죽음의 공포가 자리잡고 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시체를 보거나 누군가 크게 다친 장면을 보게 되면 죽음이 떠올라서 기분이 나빠지게 된다. 이런 해결 불가능한 걱정은 사실 후회와 매우 유사하다. 어쩔 수 없다는 점에서 과거에 일어난 일과 비슷하다. 그러니 받아들이거나 그냥 미련을 갖지 않는 것이 최선이다.

 

세 번째는 아무런 쓸데없는 걱정이다. 이 걱정은 마치 두 번째 걱정과 유사하지만,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우리는 죽을 걱정을 하는 것을 쓸데없는 걱정이라고는 안 한다. 단지 해도 소용없음을 알 뿐이다. 반면에 쓸데없는 걱정은, 사실 그 일이 일어나도 별다른 영향이 없는 일을 걱정하는 것이다.

 

잘못된 예측, 어리석은 판단, 현명하지 못한 계산법 등이 그 이유가 된다. 어느 날 갑자기 속이 좀 더부룩해졌는데, 그것을 암에 걸렸을 지 모른다고 걱정을 하는 것이다. 사실 암에 걸렸을 수도 있다. 하지만 자신이 의사도 아니면서 속이 좋지 않을 수 있는 수 천 가지 다른 원인 중에서 최악인 암을 예상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그리고 그리도 걱정이 되면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으면 된다. 하지만 그마저도 잘 하지 않는다. 다음날 괜찮아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며칠 후 또 그런 증상이 나타나면 또 걱정을 한다.

 

이것은 일종의 염려증이다. 건강 염려증이라고도 한다.

 

그래서 이 걱정은 다스릴 필요가 있다. 어두운 밤은 누구나 무섭다. 그런데 그 무서움이 사실은 거의 맹목적이란 것을 이해해야 한다. 그래서 그 두려움으로부터 최대한 벗어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두 번째 걱정은 후회처럼 다루고, 세 번째 걱정은 이성적으로 다루면 된다. 물론 그렇다고 그것들이 해결될 것은 아니지만, 더 이상 다른 방법도 없다. 그리고 우리가 주의 깊게 봐야 할 것은 바로 첫 번째 걱정이다. 즉, 노력에 따라 다른 결과를 낼 수 있는 것들에 대한 걱정이다.

 

앞에서 잠깐 언급했지만, 이 걱정을 잘 다루기 위해서는 과연 어디까지 노력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와 도대체 노력을 하면 해결 가능하긴 한 것인가를 판단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노력의 난이도가 너무 높고, 설령 다른 사람들은 해낼 수 있어도 그 자신은 같은 노력을 해도 해낼 수 없다면, 그것은 두 번째 해결 불가능한 걱정으로 분류되어야 한다.

 

그런데 사실 이것을 판단하는 일이 가장 어렵다. 그럼에도 만약 이것만 제대로 판단해낼 수 있다면, 걱정은 그다지 큰 문제가 아니다. 왜냐하면 할 수 없는 일들은 받아들이고, 할 수 있는 일을 노력해서 하면 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우리는 우리 자신이 얼마나 노력할 수 있는지를 알지 못한다는 점과 또한 노력해도 그것이 정말 이뤄질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이 없다는 점이 문제이다.

 

이 중에서 우리 각자는 얼마나 노력할 수 있을지를 생각해보자. 이것은 판단하기 어려워 보이지만, 생각보다 판단하기는 그다지 어렵지 않다.

 

말 장난 같지만, 우리는 각자 노력할 수 있는 만큼 노력하게 되어 있다. 이것은 이미 고정되어 있다. 사람의 성격은 대부분 결정되어 있기 때문에, 아주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모든 사람들은 각자 정해진 노력을 하고 산다. 이것을 마치 어떤 의지가 있어서 좀 더 노력한다고 믿는 것은 착각이다. 노력을 하는 것은 노력할 수 없다.

 

모든 사람에게 의지는 이미 고정되어 있다. 그것은 DNA에 새겨져 있고, 유아기에 이미 결정되었다. 그러니 지금까지 살아온 삶이 바로 그 노력하는 능력이 최고로 발휘된 결과이다.

 

현재를 불만족스러워 하는 것에는, 과거 자신의 노력하지 않았던 시간에 대한 후회가 가득 채워져 있겠지만, 과거로 돌아가면 다시 동일한 일을 반복할 뿐이다. 그럼에도 안 그럴 것 같은 착각이 드는 이유는, 지금 현재 자신을 과거로 보내기 때문이다. 지금의 자신이라면 노력할 것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거에는 그냥 과거의 내가 존재할 뿐이다.

 

아무튼 그래서 정말로 중요한 것은 바로 노력이 아니다. 노력은 결정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이 이뤄질 수 있느냐를 결정하는 것은 바로 능력과 운이다. 그런데 능력 역시도 노력과 같다. 이미 결정되어 있다. 백 미터를 아무리 빨리 뛰려고 해도 이미 능력과 노력은 결정되어 있다. 그래서 늘 같은 시간이 소요된다.

 

하지만 운은 다르다. 운은 변화된다. 문제는 우리가 운을 바란다고 해서 그것이 우리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란 점이다.

 

그래서 사실 해결 가능한 걱정에 대해서도 우리가 별로 할 것이 없다. 그냥 두면 알아서 일어나게 되어 있다. 그렇다고 해도 걱정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뭔가 조금이라도 나아지고 싶다.  걱정을 해결할 뭔가 비법은 전혀 없을까?

 

걱정을 해결할 일반적 수준의 비법은 없지만, 걱정을 다룰 다른 방법은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걱정을 아예 처음부터 만들지 않는 것이다. 특히 첫 번째 종류의 걱정, 많은 사람들이 평생 안고 가는 그 걱정들은 만들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이 세상에서 사람들이 매일 각자 하고 사는 일들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하고 싶은 일이고 다른 하나는 해야 할 일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 중에서 보통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열정도 생기고, 삶의 활력도 있으며, 행복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고 싶은 일의 결과는 어떨까? 우리는 하고 싶은 일이 제대로 되지 못했을 때,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그냥 최선을 다했으니 결과가 별로라도 그냥 받아들일까? 아니면 하지 못해서 깊은 절망감을 느끼게 될까?

 

세계 챔피언을 꿈꾸면서 10년을 운동한 한 복서가 챔피언 결정 전에서 패했을 때, 어떤 기분을 느낄까? 너무도 되고 싶어서 10년을 피나는 노력을 해왔는데, 패배 후 최선을 다했다는 것으로 만족할 수 있을까? 아마도 힘들 것 같다.

 

하고 싶은 일이든 해야 할 일이든 간에, 그 결과가 좋게 나와야 할수록 지금 이 순간 무엇이 늘어날까? 그것이 바로 걱정이다. 우리는 잘해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걱정을 한다. 잘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 중에서 능력과 노력은 결정되었고, 오직 운만 미결정된 상태이기 때문에, 뭔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러니 늘어나는 것은 걱정뿐이다.

 

반대로 그 결과가 잘나오면 좋지만, 안 나와도 별 상관없는 일이라면 어떨까? 그것이 걱정이 될까? 하지만 이런 일은 결코 하고 싶은 일이라고 하지 않는다. 사실 이런 일은 대부분 해야 할 일에 속한다.

 

조금 정리를 해보자.

 

하고 싶은 일이 생기는 것은 행복을 위해서 좋다. 하지만 하고 싶은 일에서 어느 정도의 결과를 원한다면 걱정은 필수적으로 일어나게 된다. 잘되길 바라면 바랄 수록 더욱 더 그렇다.

 

해야 할 일 중에서도 반드시 제대로 해야 할 일들이 있다. 그것들에 대한 걱정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해야 할 일 중에서 반드시 제대로 되지 않아도 되는 일들이 있다. 이런 일들은 그저 하고 살면 된다. 그런데 이러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해도 되고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럴 수도 있다.

 

걱정 없이 살고 싶다면,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으로 채우면 된다. 물론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는 살아가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이미 생존 본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아도 그런 것들은 자동적으로 하게 된다.

 

배가 고프면 아무리 게을러도 밥을 먹는다. 졸이면 잔다. 배가 너무 아프면 뛰게 된다. 이것들은 강렬한 욕구이며 해결하면 크게 행복해지기도 한다.

 

그래서 사는 것은 쉽다. 그러면 살아가면서 나머지 시간들은 무엇을 할까?

 

일단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런데 그 결과가 걱정이 된다. 잘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실 정확히 말해서 이런 경우는 하고 싶은 일이 아니다. 잘하고 싶은 일이다. 잘하고 싶은 일은 욕망의 만족에 해당된다. 하고 싶은 일은 행복과 열정이지만, 잘하고 싶은 일은 단지 욕망이다.

 

우리는 남들보다 똥을 잘 싸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냥 똥을 싼다. 물론 건강한 똥을 싸는 것은 좋지만, 똥싸는 자세가 남다르거나, 똥의 크기가 큰 것을 자랑하고 싶어서 사진을 찍어서 공유하지는 않는다.

 

이런 욕구는 순수한 그 자체를 원하는 것이다. 하지만 욕망은 그것으로 인해서 자신의 잘남을 인정받고자 하는 마음에서 발생한다. 그러니 하고 싶다는 것은 하는 것 자체가 아닌, 해낸 후 자신의 모습을 자랑스러워 하는 것을 원하는 것이다. 이러니 걱정이 안될 수 없다. 또한 원하는 대로 안되었을 때, 절망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하고 싶다는 생각에 한껏 기대치를 품고 했는데, 결과가 안 좋으면, 노력도 다 날라가고, 남들에게 자랑할 기회도 없어진다. 누가 이것을 참아낼 수 있을까? 그러니 하기 전에 늘 걱정이 생긴다. 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잘 생각해야 한다. 하고 싶다고 느끼는 일 중에서 걱정되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이 있는지 생각해야 한다. 걱정이 된다면,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이 아니다. 그냥 잘나고 싶은 일이다. 또한 반드시 그 일을 해야 할 필요도 없다. 아무거나 잘해서 인정받을 수 있다면 무슨 일이든 그 대상이 될 수 있다.

 

다음으로 해야 할 일을 생각해보자. 해야 할 일은 그냥 해야 할 일이다. 그리고 그 중에서는 반드시 해야 할 일들이 있다. 이것들은 걱정을 하든 안 하든 자동적으로 하게 된다. 사실 걱정 자체도 해야 할 일에 포함이 된다고 생각해야 한다.

 

이것은 일정 시간이 지나면 배가 고파지는 것과 같다. 공복감의 고통은 당연한 것이다. 그것이 있기에 밥을 먹으려고 노력하게 된다. 회사에서 잘리면 다음 직장을 잡을 때까지 걱정이 안 되는 것이 이상하다. 만약 걱정이 안되면 취직을 하려고 하지 않게 될 것이다. 그러니 자연스럽다. 걱정이 되면 하고, 안되면 안 하게 된다. 그래서 그냥 두면 된다.


다행이 이런 일은 그리 많지 않다. 보통 건강과 돈이 주로 여기에 관련된다. 건강과 돈은 사실 생존에 너무 지대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결론을 내보자. 걱정 없이 살고 싶다면, 첫째로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을 찾아야 한다. 하는 과정에 행복하고 결과의 성공 여부는 상관없는 일을 찾아야 한다. 둘째는 가능하다면 해야 할 일을 선택적이 상황으로 만들어야 한다. 이것은 욕망을 다스릴 때 가능해진다. 욕망이 커질수록 해야 할 일들은 점점 선택에서 필수로 변한다.

 

이 두 경우를 제외한 모든 경우는 걱정을 늘리는 쪽으로 작용한다. 그리고 이렇게 늘어난 걱정은 시간이 지나 현재가 되어서 결국 결과가 제대로 나오지 않으면 불행이 되고, 미래가 되어도 후회로 남게 된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우리들 대부분은 사실 하고 싶은 일을 찾지 못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우리는 결국 해야 할 들을 천천히 별 기대 없이 하고 사는 것이 제일 좋다. 걱정과 후회의 노예가 되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그리고 이 모든 이야기에 앞서 스스로 걱정과 후회를 감당할 만 하다면, 이미 지금 말한 것들을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더 이상 걱정할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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