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사실과 진실

아이루다 2016. 1. 6. 11:05

 
사실과 진실. 이 두 단어를 명확하게 구분해서 쓰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이 두 단어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정의를 내릴 수 있지만,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를 설명하기는 그리 쉽지 않다.
 
다른 나라 언어인 영어로 번역해보면, 사실은 fact 라는 단어로 치환되고, 진실은 truth 라는 단어로 치환이 된다. 이렇듯 다른 나라 언어로도 명확히 구분이 되어 있는 것을 보면, 헷갈리긴 하지만 사실과 진실은 뭔가 차이가 있음이 분명하다.
 
두 아이가 싸웠다. 그리고 한 아이는 앞 이가 부러졌고, 다른 아이는 손에 멍이 들었다.
 
이 사건을 사실과 진실의 입장에서 해석 해보도록 하자.
 
일단 사실은, 위에 말한 것이 다이다. 뭐 추가로 더 말하자면, 둘은 나이가 몇 살이고, 어느 학교를 다니며, 얼마나 친했고, 집은 어디인지 정도가 될 것이다. 일명 팩트는 알아보면 알아볼수록 많아질 것이다.
 
그렇다면 진실은 무엇일까?
 
진실은 두 아이가 싸우게 된 이유에 대해 초점을 맞출 것이다. 한 아이가 다른 한 아이를 오랫동안 괴롭혔고, 결국 참지 못한 아이가 자신을 괴롭힌 아이를 세게 때려서 이가 부러진 것이다. 그리고 그때 때린 아이의 주먹이 이에 상처를 입게 된 것이다.
 
그리고 진실은 점점 더 깊게 팔 수 있다. 괴롭힌 아이는 왜 그런 성격을 갖게 되었는지, 그리고 왜 하필이면 자신을 때린 아이를 그리 오랫동안 괴롭혔는지를 알아 낼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시간이 많이 필요하긴 하지만 말이다.
 
간단한 예이지만, 우리는 이 사례를 통해서 사실과 진실의 차이를 좀 명확히 알 수 있다. 사실은 말 그대로 겉으로 보이는 것 그 자체이다. 이가 깨지고 피가 났으며 진단서를 뗀 증명서 등이다. 하지만 진실은 조금 다르다. 진실이 보는 방향은 눈에 보이는 것들만이 아니다. 사실 진실은 보통 눈에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다.

 

조금 고급스럽게 표현하자면, 사실은 육체적 눈으로 보는 것이고, 진실은 마음의 눈으로 보는 것이 된다.
 
요즘 시대엔 팩트 라는 말이 유행을 한다. 특히 토론회나 각종 분쟁이 벌어지는 상황을 보면, 늘 팩트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입으로 팩트를 달고 살 정도로 중요하게 여긴다.
 
즉, 정확한 사실에 근거한 주장을 해야 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이 팩트는 사실이란 단어의 영어 표현이다. 즉, 겉으로만 보이는 것들이란 뜻이다.
 
우리가 어떤 사건이나 대상으로 인해 갈등을 겪게 될 상황이고, 그로 인해서 서로의 정당성을 주장하면서 크게 다툼이 벌어졌다면, 이 순간 가장 중요한 것은 겉으로 보여지는 사실들이 다는 아니다. 거기엔 숨겨진 진실이 훨씬 더 중요하게 다뤄져야 한다.
 
하지만 사실은 눈에 잘 띄고, 진실을 숨겨져 있는 것이 보통이다.
 
우리는 사회적으로 다양한 뉴스를 신문이나 TV 등을 통해서 얻는다. 그리고 이런 언론들은 중립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끝없이 주장한다. 사실 언론의 중립성은 중요하긴 하다.
 
하지만 언론의 중립성이 사실의 나열로써 된다고 믿는다면, 그것은 큰 문제이다. 왜냐하면 사실 관계로만 보면, 때린 아이가 이가 부러진 아이가 비해서 훨씬 나쁜 짓을 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일단 드러난 사실만을 보면 당연한 결과이다.
 
그나마 아이들의 싸움은 그것에 숨겨진 진실이 쉽게 드러날 수 있다. 하지만 이 사회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사건들이 가진 진실들은 사실 거의 파악되지 않는 경우가 흔하다. 왜냐하면 우리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한쪽 말만 듣기 때문이다.
 
이런 아이들의 단순한 싸움도 그럴 수 있다. 우리가 만약 이가 부러진 아이의 부모가 한 말만 듣게 되면 그렇게 된다. 우리가 때린 아이의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없다면, 우리는 단순하게 때린 아이가 잘못했다고 말하게 된다. 그래서 둘은 모두 공평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말 할 기회를 가져야 한다.
 
그런데 만약 맞은 아이의 부모가 언론사에서 크게 영향력을 가진 인물이라면?
 
사실 이것은 결코 무리한 상상이 아니다. 왜냐하면 오늘도 흔하게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신문과 TV 속에 열거되는 사실을 보면서, 나름대로 정당성 여부를 판단하지만, 사실 우리가 접하는 정보 자체가 편향되어 있다면, 우리가 아무리 그 안에서 제대로 된 진실을 알고자 해도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이것은 완전히 불가능한 일일까? 우리는 어떤 사건들이 가진 진실을 알아낼 수 없는 것일까?
 
다행스럽게도 아니다. 하지만 그럴 수 있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왜냐하면 바로 '통찰력' 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통찰력이란 능력이 바로 그런 의미를 가졌다. 열거된 사실들에서 숨겨진 진실을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이다.
 
누군가가 누군가를 때렸다는 말은, 단순히 해석하면 폭력 사건이다. 하지만 아주 단순한 수준의 통찰력으로만 봐도, 누군가 누구를 때렸다면, 어떤 식으로든 이유가 있어야 한다. 심지어 묻지마 폭행이나, 전혀 모르는 사람을 때린 사건이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인간은 폭력적인 존재이긴 하지만, 인간이 폭력성을 드러낼 땐, 이유가 있다. 개가 으르렁댈 땐 이유가 있다는 뜻이다. 단지 우리는 개가 왜 으르렁대는지를 이해하지 못할 뿐이다. 개는 기분이 좋지 않는 냄새나, 이상한 소리나, 낯선 자에 대한 두려움으로 그럴 수 있을 것이다.
 
아무튼 인간 역시도 마찬가지다. 인간이 폭력성을 드러냈다면, 그것이 합당하냐 않느냐에 상관없이 어떤 이유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 사람이 싸이코 패스나 소시오 패스 라는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될 수 있다.
 
그래서 극단적으로 그냥 사람을 패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란 결론이 나더라도, 생각해 볼 여지는 있다. 왜냐하면 왜 그는 그런 사람이 되었을까 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누가 누군가를 때렸다는 것을 보고는, 때린 사람이 잘 못했다고 결론 내는 것은 아주 기본적인 사실에 근거한 편리한 판단이다. 그리고 그것보다 조금 더 들어가서, 때린 사람이 왜 때렸는지를 생각하는 것은 약간 발전된 사고 능력이다. 통찰력이라고 까지는 할 수 없지만, 사실에 근거해서 판단하고 만 사람에 비하면 큰 발전이다.
 
그리고 보통 사람들은 여기에서 멈춘다. 하지만 통찰력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들은 이제 왜 이 사회에 그런 종류의 사람들이 나타나는지를 바라보려고 한다. 한 사람의 잘못을 개인의 잘못으로만 여기는 것이 아니라, 전체의 문제로 인식하는 것이다.
 
사실 이 예는 취업을 못하는 젊은이들에게 충분히 적용 가능하다. 기본적으로 취직을 못하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는 것은, 그들이 경쟁에서 밀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좀 더 들어가보면, 구조적인 문제이다. 경쟁이 너무 치열하고, 개개인에게 요구하는 스펙이 상상 이상으로 높다.
 
좋은 직장은 적고, 질이 나쁜 직장만 많다. 그러니 젊은이들에게 취직을 못하는 것을 단지 그들의 노력 부족으로만 치부할 수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다. 이젠 왜 우리나라의 직장들은 그렇게 크게 연봉이나 기타 근무여건이 차이가 나게 되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이것은 산업 구조적인 문제이다.
 
아주 어렵지 않게 유추가 가능하다. 대기업은 연봉이 많고, 중소기업은 연봉이 적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날까? 대기업이니까 그럴까?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만 그럴 뿐이다. 소위 선진국에 가면, 그런 차이는 거의 없다. 복지나 기타 여러 가지 문제도 마찬가지다. 여기까지 사고가 진행되면, 젊은이들이 취직을 못하는 이유는, 우리나라의 기업과 관련된 다양한 환경의 문제이다.
 
여기까지가 끝일까? 아니다. 왜 그런 차이가 발생했을까를 생각해야 한다. 왜 우리나라만 그런 현상이 나타날까를 생각해야 한다.
 
이것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전체적으로 가지고 있는 의식 수준의 총합으로 인해 나타나는 문제이다.
 
아파트 경비를 하는 분들이 힘든 일을 한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을 많다. 그런데 만약 그분들이 힘든 일을 하니까 대기업 연봉에 해당되는 임금을 지불해야 한다고 한다면, 누가 그것을 지지할 수 있을까? 사실 이런 일은 수 많은 상황에서 벌어진다.
 
좋은 대학을 나온 사람들은, 자신보다 좋지 않은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더 많은 돈을 버는 것을 용납하기가 쉽지 않다. 자신보다 돈이 없는 사람들을 불쌍하게 여겨서 기부를 하는 한이 있어도, 자신보다 더 돈을 많이 버는 것을 받아들이긴 힘들다는 뜻이다.
 
그래서 이런 상황이 벌어진다. 대기업은 자신들에게 납품하는 중소기업 직원들이 자신들보다 더 많은 연봉을 받는 것을 결코 원하지 않는다. 설령 그들이 그럴 것 같으면, 납품 단가를 후려치려고만 한다. 왜냐하면 중소기업에 다니면서 열심히 노력한 것을 보려고 하기 보다는, 그냥 그들이 많은 이득을 얻어가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끝일까? 또 아니다.
 
왜 좋은 대학에 나오거나 대기업에 다니는 사람들은 자신보다 잘되는 꼴을 보지 못할까?


그것은 돈이 최고의 가치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만약 사람들이 자신의 일에 만족하고, 그것을 하면서 충분히 행복했다면, 누가 나보다 더 많은 돈을 받든지 말든지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게 된다. 하지만 일을 하면서 스트레스 받고, 불행하니, 돈이라도 더 받아야 한다고 믿게 된다.
 
이것이 마지막일까? 아니다.
 
우리는 왜 돈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게 되었을 지를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른 나라를 살펴봐야 한다. 우리만 봐서는 도대체 답을 찾을 수가 없다. 누구나 돈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도대체 돈이 중요하지 않는 이유를 찾기가 불가능하다.
 
우리가 돈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이유는 바로 돈이 행복할 수 있는 중요한 도구이기 때문이다. 즉, 우리는 돈을 통해서 행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돈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만약 돈 말고도 우리가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우리는 돈을 좀 덜 중요하게 여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과거 이 땅에 살았던 사람들의 삶을 떠올릴 수 있다.
 
우리는 몇 십 년 전만 해도 정말로 못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그때 불행했던 것만은 아니었다. 지금처럼 편의점도 없고, 다양한 놀 거리도 없고, 스마트 폰도 없고, 채널이라고 해봐야 두어 개 정도의 흑백 TV를 봤던 시절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불행한 것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행복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무엇을 어떻게 바꿨는지에 대한 성찰에 들어가야 한다. 우리가 잃은 것은 무엇이고, 우리가 얻은 것은 무엇인지를 생각해야 한다.
 
이제부터는 개인적으로 결정되는 영역이다. 이것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하지만 확실한 것 하나는, 뭔가를 생각했든지 간에, 그것이 끝이 아니란 점이다.

 

이런 사고의 깊이는 사실 거의 무한정 펼쳐진다. 그리고 이것이 진행될 수록 우리는 통찰력이 있는 사람이 되기 쉽다. 그리고 언젠가는 사실뿐만 아니라 진실조차도 뛰어 넘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이런 식의 접근이 사실에서 시작해서 진실로 향해 가는 방법이 된다. 하지만 우리들 대부분의 사고는 중간에 멈출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진실을 아는 것이 결코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진실은 알수록 슬퍼질 가능성이 높다.
 
어떤 젊은이가 취직을 못하고 빌빌거리는 모습을 보면, 그냥 눈에 보이는데로 비판하거나 혹은 그냥 열심히 공부하라고 조언을 해주는 수준에서 멈춘다. 거기에서 점점 깊이 들어가서 우리의 구조적 문제와 돈과 행복에 대한 문제, 우리가 어떻게 행복할 수 있는지 까지 들어가게 되면, 들어갈수록 머리만 복잡해지고, 해결 불가능한 벽 앞에 서서 답답함만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사실만 보고 살아가도 된다. 단지 사실만을 보고 살아갈 것이라면, 최대한 그것에 대한 판단을 유보해야 한다. 혹시 판단이 되더라도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팩트라는 명목으로 주장하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말아야 한다.
 
진실을 보려는 노력을 하지 않을 것이라면 그래야 한다. 하지만 세상엔 팩트만을 손에 쥔 채, 마치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알고 이해했다는 식으로 나오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그리고 그들이 시끄러움이 사회를 더욱 혼란스럽게 한다. 입을 다물고 사실을 넘어선 진실을 보려고 노력하는 행동은 하지 않고 그렇게 한다.
 
사실 그들이 그런 태도를 보이는 것은 단순하다. 그것은 바로 돈이 되기 때문이다. 혹은 돈은 안되더라도 자신의 잘남을 인정받고 싶어하거나, 어디에서 얻었는지 모를 사상이나 신념을 확인 받고 싶어서 그렇다.
 
어떤 면에서 팩트의 가치에 함몰된 사람들은 참 불행한 사람들이기도 하다. 불행함이란 상태가 사실을 손에 쥔 채 흔들어대고 있는 사람들에게 숨겨진 진실이다. 그리고 그 불행함의 정체는 바로 어린 시절부터 받은 수많은 상처로 인해 얻은 열등감의 폭력적 표출일 수도 있다.

 

그것은 단지 어린 시절에 사탕 하나를 먹다가 쎄게 뒤통수를 맞은 경험으로 인해서 발생한 변화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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