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

아이루다 2016. 4. 24. 07:50

 

당신이나 나는 근본적으로 결함을 가지고 있는 존재이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그것은 당신과 나만의 문제는 아니다. 이것은 우리가 속한 인간이란 존재 자체가 그렇다.

 

그럼에도 어떤 사람들은 그런 결함이 전혀 없는 듯 행복하게 살아가고, 어떤 사람들은 그 결함에 짓눌려서 평생을 불행하게 살아가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다른 사람들의 행복이 부럽기도 하다. 나와 당신은 그렇지 못한데어떤 사람들은 어떻게 저렇게나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혹시 가짜가 아닐까 싶어서 그들의 사생활을 샅샅이 뒤져보지만, 딱히 아니라는 근거도 없다. 실제로 만나도 그렇고, 그들의 상황을 살펴봐도 그래 보인다.

 

그래서 당신이나 나는 풀이 죽는다. 그리고 원망이 생긴다. 부러움과 질투가 생기고 화도 난다. 심하면 피해의식까지 생긴다. 그리고 결국 자기 비하가 일어난다. 당신이나 나는 왜 이 모양일까? 도대체 왜 이렇게 살아가야 하게 되었을까? 도대체 무슨 잘못을 했기에 그랬을까?

 

그런데 생각해보니 살아 온 생애 동안 잘못한 것이 많은 것 같다. 학교 다닐 때 공부 열심히 안 했던 기억이 난다. 엄마가 공부하라고 사정을 하고, 학원에 보냈을 때도 그다지 열심히 하지 않았다. 어찌 어찌 들어간 대학교에서도 데이트 한다고, 게임 한다고, 친구들과 술 마신다고, 클럽에 간다고, 그냥 게을러서 놀았던 기억이 가득하다.

 

그때 아무 생각 없이 논 것이 마냥 후회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아쉽기도 하다. 그냥 그때 토익 공부 좀 더 열심히 했으면, 학점 관리 좀 더 잘했으면, 취업할 회사 좀 더 열심히 알아 봤으면, 국가 고시 공부라도 했으면, 요즘 부러워 보이는 잘나가는 친구들처럼 되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어떤 책에서 말한 것처럼 10년 계획을 세워서 지금까지 열심히 해 왔다면 뭔가 좀 더 이룰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돈도 좀 더 알차게 모았으면 지금쯤은 통장에 제법 돈이 모여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최근에 만난 구두쇠 친구 녀석이 말한 돈 모으는 법을 떠올려 보니 더욱 그런 생각이 강해진다.

 

생각을 하면 할수록 아쉬웠던 것이 점점 후회로 변해간다. 그리고 후회가 되는 시기도 점점 어려져 간다. 고등학교 때 공부 좀 더 열심히 할 걸, 중학교 때 좀 더 열심히 할걸 하는 생각이 들면서 기분이 별로 안 좋아 진다.

 

과거만 머리 속에 떠오르는 것이 아니다. 미래도 상상된다지금이 딱히 희망적인 상황이 아니니, 미래 역시도 생각할수록 불안해지기만 한다. 과거도 미래도 우리의 머리 속에서 우울함을 불러내고 만다.

 

가끔 만나는 친구들 모임에서 데이트도 하고, 취직도 하고,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아서 기르는 친구들의 모습을 보다 보니 집에 돌아와 마음 한 켠에 씁쓸함이 몰려온다. 물론 그들의 소식 중에서는 안 좋은 일을 당한 친구들도 있다. 회사에 잘렸거나, 이혼을 했거나, 아이가 많이 아프다는 얘기도 가끔 들린다.

 

그때마다 당신과 나는 그것을 안됐다고 표현하면서도 마음 속 한 구석에 묘한 즐거움을 느낀다. 그리고 그런 기분이 들면, 자신도 모르게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가 라는 혐오감도 생긴다.

 

아무튼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불안이 심해지면 심해질수록, 조금 더 나은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면, 조금 더 나은 머리를 가지고 있었다면, 좀 더 남다른 재주가 있었다면, 좀 더 집요했다면, 좀 더 노력하는 성격이었다면, 좀 더 끈기 있는 사람이었다면, 좀 더 남들과 잘 지내는 사람이었다면, 좀 더 능력 있는 사람이었다면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랬다면 지금보다 더 행복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이 말은 틀린 말은 아니다.

 

인간은 모두 결함을 가지고 있다는 점은 사실이지만, 사실 진짜 문제는 그 결함의 종류가 천차만별이며 어떤 결함이냐에 따라 삶에 미치는 영향이 많이 차이가 난다는 점이다.

 

가장 기본적인 외모, 두뇌, 신체 등의 결함은 각 개인의 삶을 크게 흔들 수 있다. 반대로 이것들 중 하나만이라도 남들보다 탁월하게 뛰어나면 개인의 성공은 거의 쉽게 이룰 수 있다. 외모만 되어도 연예인이 되어서 큰 돈을 벌 수 있고, 두뇌만 뛰어나도 사업을 해서 성공하거나 학문적 업적을 이룰 수 있다. 운동을 아주 잘하면 프로 운동 선수가 되어서 큰 돈과 명예를 성취할 수도 있다.

 

반면에 노래를 못하거나, 축구를 못하거나, 운전을 잘 못하는 결함 등은 그나마 상대적으로 삶에 미치는 영향이 적다. 그래서 무엇인가에 결함이 있어야 한다면, 이런 결함이 낫다. 이런 결함들은 그저 그 상황을 피하는 것만으로도 극복이 가능하다. 노래를 못하면 노래방에 안 가면 된다. 가수를 하지 않으면 된다. 축구를 못하면 축구 동호회에 들어가지 않으면 된다. 운전을 못하면 가능하면 다른 사람 차를 얻어 타고 다니면 된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결함을 가지고 있지만, 그 결함의 종류에 따라서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된다.

 

그것이 바로 행복한 삶과 불행한 삶을 결정짓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 된다.

 

그러니 당신과 내가 불행한 이유는 바로 우리가 타고난 결함이 운 없게도 삶에 영향을 크게 미치는 결함을 타고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은 우리의 의지도 아니고, 우리를 낳아주신 부모의 의지도 아니다. 그저 우리가 거의 관여하기 힘든 유전적 원리에 의해서 결정된 것뿐이다.

 

태어났는데 다리가 하나뿐인 사람을 생각해보면 된다. 도대체 그 사람이 한 잘못은 없다. 하지만 그 사람은 자신의 신체적 결함을 평생 스스로 안고 살아가야 한다.

 

아무튼 많은 결함들은 우리가 관여할 수 없는 순간에 정해진 것들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런 결함으로 인해 벌어진 많은 일들을 후회하면서 살아간다.

 

특히 노력해서 극복할 수 있었던 것 같은 일이면 더욱 더 그렇다. 과거로 돌아가서 노력하면 지금의 자신이 바뀔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그렇다. 이 가정은 틀리지는 않다. 단지 우리가 과거로 돌아갈 방법이 없을 뿐이고 그래서 현재의 내가 돌아간 과거의 나가 아닌, 원래 있던 과거의 나는 아무리 그 시간이 반복되어도 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기에 뭔가 변하는 것이 없다.

 

이 모든 것을 알고 있음에도 우리 머리 속에는 과거에 대한 후회, 타인의 삶에 대한 부러움 그리고 그것들로부터 파생되는 각종 자기비하와 피해의식에 사로잡히게 된다.

 

그리고 지금의 삶이 타인의 삶에 비해서 그다지 행복하지 못한 것 같고, 미래도 불투명 한 것 같으면, 그 자체로도 충분히 힘든데 거기에 추가로 고통을 더한다.

 

그것이 바로 과거를 후회하고 현재를 비관함으로써 자신의 삶을 우울한 삶, 희망이 없는 삶, 실패한 삶, 도대체 왜 태어났는지 모를 삶, 평생 불행할 것 같은 삶으로 정의하고 만다.


그리고 이런 확대 해석은 우리의 삶을 현재의 상태보다 훨씬 더 비참하게 만든다. 사실 이것이 훨씬 큰 문제이다.

 

지금 불행한 것도 억울한데, 그 불행함으로 인해 자신의 삶 자체가 잘못 산 것처럼 느껴진다면 얼마나 더 억울한 문제일까?

 

그러다 보니 자신의 삶에서 뭔가 다 잘못된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그래서 그냥 모두 눈 앞에서 사라져버렸으면 하는 생각도 든다. 자신의 삶을 부정하고 미래에 대해 끝없이 두려움을 느낀다.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잘못했기에 이래야 할까?

 

학교 다닐 때 친구들과 신나게 논 것이 잘못한 일일까? 영어 공부 좀 더 열심히 안한 것이 잘못한 일일까? 지금 크게 성장한 회사를 알아보지 못하고 입사하지 못한 것이 잘못한 것일까?

 

데이트를 할 이성이 없거나, 결혼은 생각하지도 못하거나, 돈을 많이 벌지 못하는 것이 과연 온전히 우리의 책임일까? 물론 이것들이 우리가 감당해야 할 것은 맞다. 누구도 다른 사람의 삶을 책임져 주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감당해야 한다고 할 때, 그렇게 된 것에 대한 책임 역시도 우리들 자신이 져야 할까?

 

물론 사회는 그렇다고 말한다. 각자의 삶의 책임은 각자가 져야 한다고 한다. 그런데 사회는 그렇게 말할 수 밖에 없다. 사실이 그렇지 않다고 해도 사회가 어떻게 해 줄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남자로 태어나면 군대를 가야 한다고 했을 때, 그것이 어떻게 명확한 근거를 가지고 있겠는가? 그저 누군가는 군대를 가야 하는데, 남자가 가는 것으로 했을 때 그나마 사회적 합의가 잘 되기 때문이다.

 

사회가 말하는 것들은 대부분 그저 그 사회를 유지시키는데 가장 합리적인 것들을 주장하는데 불과하다. 물론 이것은 우리들 각자가 속한 사회의 미래를 위해서 중요하긴 하다. 그렇다고 해도 그것이 진리는 될 수 없다. 그것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일 뿐이다.

 

그러니 각 개인의 문제를 각 개인이 책임져야 한다고 말하는 사회적 요구는 사실 잘못된 것이다. 단지 대안이 없으니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당신과 내가 그런 결함을 타고난 것은 우리의 잘못이 아니다그러니 그 결함으로 인해 삶 자체가 잘 풀리지 않는 것도 우리들 잘못이 아니다. 그런데도 당신과 나는 다른 행복한 사람들의 삶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삶을 후회하고 비난한다. 그래서 더욱 더 비참해지고 만다.

 

그래서 적어도 이것은 아니다. 우리가 지금 불행한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우리를 스스로 비관해서 비참해지는 것은 온전히 우리가 스스로에게 저지른 폭력이다. 그러니 딴 건 몰라도 이것만큼은 멈춰야 한다.

 

각자의 타고난 결함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그것으로 인해 벌어진 이후 삶을 판단하는 것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 물론 살아가는 동안 만나게 되는 타인들은 각자 잣대를 가지고 여러 가지 판단을 해댈 테지만그들은 당신과 나의 삶을 감당할 주체가 아니다. 그것은 오직 우리들 스스로만이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일 뿐이다. 그러니 다른 사람들의 판단은 아무 것도 아니다.

 

그들이 경험한 우리들의 삶은 기껏해야 실제 시간으로 1년도 채 되지 못한다. 아주 친한 친구조차 그렇다. 그냥 아는 사람들은 사실 하루도 되지 않은 경우가 흔하다. 그러니 무시할 수 있어야 한다. 힘들지만 그래야 한다.

 

당신과 나만이 우리들 각자의 삶의 주인이다. 그러니 그것을 망치는 것도, 그것을 잘하게 하는 것도 우리들의 몫이다. 아니, 결코 망치고 싶어서 망치는 것이 아니니 그것은 우리가 그저 감당해야 할 것이다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삶을 판단하는 부분을 선택할 수 있다.

 

우리는 판단에 따라 아주 잘 살아왔을 수도 있고, 아주 후회스러운 삶을 살았을 수도 있다. 같은 내용이 삶을 살더라도 사람마다 이 부분에서 큰 차이가 나게 된다.

 

그래서 누군가는 행복하게 살고, 누군가는 불행하게 살게 된다. 컵에 물이 반쯤 담겨 있을 때, 그것을 해석하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그리고 해석에 따라 이것은 긍정적일 수도, 부정적일 수도 있다.

 

물론 우리들 모두가 좀 더 잘나게 태어났다면 좋았을 것이다. 그렇게 태어날 수 있었다면 거부할 필요는 없다. 그렇지만 이것은 불가능한 가정이다. 우리들을 구성하는 대부분의 것들은 이미 고정되어 있다.

 

사실 정확히 말해서 대부분의 수준이 아니라, 완전히 고정되어 있다.

 

가끔 인생의 중반쯤 거대한 변화를 일으키면서 삶을 완전히 바꾸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그런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었을 뿐이다. 단지 발견이 늦게 된 것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이야기가 포장되어서 퍼지면서, 마치 우리들도 변할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을 품게 한다.

 

그리고 이 희망이 바로 우리들의 살아온 삶을 후회하게 만들고, 도전하지 못하는 현재를 불만족스럽게 하며, 미래를 불안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것이 잘못되었다. 사회는 개인이 최대한의 역량을 발휘하게 하기 위해서, 좋은 사례를 전파하고자 한다. 또한 그런 사례들은 타인들에게 희망을 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돈도 벌기 좋다. 그래서 자꾸 그런 이야기들이 영화로, 드라마로, 책으로 나온다.

 

그렇지만 이것은 이미 잠재적인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만 유효하다.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아이들이나 혹은 어른이라고 해도 어떤 이유로 인해서 그 잠재력이 발휘되지 못한 사람들일 경우에 그렇다.

 

영화 '굿 윌 헌팅' 에서 멧 데이먼이 맡은 역할처럼 그렇다. 그는 이미 천재였던 것이다. 그는 갑자기 노력해서 청소부에서 수학 천재가 된 것이 아니다. 그저 처음부터 천재였지만, 어떤 상황으로 인해서 그것이 제대로 발휘되지 못한 것이다.

 

그런데 당신과 나는 이미 가진 패를 거의 다 펼쳐 놓은 존재들이다. 우리들은 이미 최선을 다해서 가지고 있는 능력을 발휘하면서 살아왔다. 우리가 만약 천재였다면, 이미 천재로 살아갈 것이고, 우리가 만약 뛰어난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면 이미 연예인이 되어 있을 것이다.

 

우리가 그렇게 되지 못한 이유는, 우리가 원래 그런 사람들이기 때문인 것 이외에 다른 이유가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이 순간 그것에 대해 후회하고, 불만족스럽고, 불안하게 여겨야 할까? 이것이 우리를 위해서 합리적이고 제대로 된 결정일까?

 

당연히 아닐 것이다. 우리는 성공하고 싶어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돈이 많고 싶어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행복하고 싶어서 살 뿐이다. 그러니 그냥 행복하면 된다.

 

그런데 후회, 불만족, 불안함은 모두 행복의 적이다. 불행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그러니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그런 것들을 버릴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진정으로 스스로를 사랑하고 귀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해야 할 행동이다. 더해서 우리가 지금 이렇게 사는 것은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우리들 자신의 잘못도 아니다. 그냥 세상의 원리가 그런 것뿐이다.

 

풀이 꽃을 피우고 씨앗을 사방에 뿌릴 때, 운 좋게 넓고 해가 잘 드는 곳에 도착한 씨앗도 있지만, 어떤 작고 그늘진 틈새에 들어간 씨앗도 있을 것이다.

 

이때 그늘진 곳에 들어간 씨앗은 무슨 잘못을 한 것일까?

 

우리는 그냥 운 없게 그늘진 곳에 도착한 씨앗일 뿐이다. 그러니 그 안에서 최대한 살아남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할 일이다.

 

그럼에도 살다가 보면 가끔 속에서 뭔가가 울컥할 것이다. 아무리 좋게 생각해도 어쩔 수 없다. 말을 함부로 하는 사람들이 넘쳐나고, 자기만 잘 살면 남들도 잘 산다고 믿는 머리 빈 사람들도 너무 많다. 아주 가끔 찾아오는 행운조차도 질투해대고, 남 잘되는 것만 보면 심술이 가득한 사람들도 많다. 남에게 관심도 없으면서 조언이랍시고 마구 뱉어내고, 아는 것도 없으면서 아는 척 하는 사람들도 넘쳐난다.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타인의 불행에 매우 둔하거나 혹은 즐기는 성향이 있다. 그 자신이 남과 자기를 비교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운 없게 그늘에 뿌려진 씨앗이지만, 적어도 그런 식으로 살지 않았으면 한다. 우리가 그늘에서 자란 불행함을 경험했듯이, 누군가 불행한 일을 당했다면, 적어도 마음은 아파 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비록 해가 적게 들어서 몸은 춥지만, 마음은 따뜻해서 스스로도 춥지 않게 살았으면 좋겠다.

 

결함은 우리가 선택한 것은 아니지만, 어떤 사람이 되는 것은 선택 가능하다. 물론 지금까지는 선택한 것이 없다. 그저 주어진 대로 살아왔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변하고 싶다면, 지금 이 시점이다. 우리는 좀 더 따뜻한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좀 더 긍정적인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좀 더 행복한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해야 할 모든 것이다. 우리는 후회도, 불만족도, 불안함도 느낄 필요가 없다. 그런 것들은 당신과 내가 책임져야 할 몫이 아니다. 그것은 사실 존재하지도 않는 허상에 불과하다.

 

이렇게만 살 수 있어도, 우리는 정말로 제대로 산 사람이 될 것이다. 위로가 아니라 진짜로 그렇다. 삶은 그렇기에 살만하다. 결함은 단지 삶의 조건에 불과하다삶의 과정과 결론은 우리들 스스로 내는 것이다.

 

그러니 행복하게 살다가 행복하게 죽으면 된다. 더 이상 선택하지 못한 결함의 노예로 살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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