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철학

최고와 평균 그리고 바닥

아이루다 2016. 1. 22. 08:57


오늘도 많은 사람들은 어떤 목표를 향해 가고 있을 것이다. 오늘이 목표를 향해 첫 발을 떼는 날인 사람도 있을 것이고, 오늘이 목표의 마지막 여정이 되는 날인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대다수는 아마도 목표를 향해 가고 있는 과정 중에 있을 것이다.
 
우리는 짧게는 아침에 늦지 않게 출근하기라는 목표부터, 점심을 먹는 목표, 하루를 행복하게 보내는 목표, 일주일 동안 운동을 하는 목표, 1년간 시험을 준비하는 목표 등등 다양한 형태의 목표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모든 목표가 성공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리고 사람마다 그 목표를 향하고 있는 마음 자체도 차이가 많이 난다.
 
사람들이 목표를 향해 가는 모습을 크게 분류하면, 총 세 가지 형태가 나온다.
 
첫 번째는 목표 자체가 최고의 결과를 향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소수이지만, 사실 이들의 모습이 정말로 목표를 추구하는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다. 달리기를 하면 국내 1등을 목표로 하고, 그것이 달성되면 세계 1등을 하려고 노력한다. 돈을 벌더라도 결국 최종 목표는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된다.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1등을 목표로 하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는 중간 이상만 되면 된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여기에 속한 사람들이 가장 비율이 많다. 사실 세계 1등은 좀 허황된 목표이며, 이루기 매우 힘든 목표이다. 그래서 보통 사람들은 적당한 선에서 자신과 타협을 한다. 적어도 중간 이상이면 되는 것 아니겠는가? 최소한 그럴 수 있다면, 지는 편이 아닌 이기는 편에 속한다고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사실 목표를 이룰 의지가 전혀 없음에도 그냥 무의식적으로 목표를 향해 가는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은 이미 목표를 이룰 의지가 없기 때문에, 그 결과에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다. 그냥 그렇게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가게 될 것이기에, 더 이상 생각할 필요가 없다.
 
이 세 가지 경우를 교실에서 적용시켜보자.
 
총 30명이 있는 한 학급이 있을 때, 거기에 상위 5명 정도는 모두 1등을 향해 공부를 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6등부터 15등 정도까지는 중간 이상을 유지하는 목표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마지막 16등부터 20등 정도까지는 중간 이상이라도 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21등부터 30등까지는 거의 포기 상태일 것이다.
 
물론 이 가정이 정확한 것은 아니다. 그냥 대충 그 정도로 이해할 수 있다.
 
여기에서 시험을 볼 때 당장 가장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은 아마도 상위 5명일 것이다. 그들은 매번 시험의 결과를 받을 때마다 절망과 희망을 교차하고 있을 것이다. 성적이 오른 아이는 기뻐서 춤을 출 것이고, 성적이 떨어진 아이는 자살을 생각 할 정도로 힘들 것이다.
 
두 번째에 속한 아이들은 첫 번째만큼은 아니지만, 늘 중간 이상은 가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성적에 어느 정도는 신경을 쓰게 될 것이다. 그래서 첫 번째 만큼은 아니지만, 아무튼 나름대로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다.
 
세 번째에 속한 아이들은 사실 이제 시험의 결과엔 관심이 없다고 할 수 있다. 공부도 하지 않았을 것이고, 그러니 당연히 성적이 잘 나올 리도 없다. 여기에 속한 아이들에게 있어서 시험은 그냥 귀찮은 일일 뿐이다. 따라서 이 아이들은 성적에 관해서는 스트레스를 거의 받지 않을 것이다.
 
여기까지가 표면적으로만 분석된 결과이다. 그런데 이것이 다일까? 뭔가 우리가 놓치는 것이 없을까?
 
다시 한번 살펴보자. 최고를 위해 노력하는 아이들은, 일단 능동적이다. 성적을 올리려면 공부를 해야 하기 때문에 능동적일 수 밖에 없다. 이기기 위해서는 매일같이, 매 순간 어떻게 하면 이길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한다. 그래서 여기에 속한 아이들은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지하철을 탈 때 책을 펴 들게 된다.
 
물론 성적이 떨어지면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맞다. 하지만 이 스트레스는 또한 다음 시험에서 더욱 더 열심히 공부할 수 있는 힘이 되어준다. 즉, 스트레스가 오직 나쁜 영향만으로 작용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그 안에서 5등으로 마무리를 했다고 해도, 적어도 그 아이의 인생은 평생에 걸쳐 상위권에 머물 가능성이 높다. 즉, 성공한 편일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를 인생 전체로 확장시키면, 1등을 향해 가는 사람들은 그렇지 못한 사람과 아예 시작부터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은 1등이 목표이기 때문에, 남들의 가고 있는 길에 대해서 그다지 많은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따라 해봐야 2등밖에 안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은 자신만의 고유한 전략을 세우려고 애쓴다. 남들에 비해서 차별화 된 어떤 장점과 능력을 가지려고 노력하게 된다. 그래서 사는 것 자체가 매우 힘들다. 그러나 그런 만큼 이들은 남들만큼만 사는 것을 목표로 하는 사람과 삶을 사는 태도 자체가 완전히 다르다. 이들은 능동적으로 산다. 결론적으로 타인과 경쟁하지만, 사실은 매 순간 자신과 싸우고 있는 중이다.
 
그렇다면 남들만큼만 사는 것이 목표인, 두 번째에 속한 아이들은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두 번째에 속한 아이들 역시 모든 분야로 확장했을 때, 여기에 속한 사람들은 평생에 걸쳐 어떤 일을 해내고 난 후, 그 결과가 최고냐 혹은 자신이 만족할 수준인지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남들과 비교해서 어땠는지를 따지게 된다.
 
물론 이것이 달성하기는 훨씬 쉬운 목표이다. 하지만 이들의 가장 큰 문제는 타인과의 경쟁만으로 끝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모두 쉬면, 따라서 쉰다. 모두 일하면, 따라서 일한다.
 
그것도 나름 괜찮다. 하지만 이렇게 살아서는 절대로 자아가 충족되지 않는다. 자아는 언제나 최고가 되길 원한다. 첫 번째에 속한 사람들은 자아의 욕구에 대해서 매우 능동적으로 충실하다. 두 번째는 그들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수동적이다. 사실 중간이라도 가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한다.
 
그래서 결국 단기적으로 큰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지만, 평생에 걸쳐 열등감과 좌절감 속에서 살아가게 된다. 그리고 어쩌다가 첫 번째에 속한 사람을 보면 주눅이 들고, 자신의 삶에 대한 회의감에 사로 잡힌다. 자신도 저렇게 열심히 살았어야 한다고 느낀다.
 
일단 회의감이 들면, 삶이 구차하고 허무하다고 느낀다. 그래서 책을 찾아 본다. 그러면 거기엔 그렇게 써있다. 1등이 되려고 노력하지 말라고 말이다. 돈이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말이다. 성공이 삶의 유일한 목표는 아니라고 말이다. 주변을 바라보고, 삶을 여유를 즐기라고 설명되어 있다.
 
이 말이 틀린 말은 아니다. 문제는 이 조언은 이들을 위한 것이 아니다. 이들에게 있어서 이 말들은 그냥 자기 합리화이거나 혹은 위로의 목적으로 오용이 될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말을 힐링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들이 버려야 할 것은 1등이 되려고 노력하는 마음이 아니다. 사실 이들은 그런 마음을 먹어 본 적도 없다. 그런 마음을 먹었던 적이 있었다면 이미 첫 번째에 속해있을 것이다. 성공 하기 위해서 살아 본 적도 없다. 돈을 엄청나게 많이 벌려고 한 적도 없다. 1등이 되려고 해 본 적도 없다.
 
이들은 사실 그냥 평균 이상만 되면 충분히 만족스럽다고 생각하고 살았다. 그래서 책은 이들을 향한 것이 아니다. 저 책들은 사실 첫 번째에 속해 살아가다가 결국 좌절한 사람들이 읽어야 하는 책이다.
 
두 번째에 속한 사람들이 버려야 할 진정한 것은 바로, 평균치 이상의 삶에 대한 무조건적인 추종이다. 또한 남들만큼은 살고 있다는 자부심이다.

한 사람들은 평균 이상의 삶을 원하기에 언제나 평균값을 보는 것에 익숙하다. 직장인 월급 평균, 자녀 수, 결혼한 나이, 아이를 낳은 나이, 집안의 재산, 살고 있는 집 가격, 학력, 나이에 맞는 적정한 직급, 대를 이은 아이의 성적 등등이 거기에 속한다.
 
그러니 서로가 서로에게 끝없이 비교를 하게 된다. 형제와 비교하고, 옆집과 비교하고, 직장 동료와 비교를 한다. 그러다가 자신보다 더 평균적으로 나은 사람을 보면 부러워하고 질투를 느낀다. 질투는 원래 갖고 싶으나, 갖기 위해서 노력할 엄두가 나지 않을 때 드는 감정이다.
 
이것은 1등을 하고 싶은 질투가 아니다. 그냥 나보다 잘난 사람에 대한 질투이다.
 
문제는 나보다 잘난 사람이 너무도 많다는 점이다. 같은 평균치 이상이라고 해도, 딱 중간에 있는 사람에게 있어서 자신보다 위에 있는 사람은 40%이다 . 10%는 첫 번째에 속한 사람들이라고 해서 아예 열외를 시켜놔도 그렇다.
 
평균 이상이 되기 위해서 사는 사람의 두 번째 문제는, 어떤 일의 결과를 받아 들었을 때, 끝없이 자기 의심을 하고 더해서 그 결과에 대해서 자책을 한다는 점이다.
 
정확히 판단할 수 없을 때, 내가 남들만큼은 했는지 혹은 남들보다도 못했는지 의심한다. 또한 그것이 조금 나쁜 것 같으면, 평균도 못한 사람이란 생각이 들어서 괴로워하게 된다. 반대로 조금 잘났다 싶으면, 또 그것에 그리 기분이 좋아져서 한참 행복하다고 믿는다. 그래서 끝없이 기분이 출렁거린다.
 
요즘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해주는 것이 딱 여기에 맞는 모습이다. 부모들은 아이를 1등을 만들기 위해서 학원에 보내는 것이 아니다. 부모들은 아이가 뒤쳐질까 봐, 평균 이하가 될까 봐 두려워서 학원에 보내고 있다.
 
그러면서도 수시로 두려움을 느낀다. 아이에게 뭔가 더 해줄 수 있는데, 자신이 잘 알지 못해서 해주지 못하는 것이 있을까 하고서 말이다. 그래서 지속적으로 아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정보를 알아내려고 한다.
 
그리고 당연히 이런 심리를 노리는 교육 마케팅이 은밀하게 접촉을 해 온다. 그러면 부모는 그것이 정말로 교육적 효과가 있는지 여부를 따지기도 전에 두려움으로 인해서 돈을 지불한다.
 
적어도 돈을 지불하고 아이에게 그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면, 자신에 대한 의무를 다했다는 생각이 잠깐 들면서 마음이 편해진다. 하지만 이것은 결코 끝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에 속한 아이들을 확장하여 보면, 사실 여기에 속한 사람들은 인생에 실패했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여기에는 1등을 하고 싶다는 자아는 평균도 안 되는 결과를 받아 들었기에, 너무도 심한 상처를 받아서 찌그러지고 움츠러들어서 상처 입은 동물처럼 사나워져 있다.
 
그래서 이들 중 일부는 범죄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 이미 너무도 많은 것을 잃어서, 더 잃을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다. 우리가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이유 중 아주 큰 부분이 바로, 잃을 것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딱히 잃을 것이 없는 사람은 범죄를 저지르는데 있어서 그다지 걸리는 것이 없다.
 
그리고 이들은 사실 평생 동안 깊은 좌절과 스트레스를 받고 살아가게 된다. 이들은 스트레스는 첫 번째에 속한 사람들의 스트레스와는 질이 다르다. 이들에게 있어서 스트레스는 아무런 장점도 없는, 그냥 독과 같다. 그래서 결국 이들은 병에 걸리고 일찍 죽게 된다.
 
학교에서 성적이 하위권인 애들은 시험을 보고 나서 결과가 좋지 않아도 금세 잊는 듯 보이지만, 사실 이것은 그냥 외면하는 것일 뿐이다. 마치 얼굴이 못생겼다고 해서 거울을 보지 않으려는 것과 같다. 하지만 거울을 보지 않는다고 해서 못생긴 얼굴이 달라질 것은 없다.
 
이것은 어떤 문제의 해결책 중에서 가장 어리석은 문제 해결 방법이다. 아니, 사실 해결이 아니라 외면이기에 해결책이라고 하기도 그렇다.
 
첫 번째인, 1등이 되기 위해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받는 스트레스는 강도는 심하지만, 긍정적인 면이 있다. 이들은 능동적이며, 목표 중심의 삶을 산다. 그리고 결국 목표를 이루지 못해도, 그 결과는 좋다. 또한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자신이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합리화를 할 필요도 없고, 스스로 책망을 할 필요도 없다.
 
비록 1등을 못해서 크게 상처를 받았지만, 좌절 속에서 언젠가 마음만 고쳐먹는다면 언제든지 평화로워질 수 있다. 이들을 위한 책은 서점에 참으로 많이 있다. 그리고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적어도 한 번은 아무런 후회 없는 도전을 했기 때문에, 스스로 그 결과만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가 있다면, 충분히 그 책들이 도움이 된다. 즉, 자신을 받아들이고 평화를 얻을 수 있다.
 
두 번째인, 평균 이상이 되기 위해서 사는 사람들의 스트레스는 상대적으로 약한 편이지만, 평생에 걸쳐 나타나게 된다. 이들은 수동적이며, 비교 중심의 삶을 산다. 언제나 평균이 되지 못할 것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 잡혀서, 자신의 것을 바라보는 것도 짧은 인생임에도 불구하고 끝없이 타인의 것을 바라보려고 한다.
 
그래서 결국 충분히 평균을 뛰어 넘는 삶을 살아도, 결국엔 자신이 이뤄내지 못한 것이나 노력하지 못한 것들에 대한 마음 속 깊이 남은 후회는 죽는 순간까지 그 사람을 괴롭히게 된다. 평소에도 그것을 없애기 위해서 끝없는 자기 합리화를 하고 스스로 책망을 떨치기 위해서, 그것을 하지 못한 이유들을 만들게 된다.
 
결국 해도 해도 안되면, 삶은 성공하기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다, 1등만이 전부가 아니다라고 적힌 책의 글귀를 되뇌면서 스스로 평화로워졌다고 믿고 싶어한다.
 
단 한번도 후회 없는 도전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 어떤 결과도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 없다.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순간, 자신이 그것을 부정하기 위해서 썼던 모든 합리화와 핑계가 무효화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삶이 늘 겉도는 결과가 나온다. 이들에게 모든 것은 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하지 않은 것으로 남아 있어야 한다.
 
그나마 삶을 전체 여정을 통해서 스스로 만족할만한 도전을 하고 실패한 경험만 하더라도 이것은 많이 나아질 수 있다. 하지만 평균 이상의 삶을 원하는 사람은 그런 시험을 볼 엄두가 나질 않는다. 왜냐하면 시험을 보면 더욱 더 좌절할까 봐 겁이 나서 그렇다.
 
이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유일하게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은 있다. 그것은 바로 현재의 자신이 이렇게 사는 모습이 바로 겁이 많고, 사실은 능력이 부족해서 그렇다고 인정하는 것이다. 남들처럼 사는 것이 옳아서 그렇게 사는 것이 아니라, 남들만큼이라도 살려고 노력하다 보니 이런 모습이 된 것이란 점을 말이다.

 

이것은 자기 비하가 아니다. 그냥 현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살아온 모습은 사실 다 허상이었다. 남들보다 잘나려고, 남들만큼이라도 산다고 자부하면서 사는 모습이 얼마나 구차한 모습인가? 누군가는 1등을 하려고 공부할 때, 겨우 중간이나 넘으려고 공부한 자신에 대해서 자부심을 느끼면 얼마나 느낄 수 있겠는가?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나면, 새로운 길이 나타난다. 그것은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을 할 수 있는 용기이며, 갖지 못한 것을, 필요도 없는데 원하는 어리석은 마음을 없애는 포기이다. 그리고 삶의 시선을 남이 아닌, 자신에게 맞춰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닫게 된다. 사실 삶은 우리들 자신이 것이지, 그 누구도 대신 살아주는 것은 아니다.
 
또한 실제로의 자신과 상상 속 자신을 같은 수준에 맞추는 과정에서 크게 좌절을 겪겠지만, 할 수 있는 용기만 있다면 평생 경험하지 못한 평화로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마지막으로 세 번째인 사람들의 이야기가 남았다. 하지만 사실 이들을 위한 조언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냉정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이미 그 상태에 놓였다면, 그냥 그렇게 살아야 한다. 그나마 이들의 깊은 상처를 줄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자신이 갖고 있을지도 모르는 그 어떤 능력을 찾는 것이다.
 
사실 이것은 희박하지만, 시도한다면 작은 가능성은 있다. 우리는 우리 자신들이 가진 능력을 모두 알고 있지는 못한다. 또한 알고 있다고 해도, 그것을 적절한 장소에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모른다.
 
그래서 지식이 필요하다. 정보가 필요하다. 아마도 여기에 속한 사람들이 해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탈출구는 책을 읽는 것일 것이다. 그것이 무슨 책이든 간에, 매일, 매주, 매달 책을 읽어야 할 것이다. 아마도 평생 동안 책을 읽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책을 읽다 보면, 무엇인가 자신만의 탈출구가 생길 것이다. 목표가 생길 것이고, 그것을 향해 나갈 힘을 얻게 될지도 모른다. 그것이 1등은 목표가 아니라, 자신의 삶 그 자체가 되는 목표가 생길 수 있을 것이다.
 
사실 그래서 변화할 수 있다면, 이들의 삶이 가장 극적일 수 있다. 책만 꾸준히 읽을 수 있다면 말이다.
 
이 세 가지 경우를 통틀어서도 공통으로 적용 가능한 조언이라면, 바로 자신의 삶이 그다지 행복하지 않다면, 포기가 아니라, 받아드리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는 점이다. 포기와 받아들임은 비슷해 보이지만 완전히 다른 성질의 결과이다.
 
사실 포기는 외면의 다른 말이다. 그래서 받아들임과는 완전히 다른 말이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 포기를 했는지, 받아들였는지에 대해서 깊은 성찰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이것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을 때, 우리들 모두에게 두 번째 기회가 올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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