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천 번째 글, 주인장 소개

아이루다 2016. 2. 2. 07:27

 

어느새 이 블로그에 적힌 글 숫자가 천 개가 되는 시점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마 방문하시는 분들에게는 아직도 아닐 것입니다. 공개하기 애매해서 숨겨 놓은 글이 몇 개 있기 때문이죠.

 

아무튼 천 번째 글을 작성하기 위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이번 기회에 저에 대한 소개를 하는 것이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써 내려가 봅니다.

 

많은 분들은 아니지만, 몇몇 분들이 어느 정도 꾸준히 방문도 해주시고, 개인적으로도 책을 한 권 내기도 했으니, 저에 대한 소개를 하는 것이 이래저래 좋을 듯 합니다. 하지만 사실 이 말은 핑계에 불과합니다.

 

지금 이 시점에 제 소개를 하려는 진짜 이유는, 이 블로그 속에 형성된 저와 실제 현실 속의 제가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벌어져서결국 감당하기 힘든 수준의 괴리감이 생기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물론 누가 그것을 신경이나 쓰실지 모르겠지만, 저로써는 신경이 쓰입니다. 이것은 일종의 가식이며, 오랜 시간 동안 저도 모르게 저 자신을 포장한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이것을 좀 바로 잡고자 합니다. 물론 이 글조차도 어느 정도의 포장이 있을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래도 최대한 객관적으로 그리고 진실에 가깝도록 써보려고 합니다.

 

이만 잡설은 이만하고, 본론으로 들어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저에 대한 소개는, 일단 편하게 호구조사부터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3 1남의 자녀 중에서 막내로써 전라북도 군산에서 태어났습니다. 지금은 40대 후반의 나이이며, 직업은 컴퓨터 프로그램 짜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저를 소개하기 앞서 부모님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드려야 하는데, 그 이유는 조금 있다가 말씀 드리겠습니다.

 

아버지는 고지식하시고, 잘난 척을 잘하시는 분이십니다. 물론 또 잘난 척 하실 만큼 똑똑하신 분이긴 하지만, 타고난 성격과 삶의 불운함으로 인해 그 똑똑함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신 분이기도 하시죠. 그래서 이것이 평생 한으로 남으신 분입니다. 타고난 지적 능력으로 봐서는 좀 더 성공한 삶을 사셔야 했으나, 그렇지 못해서, 결국 평생 동안 남에게 인정 받는 것이 거의 유일한 삶의 목적이셨습니다. 지금도 내려놓질 못하시고 그러시고 계십니다.

 

아버지는 사람 사귀는 것에 매우 서투르신 편인데, 일단 삶의 모든 에너지가 당신 자신을 뽐내는 것에 맞춰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을 만나면 하시는 이야기의 90%가 얼마나 당신이 잘났는지를 설명하시는데 맞춰집니다. 그리고 나머지 10%는 다른 사람들이 얼마나 못났는지 비웃는데 쓰십니다.

 

이러니 누가 아버지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고 하겠습니까?

 

어머니는 아버지와는 완전히 반대 성격이십니다.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중심 형의 삶을 사시고, 꽤나 잘 하시는 편이십니다. 덕분에 나름 행복하게 사시기도 하고요. 특히 요리를 아주 잘하십니다. 그래서 우리 집은 먹을 것 하나는 참 잘 먹고 삽니다.

 

이제 부모님 소개를 한 이유를 말씀 드리겠습니다. 저희 부모님의 성격은 정말로 극단적으로 다릅니다. 그런데 저는 이런 부모님의 성격이 반반씩 있습니다. 아버지의 고지식과 잘나고 싶은 욕구와 그리고 어머니의 관계 중심 형 삶에 대한 집착을 가지고 있는 것이죠.

 

그런데 이 두 성향은 서로 너무 극단적이라서 참 양립하기가 어렵습니다. 고지식하면서 넉넉하고, 관계의 가치를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으면서도 관계를 맺는 것에 집착하고, 어떤 일을 해내는 행복을 추구하면서도 명백하게 하고 싶은 일이 없는 상태, 이것이 저의 기본 구성입니다.


원래 타인과 관계를 잘 맺고 살아가려면 너그러움이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저는 어머니의 너그러움을 반도 따라가지 못합니다. 사실 아버지의 고지식함이 훨씬 더 크게 작용하는 성격이지요.

 

아무튼 지금과 달리 어릴 때는 친구가 있는 편이었습니다. 그리고 꽤나 깊이 사귀기도 하는 편이였고요. 그리고 관계를 맺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아무튼 많이 복잡했습니다.

 

사실 고등학교 시절까지 저는 아무 생각 없이 살았습니다. 이것은 겸손하게 저를 표현하는 말이 아닙니다. 정말로 아무 생각 없이 살았습니다. 타인에 대해 그리고 당연히 자신에 대해서도 거의 아무런 관심도 없었습니다.

 

그 당시 저는 공부조차도 별로 관심이 없었고, 그냥 시험 때 벼락치기 공부나 하는 수준이었습니다. 그리고 시간만 나면 늘 친구들과 함께 놀았지요. 중학교 때부터 친구 집을 가는 것을 좋아해서, 틈만 나면 친구 집에 가서 잤습니다. 나이를 먹은 지금은 밖에서 자는 것이 꽤나 불편한데, 그때는 뭐가 그리 좋았나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아무 생각 없이 살던 저에게 고등학교 2학년에 세 가지 사건이 일어납니다. 뭐 큰 의미는 아닙니다. 단지 제가 아무 생각 없는 살지 못하게 된 대표적 사건들입니다.

 

첫 번째 사건은 제가 가장 친했던 친구에게 일어난 일인데, 여름 방학에 이 친구가 방학 보충수업을 나오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거의 강제였지만, 사정이 있으면 빠질 수도 있는 보충 수업이었죠저는 친구가 보고 싶기도 하고, 없어서 아쉽기도 했는데, 아무튼 나중에 친구에게 왜 보충수업에 빠졌냐고 물었습니다.

 

그때 친구는 참 묘한 표정으로 이런 말을 했습니다. 보충 수업비가 없어서 빠졌다고요. 저는 그 말을 듣고는 깜짝 놀랬습니다. 왜냐하면 보충 수업비가 만 원이었기 때문이죠. 물론 80년대였기 때문에, 만 원이 지금의 만 원은 아니지요.

 

사실 보충 수업은 거의 전체 학생이 다 참가하는 교육 과정이었습니다. 그래서 빠지고 싶어도 빠질 수 없는 것이었는데, 친구는 돈이 없어서 빠졌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친구의 표정은, 네가 그것을 이해할 수 있겠느냐는 표정이었습니다.

 

저는 할 말을 잃었지요. 저희 집이 그리 부자는 아니지만, 사실 따지면 가난한 편이었습니다만, 돈이 없어서 보충 수업에 빠질 수 있다는 말을 실감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리고 당연히 아무 생각이 없이 살았기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두 번째 사건을 겪은 것은 멀리 떨어진 친구 집에 다녀 오던 길이었습니다. 제가 살던 도시가 군산이었는데, 군산에는 금강을 사이에 둔 장항이란 작은 읍이 있었습니다. 그쪽은 제대로 된 고등학교가 없어서 장항아이들은 보통 고등학교는 군산으로 다녔지요. 그리고 저는 장항에 사는 친구가 몇몇 있었습니다.  번째 사건의 당사자인 친구도 장항에 살고 있는 친구였습니다.

 

그리고 장항에 가기 위해서는 보통 배를 타고 다녀야 했습니다. 15분 정도 걸리는, 강을 건너는 배가 다녔고지금 기억으로 30분마다 한대씩 다녔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아무튼 친구들과 이 배를 타고 장항을 떠나 군산으로 오면서, 저는 배 안에서 친구들과 신나게 떠들고 있었지요. 그런데 갑자기 코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는 것이었습니다. 구두약 냄새였습니다. 그러자 저는 아무 생각 없이 코를 막으면서 어디선가 구두약 냄새가 난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친구들이 당황하면서 입을 다물라는 표정으로 저를 보았지요. 그리고 저는 놀라서 주변을 보니, 그 배 안에서 어떤 아저씨가 배를 타고 있는 다른 손님들 구두를 닦아주고 있었습니다배를 타고 건너는 그 짧은 15분의 시간 동안, 좌석에 앉은 사람들 앞에서 무릎을 꿇고는 열심히 일을 하고 계셨던 것이죠.

 

그리고 그 분과 저의 거리로 봐서, 제가 한 약간 짜증이 섞인 말투, 즉 구두약 냄새가 난다는 투덜거림을 그 분이 듣지 못할 가능성은 없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그 분이 고개를 들어서 저를 바라보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순간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 납니다.


옆 얼굴로 보였던 그 분의 모습은,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표정이셨습니다. 저와 친구들의 시선이 한꺼번에 그분을 향하자, 그것을 느끼시면서 약간의 당황함 그리고 앉은 손님을 향해 무릎을 꿇고 있는 자세에서, 그 나이의 저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서글픔, 굴욕같은 것들이 느껴졌던 것이죠.

 

그 뒤로 저는 배를 내릴 때까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세 번째 사건은 고등학교 2학년 말에 처음으로 여학생들과 미팅을 했던 사건입니다. 이것은 앞의 사건들처럼 저를 순간적으로 느껴지는 경험을 아니지만, 저는 그 미팅을 통해서 처음으로 여자와 사귀는 경험을 했습니다. 물론 이것에 대한 이야기를 쓰면, 또 글 하나가 나올 듯 하니, 자세한 이야기는 생략하겠습니다.

 

아무튼 저는 이 세가지 사건을 통해 비로소 사춘기를 경험합니다.

 

첫 번째 사건은 저에게 제가 속해 있는 안전하고 익숙한 세상 말고, 제가 모르는 불안전한 다른 세상이 있음을 알려 줬습니다. 두 번째 사건은 저에게 무지의 경솔함에 대해 알게 해줬습니다. 세 번째 사건은 제 안에 잠자고 있던 어설픈 감성을 일깨워 줬습니다.


물론 많은 시간이 흘렀으니, 이 세 사건 속의 친구도, 구두를 닦던 아저씨도, 저의 첫 사랑도 아마도 이미 그 순간을 모두 잊었을 것입니다. 단지 저의 기억 속에서 죽는 그날까지 남아 있을 듯 합니다.

 

, 글로 표현하면 그럴 듯 하지만 그리 큰 사건은 아니였습니다. 단지 저는 이제 더 이상 아무런 생각 없이 세상을 살 수는 없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살기에는, 이 세상은 뭔가 이상했고, 저 안에 숨겨진 수 많은 감정들의 생멸은 도대체 저 자신을 스스로 감당하기 힘든 상황으로 흘러가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저는 제가 왜 그렇게 되는지에 대해 답답함을 느꼈습니다. 왜 기분이 좋다가 나쁘다가 하는지, 왜 남의 행운에 질투를 느끼는지, 왜 성공하고 싶어하는지, 왜 인정받고 싶어하는지, 왜 이렇게 제가 열등감이 가득한지 알고 싶었습니다.

 

이 상태에서 저는 대학교에 들어갑니다.

 

아마도 이때부터 저는 많이 어설픈 짝퉁 심리 분석가가 되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지금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거리긴 한데, 아무튼 그 당시 저는 삶에 대해서 뭔가 시니컬하고, 현실에 대한 불만을 느끼면서 사춘기적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게 되었죠. 그러면서도 예전부터 집착했던 관계에는 더욱 더 집착을 합니다.

 

또한 아버지의 피에서 온, 잘나고 싶다는 본능과 독선적인 성격은, 되지도 않는 리더가 되겠다는 욕망을 품게 합니다. 하지만 능력 부족과 더해서 관계성 부족으로 인해 저는 늘 리더가 되는 것에 실패를 했고, 설령 한다고 해도 저의 의도대로 따라오지 않는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화가 나고, 섭섭하고, 삐치는 등등 급격한 감정적 격랑을 겪게 됩니다.

 

그리고 이때마다 감정의 변화에 어쩔 줄을 몰라서, 어떨 때는 한 없이 우울하다가, 어떨 때는 한 없이 밝은 모습을 보이길 반복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럴수록 저는 더욱 더 자신을 한심하게 생각했습니다.

 

그 당시 저는 열등감 덩어리였으며, 우월감의 노예였습니다. 뭐 지금도 크게 다른 것은 아닙니다.

 

그래도 그대로는 살 수 없었기에, 저는 지식을 쌓는데 열중하게 됩니다. 특히 다른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고정적 사고에 대한 비판 능력을 주로 키우게 되는데, 이것은 주로 다른 사람과 논쟁이 벌어질 때, 그것의 허점을 공격하는데 매우 유용한 도구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또한 저 스스로도 그런 능력을 가질 때, 속으로 큰 자부심을 느꼈습니다.

 

'나는 너희들과 달라' 라는 어리석은 생각은, 이후 오랜 시간 동안 저를 지지하게 만드는 자부심의 기반이 되어 주게 됩니다. 그때부터 2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저의 삶의 정체성은 바로 '남들과 다른 나' 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 나름대로 많은 노력을 하기도 했습니다. 덕분에 실제로 다른 사람들에게 '너는 좀 다른 종류의 사람 같다' 라는 말을 가끔 듣기도 했고, 그때마다 속에서 올라오는 우월감을 마약처럼 느끼면서 좋아했던 기억이 납니다.

 

다시 말하면, 저는 저의 정체성을 바로 '평범한 사람들과 구분되는 나' 로 정의한 것이죠. 하지만 이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에는 진짜로 다른 사람과 확연히 구분이 되는 사람들이 존재했으니까 말입니다.

 

그들은 입으로 행동으로 구분되는 나를 말하지도 않고 의도적으로 실천하지도 않고 살지만, 누구에게나 그런 대접을 받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한 분야에서 크게 성공한 사람이나, 지적으로 우수한 능력을 가진 사람, 육체적 능력이나 기타 예술적 능력까지, 타인에 비해서 탁월한 업적을 낸 사람들이 바로 진정한 의미에서 '남들과 구분되는 나' 인데, 사실 저는 그들에 비하면 지극히 평범하기 그지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남들과 구분되는 나'에 대한 우월감을 가질수록, 사실은 '남들과 다를 바 없는 나' 로 인해서 엄청난 열등감을 가졌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뛰어난 존재들을 접할 때마다 저는 더욱 더 그걸 느껴야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들을 깍아 내리고, 색안경을 쓰고 보고, 그들이 가진 장점에 숨겨진 단점을 발견하고는 그것을 통해 그들이 이뤄낸 것들이 사실은 아무 것도 아니란 식으로 말하고 다녔습니다.

 

한 마디로 질투심에 사로잡힌 찌질한 존재였던 것이죠.

 

저는 지금도 그렇지만, 참 평범한 사람입니다. 그나마 머리는 약간 좋은 편에 속할지는 모르지만, 저를 구성하는 저의 대부분의 특징은 모두 평범한 수준에 머물고 있습니다. 잘하는 것도 많지 않지만 또한 못하는 것도 별로 없는 그런 존재였습니다.

 

그런 존재가 탁월한 자신이 되길 바랬으니, 그 차이로 인한 괴리감이 얼마나 컸을지 가늠하기도 힘듭니다. 그리고 사실 그때 잘난 사람들을 깎아 내리려고 생각했던 많은 것들이 이 블로그에서 '좀 다른 방향으로 생각하기' 라는 능력에서 나름 큰 역할을 했습니다.

 

비록 질투심에 사로 잡혀서 생각해 낸 것들이긴 하지만, 나름대로 이성적으로 일리는 있는 생각들이었으니까 말입니다.

 

아무튼 2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저의 삶은 사실 좀 암흑기였습니다. 아버로부터 물려받은, 행복하게 살기 보다는 가치 있는 삶을 살고자 했고, 그 가치는 마치 행복 따위를 초월한 것이라고 믿고 싶었습니다. 제가 추구하는 것들은 남들의 것들과 달리 옳고 제대로 된 것들이라고 믿고 싶어했습니다.

 

그래서 다른 분들의 가치를 무시하고 무의미하다고 깎아 내렸지요. 그렇게 저는 오만하게 세상을 바라보면서 살았고, 덕분에 그리 행복하지도 못했습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행복한데, 해야 한다고 믿었던 일들을 하고 살았으니, 행복할 턱이 없지요.

 

사실 이 블로그의 글, 시골에 집 짓기, 밤하늘의 별 보기 등등이 모두 비슷한 시기에 시작되었는데, 그 이유가 바로 30대 후반쯤에 더는 견디다 못하고, 억지로 쌓은 모든 것들이 무너져버렸기 때문입니다.

 

가짜로, 억지로 쌓은 저의 가치들은 결국 행복하지 못한 본질적 문제로 인해서 견디지 못하고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습니다. 당시 저는 직장에서 경력을 유지한 채, 지속적으로 경제적 생활을 영위하게 될 것에 대한 가능성도 줄어 들고 있었고, 또한 삶 속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길을 잃었습니다. 그러자 저는 아예 의욕 자체가 사라졌습니다. 한 마디로 진퇴양난에 빠졌지요.

 

그래서 저는 살기 위해서 생각하고 생각했습니다무엇을 해야 자살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지를 말이죠.

 

그러다가 어린 시절에 흥미가 있었던 별 보기를 시작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사실 이 별보기도 제가 가진 일종의 가치에 대한 우월감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얼마나 낭만적이고 멋져 보이는 취미란 말입니까? 별 보기라는 취미 말입니다.

 

하지만 무턱대고 시작한 지 취미는 저의 낭만적인 의도와 달리 무척 고난이 도의 노동과 힘듦을 가진 취미였습니다. 그럼에도 힘드니까 더욱 가치를 느끼고 매달렸지요.

 

시골에 집을 짓는 것은 현실적인 목적이었습니다얼마나 오래 일을 하게 될지 모르지만, 아무튼 벌어 놓은 돈을 최대한 적게 쓰고 오래 살려면 도시에서의 삶은 불가능한 목표였지요. 그래서 저렴한 시골로 가지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별을 좀 편하게 보고 싶다는 욕구도 한 몫 했습니다더해서 시골 집은 별 보는 것 이상으로 사람들에게 내 보이기 좋은 결과물이었습니다.

 

얼마나 낭만적입니까?

 

블로그 글은 원래 집 짓기 프로젝트 하면서 기록하려고 쓰다가 결국 가진 버릇을 버리지 못하고, 제가 그나마 남들보다 조금 잘하는, 심리 분석과, 다른 각도로 무엇인가를 바라보는 꼬인 눈을 자랑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이렇게나 많은 글을 써왔습니다.

 

그런데 참 재미있지요. 저는 사실 각자 나름대로의 목표를 가지고 서로 연관없이 시작한 것들이, 조금 다른 영향과 결부되면서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큰 흐름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제일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 바로 책입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첫 시작점은 바로 제가 처음으로 쇼펜하우어의 인생론을 읽은 시점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때 처음으로 제가 사실 이렇게 못나고 열등한 존재라는 것을 궁금하게 여길 것이 아니라, 그냥 인간 자체가 그런 존재라는 것을 처음으로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인간이면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누구나 그렇다는 것을 쇼펜하우어를 통해서 처음 알게 되었지요.

 

그 책을 읽고 이런 생각에 잠겨 있던 어느 날, 집에서 혼자 밥을 먹다가 갑자기 눈물이 났습니다. 그냥 제 자신이 가여웠지요. 잘나고 싶어하고, 관계에 집착하면서도 멀어지려고 애쓰고, 질투하고, 수 없는 감정 기복을 겪고, 가치 있는 것들을 하려고 하고, 남들과 다른 삶을 살고 싶어하는 것 등등, 어리석기 그지없는 저의 삶 자체가 모두 가여웠습니다.

 

그 날 이후로 저는 조금씩 자신의 문제를 받아들이는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된 것에는 또 다른 커다란 도움의 손길이 있었습니다. 물론 직접적으로 도와준 것은 아니지만 말입니다.

 

그 존재는 저의 여자친구였습니다. 언제나 밝고 명랑하며, 또한 아무 생각 없이 사는 듯 보이지만 늘 행복한 여자친구는, 저에게 행복이야 말로 최고의 가치임을 그리고 그 어떤 행복도 우열을 가려서는 안 된다는 진리를 알게 해줬습니다.


그리고 제가 추구하던 그 모든 것들도 결국엔 행복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는 단순한 진리를 깨닫게 해줬습니다. 인간은 결코 행복의 욕구에서 단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한다는 그 단순한 진실을 그때서야 겨우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처음에 저는 여자친구의 단순하고 의미없어 보이는 행복을 보면서 비웃었지만, 나중에는 그녀의 행복을 부러워했습니다. 정말로 부러웠습니다. 저도 행복하고 싶었지요.

 

하지만 저에게 수 십 년간 박힌 사고 방식은 좀처럼 바뀌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계속 글을 썼습니다. 그 누구도 아닌, 저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들을 적었습니다. 그래서 이 블로그의 글들은 다른 누구에게 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바로 저 자신에게 전하는 충고들입니다.

 

그래서 저는 글을 쓸 때, 최대한 객관적으로 쓰려고 노력합니다. 사실 글의 주제를 정하고 쓰기 시작할 때, 어떤 결론이 나올지는 저 자신도 모르고 쓰는 편입니다. 그래서 제목이 글을 쓰다가 바뀌는 일도 잦습니다.

 

아무튼 이것은 저에게 도움이 되긴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제 두 번째 기회를 맞게 됩니다.

 

사실 이 기회는 아주 우연하게 일어납니다. 그것은 바로 제가 철학과 심리학 책을 찾아 읽기 시작하면서 일어난 것인데, 어떤 책을 보다가 에고의 존재에 대해 제대로 된 이해를 한 사건입니다.

 

저는 에고의 존재를 알게 되면서, 제가 가진 모든 문제를 정말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왜 제가 이렇게 이상하고, 어리석고, 부족하고, 모자란 존재인지를 온전히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언제나 '잘나고 싶어하는 에고' 가 저의 본질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에고는 각자가 만들어 낸 괴물이란 것도 알게되었지요.

 

저는 사실 아무런 근거도 없이 잘나고 싶어 했습니다. 제가 잘나야 할 아무런 이유도 없는데 그랬습니다. 저는 사실 아무런 근거 없이 다른 사람들이 저를 좋아해주길 바랬습니다. 제가 착하고 정직하게 살면 그래야 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그것들은 사실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자신을 행복하게 해주는 사람과 만나려고 하지, 똑똑하거나 법을 잘 지킨다는 이유로 그 사람을 만나려고는 하지 않습니다.

 

저는 아버지가 가진 고지식함으로 인해서 그리 편한 사람도 아니고, 다른 사람에게 다정한 사람도 아니면서도 어머니의 성향으로부터 물려받은 다른 사람과 친하게 지내고 싶다는 욕망을 가진 채 살아왔습니다.

 

세상이 이 보다 어리석은 짓이 어디 있겠습니까?

 

사실 저는 그러면서도 저 자신도 타인과의 관계를 맺을 때는, 저를 행복하게 해주는 사람을 선택합니다. 저는 그렇게 하면서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길 바라는 욕심, 이것이 제가 에고의 존재를 알면서 알게 된 작은 진실 중 하나입니다.

 

사실 에고를 제대로 알게 되면서 알게 된 진실은 너무 커서 지금도 다 소화를 시키지 못하고 있는 편입니다. 그리고 저는 여전히 에고의 노예인 상태입니다.

 

그래서 저의 남은 삶의 목표는 바로 이 에고의 노예의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 저는 제가 사실은 아무 것도 아님을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또한 에고로 인해서 갖게 된 수 많은 어리석은 고정 관념에서 벗어나길 바랍니다.

 

이것이 저의 진정한 욕망입니다.

 

물론 이뤄지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사실 많은 기대를 하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제가 이 길을 가려고 하는 이유는, 제가 알고 있는 수 많은 길 중에서 유일하게 저를 더 이상 힘들게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제가 지금보다 더 행복해질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도 합니다.

 

조금 욕심을 내보자면, 기회가 될 때, 누군가 저와 같은 생각을 하면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이것은 작은 희망입니다. 사실 이 블로그의 초반에는 그런 사람을 우연이 만나게 되길 바랬던 적이 있었지만, 지금은 별 다른 기대도 없고 또한 기회가 왔다고 해도 거부하고 싶은 마음도 없습니다.

 

이것을 순리라고 할 수 있겠지요.

 

아무튼 아직도 저는 여정 중이며, 변해가고 있습니다. 이 블로그에 언제까지 글을 쓰게 될지 모르겠지만, 2천 번째 글을 쓰게 될 때가 온다면, 오늘 쓴 이 글을 보면서 한번 씽긋 웃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저를 미워하지도, 질책하지도, 할 수도 없는 일을 하라고 밀어대지도 않길 바랍니다. 그냥 있는 그대로의 저를 인정하고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길 바랍니다. 능력 없고, 어리석고, 이룬 것이 없는 존재이지만, 그래도 저를 사랑하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럴 수 있을 때, 다른 분들에 대해서도 더욱 열린 마음이 되길 바랍니다. 그래서 조건 없는 관대함을 가지고 싶습니다. 물론 불가능한 목표입니다만, 그 길을 가고자 합니다.

 

긴 글을 모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이 글을 포함해서,  블로그에 써진 모든 글에는 편하게 의견을 주셔도 됩니다. 글들에 날이 서있고, 뭔가 묵직한 느낌이 들더라도, 사실 그것은 저의 어리석은 무게잡기에 불과합니다. 아직은 그 무게를 뺄 능력이 되지 않음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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