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삶, 열정, 행복

아이루다 2016. 4. 7. 06:35

 

당신은 사람이다그래서 당신에게는 어린 시절 배웠던 수 많은 지식, 살아오면서 체험한 셀 수 없는 경험들, 교과서나 각종 책으로부터 얻은 많은 정보들, 부모님이 말해줬던 삶의 방식, 친구들이나 동료들이 말하는 다양한 삶의 경로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가치와 의미들, 옳다고 믿어지거나 정답이라고 주장되고 있는 여러 가지 답들은 결코 중요하지 않다.

 

당신은 그 무엇보다도, 오직 행복하게 살고자 할 따름이다.

 

당신은 오직 사람이기 때문이다. 설령 당신이 사람이 아니라도 마찬가지다. 모든 살아 있는 생명체는 행복하기 위해서 살아갈 뿐이다.

 

위에 나열한 많은 것들은 단지 행복하기 위한 서로 다른 길일 뿐이다. 그것이 사랑이나 우정이든, 정의로움이나 선함이든, 권력이나 명예이든, 돈이나 욕망이든, 믿음이나 신념이든, 가치나 의미이든, 노력이나 열정이든 상관없다. 이것들에게는 단지 그 길을 가면 행복할 가능성이 높다고 알려진 정보, 그 이상 의미는 없다.

 

당신은 사람이고, 사람은 행복하고자 한다. 그래서 당연히 당신은 그 어떤 것보다도 그저 행복하고 싶어하는 사람이다. 이것 이외에 당신을 정의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도대체 어떤 것으로 당신을 정의하고자 하는가? 이 뿐이다. 그러니 그저 행복하면 된다. 그리고 행복하자. 뭐 그리 힘든 일이겠는가?

 

아니다. 힘든 일이다. 원래 행복하기는 힘들다.

 

당신의 삶은 우울할 수도 있다. 깊은 고민에 빠져있거나 걱정이 한 가득 일 수 있다. 하고 싶은 일이 안 풀리거나, 해야 할 일이 많아서 허우적대는 중일 수 있다. 딱히 하고 싶은 일이 없어서 따분할 수도 있다. 뭔가 열정적으로 살고 싶은데, 도대체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는 중일지도 모른다. 당신은 상처받고, 외롭고, 불안한 삶을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아니더라도, 과거에 그랬었던 순간이 있었거나, 미래에 그럴 때가 올지도 모른다. 그나마 지금까지 이런 경험이 없었다면, 당신은 그래도 운이 좋은 편이다.

 

아무튼 우리는 행복하고자 하는데, 왜 이런 상태에 놓이게 될까? 나나 당신이 뭔가 잘못한 것이 있어서 벌을 받는 것일까? 아니면 뭔가 잘못된 길을 들어선 탓일까?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사는 방법에는 참으로 많은 길이 있다. 당신이 원하든 안 하든, 매일 그것들을 듣고 보고 경험하게 된다.

 

누군가는 열심히 살라고 하고, 누군가는 노력을 하고 살아야 한다고 하고, 누군가는 최선을 다해 살라고 하고, 누군가는 후회 없이 살라고 하고, 누군가는 짧더라도 굵게 살아야 한다고 하고, 누군가는 도전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한다. 그래야 행복하다고 한다.

 

그리고 이것들에는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열정이다. 우리는 아주 예전부터 열정적인 삶을 추천 받아 왔다. 그래서 삶을 열정적으로 살고 있지 못하면, 뭔가 불안해진다. 그래서 일을 할 때도, 놀 때도, 여행을 다닐 때도, 사랑을 할 때도, 취미 생활을 즐길 때도 열정적으로 하길 바란다.

 

그런데 그렇게 열정적으로 사는 당신은 지금 행복한가? 아니열정적이지 못해서 불행한가?

 

그럴 것이다. 가치를 추구하고, 열정적이며, 최선을 다해서 살고 있으니 행복할 것이다. 또한 그럴 것이다. 게으르고, 딱히 하는 일도 없으며, 별 다른 의욕이 없으니 불행할 것이다.

 

그런데 당신은 정말로 행복하고 불행할까?

 

그런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지금은 당신에 대해서 묻고 있는 것이다. 당신은 그래서 행복하고, 그래서 불행한가?

 

열정이 있어서 행복하고, 열정이 없어서 불행한가? 열정만 있다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될까? 열정은 오직 좋은 것일까?

 

사실 열정은 욕구의 다른 이름이다. 우리는 욕구를 다양한 방법으로 나눈다. 꼭 이루고자 하는 욕구는 야망, 욕망 이라고 한다. 이뤘으면 하는 욕구는 소망, 희망이라고 한다. 그리고 꿈은 이 둘 사이에 애매하게 펼쳐져 있다. 꿈은 이루고자 하기도 하고, 이루고 싶은 것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다른 관점으로 나누면, 욕구를 이루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는 것을 열정이라고 하고 딱히 별다른 노력을 하지도 안 한 채 이뤄지기만 바라는 것을 욕심이라고 한다.

 

열정은 사람을 적극적으로 변화시킨다. 우리는 욕망에 가득 찰수록 점점 더 활동적으로 변한다그리고 그럴수록 의지와 과감성은 점점 강해진다. 우리는 점점 더 집중한다. 그리고 이런 집중은 다른 많은 불필요한 정보를 차단시키고, 오직 하고자 하는 일에만 모든 사고가 모인다.

 

그래서 마음이 편해진다. 수 많은 걱정거리가 사라지고, 오직 하나만 보인다. 자신이 이뤄내고자 하는 그 욕망만이 존재한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 그 욕망이 결국 이뤄지지 않을 수도 있고, 이뤄지게 되더라도 결국 가치를 갖게 된다. , 집착이 일어난다. 시간과 돈과 삶의 에너지가 투자되었으니 가치가 없으면 결국 허무하기 마련이다. 설령 그다지 가치가 없어 보이는 조각 퍼즐을 맞춰서 성취감을 느낀다. 즉, 자신이 맞춘 퍼즐을 보면서 어떤 가치를 느낀다.

 

우리는 그렇게 열심히 살아온 삶 조차도, 늙어서 죽을 때가 되면 허무함을 느낀다. 살아 생전에 그렇게 가치를 느끼고 집착했던 삶인데도 불구하고 그렇다. 그런데 사실은 가치를 느끼고 집착했기 때문에 허무한 것이다. 그 자체가 원래 허상이기 때문에 그렇다.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가치에 집착을 하고 살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열정의 대상에게 가치를 부여하지 않을 수 없는 방법이 없다. 거기에 소모된 것들이 너무 많다. 설령 돈을 벌었더라도 우리는 시간을 잃었다. 우리는 늙었다. 이것은 돈으로도 해결이 안 된다.

 

그래서 모든 열정은 집착을 동반한다. 그리고 모든 집착은 불행을 가져오는 중대한 이유가 된다.

 

그러니 역설적으로 우리가 열정을 가져야 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원래 단지 행복하고자 할 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열정이 집착을 부르고, 집착이 불행함을 가져온다면 열정을 버려야 하는 것이 옳다.

 

하지만 열정은 또한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중요한 도구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는 중간에서 허우적댄다. 어떤 길을 가야 할지 모르는 상태이다.

 

그래서 단순하게 생각해야 한다. 어떤 것에 열정이 있다면, 그것이 가진 가치를 버려야 한다. 어떤 것에도 열정이 없다면, 열정이 없는 삶을 받아들여야 한다. 열정이 없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괴롭힐 필요가 없다. 그냥 지금 자기 자신을 아끼고 사랑해주면 된다.

 

스스로를 야단치지 말고, 스스로에게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그저 행복하고 싶을 뿐이다.

 

원래 가치 있는 것들은 버리기가 쉽지 않다. 가치를 추구하는 삶은 분명히 행복할 가능성이 높긴 하지만, 그것을 버려야 할 때 버리지 못하는 치명적 단점이 있다.

 

산에 오르는 가치를 가진 사람은, 다리가 잘려서 산에 못 오르게 되면 끝없이 불행해진다. 피아노를 치는 가치를 추구한 사람은 손가락이 다 사라지면 삶을 끝내고 싶을 정도로 우울해 한다.

 

그렇지만 당신은 그저 행복하고 싶어서 사는 삶이다. 다리가 잘리거나 손가락이 다 없어져도 행복할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될 수 있다. 왜 산에 오르고, 왜 피아노를 쳐야만 행복한 것인가?

 

이 세상에는 사람으로써 할 수 있는 있이 정말로 많이 있다. 사실 당신은 그 중에서 해본 일보다 안 해 본 일이 훨씬 많다. 물론 하고 싶어도 못하는 일도 많지만, 하기 싫어서 안 한 일들도 많지만, 아예 알지도 못하는 일도 많다.

 

당신은 인간 전체가 경험하는 경험 중 단 0.01%도 경험하지 못한 채 죽는다.

 

당신은 하고 싶은 일이 없을 수도 있다.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 없는 삶도 많다. 도대체 무엇을 해야 열정이 생길지 알 방법도 없다. 열정적으로 살고자 하지만, 열정의 대상이 도대체 무엇인지 알 길이 없다.

 

그래서 당신의 삶이 우울하다.

 

그런데 왜 당신의 삶은 우울해야 할까? 하고 싶은 일이 없으면 우울할까? 해야 할 일만 있어서 우울한 것인가? 해야 할 일들은 해야 한다. 어쩔 수 없다. 살려면 해야 하는 일들이다.

 

그러니 그냥 하자. 그런 것 한다고 해서 우울해 하지는 말자. 힘들게 일을 하는 삶, 청소를 하는 삶, 누군가의 뒤치다꺼리를 하는 삶, 별로 하고 싶지 않는데 억지로 뭔가를 해야 하는 삶 등등은 우리를 힘들게 할 수 있지만, 해야 하는 것이니 하면 된다.

 

그럼에도 당신의 머리 속에는, 시간을 어떻게든 잘 보내고 싶다는 욕구가 가득할 것이다. 하지만 당신이 보내고 있는 시간을 돌아보면, 당신은 그냥 시간을 잊고 있을 뿐이다.

 

당신이 행복하다고 여기는 모든 종류의 시간은, 사실 시간을 망각한 순간들일 뿐이다. , 뭔가 집중이 일어나면, 당신에게 시간은 사라진다. 놀이공원에 가서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면, 아침이 금세 저녁이 된다.

 

하루가 사라지고, 일년이 사라진다. 한 사람의 삶이 일장춘몽이 된다.

 

태어난 후, 자고 일어나니 죽을 때가 된 삶을 살고 싶은가? 평생을 집중하고 살면 그렇게 될 수 있다. 우리는 오직 집중에서 깨어날 때 시간을 인식할 수 있다.

 

이건 나쁜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위험하다. 왜냐하면 허무함이 몰려오기 때문이다. 인식하지 않을 채 보낸 시간들이 오직 기억으로만 남아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살아 온 시간들 중에서 단 1초도 그 순간 느껴 본 적이 없다. , 우리들에게는 과거와 미래만 있을 뿐, 현재가 없다. 현재는 언제나 과거가 된 후에만 인식 가능하다.

 

현재를 인식하지 못하니, 과거로만 기억하고, 그러니 지나간 시간이 허무해질 수 밖에 없다. 이것이 열정과 집중이 가진 가장 큰 문제점이다. 그것들은 삶을 기억으로만 살게 한다.

 

그런데 설령 그렇게 살았더라도, 가치를 부여한 것이 아닌, 그 순간의 행복을 위해 산 삶이라면 상관이 없다. 우리의 허무함은 추구한 가치의 무의미함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저 매 순간을 행복하기만 원한 삶을 살았다면, 우리가 그 시간들을 후회 할 필요가 없다.

 

그저 한 평생 행복하게 살았으니, 아무런 후회는 없다 라는 말을 남기고 떠날 수 있다.

 

우리는 열정적으로 무가치하게 살거나, 평범하게 현재를 인식하면서 살아갈 수 있다. 이 둘 모두 행복한 삶을 위한 좋은 방법이다.

 

그런데 우리는 열정적으로 가치 있게 살려고 하거나, 평범하게 살면서 자신을 질책하면서 살아간다. 이 둘 모두는 불행을 키운다.

 

힘들면 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할 의무도, 노력을 해야 할 당위성도, 열정을 가져야 할 필요도 없다. 우리는 오직 행복하기만 하면 된다.

 

노력하고, 최선을 다하고, 열정적으로 사는 것이 행복하다면 그렇게 하면 된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못한다고 해서 자신을 꾸짖고, 삶을 비관하고, 우울해 할 필요는 없다. 사실 이것만 없으면 매 순간 행복하게 사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의 삶이 경험해야 하는 것들을 채워뒀다. 로미오와 줄리엣 같은 사랑을 해봐야 하고, 가정을 꾸려서 아이도 키워봐야 하고, 여름엔 바다에 가야 하고, 유럽 여행도 한 번쯤은 가봐야 하고, 누가 맛있다는 음식점에도 가야 한다.

 

어떤 제품을 사서 써봐야 하고, 무엇인가를 해볼 필요가 있다고도 느낀다.

 

하지만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은 사실 욕구일 뿐이다. 이 욕구가 욕망이 되거나 희망이 되는 것은 오직 당신의 생각에 달렸다. 그리고 욕망은 열정을 불러내지만 결국 집착을 낳을 수 밖에 없다.

 

사실 우리가 경험해야 하거나, 가져야 하거나, 해봐야 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 우리는 자신의 삶에 대해서 그 어떤 의무감도 없다. 설령 목숨 그 자체라도 말이다. 우리는 모두 자신의 삶의 주인공이다. 모든 생각과 판단의 주체이며, 생존 여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

 

그래서 설령 자살을 하는 한이 있더라도 우울할 필요가 없다. 그 조차도 우리가 주인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혹시 자살을 생각하면 겁이 나고 우울해지는가? 그러면 자살을 하지 말아야 한다. 그렇다면 당신의 삶은 아직 당신의 주인공이 아니란 명백한 증거이다. 당신은 자신의 삶의 추종자일뿐이다. 적어도 자살을 하려면 주인공이 되고 난 후 해야 한다. 그렇지 못한 것은 그저 도망치는 것뿐이다. 그것도 잘못 살아서가 아니라, 잘못 생각해서 말이다.

 

그렇다. 당신이 우울하고 자살하고 싶다면, 그것은 잘못 산 것이 아니라, 잘못 생각한 것이다. 당신은 당신의 삶에 너무 많은 기대를 했다. 설령 그것이 오늘 먹을 점심이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우리에게 그 어떤 의무가 없듯이, 우리에게는 그 어떤 권리도 없다.

 

우리는 오직 살아가고 행복할 수 있을 뿐이다. 그것만이 유일하게 우리에게 허락된 것이다.

 

그러니 당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나쁜 일들은 당신 탓이 아니다. 그저 그렇게 흘러가는 흐름일 뿐이다. 태어나자 마자 죽는 아이에게 그 어떤 죄를 물을 수 있겠는가?

 

죄는 인간이 만들어 낸 허상이다. 자연엔 죄가 없다. 그리고 선과 악도 없다. 정의로움도 악당도 없다. 죄는 우리가 모여 살아야 하기 때문에 정의된 것이다. 우리는 그저 각자 살기 위해서 최선을 다할 뿐이고, 그 최선을 다하는 것이 과도하면 죄로 규정되는 것이다.

 

죄는 당신이 속한 사회에서 교육받고 세뇌 받은 지식이다. 이슬람 국가에 가면, 여자들이 히잡을 쓰고 다니지 않는 것이 죄가 된다. 이것이 당연하다고 생각되나?

 

조선 시대엔 또 다른 죄들이 있었다. 남편이 첩을 들여도 참아야 하는 법도도 있었다. 지금 관점에서 보면 얼마나 웃기는 일들인가? 그렇다면 지금 시대의 법들은 미래의 어느 날에도 유효할까? 물론 그럴 것이다. 인간이 변하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그럼에도 많은 것들이 달라질 것이다. 조선 시대엔 사이버 범죄는 없었다.

 

당신에게는 아무런 죄가 없다. 죄가 있다면, 죄가 있다고 생각하는 당신뿐이다. 그러니 당신 탓 좀 그만 하자. 열심히 살았건 살지 못했건 간에 이제 좀 다독여줘라. 사는 거 원래 많이 힘들다.

 

그러니 행복하기라도 하자. 하고 싶은 일은커녕, 해야 하는 일 하고 사는 것만으로도 많이 버겁고 시간도 돈도 부족하다. 그런 자신을 꾸짖기까지 하지는 말자. 힘들고 고된 삶으로 인해 입은 상처도 충분히 괴로운데, 거기에 왜 소금까지 뿌려서 스스로를 괴롭히는가?

 

당신의 삶에서 당신이 잘못한 것은 단 하나도 없다. 우리는 각각 그렇게 살도록 되어 있었을 뿐이다. 당신이 타고난 것이 당신 잘못이 아니듯, 당신의 삶이 흘러간 것 역시도 당신 탓도 아니고 의지도 아니다.

 

당신이 큰 키에 뛰어난 운동 신경을 가졌다면, 당신이 농구 선수가 되지 않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당신의 머리가 너무도 좋았다면, 학문을 하지 않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예쁜 얼굴로 태어났다면 연예인이 되지 않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우리들 대부분은 그렇게 태어나지 못했기에, 농구 선수도, 학자도, 연예인도 되지 못한 것이다. 그런데 그렇지 못하다고 해서 뭐가 문제겠는가?

 

당신은 그 누구도 아닌 당신이 되었지 않은가?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그 누구도 당신이 될 수 없다.

 

그럼 된 것이다. 그러니 그냥 행복하자. 머리 속에 담긴 수 많은 책임과 의무 그리고 당신이 누려야 할 것 같은 권리들을 몰아내자. 무의미하고 출처도 알 수 없는 기대들도 접자. 그리고 지금까지 들었던 수 많은 종류의 삶의 정답들 역시도 내쫓자.

 

그런 후, 행복하게만 살려고 하자. 이것 이외에 그 어떤 것도 있을 수 없다.

 

그런 당신에게 무엇인가 마음에 들지 않은 듯 한 마디씩을 던지는 사람들은 모두 자신만의 환상에 빠져 살고 있는 중이다. 삶에서 무엇인가 행복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믿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그것을 말하는 이유조차도 행복해서 그럴 뿐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단 한번도 행복하지 못하기 위해서 하는 일은 없다. 아니, 해볼 수는 있다. 지금 이 순간 망치로 자신의 손을 내려쳐라. 그러면 인정해줄 수 있다. 그런데 설령 했다면 아프고 후회만 될 뿐이다. 도대체 그 짓을 왜 하는가? 당신이 행복하지 않는 삶을 살 수도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사실 그것도 우리들의 문제이다. 우리는 쓸데없는 증명을 하기 위해서 자신의 삶을 망친다. 우리는 증명하기 위해서 태어난 존재들이 아니다. 우리에게 의무도 책임도 없듯이, 증명할 아무 것도 없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의 삶의 정당성을 원하지만, 사실 그것도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노력에 불과하다. 정당하지 못하면 죽게 될 때 주장할 권리가 없을 것 같아서 그렇다.

 

그렇지만 정당하다고 해서 살아갈 권리가 있는 것도 아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되면, 암살 당할 가능성은 무척 높아진다. 누가 평범한 사람을 암살하겠는가? 대통령이 되어야 그 대상이 될 뿐이다.

 

삶을 가볍게 다뤄라. 삶은 의무도, 권리도, 증명할 필요도 없는 깃털같은 것이어야 한다. 언제든 날아가버릴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니 우울해 할 필요도, 뭔가 더 채워야 할 것 같은 필요도 느끼지 말아야 한다. 그러면 점점 무거워질 뿐이다. 무거워진 것들은 가라앉을 뿐이다.

 

행복하게 살고, 행복하게 죽는 것, 그것이 삶이어야 한다.


이 글은,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을 위해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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