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영화와 책

아이루다 2015. 12. 24. 09:37

 
영화와 책, 이 두 분야는 아마도 문화생활 중에서 그나마 일반인들이 많이 접하면서도, 그것이 가진 정서적 가치에 대해서 인정을 받는 것들일 것이다.
 
그 중에서도 책은 아주 오래된 분야이다. 사실 책은 인간의 역사와 같이 할 만큼 오래된 분야이고, 영화는 기술 발전과 함께 최근 100년 정도에 새롭게 생겨난 분야이다.
 
그런데 요즘 이 두 분야의 흐름을 보면, 오래된 책은 점점 쇠퇴하는 방향으로, 상대적으로 최근에 나타난 영화는 점점 부흥하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그래서 매일 들리는 소리가 '책을 읽지 않는 한국인' 에 대한 이야기와 '천만 관객을 넘었다는 어떤 영화들' 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뭐,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삶이 너무 팍팍해서 책을 읽지 않을 수 있다. 즉, 진짜로 돈이 없어서 읽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이 이유는 약간 문제가 있다. 왜냐하면 책 한 권의 값이 만원에서 이 만원 사이라고 할 때, 사실 영화 한 편의 가격도 그리 많은 차이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즉, 정말로 돈이 없어서 책을 읽지 않는다는 가정이 성립되려면, 영화 역시도 사양사업으로 되어야 했다.
 
그럼에도 돈이 없어서 책을 읽지 않는다면, 사실은 책을 사는데 돈을 쓰기가 아깝다는 말이 더 어울릴 것이다. 사실 인간이 돈이 아까울 때는, 돈 자체가 아까운 것이 아니고, 그 돈을 썼을 때 그만큼의 만족함을 얻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다.
 
그러니 결론적으로 보면, 사람들은 책을 사서 읽는데 있어서 그만큼의 가치를 느끼지 못하고 그래서 결국 만족감을 얻지 못한다는 뜻이 된다.
 
즉, 요즘 세상에서 책은 영화에 비해서 만족감이 많이 떨어진다는 것이 일반적인 추론이 될 수 있다.
 
더해서 영화는 조금 더 좋은 특징이 있다. 그것은 누군가와 함께 하기가 좋다는 점이다. 책은 온전히 혼자 읽어야 하지만, 영화는 누군가와 함께 하기가 좋다. 특히나 대한민국의 문화생활은 매우 한정적이기에, 영화는 연인들이 같이 문화생활을 누릴 수 있는 몇 안 되는 것들 중에 하나이다.
 
그런데 최근에 들어서 이 현상이 더욱 심화된 것은 단지 이런 이유만은 아닌 듯싶다. 사람들이 책보다는 영화를 더 선택하는 것에는 뭔가 좀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을 것 같다.
 
일단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 책과 영화의 차이에 대해 생각해보자.
 
사실 많은 영화들은 소설을 기반으로 만들어 지고 있다. 영화 시나리오를 써서 영화를 만든 작품도 있지만, 이미 소설이 나온 후, 영화화 되는 경우도 많다는 뜻이다. 그래서 우리는 가끔 소설도 읽고 그것을 영화화 한 작품도 보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렇다면 만약 영화와 책을 모두 다 볼 계획이라면 과연 무엇을 보는 것이 좋을까?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책을 먼저 보는 것을 선호한다. 그리고 누군가 왜 글을 먼저 읽는 것을 선호하느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답을 하고 싶다.
 
글을 읽을 때, 우리는 오직 글자로부터만 정보를 받아들인다. 단어를 이해하고 문맥을 이해하면서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머리 속에서 그것을 그리게 된다. 즉, 쉽게 말해서 상상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책에서는 '흑발의 아름다운 여자' 라고 설명된 글귀는 사람마다 전혀 다른 인물로 상상이 된다. 누군가는 연예인을 떠올릴 것이고, 누군가는 만화 주인공을 떠올릴 것이다. 또한 누군가는 자신이 예전 본 숨이 막힐 정도로 아름다운 흑발의 여인을 그린 그림을 떠올릴 것이다. 어떤 이는 희미한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어린 시절에 봤던 옆집 누나의 모습을 떠올릴 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것은 책과 영화 사이의 아주 큰 차이이다.
 
책에 비해서 영화는 고정되어 있다. 영화 속에서 아름다운 여자는 그 영화를 찍은 감독의 상상력이다. 물론 그 상상력은 대중의 판단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그다지 이상하지는 않다. 보통 아름다운 여자로 나오는 배우들은 아름답다. 그래서 거부감은 별로 없다.
 
단지 그 여자가 어린 시절에 봤던 예쁜 옆집 누나나 혹은 첫 사랑에 대한 맑고 가슴 시린 기억은 되지 못한다.
 
물론 책과 영화에 대한 이런 차이점은 사실 누구나 알고 있는 기본 상식이다. 책은 상상력을, 영화를 오감 중에서 특히 시각과 청각을 자극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각자가 고유 영역이 있다. 이때 누가 더 낫다를 판단하는 것은 불필요하다. 이것은 그냥 각자 선호도의 문제이며, 그래서 책을 읽은 내용을 영화로도 볼 수도 있다. 두 영역이 다르게 즐겁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들어서 왜 영화는 흥하고 책은 망해가는 것일까?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진정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책을 읽을 때 필요한 것과 영화를 볼 때 필요한 것을 생각해 봐야 한다.
 
이미 말했듯이 책은 상상력이다. 그리고 영화는 사실 어떤 특별한 능력은 필요가 없다. 그냥 눈과 귀가 정상적이면서 자신이 속한 나라의 평균 수준의 이해력을 가지고 있다면 즐기는데 큰 어려움이 없다.
 
그렇지만 책은 상상을 할 수 있는 사고력이라는 추가적인 능력이 필요하다. 상상은 머리 속에서 일어나는 작용으로 당연히 '생각'의 일종이다. 즉, 사고를 해야 한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어떤 식으로든 머리를 써야 하는 것이다.
 
물론 책을 읽고 있는 순간에 당사자들은 자신이 머리를 쓰고 있다는 생각을 인식하고 있지는 않지만, 책을 읽는 과정은 꽤나 머리를 쓰는 것은 분명하다. 특히 그것이 지식을 전달하는 목적의 책이면 이해가 잘 가지 않기 때문에 확실하게 느끼고, 반대로 소설이나 시와 같은 종류의 책이라면 사람에 따라 다를 것이다.
 
그런데 원래 인간이 머리를 쓰는 것은 힘든 일이다. 거의 노동에 가깝다. 우리가 하루 동안 학교나 직장에서 공부나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쉬고 싶은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공부와 일을 얼마나 잘했느냐 와 상관없이 그것들을 할 때는 반드시 머리를 써야 한다. 그래서 저녁이 되면 피곤하고 힘들다.
 
인간에게 적절한 노동 시간이 중요한 이유도 바로 그것이다. 우리는 어느 정도 이상 머리를 쓰면 더 이상 제대로 머리를 쓰기가 힘들어 진다. 말 그대로 효율이 현저하게 저하된다.
 
그런데 문화 생활은 보통 이렇게 지친 머리를 쉬게 해주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즉, 우리가 영화를 보거나, 전람회를 가거나, 미술관을 가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공부나 일을 할 때 쓰는 머리와 다른 영역의 머리를 쓰면서 두뇌 자체를 쉬게 해주는 것이다.
 
공부나 일처럼 쫓기면서 했던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져서 편하고 긴장이 풀리는 상태로 전이되는 것이다. 이것이 문화 생활을 하는 여러 가지 이유 중 하나이다.
 
그러데 책은 영화와는 다르게 추가적으로 머리의 능력을 필요로 한다. 일단 글을 읽어야 하기에 책에 나오는 문맥을 이해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특히나 조금 어려운 주제를 다루는 책은 더욱 더 힘들다. 소위 말하는 전문적 영역의 책들이 그렇다.
 
아무튼 일반 소설책이라고 해도 기본적으로 글을 읽는 절차 자체가 힘들다. 글자만 꾸준히 적혀 있는 대부분의 책이 가진 특징이다. 같은 책이라도 만화책이 더 쉬운 이유가 그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두뇌가 평균 이상으로 지쳐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쉬려고 책을 읽다가, 책 때문에 더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머리가 이미 많이 지쳐 있기 때문에 그렇다. 머리를 쉬게 해주기 위해서 책을 읽는데, 책을 읽다가 머리가 더 아파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누가 책을 읽고 싶어 하겠는가?
 
반면에 영화는 다르다. 영화는 그냥 보고 들으면 된다. 물론 여기에서 재미가 있느냐 없으냐는 둘째 문제이다. 그것은 책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책이나 영화나 모두 재미 없으면 보고 나서 전혀 회복이 되질 못한다. 돈과 시간만 아깝게 느껴진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영화를 보고 이해하는데 필요한 두뇌 활동과 책을 보고 이해하는데 필요한 두뇌 활동의 차이가 생각보다 꽤나 크다는 점이다. 그래서 우리는 책을 보기 보다는 그냥 멍하게 뭔가 보는 것이 편하다. 그래서 그냥 영화를 보고 있을 때가 책을 읽을 때보다 훨씬 더 쉴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
 
이것이 많은 사람들이 퇴근 후 TV를 보는 가장 큰 이유이다. 특히나 그것이 재미있기 까지 하면, 그것보다 더 머리를 쉬게 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을 찾기가 힘들 지경이다.
 
그렇다면 영화나 TV 가 책보다 무조건 좋은 것일까?
 
사실 많은 사람들이 그렇지 않다고 한다. 그런데 왜 그들은 책을 읽어야 한다고 주장할까? 왜 TV를 바보상자라고 부를까?
 
거기엔 합당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이유가 바로 책이 가진 특징과 영화가 가진 특징으로 인해서 나타난다. 그것이 일단 바로 무엇인가를 접할 때, 주입식으로 받는 정보인가 아니면 스스로 판단해 내야 하는 정보인가에 대한 차이에서 시작한다.
 
책의 단점은 그것을 읽을 때 머리를 써야 한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이 단점은 분명히 장점을 가지고 있다. 책의 내용은 상상력을 통해 그려질 수 있으며, 자신만의 판단 능력을 통해 이해를 되는 것이 가능하다.
 
쉽게 말해서 영화와 책은 객관식이냐, 주관식이냐 정도의 차이가 될 수 있다. 시험 문제를 낼 때, 객관식으로 내면 답은 네 개 중 하나만 선택 가능하게 된다. 하지만 서술식으로 내면 답안은 그 시험을 본 사람의 숫자만큼 다양하게 존재한다. 물론 모두가 답이라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이것은 아주 중요한 포인트 중 하나이다.
 
영화는 객관식 문제와 유사하다. 시각 정보는 우리가 외부 정보를 받아들이는데 있어서 최소 80% 정도의 역할을 담당한다. 그리고 남은 네 가지 감각기관은 20%는 나눠서 할당 받는다. 즉, 인간은 정보의 대부분을 시각에 의존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장애인들 중에서 시각 장애인이 가장 큰 불편함을 느낀다.
 
그런데 영화는 이 시각 정보를 시작과 동시에 끝날 때까지 제공한다. 그래서 우리는 영화를 보는 동안 화면에서 전달되는 정보를 통해 많은 것을 판단하게 된다. 물론 소리를 통해 전달되는 대사도 중요하다. 여기에서 대사는 사실 책과 같은 역할을 한다.
 
우리가 영화를 볼 때, 기본적으로는 대사를 통해 극의 흐름을 이해하고, 각 화면을 통해 그것을 구체화 시킨다. 그리고 효과음은 그것을 좀 더 현실감 있게 만들어 준다. 아무튼 이 방식은 편하게 정보를 이해할 수 있게 해주긴 하지만, 그것이 가진 이해의 범위를 한정 짓게 만든다. 즉, 우리는 영화를 보는 동안, 화면에서 나오는 장면까지만 상상이 가능하다. 더해서 배우의 연기력도 아주 큰 역할을 한다.
 
반대로 책은 주관식 문제처럼 이해의 범위가 무한대이다. 책은 읽은 사람 숫자만큼 상상된다. 거기엔 배우도, 화면도, 소리도 없다. 그저 작가가 쓴 글자만이 존재하고, 그것을 읽은 사람들은 저마다의 쌓은 각자의 경험을 통해 그것을 이해한다.
 
여기까지 이해를 하면,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왜 책보다 영화를 더 선호하게 되는가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가능하다. 또한 그것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에 대해서도 알 수 있다.
 
사람들은 이미 지켜 있기 때문에, 더 이상 머리를 쓰고 싶지 않아 한다. 그래서 스스로 이해를 하는 것보다는 주입식 정보를 선호한다. 하지만 이것은 자신의 상상력을 제약하는 문제점을 야기한다.
 
그리고 사람들이 이미 지쳐 있는 이유도 추측하는데 그리 어렵지 않다. 아마도 과중한 공부, 스트레스 받는 일 등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또한 그것이 반복되다 보니, 평소의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서도 생각 자체를 하지 않으려는 특징도 한 몫하고 있다. 그리고 놀랍게도 생각을 하지 않고 살아버릇하면, 지치지도 않고, 스트레스 받지 않은 상태라고 해도 생각을 하는 것 그 자체가 스트레스화 되어 버린다.
 
사람을 피하고 집에만 있다가 보면, 나중엔 누구를 만나냐에 상관없이 사람을 만나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가 되는 원리와 비슷하다. 우리는 누구나 익숙하지 않는 것을 할 때 힘들어 한다.
 
여기까지는 그나마 책보다 영화를 선택하는 것에 대해서 어느 정도까지는 이해가 가능하다. 하지만 사실 책 대신 영화를 선택하는 패턴에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다.
 
그것은 바로 모든 책이 영화로 만들어 질 수는 없다는 점이다. 사실 책에 비해서 영화는 아주 일부 영역만 다룰 수 있을 뿐이다. 그것은 대부분 소설이다. 소설은 책으로 나오는 수 많은 분야 중 일부이다. 물론 인기는 있다. 하지만 결국 일부이다.
 
우리는 영화를 통해서 어떤 노력을 해도 책만큼 다양한 각종 지식을 접할 수 없다. 우리는 소설을 영화화 시킬 수는 있지만, 시나 에세이를 영화화 시킬 수 없다. 우리는 자신을 돌아보고, 현재 자신이 서 있는 자리를 바라보게 만들 수 있는 각종 인문학적 책을 영화로 만들 수 없다.
 
우리는 철학, 심리학, 역사, 수필, 과학 등의 분야로 출간되는 책들을 영화로는 볼 수 없다. 그것들은 아직까지는 오직 책으로만 습득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미 사람들은 책을 읽으면서 생각하는 것 자체를 멀리하고 있다. 그리고 어떤 면에서 그런 능력 자체가 쇠퇴되고 있다. 즉, 책 분야가 쇠퇴되고 있는 것은 사람들의 사고력이 퇴보하고 있다는 뜻과 같다고 무리해서 판단할 수도 있다.
 
원래 영화와 책은 상호 보완적인 아주 좋은 문화상품이다. 이 두 분야는 다른 문화상품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저렴하기에 일반 사람들이 접하기 쉽고, 그것을 통해 얻는 효과도 매우 좋은 편이다.
 
문제는 지금의 치우침 현상이다. 그리고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우리 사회는 영화 속 화면처럼 점점 획일화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사람들이 상상력은 영화 속 장면으로 수렴될 것이다.
 
문제는 이것이 끝이 아니다. 이제 영화도 두 가지 영역으로 균열이 일어나게 된다. 하나는 그나마 책의 역할을 대신해줄 수 있는, 나름의 주제의식을 가진 작품들이고, 다른 하나는 말 그대로 화려한 볼거리를 가진 오락 영화라고 불리는, 블록버스터급 영화들이다.
 
이렇게 되는 이유는 책을 보다가 머리가 아픈 사람들이 영화를 선택했는데, 영화를 보다가 머리 아픈 것을 어떻게 참아내겠는가를 생각해보면 쉽게 답이 나온다. 그래서 영화 역시도 점점 더 단순한 작품들이 인기를 끌게 될 것이고, 그런 영화들이 스크린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영화 역시도 그 안에서 결국 책과 같은 취급을 받는 영화들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 역시 치우침의 일종이다.
 
물론 이것은 기우일 수 있고, 과도하게 상상된 결과일 수도 있지만, 나타나는 모습이 그러하니 딱히 다른 해석을 하기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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