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철학

행복하고 싶다면

아이루다 2016. 1. 24. 17:46


사람은 누구나 행복하길 원한다. 이 말은 너무도 당연해서, 더 이상 덧붙일 말이 없다. 특히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더욱 더 이 말을 긍정하게 된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우리는 어떻게 행복할 수 있을까?
 
사실 이 질문은 지금까지 너무도 많이 묻고 답하기가 이뤄져서 그 답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는 않다. 인간이 만들어 내는 각종 창작물들, 즉 영화, 소설, 각종 수필, 시, 철학, 음악, 미술, 연극, 오페라 등등이 가진 목적의 90% 이상은 행복에 대한 직접적인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그리고 나머지 10% 역시도 행복에 대한 간접적 이야기로 채워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렇듯 행복은 인간에게 있어서 모든 행위의 최종 궁극적 목표이다. 그 어떤 인간도 이것의 한계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인간이 만들어 내는 모든 창작물들이 바로 행복과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연관되어 있게 된다. 즉, 인류 역사를 통해서 만들어 낸 모든 것들이 바로, 어떻게 하면 우리를 더욱 행복할 수 있을까에 대한 오랜 시간을 통해 내려진 나름대로의 답인 셈이다.
 
덕분에 우리는 매일 끊임없이 어떻게 행복할 수 있느냐에 대한 아주 다양한 형태의 많은 답을 접할 수 있다. 매일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다.
 
누구는 여행을, 누구는 공부를, 누구는 친구를, 누구는 최신 스마트 폰을, 누구는 가방을, 누구는 온천을, 누구는 새 집을, 누구는 새 차를, 누구는 책을, 누구는 영화를, 누구는 집에 있는 것을, 누구는 게임을, 누구는 도박을, 누구는 마약을, 누구는 음식을, 누구는 담배나 술을 행복의 답이라고 추천한다.
 
그리고 우리들은 이 수 많은 답들 중에서 자신에게 그나마 잘 맞는 것을 찾아서 행복하기 위한 노력을 한다.
 
설령 별로 행복과 관련이 없어 보이는 회사에서 일에 대한 이야기를 하거나, 학교에서 공부에 대한 이야기를 하더라도 결국 이것들은 행복과 관련이 된다. 일을 잘하는 것도, 공부를 잘하는 것도 결국 행복하기 위한 과정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각자의 답들은 우리가 조금이라도 더 행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높게 해준다. 물론 꼭 그렇지만은 못하다. 운이 없다면 하고자 했던 일이 제대로 안되거나, 해도 생각만큼 행복을 얻지 못해서 실망하는 경우도 생긴다. 그러면 우리는 또다시 어떻게 행복할 수 있는가를 가지고 고민하기 시작한다.
 
이 과정은 인생 전체적으로 반복된다. 즉, 우리는 평생에 걸쳐서 어떻게 하며 행복할 것인가를 고민하면서 산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답을 찾기도 하고, 다른 어떤 사람들을 결국 답을 찾지 못해서 불행하게 살다가 세상을 떠난다.
 
하지만 행복을 찾은 사람이라고 해도, 자신에게 닥친 예상치 못한 불행을 당하게 되면, 언제 행복했는지 기억이 나질 않을 만큼 금세 불행해지고 만다. 신체의 일부가 절단되거나, 치료하기 힘든 병에 걸리거나, 사기를 당해서 많은 돈을 잃거나, 직장에서 강제로 퇴직을 당한 후 사업에 실패하거나 하면 지난 몇 년 전 행복이 가물가물 해진다.
 
이렇게 나름 행복했던 사람이 어떤 불운함으로 인해서 불행하게 된 상황에 놓이게 되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려고 할까?
 
보통 사람들이 어떤 문제에 닥치게 되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은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느냐에 대한 해결책을 찾는 것부터 시작한다. 즉, 아프면 병을 고치고, 돈이 없으면 돈을 벌면 되는 것이다. 그것만 해내면 언제 그랬냐는 듯 문제는 사라지고 만다.
 
그래서 이것은 나름대로 괜찮은 해결책이다. 하지만 이것은 냉정히 말해서 임시적인 해결책일 뿐이다. 아프면 병을 고쳤지만, 또 아프면 어떻게 할 것인가? 사실 그래서 병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은 자신의 몸이 건강하지 못하다는 것을 인정한 후, 평소에 힘들어도 열심히 운동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비슷하게 만약 지금 돈이 없으면 돈을 버는 데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돈이 덜 드는 삶을 계획해야 한다.

보통 불행해진 사람들은 다시 행복해지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노력들은 임시적이거나 혹은 얼마간의 유효기간을 유지하다가 사라지고 만다. 물론 이런 행위를 연속적으로 반복하면, 그것도 나름대로 행복한 삶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즐거움과 즐거움 사이에 갑자기 찾아오는 불안함, 걱정, 고민, 우울함, 외로움 등은 사실 그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 아니라, 잠시간 불행함을 잊은 사람이란 점을 증명해주고 있다. 행복한 사람이라면 절대로 느끼지 않을 감정들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어딘가 집중할 것들을 찾거나, 즐겁고 재미난 것들을 찾거나, 사람들을 만나서 수다를 떨다가 보면, 자신이 행복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이것은 착각이며, 이 착각으로 인해서 우리는 더 이상 행복하려고 노력을 하지 않게 된다. 그리고 모든 노력은 자신을 즐겁게 해주는 것들과 자신을 자극하는 것들을 찾아서, 그것을 하는 것에 집중된다.


이것은 좋은 약을 구하는 것과 좋은 병원을 알아두는 것과 같다. 이것은 아프지 않을 때는 건강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것과 같다. 사실 병에 걸리지 않으려면 몸을 튼튼하게 해야 한다. 병에 걸리고 나면 약을 먹고 치료를 하는 것은, 나름대로 병을 대처하는 방법이긴 하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추구하는 각종 즐거움의 대상들도 마찬가지다. 그것들은 병을 치료해주는 약과 같다. 하지만 원래 우리가 행복하다면 처음부터 필요가 없는 것들이었다.


즉, 우리는 지금 즐거움과 자극이라는 약을 통해 불행함을 잊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이 행복한 것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당장 어느 정도 견디고 살만 하면, 더 이상 행복해지기 위한 그 어떤 생각도 행동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행복은 우리가 믿는만큼 결코 쉽게 얻을 수 있는 답이 아니다. 행복찾기는 정말로 오랜 시간 동안 찾아야 겨우 그 흔적을 찾을 수 있을 정도로 어려운 과제이다.


우리는 정말로 행복하고 싶어한다. 그런데 그것이 어렵지 않게 얻을 수 있길 바란다. 이것이 우리가 가진 근본적 문제이다. 건강하길 바라면서 운동이 힘들지 않길 바라는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쉽게 행복을 얻길 바란다.


이제는 행복하고 싶다는 욕구가 너무 강해져서 이젠 행복 자체가 커다란 욕망이 되고 말았다. 원래 행복은 욕망을 이룬 결과이어야 하는데, 너무도 행복하기 싶어해서, 우리는 이제 행복 자체를 욕망하고 살아간다. 우리는 너무도 행복하고 싶기에, 자신이 사실은 행복하지 않다는 것 자체도 인정하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는 혹시라도 자신이 행복하지 않다면, 거기에 충분히 타당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즉, 우리가 불행한 것이 아니라, 불행할 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에 불행하다고 여긴다. 이 두 입장은 비슷하면서도 완전히 반대의 입장이다.
 
우리가 불행한 것은 우리 자신의 내부적 원인으로 일어난 불행이다. 하지만 불행할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외부적 원인으로 일어난 불행이다.
 
그래서 만약 우리가 행복하지 않다면, 자신이 행복하지 않는 데는 자신도, 타인들도 인정할만한 이유가 있다고 믿는다. 사실 이것은 꽤나 맞는 말이다.
 
암에 걸린 사람은 암에 걸려서 불행하다. 다리가 부러진 사람, 많은 돈을 사기 당한 사람, 소중한 사람의 죽음을 바라 본 사람, 오랫동안 노력한 일이 실패한 사람,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버림받은 사람 등등, 이런 사연을 들으면, 그 사람의 불행이 너무도 당연하게 여겨진다.
 
그리고 이런 불행한 사건의 각 당사자들은, 자신의 불행한 이유가 너무도 명백해서 도대체 행복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신 스스로가 불행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고 믿고, 그렇게 했으니까 이젠 행복하고 싶어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과연 우리가 불행한 것을 인정한 것일까에 대한 의구심이 생긴다.
 
그리고 이것은 결국 인정한 것이 아니다. 사실 우리는 단지 불행한 것을 지식적으로 알게 된 것이다. 우리는 암에 걸린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우리는 암에 걸린 것을 결코 인정한 적이 없다. 인정이란 것은 받아들임을 의미한다. 자신이 마약 중독자라는 사실을 아는 것과 마약 중독자임을 인정하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암에 걸린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암을 치료하려고 한다. 하지만 암에 걸린 것을 인정한 사람은 암을 극복하려고 한다. 물론 이 둘은 결국 최종적으로 죽음이라는 동일한 결론에 이를 수 있다. 하지만 암을 치료하려고 노력한 사람과 암을 극복하려고 노력한 사람은, 그 과정과 삶을 바라보는 태도에서 명백하게 차이가 난다.
 
처음 마음가짐부터 다르고, 그래서 치료 행위의 능동성이나, 건강을 위해서 노력하는 정도에서 모두 차이가 난다. 한쪽 다리를 잘린 사람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다리가 잘린 것을 아는 사람은 어떻게든 원래 잘리기 전의 모습으로 돌아가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다리가 잘린 것을 인정한 사람은, 한 다리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찾는다.
 
이 역시도 치료 과정과 이후 삶에서 명백하게 크게 차이가 난다. 사실 정말로 긍정적으로 표현한다면, 불구의 몸을 스스로 인정하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그런 상태일 때,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찾는 것이다.
 
불행한 사람들 대부분은 결코 불행한 것을 인정한 것이 아니다. 그냥 알게 된 것뿐이다.
 
아는 것과 인정하는 것의 차이가 바로 불행의 이유를 자신의 내부에서 찾느냐, 외부에서 찾느냐이다. 자신에게 닥친 모든 불행함의 이유가 우리들 자신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되면, 불행함이 바로 나로부터 시작되고 있다는 내적인 이유를 찾은 것이고, 불행의 이유를 외부의 원인, 즉 건강, 돈, 사랑의 실패, 노력의 실패 등에서 찾게 되면 불행함의 시작이 외적인 이유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일반적으로 외적 이유로 인해서 불행함의 가능성이 시작된다. 하지만 실제로 불행이 결정되는 것은 바로 각자 내적으로 받아들임에 따라서 최종 결론이 난다. 그래서 똑같은 사건이 각 당사자들에게 일어나도 사람마다 그것을 불행함으로 느끼기도 하고, 별 다른 사건이 아니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그것을 행복으로 느끼기도 한다.
 
좀 극단적인 예로, 몸에 가해지는 고통은 거의 모든 사람들이 싫어한다. 하지만 이 싫어하는 정도는 모두 다르며, 심지어는 그것을 쾌락으로 느끼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그렇다. 10원도 없는 상태는 보통 사람들에게는 죽음과 같은 상황이겠지만, 어느 떠돌이 여행자에게는 단지 잠시 며칠만 일을 하면 되는 상황이 될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서 죽을 듯한 고통을 얻은 사람은, 어느 날 우연이 만난 사람과 다시 사랑에 빠지게 됨으로써, 과거에 자신을 버리고 간 연인이 고맙다고 느낄지도 모른다.
 
아는 것과 인정하는 것의 차이는, 현재 자신의 삶 속에서 겪는 수 많은 사건들 속에서도 크게 구분이 된다.
 
자신이 불행하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만약 요즘 자신이 신경질이 늘고 자주 화를 내더라도, 그것이 외부의 다양한 원인들로 인해서 그렇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매우 당연하다. 자신이 불행할 이유를 알고 있기 때문에, 자신이 불행한 것은 당연하며 따라서 자신이 화를 내는 것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요즘 일이 잘 안 풀리고, 집안은 싸움이 잦고, 돈도 잘 모이지 않는다. 건강은 좋지 않고, 친구와 최근 싸웠으며, 가족들은 사고만 친다. 이 중에서 하나만 적용되어도 우리 스스로가 자주 신경질을 내고, 화를 내는 이유를 충분히 납득할 만 하다. 하지만 진실은 결코 그렇지 않다.
 
우리가 신경질을 내고, 화를 내는 이유는 지금 이 순간 단지 우리가 불행하기 때문이다. 불행할 이유가 있어서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불행하기 때문에 화를 내는 것이다. 여기에서 자신이 불행할 이유를 아는 것은 그저 핑계거리를 찾는데 도움이 될 뿐이다. 화를 내는 자신에 대한 합리화를 위해서 불행한 상황을 이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중에 생각해도 스스로 '난 그럴 만 했어' 라고 여긴다. 하지만 그럴 만 한 것은 없다.
 
지금 이 순간 잘 생각해보라. 우리를 화나게 한 그런 상황이나 어떤 사람의 행동은, 지난 수 년간 같은 행동을 반복해왔다. 버스는 매번 놓쳤고, 가끔 길을 걷다가 넘어지기도 했다. 우리가 과거로부터 경험한 수 많은 불행함을 유발하는 사건들은, 지금 이 순간에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단지 문제는, 그 좋지 않은 사건들이 나쁜 시기에 일어난 것이 문제일 뿐이다. 외부의 사건들은 사실 모두 그렇다. 오늘도 수 많은 사건들이 일어나는데, 우연이 오늘 우리가 불행했을 뿐이다. 그래서 그 사건들은 평소처럼 넘어가지 못하고 크게 증폭이 된다.
 
물론 나쁜 사건이 일어났으니, 우리가 기분이 나빠지는 것은 맞다. 하지만 결국 그 사건으로 인해 불행해진 것은 우리들 자신이다. 이미 충분히 행복한 사람은 그냥 웃고 넘어갈 일을 불행한 사람은 참지 못하고 화를 낸다.
 
우리에게 일어난 불행한 일들은 우리가 화를 낼 정당성을 확보해 주긴 하지만, 사실 나쁜 일들은 결코 우리가 화를 내는 이유는 될 수 없다. 우리가 화를 낸다면, 그것은 그냥 지금 당장 행복하지 않아서 그런 것뿐이다.
 
친구에게 사기를 당해 거액의 돈을 잃는 것은, 어느 커피 가게에 갔을 때, 그 종업원이 자신의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한 사건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래서 평소엔 그냥 다시 주문을 했을 테지만, 그날은 자신의 말을 잘못 알아듣는 그 종업원에게 폭언을 퍼 붇게 된다. 심지어 죽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그래서 거지가 잔칫집에 가는 것은 현명하다. 잔칫집은 흥겹고 행복하기에 동냥을 많이 얻을 수 있다. 만약 거지가 최근 도둑이 든 집에서 밥을 얻으려 했다가는 밥은 고사하고 몽둥이로 맞게 될 것이다.
 
이런 현상들이 바로 우리가 불행함을 알지만 인정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증거가 된다. 우리가 불행함을 인정하게 되면, 그 불행함은 모두 자신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로 갈무리 된다. 그래서 비록 기분은 매우 우울하더라도 전혀 관련 없는 사람들에게 불필요하게 화를 내거나 신경질을 부리는 짓은 하지 않게 된다.
 
원인이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발생하고 있는데, 왜 외부에다가 대고 분풀이를 하려고 하겠는가 말이다.
 
이렇듯 우리들 각자가 불행함을 인정하지 못하고 살고 있다는 사실이 명백하더라도, 우리는 행복에 대한 강한 욕구로 인해서, 자신이 행복하지 않음을 결코 인정하지 못한다. 실제로 이것은 정말로 쉽지 않다.
 
우리는 행복하고 싶기에 행복하다고 착각을 하고, 행복하다고 꾸미기도 한다. 그리고 수 많은 시도를 했음에도 결국 행복해지지 못했다면, 이젠 자신이 행복하지 못한 충분히 만족스러운 이유를 찾는다. 그래서 그것을 찾으면, 그 원인들 때문에 자신이 불행하다고 믿는다.
 
돈이 없어서, 직장이 없어서, 친구가 적어서, 인간관계가 힘들어서, 몸이 건강하지 못해서, 남들 다 가는 해외여행을 못 가서, 사고 싶은 가방을 못 사서, 집이 추워서, 자기 집이 없어서, 월급이 적어서,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서, 짝사랑에 실패해서 행복하지 못하다고 여긴다.
 
그리고 드라마에서, 영화에서 자신과 비슷한 불행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그것을 이겨내고, 행복을 찾는 과정을 보면서, 자신도 그렇게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얻는다. 그래서 잠시간은 행복해진다. 하지만 다시 또 결국 행복하지 않기에 이번엔 행복에 대한 많은 책을 읽고, 전문가들에게 행복의 비법을 전수받으려고 한다.
 
하지만 이 모든 종류의 행위는 비록 자신이 행복하지 않아서 하는 것이지만, 결코 불행함의 원인이 우리들 자신으로부터 출발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있음을 명백하게 증명해줄 뿐이다.
 
정말로 우리들 자신으로부터 불행함이 시작되고 있음을 안다면, 왜 외부에서 그 원인을 찾으려고 할까? 또한 왜 자신이 행복하지 못한 이유를 설명하고 있는 영화를, 책을 보려고 할까? 그냥 우리 자신이 원인일 뿐인데 말이다.
 
그래서 행복하고 싶다면, 외부의 조건들이 아닌 자신을 바꿔야 한다는 단순한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것일까?
 
우리는 가끔 이런 경험을 한다. 회사에서 사람들과 관계로 많은 스트레스를 받은 후, 집에 와서 우연이 TV를 보다가 전혀 몰랐던 재미있는 영화 한편을 정신 없이 보고 난 후, 뭔가 기분이 완전히 달라진 상황을 경험한다. 우리는 돈 문제로 우울했다가, 친구를 만나서 대화를 하다가, 자신이 던진 한 마디에 모두 빵 터져서 크게 웃는 경험을 하고 나면, 기분이 금세 좋아지는 경험을 한다.
 
사실 외부 상황은 아무 것도 바뀐 것이 없음에도 우리는 갑자기 기분이 좋아지고 행복해진다.
 
회사내의 인간관계가 달라진 것도 없고, 돈 문제가 해결된 것도 아닌데, 그냥 그 순간에는 행복해진다. 외부의 상황은 늘 그렇다. 바뀔 때도 있지만, 바뀌지 않을 때도 많다. 사실 외부의 상황은 우리가 어쩔 수 있는 영역이 아닐 때가 많다.
 
긴 설명을 했지만, 단 하나만 기억하면 된다.
 
우리들 중에서 진정한 행복을 찾은 이는 거의 없다. 그래서 사실 지금 자신이 행복하다고 믿는 사람조차도 진짜로 행복할 가능성은 별로 없다. 단지 행복할 조건, 아니 불행하지 않을 조건들이 유지되기에, 그것에 나름대로 만족하고 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정말로 행복하고 싶다면, 우리의 본질은 불행한 존재임을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 행복하게 살려고 남은 삶을 통해 최선을 다해 행복하기 위해서 노력하게 된다. 우리의 노력이 자신의 불행함을 잠시 잊게 해주는, 즐거움과 자극을 찾는 일로 치중되서는 안된다. 우리의 노력은 오직 행복찾기 쪽으로 향해야 한다.
 
하지만 그것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해서 더 이상 불행해질 필요는 없다. 이미 불행함을 인정했다면, 불행은 더 이상 문제가 아니다. 이미 우리는 바닥이며, 더 추락할 곳도 없다. 우리는 그 자리에 머물거나 뛰어 오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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