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갈등의 이유

아이루다 2016. 3. 20. 17:43


 

인간이 살아가는 세상은 언제나 갈등이 존재한다. 아니, 정확히 말해서 인간이 홀로 사는 것이 아닌, 같이 살아가는 모든 장소에서 갈등이 생겨난다. 그리고 우리는 생겨난 갈등을 어떻게 다루느냐 따라 많이 행복하기도 하고, 살인까지 발생하는 극도의 불행한 상태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가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그 무엇보다도 갈등을 제대로 다루는 법을 알아야 한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 그것은 갈등을 제대로 다루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는 점이 바로 문제이다.

 

만약 우리가 갈등을 제대로만 다뤄낸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이 천국이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갈등을 잘 다루는 것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비법임을 누구나 쉽게 아는데도 불구하고, 왜 우리는 갈등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서 결국 불행해지고 말까? 도대체 그러는 이유가 뭘까?

 

원래 인간들은 여러 명도 아닌, 단 두 명만 같이 있어서 끝없이 갈등을 일으킨다. 이 사실은 과거 수천 년간 이 세상에 살아왔던 사람들도 그랬고, 지금 이 순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도 그렇다. 결국 갈등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오직 혼자 사는 사람 뿐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갈등을 일으키는 이유는 본능적으로 타고나서 그런 것일까?

 

이것을 알아보기 위해서 우리가 갈등을 일으키는 여러 가지 상황들을 살펴보도록 하자.

 

첫째, 우리는 서로 각자의 이득을 추구하기 때문에 갈등이 일어난다. 즉, 각자가 자신에게 유리한 결정을 하고 싶어하기 하기에 당연히 입장이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서로가 이득 되는 방향이 있기에, 같은 의견을 내기도 한다. 하지만 이때는 단지 우연이 이득이 방향이 같아서 그럴 수 있었던 것뿐이다.

 

이런 상황이니, 인간이 서로 모여 살 때 갈등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만약 갈등 없는 세상에 살고 싶다면, 그 누구도 자신만의 이득을 추구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우리 모두가 같은 입장이 되어서 살아갈 때 비로소 갈등이 사라질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가능할까? 당연히 불가능하다.

 

둘째, 우리는 각자 이득을 계산하는 방법이 달라서 그렇다. 그래서 부부와 같이 공통의 입장에서 똑같은 사안을 가지고도 서로 다른 주장을 한다. 쉬운 예가 바로 아이를 키울 때 부부가 경험하는 갈등이 바로 그것이다. 부부는 모두 자신들의 아이가 잘되길 바라지만, 서로 다른 생각으로 인해서 서로 다른 계산을 하고 결국 서로 다른 실행을 하려고 하게 된다.

 

이때 부부는 갈등을 겪을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이들이 아이의 미래를 위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아이가 과도한 짜증을 낼 때, 한 명은 아이를 때리려고 하고, 다른 한 명은 아이를 감싸주려고 하는, 완전히 상반된 입장이라고 해도 말이다.

 

셋째, 우리는 서로 각자 행복한 것을 하고 싶어 하기 때문에 그렇다. 우리 인간은 모두 각자만의 행복이 있다. 물론 우연히 운 좋게 그것이 잘 맞는 사람들도 있지만, 한 부분에서 잘 맞는다고 해서 모든 부분에서 다 맞는 경우는 거의 없다.

 

영화를 보는 것을 좋아하는 연인은, 서로 좋아하는 음식이 달라서 갈등을 겪을 수 있다. 이때 남자는 자신이 좋아하는 고기를 먹으려고 할 것이고, 여자는 자신이 좋아하는 생선 요리를 먹으려고 할 것이다. 이런 경우 밥을 먹을 때마다 끝없이 갈등이 일어난다.

 

그나마 이것은 그리 심한 갈등은 아닐 수 있다. 한 명은 아이를 많이 낳고 싶어하고, 다른 한 명은 아이 없는 삶을 살고 싶어하면, 갈등은 훨씬 심각해진다. 둘이 엄청나게 서로 끌려서 만났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다른 한 명이 자신의 그리 좋아하지 않는 것을 상대를 위해 해주지 못하면 결국 둘은 갈등으로 인해서 싸우다가 헤어지게 된다.

 

넷째, 우리는 감정적으로 내재된 선호도가 존재한다. 즉, 우리는 자신의 성격이나 성향 혹은 취향에 따라서 좋아하는 스타일의 사람들이 있고, 반대로 싫어하는 사람들의 스타일이 있다. 그리고 싫어하는 사람일 경우에는, 사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그 사람에게 좋은 말이 나가지 않는다.

 

물론 화가 났을 때도 마찬가지지만, 사람에 대한 선호도는 거의 본능적으로 반응한다. 그래서 우리는 가끔 이유 없는 갈등을 겪기도 한다. 도대체 둘이 갈등을 겪을 일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서로 그냥 잘 맞지 않아서 가벼운 접촉만으로도 갈등이 발생하게 된다.

 

사실 이 갈등은 답이 없다. 이것은 아름다운 것을 보고 기분이 좋거나, 추한 것을 보고 기분이 나빠지는 것과 같다. 이것은 우리가 조절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그래서 그냥 인정하고 살아가야 한다.

 

대략 방금 나열한 네 가지 상황이 갈등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이유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잘 살펴보면, 첫 번째와 네 번째는 아예 해결 자체가 불가능하다. 이것은 우리가 인간인 이상 그냥 평생 안고 살아야 하는 문제이다.

 

반면에 두 번째는 나쁜 의도가 아니기에, 대화만 충분히 할 수 있다면 훨씬 더 좋은 결론이 날 수 있다. 목적은 같은데, 단지 계산법이 다르기 때문에 나타나는 문제는 당연히 서로 대화를 통해 상대가 왜 그런 결론을 낼 수 밖에 없는지를 들으면서 서로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부부에게 대화는 정말로 중요하다. 사실 부부 갈등의 거의 모든 문제는 바로 대화 없이 자기만의 계산법으로 최종 결정을 하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제 세 번째 갈등 이유가 남았다. 그리고 이 이유가 바로 우리가 가장 간과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또한 이 이유는 앞의 첫 번째와 두 번째 이유를 포함한다고도 볼 수 있다. 즉, 이득을 추구하거나, 이득을 계산 하는 것도 일종의 행복을 추구하는 각자만의 방법론에 해당된다.

 

우리는 누구나 행복하길 바란다. 그래서 모든 사람은 모든 경우에 있어서 자신이 조금이라도 더 행복한 쪽으로 가려고 한다. 그런데 같이 움직이려 하면, 당연히 서로 의견이 갈린다.

 

연인이 만나서 시간을 보낼 때, 남자는 자신이 좋아하는 야구를 보러 가자고 하고, 여자는 자신이 좋아하는 뮤지컬을 보러 가자고 한다. 이때 그나마 남자가 뮤지컬을 보는 것이 참을 수 있다면 여자의 의견을 따를 수 있다. 또한 여자 역시도 자신이 야구를 보러 가는 것을 참을 수 있다면 남자의 의견에 따를 수 있다.

 

문제는 상대가 좋아하는 것을 싫어하게 될 때 일어난다. 여자는 야구를 보러 가는 행동이 재미도 없고 더해서 한심하게 느낄 수 있고, 남자는 뮤지컬을 보는 것이 재미도 없고 돈만 깨진다고 느낄 수 있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언제나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싶어한다. 여기에서 문제는 상대가 그것을 감당해주지 못할 때 일어나게 된다.

 

우리는 이런 이유로 사실 수 많은 갈등을 겪지만, 이 단순한 이유를 스스로 자각하기가 힘들다. 자신이 행복한 일을 하는 것을 당연히 상대도 행복할 것이라고 가정한다.

 

남자는 야구를 보는 것이 너무도 좋으니, 상대 역시도 야구를 보는 것을 좋아할 것이라고 믿는다. 설령 처음에는 별로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자신처럼 좋아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해서 끝없이 시도를 한다.

 

여자 역시도 자신이 뮤지컬을 보는 것이 너무 행복하니, 남자가 처음엔 거부해도, 자주 보다가 보면 결국 자신처럼 뮤지컬에 빠질 것이라고 믿고 싶어한다.

 

더군다나 둘은 서로 어색하고 조심스러울 때, 상대가 원해서 야구장과 뮤지컬을 보러 간 적도 있었다. 그리고 상대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서 나름대로 즐기는 듯 행동도 했을 것이다. 이것이 오해의 씨앗이 되어서 서로 갈등이 깊어지게 만드는 이유가 된다.

 

결혼을 한 후, 서로 알 것을 어느 정도 아는 상태에서도 동일한 현상이 일어난다. 남자는 자신의 원래 집, 즉 여자의 시댁에 가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기 때문에, 부모가 부르기만 하면 가려고 한다. 가면 맛있는 것도 먹고, 편히 쉬다가 올 수 있으며, 부모님을 뵙는 것도 좋으니 그렇게 한다.

 

하지만 여자는 결코 편하지 않는 장소이다. 사실 입맛도 달라서 자신은 시댁 음식만 먹고 나면 속이 메스꺼울 수도 있다. 여자는 생선을 좋아하는데, 가면 늘 고기가 나오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 또한 있는 동안 계속 눈치가 보여서 편하지 않기도 하다. 그러니 여자 입장은 남자와는 완전히 다르다.

 

그럼에도 남자는 여자의 원래 집, 즉 친정에 가는 것을 별로 꺼려하지 않는다는 이유를 들면서 여자에게도 시댁에 갈 것을 강요한다. 가다 보면 편해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여자 입장에서 시댁은 결코 편해질 수 없는 관계이다.

 

사실 그것이 무엇이든 상관이 없다. 우리는 모두가 자신이 행복한 것을 하고 싶어하기에, 끝없이 자신과 함께 있는 사람에게 그것을 같이 해주길 바란다. 그것은 친구들 모임에서, 가족의 모임에서, 다양한 형태의 모임에서 나타난다.

 

그나마 특정 목적을 가진 각종 취미 생활 모임은, 처음부터 목적이 같았기 때문에 그런 갈등이 적을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역시나 갈등이 일어날 수 밖에 없다. 자전거를 타든, 등산을 하든, 서예를 배우든, 바둑을 배우든 상관없이, 회비를 걷고 회식을 하게 되면, 모두 금세 다른 입장이 되고 만다.

 

그리고 이때는 주로 모임의 주인, 즉 회장이 주로 결정을 하게 된다. 사실 인간이 권력을 원하는 이유도 여기에서 나온다. 인간은 권력을 통해서 갈등의 상황을 자신에게 좀 더 유리하거나 혹은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는 결정이 내려질 수 있도록 힘을 발휘할 수 있다.

 

회사의 사장이 술을 좋아하면, 그 회사 사람들은 모두 술을 좋아할 수 밖에 없다. 아니, 술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회사에서 버텨나지를 못한다.

 

이것이 바로 권력이 주는 최고의 가치이다.

 

사회 생활은 그래서 어쩔 수 없는 영역이 있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려면 권력을 갖든지 아니면 혼자 지내야 한다. 하지만 가정은 다르다. 가정에서도 분명히 권력이 존재하지만, 그 권력을 마구 써버리면, 그 가정은 파탄이 날 수 밖에 없다. 또한 휘두름을 당하는 쪽은 삶이 너무도 힘들고 불행해질 수 있다.

 

가정은 권력자에게 휘둘린다고 해서 벗어나기가 결코 쉽지 않다. 그리고 그 안에서 혼자 지낼 수도 없다.

 

이렇듯 갈등은 승자와 패자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그리고 승자는 자신을 행복하게 만드는 일을 하고, 패자는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승자에게 맞추기 위해서 억지로 한다.

 

이 문제를 도대체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어쩔 수 없는 일일까? 그냥 모임이라면 빠지면 그만이지만, 가족이라면 그것이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이제 갈등을 해결 할 수 있는 나름대로 방법을 찾아 보도록 하자. 물론 이때 중요한 것은 남이 아닌, 자신이다. 즉, 자신을 바라볼 수 있어야 갈등 해결의 실마리가 보인다.

 

우리는 폭력을 쓰거나 권력을 이용해 무조건적으로 결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든 갈등 상황에서 상대를 이기기 위해 나름대로 논리라는 것을 만들어 낸다. 즉, 야구를 봐야 할 논리를 만들고, 뮤지컬을 봐야 할 논리를 만든다. 야구가 왜 중요한지, 선수들이 얼마나 위대한지 설명하려고 애쓴다.

 

고기가 왜 몸에 좋은지, 생선이 왜 몸에 좋지 않은지를 각종 연구 논문과 인터넷에 떠돌아 다니는 정보를 취합해서 외운다. 하지만 사실 반대 의견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렇지만 그런 의견들은 그냥 무시가 된다.

 

왜냐하면 그것이 사실이냐 아니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냥 상대를 이길 논리만 있으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이 행복한 일을 하게만 만들면 된다. 그것이 최종 목적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잘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옳기 때문에 상대를 설득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누구나 그냥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려고 할 뿐이다. 이때 이론과 논리는 그저 그것을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어떻게 행복이 이론과 논리로 설명되겠는가?

 

고기가 좋아서 먹는 것은, 고기가 맛있어서 그럴 뿐이다. 고기가 몸에 좋아서 먹거나, 고기가 자신에게 꼭 필요해서 먹는 사람은 거의 없다. 고기 먹는 것을 좋아한다면, 고기를 먹는 것이 행복해서 그럴 뿐이다.

 

그럼에도 상대를 설득하기 위해서 고기를 많이 먹으면 좋은 이유를 수십 가지 가져다 댈 수 있다. 하지만 상대 역시도 고기가 몸에 좋지 않은 이유를 수십 가지 가져다가 댈 수 있음을 왜 생각하지 못할까?

 

그것은 결코 옳은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냥 행복한 것뿐이다. 이것을 잊지 않을 수 있다면, 우리는 누군가와의 갈등에서 좀 다른 시야로 그 문제를 바라볼 수 있다.

 

자신도 자신이 행복한 일을 하려고 하고, 상대도 자신이 행복한 일을 하려고 한다. 둘은 모두 똑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가장 쉬운 해결책은 바로 번갈아 가면서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상대가 그것을 싫어한다면 헤어져야 한다. 아무리 외모가 끌리고, 성격이 끌리고, 재력이 끌려도 우리는 자신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을 하면서 살아가긴 힘들다.

 

물론 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럴 경우, 자존감이 바닥을 길 수 밖에 없다.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억지로 하면서 사는 삶은 결국 노예나 다름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실 결혼을 할 때 가장 중요하게 챙겨야 할 부분이 바로 이것이다. 상대의 행복을 감당할 수 있느냐 여부이다. 혹시나 자신이 그것을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이 있다면, 당장 포기하기 바란다. 입장을 바꿔서 자신이 행복한 것을 하지 못하게 할 경우, 그것을 감당할 수 있겠는가? 그럴 자신이 있다면 해도 좋다. 하지만 결국 실패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부부의 경우, 같은 행복을 추구할 수 있다면, 그 보다 좋은 경우가 없다. 사실 돈이 적어도, 미래가 불안해도 큰 문제가 안 된다. 적어도 두 사람은 행복하게 살 수는 있다. 하지만 반대로 서로가 감당하지 못할 행복을 추구할 경우, 그 결혼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파탄으로 끝이 나게 된다.

 

남편이 유흥업소에 다니는 행복을 추구한다면 어떻게 감당하겠는가? 아이를 키우는 아내가 많은 모임에 참석해서 밤 늦게까지 술을 먹고 다니는 행복을 추구한다면 그것을 어떻게 감당하겠는가?

 

물론 감당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드물다. 그래도 이것이 두 번째 해결책이 된다.

 

즉, 힘들지만 상대의 행복을 인정해주는 것이다. 그래서 설령 같이 하지는 못해도, 하는 것을 방관하고 살 수는 있다. 그리고 자신도 자신만의 행복을 추구하면 된다. 사실 가정은 깨지지만 않으면 나름 성공한 것이다. 그리고 가족은 공동의 책임이란 점에서도 충분히 그 기능성이 있다.

 

그래서 꼭 같이 뭔가를 하면서 행복할 필요는 없다. 그냥 서로가 각자 행복해도 가정이 공동의 목표를 향해 갈 수 있으면 된다. 사실 중년에 들어선 많은 부부들이 그렇게 살고 있다. 같이 뭔가를 하는 가족도 있지만, 많은 가정은 각자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간다. 그래도 괜찮다.

 

그리고 더 이상의 해결책은 없다.

 

같이 하든가, 서로 각자 하든가 하는 수 밖에 없다. 같이 못하면서 서로 하지 못하게 하면 반드시 헤어질 수 밖에 없다. 그리고 헤어질 때는 서로 원망을 하겠지만, 사실 둘은 서로 다른 행복을 추구했을 뿐이란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그래도 사람들은 한쪽 편을 들어주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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