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사랑하면 행복하다

아이루다 2015. 12. 21. 05:54

 
누군가를 너무너무 사랑하면, 참으로 행복하다. 무엇인가 소중한 가치 있는 것이 생기면, 그것으로 인해서 행복하다. 오랜시간 함께한 인연과의 우정은 그 자체만으로 행복하다.
 
이런 표현들은 흔한 것이기도 하지만, 생각보다 이런 경험을 한 사람의 비율은 그리 많지 않다. 그나마 인생에 있어서 잠깐 동안 그것을 경험했던 사람들은 어느 정도 있었겠지만, 지금 이 순간 이것을 경험하고 있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이 말은 지금 이 순간 누군가를 너무너무 사랑해서 행복한 사람들이나, 자신의 목숨과도 바꿀 수 있는 가치를 가진 사람들이나, 평생을 함께 할 수 있는 친구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흔치 않다는 뜻이다.
 
아무튼 그것을 경험했든지 못했든지 간에 상관없이, 이런 경험을 했거나 하고 있다는 것은 그 당사자를 행복하게 해주는데 있어서 큰 역할을 하는 것은 틀림없다.
 
그런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우리는 사랑을 하면 행복할까? 아니면 행복하니까 사랑을 하는 것일까? 우리는 가치가 있으니까 행복한 것일까? 행복하니까 가치 있는 것일까?
 
단순한 질문인데, 이것에 대해서 좀 생각해보니 뭔가 좀 헷갈리기 시작한다. 우리는 원래 사랑하기 때문에 행복하다는 말에 절대적으로 익숙한데, 갑자기 행복하니까 사랑하고 있다는 말이 그다지 억지스러운 표현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도대체 무엇이 먼저 일까?
 
그럼 그것을 좀 더 알아보기 위해서 누군가와 처음 사랑에 빠진 순간으로 돌아가보자. 어떤 사람을 사랑하고 있다면, 그 사람을 처음 만난 순간으로 되돌아가보는 것이다.
 
그 사람은 남자든 여자든 상관없이 매력이 있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것이 외모냐, 성격이냐 상관없이, 어떤 매력을 느꼈음이 틀림없다. 여기에서 매력은 설명하기가 무척 힘든 단어이기에, 우리가 누군가에게 왜 매력을 느끼는지를 설명하려면 너무 복잡해질 것이다. 그래서 그냥 매력을 느꼈다고 가정하자.
 
이때 운이 좋은 이들은 자신도 역시 상대에게 비슷한 매력을 줄 수 있어서, 금세 둘의 관계가 발전할 수 있게 된다. 반면에 운이 없는 이들은 오랜 시도의 노력 끝에 상대에게 처음엔 보이지 않았던 매력을 보여줌으로써 연인으로 발전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실패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성공한 사람들의 과거이다.
 
아무튼 둘이 처음 데이트를 하는 자리를 상상해보자. 둘은 아주 조심스럽게 상대와의 거리를 재면서 최대한 호감을 얻기 위해서 노력할 것이다. 사실 이때만큼 인간이 머리를 많이 쓸 때가 있을까 싶기도 하다. 호감을 느낀 상대와의 첫 만남은 누구에게나 인생 최고의 멋진 순간이 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이때 상대를 사랑한다고 까지는 표현하지 않는다. 비록 가슴이 터질 정도로 흥분되고, 상대와 마주앉아 있는 그 시간이 너무도 좋아도 그렇다. 첫 데이트를 나간 사람들은 시간이 화살과 같이 흐른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사실 정말로 그렇다. 저녁 시간에 만났는데, 금세 헤어질 시간이 되어 버린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도 있다. 호감을 느껴서 만났는데, 대화를 나누다 보니 뭔가 이질감이 느껴질 때 그렇게 된다. 상대의 태도, 말하는 버릇, 언어적 표현, 자신의 이야기에 대한 반응, 살아온 이야기를 들으면서 상대에 대한 평가는 시시각각 변해간다. 아주 단순하게는 우연이 친구에게 걸려온 전화 통화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일어나는 일이다.
 
아무튼 첫 데이트는 둘 중 하나로 이어진다. 좋아하는 감정이 증가되거나 줄어든다.
 
그리고 이 중에서 좋아하는 감정이 증가된 사람은 그 어느 때보다도 그 시간이 행복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혹은 그녀는 다시 그런 행복한 시간을 기대한다. 즉, 다음 데이트 약속을 잡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진행되면 진행될 수록 둘은 점점 사랑에 빠지게 된다.
 
이렇게 과정을 살펴보니, 우리는 사랑에 빠져서 행복하게 아니라, 행복하기 때문에 사랑에 빠지게 된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행복한 시간을 보낸 후, 다음 행복한 시간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에 다음 데이트 약속을 기꺼이 잡는다. 누군가를 만났는데, 그 시간이 그리 행복한 느낌이 안들면 당연히 약속을 잡길 꺼려한다. 우리가 딱 자르지 못하는 이유는 혹시나 하는 기대이거나 거절을 해서 상대를 실망시킬 용기가 없어서 그렇다.
 
즉, 행복할 때만 그 만남이 지속된다. 이제 사랑이 깨지는 순간을 바라보도록 하자.
 
사랑을 이룬 사람들은 어떤 계기로 인해서 점점 뭔가 틀어지기 시작한다. 그것은 상대에 대한 과도한 기대치로 인해 발생하기도 하고, 이미 자신의 사람이 된 상대에 대한 소중함을 잃어버려서 그렇기도 하고, 익숙해져서 그렇기도 하다. 사랑이 깨질만한 이유는 너무도 많아서 대부분의 사랑들은 지켜지기 보다는 깨지기가 더 쉽다.
 
아무튼 사랑에 금이 가기 시작한 사람들의 공통된 첫 번째 현상은 바로 잦은 다툼이다. 비록 사랑하는 연인이지만, 둘은 아주 사소한 일로도 싸우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점점 만나기만 하면 싸우는 사태로 발전한다. 그럼에도 행복했던 기억 때문에 그것을 버텨내려고 한다.
 
사실 우리가 사랑하기에 행복하다고 믿는 생각은 이때 힘을 발휘한다. 우리는 행복하기 때문에 사랑하게 되면, 행복하지 않으며 바로 헤어져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사랑하기 때문에 행복했었기에, 그것을 버텨내려고 한다. 그리고 어느 정도 성공하기도 한다.
 
어떤 권태기나 위기가 찾아 왔어도 참고 버텨내다가 보면, 좋은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도 있다. 그래서 이것은 결과론적 해석이다. 좋게 끝나면 좋은 기다림이지만, 나쁘게 끝나면 시간 낭비에 불필요한 노력이 되고 만다.
 
아무튼 잦은 다툼은 결국 서로를 불행하게 만들고 만다. 그래서 어느 날 서로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나는 그 사람을 만나서 행복한가?'
 
사실 사랑하는 사람과의 만남에서 이 질문이 머리 속에서 떠올랐다는 의미는 이미 그 답을 알고 있다는 의미가 된다. 당연히 행복하지 않다.
 
원래 사랑에 빠져서 행복한 사람은 자신이 행복한가를 되묻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미 행복하기에 사랑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행복은 사랑의 전제조건이다. 행복은 결코 사랑의 결과물이 아니다.
 
그래서 이 질문이 머리 속에서 떠오르기 시작한 연인은 이제 서서히 이별을 준비한다. 그나마 그 동안 두 사람에 사이에 흐른 시간이 추억이 되고, 가치가 되었기에 그것을 쉽게 결정하기 힘들 뿐이다. 하지만 행복하지 않은 사랑을 지키는 것은 흐른 시간에 대한 미련이거나, 꿈꿨던 미래를 포기하지 못함에 불과하다.
 
결국 둘은 크게 싸운 후 오랫동안 마음 속에 담았던 말을 하고 만다. 그만 헤어지자고 한다.
 
그런데 우리가 그런 것은 사랑뿐만이 아니다. 우리는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것을 모든 것을 좋아한다. 우리가 그것을 좋아해서 행복한 것은 없다.
 
왜냐하면 당연하게도 우린 행복하기 위해서 살기 때문이다. 이 말은 인간의 유일한 작동원리이다.
 
하지만 반전이 일어난다. 우리는 어떨 때는 좋아해서 행복하다. 이 말은 사랑하기 때문에 행복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자신을 행복하게 해주는 일에 가치를 부여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이런 노력은 자신이 행복을 느끼는 대상을 좀 더 가치 있게 해준다.
 
그런데 가치는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까? 가치는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 가치는 반드시 다른 이들의 인정을 필요로 한다. 물론 혼자 가치를 느끼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런 경우라고 해도 책 속의 누군가가, 영화 속의 누군가가, 우리가 속한 사회가 보이지 않게 가치를 부여해줘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자신의 사랑을 가치화 시킬 때 일어나는 일이다. 우리가 사랑을 가치화 시키려면 다른 이들의 인정이 필요하다. 그리고 다른 이들의 인정을 받게 되는 가치는 행복 자체가 증폭시키는 역할을 한다.
 
자신의 아이가 소중한 부모는, 아이가 소중한 것 자체도 좋지만, 누군가 자신의 아이를 이뻐하면 그것보다 좋을 수 없다. 다른 이들에게 인정받은 가치가 주는 행복이란 참으로 대단하다. 이것은 자신의 행복에 대한 신뢰도를 높이는 과정이다. 자신이 느낀 행복이, 그만큼 느낄만한 것임을 객관적으로 증명 받는 일이다.
 
사실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사람들은 수 많은 경로를 통해서 자신이 느낀 행복을 주변 사람들과 공유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예전에는 주로 만나서 이뤄졌던 일들이 요즘은 인터넷과 전자기기의 발달로 인해 글이나 사진과 그것에 대한 댓글과 같은 반응으로써 이뤄지고 있다.
 
우리가 매일 하고 있는 일이 그런 일이다. 우리는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다른 사람들과 만나서 자신이 느낀 행복에 대해 설명을 하고, 그것을 공감해주길 바란다. 물론 자신도 타인을 공감해주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아무튼 이런 노력을 통해 자신의 행복이 가치를 갖게 되면, 이제 목적과 결과가 뒤바뀐다. 행복하기 때문에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 인정받는 가치를 가지고 있기에 행복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우리가 타인의 인정으로 통해 자신의 행복을 증폭시킬 때, 원래 행복보다 증폭된 행복이 더 크게 되면 그런 현상이 일어난다.
 
어딘가 여행을 다녀 온 후, 그 여행 중 느꼈던 행복보다 그때 찍은 사진에 대한 다른 이들의 반응이 폭발적이면 그렇게 된다. 자신이 온전히 느낀 행복보다, 타인의 인정으로부터 더 많은 행복을 얻게 될 때 그렇다.

 

우리는 행복하기 때문에 그것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해서 행복한 것으로 바뀐다. 그래서 이젠 본격적으로 사랑하기 때문에 행복하게 된다. 가치 있기 때문에 행복하게 된다.
 
비록 전제조건과 결과가 뒤바뀌었지만, 이것도 이상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이 역시도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서 무엇인가를 하기 때문이란 말이 정확히 적용되기 때문이다. 자신이 직접 한 일로부터 얻은 행복보다 다른 사람들의 반응을 통해 얻은 행복이 더 크다면, 우리는 자신을 더 행복하게 해주는 쪽으로 움직이게 된다.
 
즉, 이때 행복하기에 사랑한다는 말이 단지 행복하기에 가치있다는 말로 전환된 것 뿐이다. 행복의 대상만 바뀌었을 뿐, 행복이 전제조건이 되고 있는 것은 변함이 없다. 단지 사랑이 가치로만 변화된 것 뿐이다. 물론 사랑이 가치로 변환된 것은 이상한 일이긴 하다. 우릭 남들에게 보여주려고 사랑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다른 이들의 인정을 통해 더 큰 행복을 얻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인정을 얻기 위해서 노력하게 되는 것이다. 그나마 여기까지도 인정하고 이해해줄 수 있다. 하지만 알다시피 이것은 불안함을 가지고 있을 수 밖에 없다.
 
그것은 바로 인정으로부터 행복을 얻게 되면, 이제 행위 그 자체보다도 어떻게 하면 다른 이들의 인정을 받을 수 있을지를 먼저 고민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원래 행복하기 때문에 그것을 하고, 이후 추가로 다른 이들의 지지를 통해 추가적 행복을 얻는 절차 자체를 꼬이게 만든다.
 
그래서 결국 행복하기 때문에 하는 일이, 인정받기 위해서 하는 일로 변해간다. 즉, 우리의 행동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닌, 해야 할 일을 하게 되는 것으로 바뀐다. 사랑이 해야 하는 일이 되고 만 것이다.
 
더해서 또 하나의 치명적인 일은, 이것은 온전히 타인의 반응을 기반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점점 종속적으로 변하게 된다. 즉, 타인에 대한 끝없는 눈치를 보고 반응에 민감하게 되는 것이다. 더해서 어떤 일을 할 때마다 남들은 이것을 어떻게 생각해줄까를 가장 먼저 고민하게 된다.
 
그래서 가고 싶은 장소를 여행가는 것이 아니라, 남들이 알아봐 줄만한 장소를 여행가게 된다. 행복해서 아이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 아이를 잘 키웠다는 인정을 받기 위해서 노력하게 된다. 이것은 악순환의 시작이고, 결국엔 할 수 없는 일이 벽이 생김으로써 끝난다.

 

원래 같은 일의 반복하는 것은 다른 이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끝없이 새롭고 어려운 도전을 해야 한다. 어제 동네에서 1등을 했다면, 내일은 시나 군에서 1등을 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가 가진 시간과 돈과 능력의 한계가 있다.
 
사랑하면 행복하다는 말은 그리 단순한데, 그 내용을 따라가면 이렇게 씁쓸한 것들이 숨겨져 있다. 그래서 우리는 행복하기 때문에 사랑해야 한다. 결코 사랑하기 때문에 행복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부여된 가치이다. 행복한 것은 원래 설명할 수 없어야 한다.
 
행복이 설명되면, 가치가 부여된다. 왜 저 산을 오르는 것이 행복한지, 왜 그곳에 여행을 가면 행복한지, 왜 그 사람이 좋은지, 왜 그 취미가 좋은지, 왜 그것을 하면 행복한지를 설명하기 시작하면, 가치가 부여된다.
 
그리고 설명된 가치가 다른 이들의 공감을 얻어내면 더 큰 행복을 얻는다. 여기까지는 괜찮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이다. 덤으로 얻은 행복이 원래 행복보다 더 커지면, 문제가 생긴다.
 
원래 행복이 워낙 컸다면 이런 일은 결코 벌어지지 않는다. 남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든 상관없이 행복한 것은 행복한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그리 크지 않았음에도 그것을 과대 포장해서 다른 이들에게 설명했다가는, 잘못하면 바로 뒤집어지고 만다. 덤으로 얻은 행복이 훨씬 더 크게 느껴지는 순간, 우리는 덤에 매달리게 된다.
 
문제는 다른 사람들은 강아지처럼 늘 꼬리를 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다른 이들의 평가는 때론 매우 냉정하다. 사람은 모두 감정적 존재이기 때문에, 오늘 기분이 좋으면 칭찬을 하던 사람들이 내일은 화가 나서 욕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아무 대책 없이 다른 이들의 반응을 기대하던 우리는 타인의 반응으로 인해서 감정이 춤을 추게 된다.
 
더해서 우리는 누군가가 덤으로 얻은 행복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면,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한다. 저 사람은 행복하지 않아 보인다고 말이다. 그리고 그것을 관심 병이라고도 표현한다.
 
우리는 행복하기에 사랑한다는 말보다, 사랑하기에 행복하다는 표현이 훨씬 익숙한 사회에 살고 있다. 사랑이 특별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사실 로미오와 줄리엣와 같은 사랑 이야기는 오래 전부터 사랑이 가진 가치를 특별하게 만들어주었다.
 
그래서 그렇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많은 행복한 것들을 모두 가치화 시켰다. 그러다 보니 충분히 행복하지만 그다지 가치 있어 보이지 않는 것들을 무시하기도 한다.
 
남들이 그리 관심이 없는 것들을 행복하게 하고 있는 사람에게 '왜 그런 것을 하느냐' 라고 묻는다. 도대체 행복해서 하는 일을, 왜 하는지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그럼에도 왜 하는지 설명을 하라고 한다. 즉, 가치를 부여하라고 한다. 묻는 자신이 가치 있게 느낄 수 있도록 설득하라고 한다. 이것이 우리가 가진 진정한 어리석은 면이다.
 
자기가 행복하면 끝이다. 아니 자기가 행복하면 자신에게는 가치 있는 일이다. 누가 뭐라고 해도 그렇다. 그것이 청소를 하거나, 길가에 돌을 줍거나, 밤길을 어슬렁거리는 것이라고 해도 모두 같다. 그것은 모든 다른 가치 있는 것들과 동등하다. 행복하기에 하고 있을 뿐이다.
 
이제 좀 인정할 때도 되지 않았나 싶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요즘 시대는 점점 다 가치화로 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제 행복은 점점 정형화된 틀을 벗어나고 있다. 이것이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는 현상이다. 그리고 우리가 그리 부러워하는 선진국 사람들이 사는 삶이다.
 
남의 평가가 의해서가 아닌, 스스로 행복한 것들을 하면서 사는 삶 말이다.

 

행복은 인간이 추구하는 모든 일에 대해서 목적점이다. 우리는 그 누구도 그것을 벗어날 수 없다. 그러니 행복이외의 그 어떤것도 목적이 될 수 없다. 사랑, 우정, 돈, 가치, 신념, 믿음 등등 우리 인간이 추구하는 그 모든 것들은 행복을 가는 수단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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