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철학

어떻게 살 것인가?

아이루다 2016. 4. 30. 09:36


 

우리 인간은 살면서 다양한 일을 한다. 그리고 그 일은 크게 두 가지 형태로 나뉜다. 하나는 하고 싶은 일이고, 다른 하나는 해야 할 일이다.

 

보통 하고 싶은 일은 주로 행복과 관련이 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행복을 추구하는 과정이 바로 여기에 해당될 것이다. 반대로 해야 할 일들은 주로 불행과 관련되어 있다. 현재의 행복을 지키기 위해서 이거나 혹은 불행해지는 사태를 막기 위해서 필수적으로 해내야 하는 일들이 여기에 해당된다.

 

정리하면 하고 싶은 일은 추가적인 행복을 얻는 일이고, 해야 할 일은 이미 가지고 있는 불행을 막고 행복을 지키는 일이다. 사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사실 둘 모두 행복과 관련이 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럼에도 해야 할 일이 불행과 관련이 있다고 설명한 이유는, 행복이 가진 문제점, 즉 행복의 당위성과 권태성 때문에 그렇다.

 

원래 모든 해야 할 일들은 처음엔 하고 싶었던 일이었다. 아이들은 걷는 것 조차 신나서 한다. 뛰는 것도 좋아하고, 우리는 무척 지겨운 버스나 지하철을 타는 것도 좋아한다. 심지어 심부름 하는 것도 신나서 하는 시기가 있다. 원래 처음 경험하는 것들은 일정 시간 동안은 그것이 무엇이든 신나고 즐겁다.

 

우리가 어렸을 때는 지금 어른이 되어서 하고 있는 많은 일들이 하고 싶은 일이었던 것이다.

 

중학교나 고등학교 다닐 때도 그랬다. 그때 역시도 어른들이 하는 것이면 뭐든 하고 싶어했다. 그것이 자유로움이라고 믿었고, 그래서 숨어서 담배를 피우거나 술을 마시고 싶어했다. 화장을 하고 머리를 기르고 싶어했다. 경험이 없거나 하지 못하게 제약이 된 것들은 그리도 하고 싶어했다.

 

하지만 정작 어른이 되면 당연히 많은 것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된다. 어린 시절엔 부모와 한바탕 전쟁을 치러야만 먹을 수 있었던 치킨이나 햄버거를 사 먹는 일도 언제든 쉽게 스스로 할 수 있다. 물론 어른이 되어서도 그 맛은 있지만, 어린 시절에 부모를 졸라서 허락을 얻어내던 그런 행복은 사라지고 없다. 더군다나 이젠 살찌는 걱정도 해야 하기 때문에 온전히 그 맛 조차도 제대로 즐기기가 힘들다.

 

이것이 바로 행복의 당위성에 대한 이야기다. 너무 하기 쉬운 것들은 별로 하고 싶어 하지 않게 된다.

 

처음 만났을 때는 서로 모든 것을 줄 것처럼 굴던 연인들도 시간이 지나면 점점 익숙해지고 평범해져 간다. 그리고 어느 시점이 되면 서로 지겨움을 느끼게 된다. 반복되는 경험으로 인해서 서로 전혀 어떤 흥분감도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연애뿐만이 아니다. 우리는 뭐든 반복적으로 경험하게 되면 지겨움을 느낄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는 끝없이 새로운 것을 찾으려고 한다. 본 영화를 또 볼 때 지겨움을 느끼는 것처럼, 우리는 반복적인 경험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이것이 권태에 대한 이야기이다. 처음엔 아무리 행복했어도 결국 권태로 이어진다.

 

이런 상황이니 기존 행복을 지켜야 한다는 말 자체가 가진 의미가 바로 당위성과 권태성을 지키는 일이 되고 만다. 즉, 해야 할 일들을 하는 것이 그다지 행복한 일이 아니다. 행복을 지키기 위해서는 해야 하지만, 귀찮은 일들이 너무 많다. 이런 것들은 반복적이고 일상적이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해야 할 일은 최대한 미루고,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어한다. 그리고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사는 것이 행복한 삶이라고 말한다.

 

수 많은 책에서, 수 많은 드라마, 영화에서 나오는 사람들이 똑같이 그런 소리를 한다. 삶을 행복하게 살고 싶다면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그것을 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말이다. 그것만이 진정한 행복한 삶이라고 말한다.

 

사실 그들 말이 틀리지 않았다. 사실 우리는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행복하기 때문이다. 단지 하고 싶은 일들이 일정 시간이 지나면, 지겹거나 권태로워져서 하지 않게 되거나 혹은 해야 할 일로 변하는 것이 문제일 뿐이다.

 

그래서 우리들은 모두 계속 하고 싶은 일을 찾는다. 하지만 시간과 경험이 쌓일수록 어쩔 수 없이 하고 싶은 일들은 점점 줄어든다. 이것은 이미 경험을 했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이다. 더군다나 남은 하고 싶은 일들은 주로 돈이 많이 들거나 노력이 많이 필요한 일 뿐이다. 쉽고 싸게 하고 싶은 일들은 이미 다 해 버렸다. 그러니 하고 싶은 일을 찾기가 그다지 쉽지 않다. 그래서 삶이 뭔가 행복하지 않다고 느낀다.

 

그럼에도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본다. 남들이 하면 좋다고 얘기하는 것도 해보고, 남들이 관심 가진 것들을 같이 관심을 가져보기도 한다. 사실 이 정도만 해도 어느 정도 행복하긴 하다.

 

왜냐하면 어떤 일을 하든 적어도 대화가 되기 때문이다. 드라마를 보는 것이 그다지 재미는 없어도, 그 드라마를 다른 사람과 대화 주제 속으로 끌어 들일 수는 있다. 드라마뿐만 아니라 많은 것들이 그렇다. 쇼핑을 해서 무엇인가를 샀거나, 어딘가 여행을 갔거나 등등 무엇인가를 하면, 그것을 누군가와 대화할 수 있는 주제가 된다. 그래서 나름대로 괜찮은 행복을 얻을 수 있다.

 

단지 문제는 그 자체를 하는 것에 그다지 행복하지 않다는 점이다. 심지어는 대화할 거리를 만들기 위해서 경험을 하기도 한다. 요즘 온라인 인간관계인, SNS에 그런 패턴이 자주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이런 행복을 위해서는 인간관계가 필수적이란 점도 생각해야 한다.

 

하지만 인간관계는 생각보다 어렵다. 서로 각자 입장이 있기 때문에, 상처를 주기도 하고 상처를 받기도 한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인간관계에서 상처를 많이 받고 힘들어 한다. 그래서 관계의 범위는 줄어든다.

 

그럼에도 만나야 행복하기 때문에, 그 사람이 마음에 드냐 마냐에 상관없이 지속적으로 관계를 유지하려고 애쓴다. 상처를 받으면서도 버티려고 하고, 상대로부터 좋지 않은 대접을 받아도 속으로 삭히려고 애쓴다. 관계에서 오는 행복을 누려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다.

 

이것이 행복한 삶이냐 그렇지 않느냐는 사실 결정하기 어려운 일이다. 살이 많이 찐 사람이 통닭 두 마리를 시켜서 먹고 있을 때, 이것이 행복한 순간이냐 아니냐를 결정하기 어려운 경우와 비슷하다. 분명히 당사자는 행복하긴 할 것이다. 그런데도 그다지 행복할 것 같지 않아 보인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인간은 결국 혼자 사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끊고 홀로 행복하고자 하지만, 사실 하고 싶은 일을 찾는 것이 그리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상처를 받는 일은 줄었지만, 행복해지지는 않게 된다. 사실 불행하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인간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그것을 타인과 공감할 때 가장 행복하기 때문이다. 혼자 살려고 하는 사람은 이 둘 모두가 없기 때문에, 결국 불행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래서 우리는 어느 순간에 '어떻게 살 것인가' 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된다. 그리고 이 '어떻게'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어떻게 찾았느냐에 따라 삶이 바뀔 수 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이미 말했던,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하고, 그것을 다른 사람들과 공감하면서 사는 것이다. 이것이 가장 행복한 삶이다.

 

이후로는 순위를 매기기는 어렵지만, 그냥 순서상 말하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하긴 하는데, 다른 사람들이 공감을 잘 안 해줘서 혼자 하는 것이다. 이들은 주로 오타쿠라고 불리는 삶을 살게 된다. 하고 싶은 일들이 너무 특이해서 그렇다.

 

다음 순서는 하고 싶은 일을 좀처럼 찾을 수가 없어서, 남들이 하는 일을 따라 하고, 그럼으로써 남들과 어울리는 것이다. 산에 오르는 것이 그다지 썩 좋지는 않으나, 사람들을 만나는 재미로 하는 것이다. 사진을 찍는 것이 그럭저럭 좋으나, 사람들과 어울려서 출사를 하는 것이 좋아서 하는 것이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속하는 일을 하고 산다. 그 자체의 재미도 어느 정도 있지만, 더욱 더 중요한 행복 요소는 바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얻는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 중에서 상처 받고 힘들어 하는 사람들은 결국 단절을 해야만 하는 상황에 이르게 되고, 그래서 결국 다음 순서인 하고 싶은 일도 별로 없어서 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과의 교류도 거의 하지 않는 상황에 놓인다.

 

이들은 다른 사람과의 공감을 통해 행복을 얻기도 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상처도 입어서 결국엔 상처가 주는 불행을 견디다 못해서 관계가 주는 행복을 포기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딱히 다른 해결 방법도 없다. 상처가 주는 불행은 막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행복해진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보통은 이 네 단계가 일반적이다. 우리들 대부분은 이 네 가지 경우 중 하나에 속해 있다.

 

그런데 한가지 추가적으로 고려할 상황이 있다. 그것은 바로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사는 삶, 즉 우리가 행복 하려면 반드시 지켜야 할 규정을 버리고, 해야 할 일을 하면서 사는 삶에 대한 이야기이다.

 

원래 어떤 사람의 삶이 해야 할 일만 가득하다면, 그 삶은 행복하기가 힘들다. 모든 것이 의무이며 부담인데 어떻게 행복할 수 있겠는가? 더군다나 남들은 모두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그렇게 즐겁게 살아가는데 자신만 매일 해야 할 일에 눌려서 힘들게 살아가야 하니, 그 삶이 행복할 턱이 있겠는가?

 

그럼에도 이것을 고려해봐야 하는 이유는, 생각보다 이런 삶이 불행하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해서 행복할 수도 있는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삶을 살아야 한다면 반드시 필요한 조건이 있다. 그것은 바로 지금 현재의 삶이 행복하지 않거나 혹은 불행해야 한다는 점이다. 만약 이미 지금 충분히 행복하다면 이런 삶에 대해 고려해 볼 필요가 없다.

 

그런데 만약 자신이 현재 행복하지 않거나 불행하다고 느낀다면, 한번쯤 생각해 볼만 하다.

 

이것은 일종의 사고의 전환이다. 그래서 구체적인 행동보다는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는 일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삶만이 행복이라도 배워왔다. 실제로도 해보면 그것이 맞기도 하다. 하지만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다. 해야 할 일을 하고 사는 삶도 행복할 수 있다는 말을 한번 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해야 할 일을 하면서 사는 삶이 어떻게 행복할 수도 있을까?

 

해야 할 일을 하고 사는 삶이 가진 가장 중요한 의미는, 지금의 행복을 지킬 수 있다는 점이다. 더불어서 앞으로 다가 올 불행을 막을 수도 있다.

 

앞에서 말했듯이 우리는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사는 삶이 행복하기 때문에 해야 할 일들은 뒤로 미루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런 미룸은 결국 찜찜함이 되고 만다. 아무리 미뤄도 결국 언젠가는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해야 할 일이 있으면 바로 바로 해버리는 것이 찜찜함을 줄이는 역할을 해준다. 이것도 일종의 행복을 얻는 방법이다.

 

그리고 해야 할 일에 집중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이 겹치면, 우리는 해야 할 일은 최대한 대충 끝내고 하고 싶은 일을 하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실수가 일어나고 그것으로 인해서 큰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더군다나 일을 제대로 끝내고 나온 것이 아니라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동안 계속 마음 속에 걸리기도 한다. 그것이 회사 일과 같은 종류라면 상황에 따라 많이 심각해질 수 있다.

 

결코 좋은 일은 아니지만, 하고 싶은 일이 없을 때, 해야 할 일을 할 일에 집중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런데 여기에는 매우 힘든 난관이 있다.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서 해야 할 일을 하고 사는 삶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게 된다. 더군다나 그것은 인간의 본질적 특성 중 하나이다.

 

우리는 모두 하고 싶은 일이 있을 때 신나고 의지에 불타게 된다. 퇴근 후 정말로 보고 싶었던 영화를 볼 계획일 때, 회사 일을 제 시간 내로 해내기 위해서 초 집중을 할 수 있다.

 

반대로 우리는 하고 싶은 일이 없다면, 의지가 별로 생기지 않는다. 사실은 우울해서 매우 수동적인 사람이 되기 쉽다.

 

그러니 해야 할 일만 하고 사는 사람은 당연하게도 수동적인 삶을 살아갈 가능성이 몹시 높다. 이런 이유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아야 행복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발상의 전환을 할 수 있다. 왜 하고 싶은 일을 할 때만 의지적이고 능동적이어야 하는가? 해야 할 일을 할 때도 그럴 수 없을까?

 

왜 회사 일은 늘 힘들기만 해야 할까? 회사 일은 재미있을 수 없을까?

 

물론 이것이 처음부터 우리가 원했던 것은 아닐 수 있다. 이것은 다른 말로 하면 우리는 왜 이미 경험하고 익숙한 일에 당위성을 가져야 하며, 권태로움을 느껴야만 할까 와도 관련된 질문이다.

 

우리의 당위성과 권태성은 반드시 일어나야 할 것인가?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생각보다 이것이 아닐 수 있다. 우리가 하고 싶었던 일을 하다가 점점 해야 할 일로 변하는 과정을 살펴보면, 그것이 어느 날 갑자기 변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우리는 그토록 지겨운 회사 일조차도 처음엔 눈빛이 반짝이면서 했었던 기억이 있다. 잘 해내고 싶어서 안달이 난 경험도 있다. 그렇다면 언제 이렇게 지겨워진 것일까?

 

그런데 이것은 사람마다 다르다. 어떤 사람들은 수십 년 회사 일을 해도 지겹지 않다는 사람들도 있으니까 말이다. 집안 일이 너무 지겨운 주부도 있는 반면, 오랜 시간을 주부 일만 했더라도 그다지 지겹지 않게 하는 사람들도 있다. 물론 소수이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런 특별한 사람들로부터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사실 우리가 무엇인가 해야 할 일을 할 때 행복하지 않은 이유는, 그것을 대충해서 그럴 수 있다.

 

만약 지금이라도 집안 일을 아주 제대로 꼼꼼히 하면, 집안 전체가 깨끗해져서 기분이 상쾌해질 수 있다. 그리고 혹시 같이 사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로부터 깨끗해진 집안에 대한 칭찬을 들을 수 있다.

 

회사 일도 마찬가지다. 회사 일이 싫은 이유는, 그것을 제대로 하지 않아서 그럴 수 있다. 정말로 열심히 노력해서 보고서를 만들었다면, 그것을 누군가에게 보고할 때 마음 한 구석에 우쭐한 기분이 들 수 있다. 그리고 원하던 칭찬이라도 들으면 많이 행복해질 수도 있다.

 

물론 이것이 모두 뜻대로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하는 동안은 그다지 힘들지 않게 할 수 있다. 더군다나 이것은 모두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어차피 하는 일이면 가능하면 제대로 하는 것이 낫다고도 볼 수 있다. 남들의 칭찬이 아닌, 자신에 대한 만족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것이다.

 

이런 과정이 해야 할 일을 하고 싶은 일로 바꿀 수 있는 힌트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행복이란 가정하에 그것만을 가지고 행복 하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이제는 생각을 조금 바꿔서 해야 할 일을 하고 사는 행복에 대해 깊은 성찰을 할 필요가 있다.

 

사실 그랬을 때, 꽤나 결과도 좋다. 열심히 해야 할 일을 했기 때문에 찜찜함도 없고, 결과도 좋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매일 살아가는데 있어서 마음 속에 걸리는 것도 별로 없다.

 

단지 주의할 점은 해야 할 일을 빨리 해치우고 없애려는 조바심을 없애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해야 할 일을 남이 해주길 바라는 마음을 없애 한다. 조바심도 없고 기대치가 없이 해야 할 일들을 꾸준히 해 나갈 수 있다면, 모두 하고 난 후에 어떤 평화로움을 경험하게 될지도 모른다.

 

해야 할 일이 하나도 없고, 마음 속에 걸리는 일이 없을 때 느낄 수 있는 평화로움과 한적함이다.

 

이런 저런 시도를 다해본 끝에 결국 불행하다고 느꼈다면, 이 길을 선택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사실 사고의 전환만 일어나면 그다지 힘든 것도 아니다. 왜 하고 싶은 일을 해야만 행복한가? 이것도 일종의 주입된 사고 방식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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