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철학

즐거움 행복과 가치 행복

아이루다 2016. 2. 5. 07:06


 

최근에 어떤 분의 추천으로 EBS 인문학 특강인, 최인철 교수님의 '나의 삶, 나의 행복' 이란 강연을 볼 기회가 있었다. 비록 단 두 번에 걸친 짧은 강의였지만, 보통 사람들이 쉽게 간과할 수 있는 행복에 대한 다양한 숨겨진 이야기들을 흥미롭게 다루고 있었다.

 

그리고 강연 중에, 행복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여러 관점에 대해 말씀을 해주셨는데, 그 중에서 개인적으로 머리 속에 가장 크게 들어 온 설명은, 바로 행복의 본질이 과연 즐거움인지 의미나 가치를 추구하는 것인지를 결정하는 관점에 대한 부분이었다.

 

그리고 강연자였던 교수님은 이것을 칼로 자르듯이 나눌 수 없다고 하셨고, 또한 우리가 추구하는 많은 종류의 행복은 이 둘을 모두 가지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추가 설명했다.

 

개인적으로 이 의견에 충분히 공감한다.

 

사실 개인적으로 과거엔 가치 행복만이 진짜 행복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즐거움의 행복과 가치 행복이 사실은 동등하다고 믿는 쪽으로 변화 되었다. 그리고 사실 이 블로그의 글을 쭉 보다가 보면, 그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기도 하다.

 

교수님 설명에 의하면, 보통 사람들은 젊은 시절엔 즐거움의 행복을 추구하다가 나이를 먹으면 가치 행복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바뀐다고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젊은 시절엔 가치 행복을, 나이를 먹을수록 즐거움의 행복을 인정하는, 반대의 길을 가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교수님 역시 비슷한 지적을 했는데, 아무리 즐거움과 가치 추구를 통한 행복이 함께 발생하더라도, 사람들의 머리 속에서는 서로 양립되는 개념을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생각해 봐야 한다. 특히 이것은 한쪽 방향으로만 나타는데, 주로 가치 추구를 통한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즐거움을 통해 행복한 사람을 비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뭐, 이런 면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개인적으로도 그랬으니 말이다.

 

쉽게 말해서,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막장 드라마를 보면서 즐거운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그리 쉽게 바뀌지 않는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을 가치 있다고 생각하긴 힘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두 가지 종류의 행복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자. 일단 장점을 보자.

 

첫 번째, 즐거움의 행복은 가볍다. 쉽게 얻을 수 있고, 쉽게 버릴 수도 있다. 따라서 집착이 덜하고 무리한 노력을 하거나 하는 등의 헛된 행동을 하지 않는다.

 

또한 그 행복은 오직 그 자신만 관련된다. 누가 뭐라고 하든 상관없이, 누구와 비교할 필요도 없이 발생한다. 무엇을 하든, 자신만 행복하면 되기 때문에, 그저 홀로 행복할 수 있다.

 

그것이 막장 드라마를 보는 일이든, 놀이 공원에 가서 놀이기구를 타는 일이든, 맛있는 밥을 먹는 일이든, 그 모든 경험의 주체는 그 자신이다. 따라서 남이 그렇게 재미있게 노는 모습을 보면서 부러움이나 질투를 느낄 수 있을지는 몰라도, 남들에게 자신의 행복을 바라봐 달라고 하지는 않는다.

 

그냥 그것이 행복하니까 하는 것이다. 또한 이 말은 반대로 우리가 맛난 것을 먹거나, 놀이 공원에 간 것을 누군가에게 자랑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긴다면, 사실 우리는 그것을 제대로 행복하게 즐기지 못한다는 말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우리가 너무 즐겁다면, 사실 아무런 생각도 안 난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정말로 행복했던 시간들은, 그 시간이 끝난 후 기억으로만 알 수 있을 뿐이다.


이것은 쌓이는 행복이 아니다. 순간순간 지속적으로 소모되는 행복이다.

 

두 번째, 가치의 행복은 무겁다. 한번 가기 시작하면 좀처럼 되돌릴 수 없다. 그로 인해서 우리는 반 영구적인 행복을 누릴 수 있다. 마치 무거운 쇠로 만든 공을 굴리는 것처럼, 처음엔 굴리기가 무척 힘들지만, 어느 정도 힘들게 노력을 해서, 일단 굴러가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어렵지 않다.

 

더해서 남들이 그 가치 행복에 대해서 좋은 말을 많이 해주기 때문에, 추가적으로도 행복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즐거움의 행복에 비해서 남는 것이 있다는 점이 좋다. 운동을 열심히 했거나, 공부를 열심히 했거나, 책을 열심히 읽었다면, 무엇인가가 몸과 마음 속에 남게 된다.

 

이것은 소모되는 행복이 아니다. 이것은 매일 쌓이는 행복이다.

 

지금까지 장점을 알아 봤으니, 단점도 알아보도록 하자.

 

첫 번째, 즐거움의 행복은 모든 것이 그렇듯이 장점이 곧 단점이 된다. 가볍고 쉽게 얻을 수 있는 행복이기 때문에, 매일 소모되어서 결국 남는 것이 없다. 또한 반복되면 반복될 수록 점점 더 익숙해지고 지루해지고 만다. 말 그대로 권태를 느끼게 된다.

 

더해서 돈이 많이 든다. 물론 TV를 보는 것은 돈이 별로 안 들지만, 조금이라도 집을 벗어나게 되면, 금세 많은 돈이 든다. 먹을 것을 먹거나, 놀이 공원에 가거나, 뭔가를 보려고 할 때마다 그렇다. 그래서 끝없이 돈을 벌어야 한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보통 즐거움의 행복은 지식을 쌓은 일과는 거리가 먼 편이어서, 나이를 먹어도 머리 속에 쌓이는 지식이 부족하다. 그리고 이 부족한 지식은 가진 정보의 양이 상대적으로 부족하게 만들어서 결국 다른 사람들에게 쉽게 이득을 뺏기게 된다. 우리 인간 사회에서는 정보가 바로 이득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결국 부족한 지식은 결국 소탐대실의 전형적인 모습이 되게 만든다. 즉, 작은 이득 앞에서는 최선을 다하지만, 실제로 크게 잃고 있는 것은 아예 인식조차 못하고 살아가게 된다. 쉽게 말해서 모르기 때문에 마음은 편할지 모르지만, 평생 동안 자신도 모르게 큰 손해를 입으면서 살아간다. 돈도 많이 필요한데 말이다.

 

이것을 모두 감안하더라도 마지막 문제가 남는다. 그것은 우리가 늙어간다는 점이다. 원래 즐거움의 행복은 활동적이고, 오감 만족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우리는 나이를 먹을수록 돈도 줄고, 움직이기도 쉽지 않고, 감각 기관도 둔해지고 만다.

 

또한 쌓은 경험들이 점점 많아져서, 뭘 해도 젊은 시절만큼 즐겁지도 않다. 그래서 결국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서 점점 덜 행복하게 될 수 밖에 없다.

 

두 번째, 가치 행복은 즐거움의 행복이 가진 단점을 많이 극복할 수는 있지만, 이 역시도 치명적인 문제가 있다.

 

기본적으로 우리가 가치의 행복을 추구할 때는 혼자서 행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가치라는 것 자체가 원래 타인의 인정으로부터 발생하기 때문이다. 개똥을 모으는 것을 아무리 가치 있다고 우겨도, 남들이 모두 비웃으면, 결국 그만두게 되어 있다.

 

따라서 우리는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타인으로부터 인정받으려는 노력을 하게 된다. 그리고 이것으로 인해서 가치 비교라는 아주 좋지 않은 효과가 나타나게 된다. 결국 가치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가 다른 사람의 가치보다 더 의미 있고 우월하길 바라게 된다.

 

왜냐하면 그래야 자신의 행복이 더욱 가치 있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렇게 가치 있어진 행복은, 자신이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삶 자체를 더 중요하게 여길 수 있게 해준다. 그러면 우리의 자존감이 높아지고 그럼으로써 더욱 더 행복해질 수 있다.

 

가치는 사전에 이미 정의된 사회적 인정이나, 학문적으로도 주어질 수 있다. 우리는 공공 의식이나 지식을 중요하게 여기는 개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위해 헌신하거나 학문을 배우고 연구하는 것 자체를 하나의 가치로 여길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꼭 누군가 그것을 알아 주지 않아도 그렇게 할 수 있다.

 

그러니 자신은 학문을 연구하고 있으니, 타인의 인정을 바라지 않는다든지, 자신은 시골에서 텃밭을 가꾸는 삶을 살고 있으니, 그런 사람들의 인정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착각인다. 그런 가치 역시도 과거의 누군가 쓴 책이나, 과거에 유명했던 사람이 한 말이나, 꼭 누가 말했는지는 몰라도 우리 사회 전체가 이미 상식으로 알고 있는 것들을 기반으로 해서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즐거움의 행복인, 배가 고파서 밥을 먹는 것은, 오직 혼자서 발생되는 상황이다. 누가 배고프라고 해서 배고픈 것도 아니다. 누가 밥을 먹는 것이 진리라고 해서 밥을 먹는 것도 아니다. 그냥 배고프니 밥을 먹는다. 하지만 가치는 이와 다르다. 가치는 누군가 그것이 맞다고 말해줘야 한다. 오래된 철학자든지, 부모님이든지, 학교 선생님이든지, 친구든지, 도덕책에서든지, 종교 지도자들이든지, 아무튼 누군가는 말해줘야 한다.


원래 행복의 기본 개념은 스스로 만족하고 끝내야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가치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남들의 가치와 자신의 가치를 끝없이 비교하게 된다. 이런 상황이니 가치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이 가진 근본적인 문제점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즉, 가치 행복은 상대적인 행복이다. 남들과 끝없이 그것에 대해서 얘기를 나눠야 비로소 행복해진다. 혹은 얘기를 할 기대를 하면서 행복해진다.

 

여기까지 해서 즐거움과 가치 행복의 장단점을 대충 살펴봤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이 둘 중에서 어떤 쪽을 더 중요하게 여겨야 할까? 이것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 인간이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서 점점 더 가치 행복으로 기운다는 사실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왜 사람들은 나이를 먹을수록 가치 행복 쪽으로 기울게 될까?

 

이것은 사실 당연하다. 왜냐하면 이미 설명했듯이, 즐거움의 행복은 한계가 명확하다. 우리의 몸은 늙고 아프다. 그리고 감각 기관을 예전과 달리 무뎌졌다. 더군다나 경험할 수 있는 대부분의 즐거움은 이제 모두 경험을 했기 때문에, 새로운 것도 없고 신기한 것도 없다. 그러니 모두가 뻔하고 뻔하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바로 이런 의미이다. 그래서 중학교 시절엔 벌레만 봐도 깜짝 놀라 서로 얼굴을 바라보면서 10분을 자지러지게 웃을 수 있지만, 나이를 먹으면 무표정하게 손으로 때려 잡게 된다.

 

더 이상 즐거움을 얻을 수 없게 된 우리는 의지적으로든 아니면 떠밀려서든 결국엔 가치 행복을 추구하게 된다. 즉, 즐거움의 행복은 언제나 끝이 있다. 아무리 행복한 것도 언젠가는 권태가 찾아오고 결국 불행해진다. 그리고 나이를 먹을수록 우리가 선택 가능한 즐거움은 점점 더 줄어들게 된다.

 

결국 우리는 행복의 안전함을 위해서 즐거움과 가치 행복을 둘 모두 추구해야 한다. 이것이 동시에 이뤄지지 못하면, 절음발이 된다.

 

사실 행복의 가장 일반적인 정의, 스스로 만족하고 끝낸다는 관점으로만 보면, 위대한 연구를 해 낸 사람보다 그냥 막장 드라마를 보면서 낄낄거리는 사람의 행복이 훨씬 더 적합하다고 할 수 있다. 위대한 연구는 누군가 알아줘야 그 행복이 완성되지만, 막장 드라마는 아무도 없이, 혼자 웃고 행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제가 막장 드라마는 끝이 나게 되고, 다시 현실 속으로 돌아와야 할 때가 있다. 물론 이것을 거부하고 끝없이 다시 새롭게 시작되는 막장 드라마를 보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때 문제는 하나뿐이다. 머리가 점점 비어가고, 육체는 점점 늙어간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추구하는 다양한 종류의 행복에는 과연 행복과 가치가 어떤 식으로 구성되어 있을까?

  


 <강연 중 나온 그림이다. 클릭하면 좀 더 크게 볼 수 있다>


이 그림을 보면 기본적으로 우리가 추구하는 거의 모든 행복들에 즐거움과 가치가 많이 함께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단연 여행이 최고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 즉, 진짜로 즐겁고 가치가 있으려면 여행을 떠나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 통계치는 우리가 가진 또 다른 문제점을 설명해주고 있다. 그것은 바로 행복에 대한 허영심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즉, 가치 행복이 가진 가장 큰 문제점인, 비교의 문제점을 말해주고 있다.

 

화잘이 좋지 않아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게임, 잠, 휴식 등이 의미가 없는 쪽에 있다. 또한 즐거움도 낮은 편이다. 반면에 운동, 종교 활동, 여행 등은 가치도 있고 즐거움도 높은 쪽으로 나타난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답변을 했다고 해서 이 판단이 정말로 옳을까? 이것은 단순히 판단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이상하게도 삶의 필수적인 요소들을 별로 의미가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 생존에 가장 중요한 자고, 쉬는 것을 상대적으로 무의미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정상적인 것일까? 그나마 먹는 것은 먹는 것 자체보다, 남들과 함께 할 수 있기에 상대적으로 높아 보인다. 아마 먹는 것도 혼자서 먹는 것만을 가정 한다면, 자는 것 만큼이나 낮게 나올 것이다.

 

단순히 즐겁다는 관점에서만 보면, 사실 그것이 뭐든지 즐거우면 끝이다. TV를 보든지 생전 보지 못한 멋진 풍경을 보든지 상관없다. 문제는 그것들이 가진 가치가 다르다는 점이다. 그리고 가치가 다르면, 즐거움 자체도 차이가 나게 된다. 또한 즐겁다 싶으면 그것에다가 없던 가치를 부여하기도 한다.


원칙적으로 보면, 가치가 있다고 해서 즐거운 것도 아니고, 즐겁다고 해서 가치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가치가 있으면 즐겁다고 여기고, 즐거우면 가치가 있다고 여긴다.


즐거움이 가치가 있으려면, 다른 사람들의 지지와 부러움 혹은 질투가 필수적으로 필요하다. 가치가 즐겁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의 강력한 지지가 기반이 되어야 한다.


결국 그래서 실제로 행복한 것임에도 다른 이들이 가치가 없다고 하니, 시간이 남으니까 한다고 생각하기도하고, 실제로 행복하지도 않은 일인데, 남들이 박수를 쳐준다는 이유로 시간을 아껴서 하고 있다. 과연 게임과 여행의 즐거움과 가치가 저 표만큼이나 벌어질 정도로 크게 차이 나야 하는 것일까?

 

이것이 바로 행복 허영심이다. 우리는 자신의 행복을 다른 사람들의 판단을 근거로 해서 이성적으로 얻으려고 하고 있다.

 

가치의 행복을 얻는 것은 오랜 시간이 걸리는 작업이다. 그래서 우리는 즐거움의 행복을 통해서 중간 중간을 버텨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이 둘은 상호 보완적이며, 반드시 함께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오랜 시간 동안, 즐거움의 행복을 가치 행복에 비해서 밑에 두는 어리석은 짓을 해왔다.

 

그러다 보니, 지금도 즐거움의 행복을 내려다보는 못된 버릇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매일 소소하게 행복한 것은 가치 행복이 아니다. 그것은 즐거움의 행복이다. 물론 즐거움의 행복만 추구하는 것도 심각한 문제이기 때문에 조심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치 행복만이 최고라고 주장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나마 즐거움과 가치 행복의 유용성을 결정하는 것이라면, 건강, 지식 등을 쌓을 수 있느냐에 대한 관점일 것이다. 아무래도 즐거움만 추구하다가 보면, 건강을 잃거나, 지식을 쌓지 못할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회는 기본적으로 가치 추구의 행복 쪽으로 손을 들어줄 수 밖에 없다. 그래야 우리의 미래가 조금이라도 더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가치 행복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 삶을 살아갈수록, 우리를 붙잡아 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가치는 거품이 낄 여지가 너무 많다. 먹는 것은 배가 차면 더 이상 못 먹지만, 가치는 끝없이 올라갈 수 있다. 서로 가치 있다고 여기는 사람이 대화를 시작하면, 마치 그 가치 이외엔 모든 것은 의미 없다는 식의 결론이 날 수도 있다. 

 

그래서 꼰대가 된다. 그래서 고지식하고 무거운 사람이 된다.  

 

가치를 자신과 일치화 시키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애국심을 자신과 일치 시키고, 가족의 사랑을 자신과 일치화 시킨다. 그래서 버릴 수가 없다. 그것을 버리면, 자신이 버려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정한 의미의 가치는, 그것을 버릴 수 있을 때 비로소 얻을 수 있다. 그 가치가 사실은 아무것도 아닌, 자신을 행복하게 해주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면, 가치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그때야 말로, 우리가 마음껏 가치를 추구할 수 있게 된다. 그때야 말로, 우리가 가치가 가진 치명적 단점인, 타인의 인정을 필요로 하는 것에서 벗어나, 오롯이 스스로 만들 수 있는 순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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