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판타지

아이루다 2016. 2. 26. 08:29

 

지난 주말에 이러저러한 이유로, 홍상수 감독의 영화 두 편을 보게 되었다. 두 영화 모두 개봉된 지 10년이 훌쩍 넘은 작품들로, 각각 '극장 전', '생활의 발견' 이란 제목을 가지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생활의 발견'은 예전에 한번 봤는데, '극장 전'을 보고 난 후, 그 영화의 주연으로 나온 김상경이 나온 다른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보고 싶다는 생각에 '생활의 발견'을 다시 보게 되었다.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홍상수 감독은 참 특이한 감독이다. 우리나라에 그처럼 영화를 만드는 사람은 없다. 짧은 지식으로, 내가 아는 한 세계적으로도 별로 없어 보인다. 또한 그는 자신의 스타일을 결코 바꾸지 않는다명도가 얼마나 어둡고 밝냐 만 결정될 뿐, 색 자체는 바뀌지 않는다.

 

그리고 그의 영화 속 세상은 늘 현실이다. 말 그대로 우리가 늘 보게 되는 인간군상들의 집합체이다.

 

감독은 사람의 찌질하고, 못났고, 질투하고, 삐치고, 사소한 집착까지 하나하나 다 잡아낸다. 그래도 영화를 보다가 보면, 도대체 저 장면을 왜 넣었을까 하는 장면들도 꽤나 된다. 어떤 면에서는 자연스럽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런데 오늘 그의 영화를 보다가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실 그의 영화는 너무도 비 현실적인 판타지이라는 생각 말이다. 그렇게나 사실적인 표현임에도 불구하고 너무도 환상적이라서 도대체 개연성이 느껴지질 않는다. 우연성이 남발하고, 영화 속 캐릭터들은 현실에는 절대로 존재하지 않을 듯 하다. 물론 내면적으로는 존재하겠지만, 저런 식으로 대놓고 자신의 찌질함을 드러내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영화 속 인물들은 힐끗 볼 것들을 대 놓고 바라보고, 마음 속에만 품었을 만한 불만이나 궁금증을 서슴없이 던진다. 심지어 처음 섹스를 하는 여자에게 어떻게 하는 게 좋으냐고 묻는다. , 어떤 사람은 이 모습이 자연스럽다고 생각 할 수 있겠지만 말이다.

 

지극히 현실적인 판타지, 그의 영화에 대한 개인적인 최종 평가이다. 그리고 사실 홍상수 감독은 현실적인 영화를 찍고 싶은 것보다, 판타지를 찍고 싶어하는 듯 하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이것은 홍상수 감독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사실 대부분의 창작물이 그렇다. 그것들은 기본적으로 판타지일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창작물' 이기 때문이며대부분의 창작물들은 현실을 기반으로 해서 그럴법한 이야기를 품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결코 평범하지는 않다.

 

만약 평범하면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매일 보는 일상을 소설, 영화, 연극에서 보는 것은 고역이다. 그래서 무엇인가 평범하지 않는 것들을 담아야 한다

 

평범하지 않은 것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결국 창작물들은 사람마다 각자 가지고 있을법한 몇 가지 종류의 환상을 충족시켜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 그리고 이 판타지들은 각 당사자의 삶에서 결코 이뤄지지 못할 영원한 욕망으로 이뤄진다.

 

남녀의 지극한 사랑을 다룬 영화는,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을 수 있다. 그런데 이 남녀간의 사랑을 다룬 영화들은 가장 흔한 환상을 다루고 있다. 그것이 바로 남녀간의 지극히 순수한 '사랑' 이다. 이것은 대부분의 남녀라면 가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그런 사랑을 경험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우리는 비슷하게 경험했다고 느낄 수는 있지만, 그것은 비슷한 수준이지, 결코 그 모습은 될 수 없다. 적어도 우리들 대부분이 경험하는 섹스는 결코 영화 속 모습과 같을 수 없다. 우리는 보통 홍상수 감독의 영화 속 섹스 장면과 훨씬 유사하다.

 

이 환상은 너무도 다양하고 사람마다 각자 다르기 때문에, 우리가 접하는 수 많은 종류의 창작물들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우주, 미래, 과학 문명과 같은 형태로 나타나기도 하고, 왕국, 공주, 왕자와 같은 과거의 이야기를 통해 나타나기도 한다. 아마도 최근 10년 동안 나타난 환상 중에서 세계적으로 가장 큰 인기를 끈 작품은 바로 마법에 대한 판타지를 품은 '해리 포터' 가 아닐까 싶다.

 

해리 포터는 다른 판타지들과 다르게, 현실 속 기차 역에서 기차를 타고 마법의 세계로 넘어가는 형식을 취했다. 사실 이런 소설 속 전개는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이것을 접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헤리 포터가 경험하는 마법의 세계가 실제로도 존재할 것 같다는 개연성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이것은 판타지에서 정말로 중요한 것 중 하나이다.

 

환상이 그냥 뜬금없는 환상이면 안 된다. 환상은 그럴 듯 해야 한다. 그래야 그것이 어쩌면 존재할 수 있다고 믿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래야 평생 동안 간직하고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다양한 경로로 판타지를 접하게 된다. 그리고 그 판타지는 각자 다른 사람들이 꿈꾸고, 존재하고, 경험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것은 백설공주나 잠자는 숲 속의 미녀와 같은 이야기로도, 아바타에 나오는 판도라 행성의 나비족 이야기로도, 은하 제국의 전쟁을 다룬 스타워즈 같은 이야기로도 나타난다.

 

그것은 최근 개봉한 베테랑과 같은 영화처럼 비열한 악당을 응징하는 이야기로도, 갖가지 종류의 영웅이 모여서 악과 싸우는 어벤져스 이야기로도달콤한 로맨틱 코미디로도, 수 많은 재난 속에서도 잃지 않고 유지되는 인간애에 대한 믿음으로도 나타난다.

 

판타지는 사람마다 모두 그 종류가 다르지만, 그것이 현실 속에서는 거의 이뤄질 가능성이 없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또한 그것이 하는 역할도 비슷하다. 그것은 바로 현실 세계만이 모든 것이 아닐 수 있다는 믿음이며, 뭔가 이런 일상적인 삶을 벗어나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어떤 세계가 존재할 수 있다는 희망이다.

 

또한 마음에 들지 않고 문제투성이인 세상이 소수의 영웅적 존재들로 인해서 좀 더 나은 세상으로 바뀌길 바라는 마음일 수 있다.

 

그래서 많은 영웅 이야기가 나오고, 그 이야기들 속에서는 반드시 권선징악이 이뤄진다하지만 냉정히 말해서, 이 세상은 결코 권선징악이 이뤄지지 않는다.

 

대부분의 창작물들은 현실에서 이뤄지지 않는 환상을 다룬다. 그런데 우리가 접하는 대부분의 환상은 기본적으로 권선징악을 기반으로 한다. 그렇다면 이 말은 권선징악이 사실은 실제가 아니라, 환상이란 뜻이 된다.

 

우리는 없는 것을 꿈꾼다. 일상은 넘치기에 일상은 영화화 될 수 없다. 특별한 사건만이 영화화가 된다. 그래서 권선징악은 존재하긴 하지만, 특별한 일이다.

 

우리가 만화, 영화, 소설 등을 통해서 접하게 되는 많은 이야기들이 권선징악 형태를 가지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현실에서 결코 권선징악이 이뤄지지 않으니, 환상 속에서 이뤄지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런 종류의 환상을 다룬 작품들을 너무 많이 접해서, 정말로 세상에 권선징악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우리는 착하게 살면 복을 받고, 나쁜 짓을 하면 벌을 받는다고 믿고 싶어한다. 하지만 세상을 좀 살아보면, 이 말이 전혀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이를 먹고도 이것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면, 세상을 너무 편히 살았거나, 너무 협소하게 살았다는 뜻이다. 혹은 흔히 말하는 나쁜 쪽에 속해서 살았을 것이다.

 

판타지는 비현실적이란 문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일단 어느 정도 문제는 있다. 하지만 판타지는 희망을 먹고 살아가야 하는 인간에게 있어서 최후의 소망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것을 잃으면, 삶이 너무 피폐해지고 만다. 이제 죽을 때가 얼마 남지 않은 노인과, 삶에 너무 찌들어서 매일 생존하는 것이 목표인 사람에게는 판타지가 존재할 수 있는 영역이 남아 있지 못하다.

 

그래서 그들은 삶의 현실이 바로 삶의 모든 것이 되고 만다그래서 그들은 한없이 우울해질 수 밖에 없다.

 

판타지는 힘든 현실 속에서 우리가 꿈꿀 수 있는 그 무엇인가가 된다. 그래서 아무리 현실적인 사람이라고 해도 자신만의 판타지를 하나쯤은 가지고 있다. 이것은 스스로 잘 인식하지 못할 뿐, 반드시 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책장으로 가득 찬 집을 꿈꾼다. 전원 생활을 꿈꾸는 사람은 멋지게 지은 집과 텃밭을 꿈꾼다. 살림을 좋아하는 여자는 예쁜 식기와 편리한 주방을 꿈꾼다.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은 자신만의 작은 작업실을 꿈꾼다.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은 최신 컴퓨터와 3개의 모니터가 갖춰진 개인 룸을 꿈꾸고,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은 벽에 계란 판이 붙어 있는 작고 소박한 방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소리를 들려주는 오디오 장비를 꿈꾼다.

 

어떤 이는 중세로 돌아가 기사가 되어서 레이디를 호위하는 것을 꿈꾸고, 어떤 이는 무사가 되어서 한 자루 칼에 의지해 세계를 떠도는 이가 되길 바란다. 누군가는 인도 여행을 떠난 자신을 꿈꾸고, 유럽으로 떠나 낯선 이와 하루 밤을 보내는 것을 꿈꾸기도 한다.

 

간호사나 선생님과 사랑을 나누는 성적인 환상을 품은 사람들도 있고, 영웅이 되어서 세계를 구원하는 사람이 되는 것을 환상으로 품은 사람도 있다. 노래를 잘하는 사람이 되어서 연인에게 감미로운 노래를 불러주는 사람이 되거나, 운전을 잘해서 어디든 기분 좋게 드라이브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도 있을 것이다.

 

반면에 출세를 하거나 자기 집을 갖는 것은 훨씬 현실적이다. 그것들은 노력하기에 따라서 이뤄질 수도 있는 목표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생각했을 때 마음 속이 답답해지기만 한다.

 

왜냐하면 이룰 수 있는 목표는 기본적으로 노력을 해야 할 대상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누구나 크기만 다를 뿐, 삶에 주어진 무게를 지고 살아가야 한다.

 

판타지는 전혀 이룰 수 없는 목표이기에 생각만 하고 끝낼 수 있다. , 노력을 할 필요도 없고, 노력을 한다고 해서 이루질 수도 없다. 우리는 그저 영화나 소설 속에서 나온 이야기들만 바라보면서, 나도 저런 경험을 했으면 좋겠다 라고 만 생각하고 끝낸다.

 

이것이 판타지의 진정한 아름다움이다. 우리는 판타지를 이루고자 힘들게 노력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그저 환상 속에서만 꿈꾸고 끝이 난다. 혹시라도 판타지를 현실화 시키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몽상가'로 불린다. 꿈꾸는 사람이란 뜻이다.

 

사실 판타지가 현실이 되면 난감할 것은 너무도 많다. 공주가 되면 수 많은 파티에 참가해야 한다. 먹기도 힘들고 입기도 힘들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늙는다. 늙은 공주는 더 이상 판타지가 아니다. 또한 결혼한 왕자가 바람을 피우지 않을 가능성도 없다. 사실 바람을 필 가능성이 높다. 얼굴만 보고 결혼을 결심한 남자가 어떻게 젊고 아름다운 다른 여자들을 보고 그냥 지나갈 수 있으랴. 거기에 여자들이 적극적으로 대시를 한다면 말이다.

 

전원 주택을 짓고 나면 집에 갖가지 문제가 생긴다. 텃밭을 가꾸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벌레와 싸워야 하고 질척질척한 땅을 밟고 다니다 보면, 집안에도 흙먼지가 가득해지고 만다. 낭만의 대명사인 벽난로에 연기가 역류하기만 하면 집안 전체가 연기로 가득 차, 그 추운 겨울에 문을 열고 환기를 시켜야 한다.

 

영웅이 되어 사는 것은 좋으나, 여자나 남자를 만날 일도 없이 혼자 숨어서 지내야 한다. 예전에 슈퍼맨은 여자랑 사귀려고 자기 능력을 버리기도 했으니, 얼마나 고독한 일일까 짐작이 된다.

 

모든 특별한 것들은 경외의 대상이 되거나 이질적인 대상이 되고 만다. 그래서 평범한 것이 최고란 소리가 절로 나온다. 특히 행복하게 살려면 평범한 것이 좋다.

 

우리는 현실 속에서 잘생기고, 예쁘고, 돈도 많고, 머리도 좋고, 운동도 잘하는 사람만 되는 것이 훨씬 좋을 것이다. 반면에 우리의 환상 속에 나오는 사람이 되는 것이 반드시 행복할 것이란 법칙이 없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런 현실 속에서 괜찮은 사람이 되어서 잘 사는 사람이 되는 환상을 품지는 않는다.

 

현실 속에서 품은 판타지는 이뤄야 하거나, 이루고 싶은 그 무엇인가가 되고 만다. 그러면 슬픈 일이 된다. 이루고 싶은데, 이뤄야 하는데 이루지 못하는 것은 좌절이다.

 

우리는 환상 속에서는 무한대로 자유롭다. 그것을 이뤄야 할 책임도 없고, 그것을 유지해야 할 의무도 없다. 장점에 가려진 수 많은 단점에 대해서 걱정할 필요도 없다. 그저 좋은 것만 바라보면 된다. 낯선 여자를 만나 하루 밤을 보냈다면, 성병에 걸리거나 나중에 아이를 데리고 올 가능성이 없다. 낯선 남자를 만나 하루 밤을 보낸다 해도, 임신을 할 위험성도 없다.

 

환상 속에서는 그렇다.

 

하지만 우리는 늘 현실로 되돌아 와야 한다. 그리고 어떤 환상들은 현실 속에서 이뤄질 수 있다면 나쁠 것이 없다. 그래서 우리는 늘 꿈을 꾸고 사는 것이 좋다. 꿈을 잃으면, 환상이 사라지고, 현실만 남는다.

 

환상에 너무 빠지면, 세상을 오해하게 되고, 환상에서 너무 멀어지면 삶이 너무 피폐하다. 이것은 적당한 거리에 있어야 한다. 모닥불은 보고 있으면 좋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델 수 밖에 없다. 또한 너무 멀어지면 춥다.

 

자신의 마음 속에 어떤 판타지를 품고 있는지 생각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사실 잘 모르는 경우도 많다. 그리고 그 판타지를 조금이라도 경험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나름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한 좋은 과정이다.

 

너무 빠지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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