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사람이 변하는 법

아이루다 2015. 12. 2. 14:10

 
흔히 말하길,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나름대로 타당성이 있는데, 사람의 본성은 원래 쉽게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변한다. 사실 그것은 생각보다 명백하다. 아주 흔한 예로, 우리는 자신이 열살 때의 모습과 지금의 모습을 비교해 볼 수 있다. 과연 그때 자신의 모습과 현재의 모습은 변함없이 같은 사람일까?
 
물론 외모는 확실히 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변한 것은 단지 외모만이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좀 더 비관적으로 변했거나, 좀 더 이기적으로 변했거나, 좀 더 자신감 있는 사람으로 변했거나, 좀 더 용기 있는 사람이 되었거나, 좀 더 책임감이 있는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런 말을 할 수 있다. 우리는 변하기도 하고, 변하지 않기도 한다. 이 양립할 수 없는 두 개의 명제가 모두 참이 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변화에 필요한 시간의 차이이다. 즉, 우리는 짧은 시간 사이에는 거의 변화가 없지만, 수 년에서 수십 년에 가까운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는 많은 것이 변한다.
 
그래서 인생이란 전체적인 흐름을 두고 판단했을 때, 우리를 변하냐, 변하지 않느냐 만으로 결정해야 한다면 변한다는 것이 맞는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시간이 가져다 주는 자연스러운 변화에 상관없이, 우리는 또한 스스로에 대한 빠른 변화를 희망하는 경우도 많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든 자신이 갖지 못한 능력이나 혹은 단점 등을 고치길 바라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 세상을 사는 사람 중에 자신에 대해 온전히 만족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 것이다.
 
그것이 외모이든, 성격이든, 능력이든 상관없이 우리는 대부분 기회가 된다면 변하고 싶어한다. 그리고 그 중에서 그 욕구가 강한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이런 변화에 대한 욕구는 왜 생길까? 아주 단순하다. 그것은 현재가 불만족스럽기 때문이다. 현재가 만족스러운 사람은 오히려 변화를 싫어한다. 즉, 어떤 것으로 인해 현재가 불행하다면 우리는 변화하고 싶은 욕구를 강하게 느낀다.
 
아무튼 어떤 이유를 통해서든 변하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다이어트를 통해 살을 빼는 과정을 통해 이것을 이해해보도록 하자. 사실 이해라고 할 것도 없다. 왜냐하면 우리가 경험하는 대부분의 변화는 사실 너무 뻔하기 때문이다.
 
살을 빼고 싶은 사람은 밥을 적게 먹고, 운동을 해야 한다. 이것은 살을 빼고 싶은 사람이 지켜야 할 철칙이다. 물론 평소처럼 먹으면서 살을 빼는 것이 가능은 하다. 하지만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린다. 반대로 밥을 적게 먹고 운동을 하지 않아도 살이 빠지긴 한다. 하지만 이렇게 빠진 살은 요요현상을 일으키면서 언제든 복구가 된다. 더해서 영양 부족으로 인해 몸이 많이 상할 수도 있다.
 
지금은 다이어트의 효과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니니, 일단 이 정도만 설명하고, 이제 밥을 적게 먹는 것과 운동을 하는 것의 차이를 생각해보자.
 
밥을 적게 먹는 것은 사실 상대적으로 소극적 행위이다. 반대로 운동을 하는 것은 적극적 행위이다. 즉, 밥을 적게 먹는 것은 늘 먹던 밥을 조금 줄이는 행위이니 딱히 더 할 것은 없다. 하지만 운동을 하는 것은 따로 시간을 내야 가능하다. 즉, 생활의 변화가 일어난다는 뜻이다. 여기에서 어떤 것이 어려운지에 대해서 난이도를 따지지는 말자. 그것은 사람마다 다르다.
 
이 설명을 조금 범용적으로 해석하면, 밥을 적게 먹는 것은 일종의 환경을 변화시키는 방법이고, 운동을 하는 것은 자신을 변화시키는 방법이다.
 
그리고 이것을 통해 변화하려면 어떤 것이 필요한지에 대해 이해할 수 있다. 그것은 자기 주변의 환경에 변화를 주거나 혹은 자기 자신의 변화해야 한다. 그리고 만약 변화를 원한다면 어떤 것을 해야 할지에 대한 자신에게 좀 더 잘 맞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물론 이 둘을 동시에 하면 변화는 극적으로 일어날 것이다.
 
이제 너무 반복되는 삶에 지친 사람이 삶의 변화를 주고 싶을 때, 이 두 가지 방법을 적용시켜봄으로써 우리가 어떻게 변화할 수 있을까를 알아보도록 하자.
 
일단 환경을 바꾸는 것은, 평소에 습관처럼 하는 것을 하지 않는 방법이다. 집에서 TV를 켜지 않는 것이나, 스마트폰을 덜 보는 것이다. 물론 그랬을 때 남는 시간 동안 뭘 할지는 결정되어 있지 않다. 아무튼 그것들을 하지 않느니 뭔가 하긴 해야 할 것이다.
 
반면에 자신을 바꾸는 방법은, 뭔가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것이다. 그것은 운동이 될 수도 있고, 악기를 배우는 일이 될 수도 있다. 책을 읽거나, 여행을 다니는 일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이럴 경우엔 새로운 것을 하고 나서도 여분의 시간이 나면 TV를 볼 수도 있다. 스마트폰을 보는 것도 할 수 있다. 단지 해야 할 것이 추가적으로 생겼기에 자연스럽게 그럴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 것이다.
 
만약에 자신을 빠르고 확실하게 변화시키고 싶다면, 이 두 방법 중에서는 자신을 변화시키는 방법인 후자가 낫다. 우리는 뭔가 새로운 일을 할 때 좀 더 활력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것은 다이어트를 하고 싶을 때, 밥을 굶는 것보다 운동을 하는 것이 낫다는 것과 일치한다. 운동을 하면 살이 좀 덜 빠질 수 있지만, 삶의 활력이 생기고 건강도 좋아지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훨씬 낫다.
 
하지만 두 번째 방법을 선택하기는 결코 쉽지 않다. 왜냐하면 퇴근 후 집에 누워서 재미있는 TV 프로그램을 시청하는 것만큼 재미난 것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혹은 퇴근길이나 잠자기 전에 스마트폰을 보는 것보다 더 흥미로운 것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더해서 그 찾은 것들을 하려면 대부분 돈이 필요하기 때문에 더욱 더 그렇다.
 
그래서 우리는 보통 후자를 선택한다. 하지만 대부분 잠시 하다가 포기하고 만다. 뭘 해도 TV만큼, 스마트폰 만큼 재미있는 것을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평생 동안 반복된다.
 
이 말의 의미는, 우리는 변화를 원하지만 결국 변화하지 못한다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앞에서 말했듯 우리는 시간이 흐르면 변한다. 단지 그 변화가 우리가 원하는 방향이 아니었을 뿐이다. 그리고 이때 우리를 변화시킨 힘은 바로 환경이다.
 
이 말은 우리가 두 가지 방법 중에서 환경을 바꿀 수만 있다면,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말해준다. 다시 말해서 변화하고 싶다면, 스스로 변화하기엔 의지가 부족하니, 환경을 변화 시켜서 자신을 변화하게 만드는 것이다. 담배를 끊고 싶다면, 먼저 담배를 사지 않고, 금연 건물에 들어가서 일하는 것이 최고이다.
 
이것은 우리가 변화하고 싶을 때 쓸 수 있는 좀 더 현실적인 방법에 대해 말해준다. 그것은 바로 변화하고 싶고, 뭔가 능동적으로 하는 것을 하기 힘들다면, 수동적으로 주변의 환경을 바꾸는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다. 이것은 자신이 변화하는 것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결국 성공할 가능성은 높다.
 
삶의 변화를 원하면 지금 현재 습관처럼 반복하고 있는 뭔가를 하지 않는 것만이라도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그래서 남는 시간을 뭘 할건지 고민하지는 말아야 한다. 그냥 심심한 채로 있는 것이다.
 
유대인들의 삶의 지혜라고 알려진 탈무드엔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집이 좁아서 불만이었던 어떤 사람이 랍비를 찾아가서 집이 좁다고 불만을 토로하자, 랍비는 집 안에 밖에서 키우던 양을 들여놓으라고 조언한다. 그러자 집에 돌아가서 그대로 실천을 한 사람은 얼마 후 더 화난 얼굴로 랍비를 찾아온다.
 
양을 들여놓으니 더욱 더 집이 좁아졌다고 말한다. 그러자 랍비는 이제 동물을 내보내라고 한다. 그리고 돌아간 그 사람은 나중에 너무 행복한 얼굴도 말한다. 양을 내보내고 나니 집이 너무 넓어졌다고 말이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어리석은 농부에 대한 동정심이 들지는 모르지만, 사실 우리 역시도 이 농부와 다를 바가 없다.
 
우리가 반복되는 삶의 매너리즘에 빠졌다면, 가끔 집안에 양을 들여놔야 한다. 그리고 그 양이 다시 나갔을 때, 우리는 그 일상적인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 스스로 깨달을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갑자기 집안에 강도를 초대해서 스스로 목숨에 대한 절박함을 느낄 수는 없다.
 
그러니 우리는 그냥 평소에 하던 몇 가지 버릇과 같은 행동을 하는 것을 멈추는 방법을 쓸 수 있다.
 
늘 2시간씩 보던 TV를 보지 않으면, 당장 심심해진다. 그리고 이 심심함은 어떨 때는 멍하게 누워있는 것보다 청소를 하는 것이 더 낫게 느껴지게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청소를 하게 될 것이고, 깨끗해진 집안은 우리의 기분을 좀 더 낫게 해줄 수 있다. 혹은 잠시라도 운동을 하게 될 수도 있다. 심심한 것보다는 운동이 나을 수 있다.
 
우리는 안 하던 요리를 하거나, 책을 읽게 될지도 모른다. 친구를 만나기 위해서 약속을 잡거나, 심지어는 아주 오래 전에 했던 그림을 그리려고 시도하게 될지도 모른다.
 
무엇을 해도 2시간 동안 멍한 눈으로 심심하게 지내는 것보다는 나을 수 있다.
 
물론 늘 이렇게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심심한 2시간이 너무도 힘들어서 삶이 우울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변화하고 싶다면 일단 참아야 한다.
 
물론 이미 말했듯이 변화는 불행한 사람들의 욕구이니, 지금 매일 TV를 끼고 살더라도 스스로 행복하다면 딱히 그것을 멈출 필요가 없다. 이것은 오직 변화를 원하는 사람이 해야 할 수동적 결심이다.
 
운이 없다면 대체할 것을 찾지 못한 채 몇 년이 흐를 수도 있다. 삶이 우울해지고, 뭔가 답답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변화를 원한다면 계속해야 한다. 하지만 결국 우리는 새로 생겨난 2시간을 전혀 다른 용도로 쓰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럼 이제 다시 TV를 보면 된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제 잠깐 TV를 보는 것만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 즉, 우리는 이제 양을 내보낼 시간이 된 것이다. 그러면 다시 TV를 보면 된다. 우리는 과거와 똑같지만, 훨씬 행복한 마음을 세상을 살 수 있다. 물론 누가 이 이야기를 들으면 양을 내보낸 농부의 이야기를 들은 듯 웃을 수 있겠지만, 아무튼 과거보다 훨씬 삶에 만족하게 되었으니 꽤나 괜찮은 방법이다.
 
이런 식으로 환경을 변화시키는 것은 그 심심함을 참지 못하고 뭔가 새로운 것을 찾아내거나, 혹은 원래대로 돌아갔지만 좀 더 행복해지거나 하는 변화를 일으킨다. 즉, 어떤 식으로든 변화할 수 밖에 만드는 것이다.
 
우리는 가끔 현실이 너무 힘들면, 훌쩍 어딘가로 떠나고 싶다고 느낀다. 이때 떠난다는 것은 환경의 변화를 의미한다. 우리는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면서도 자신이 변하기 힘들면, 환경을 변화시킴으로써 그것을 극복하려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보통 변화를 원하는 사람들은 흔히 능동적 변화만을 우선시한다. 이것은 운 좋게 변화할 수 있다면 상대적으로 필요한 기간이 훨씬 짧고, 효과 또한 명확하다. 그리고 남들에게 뽐내면서 자랑하기도 좋다.
 
문제는 이런 종류의 변화를 성공시킬 정도로 강한 의지를 가진 사람은 꽤나 드물다는 점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보통 자신이 그 중에 속할 것이라고 오판을 한다.
 
물론 과거에 어떤 일에 대해서 그것을 성공한 일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들 대부분은 그럴 정도의 의지가 없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만약 있었다면 운과 때가 맞았거나 혹은 정말로 그것이 절실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후자의 방법을 선택하는 것이 좀 더 현명하다. 이것은 오래 걸리고 성공해도 남들에게 자랑스럽게 얘기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훨씬 현실적이다.
 
아침 잠이 너무 많아서 고민인 사람은 회사를 다니면 해결이 된다. 물론 회사에 다니면서도 지각을 하겠지만, 한 20년 다니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바뀌었을 것이다.
 
담배를 끊고 싶을 때, 담배를 사두고 스스로와의 인내력을 시험하는 짓은 어리석은 짓이다. 살을 빼고 싶다면 냉장고부터 비워둬야 한다. TV 보는 시간을 줄이고 싶다면, TV를 없애는 것이 최선이다. 술을 끊고 싶다면 술자리 약속을 잡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스스로 어떤 의지력을 가지고 있다고 믿겠지만, 사실 우리들은 대부분 작심삼일이다. 담배를 가장 쉽게 끊는 방법은 폐암에 걸리는 것이다. 그때 우리는 최고의 의지력을 가질 수 있다.
 
스스로에 대한 오판, 이것이 우리가 변하기 힘든 가장 큰 이유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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