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백마디 칭찬과 한마디 비판

아이루다 2015. 11. 26. 07:46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관계를 맺는 다른 이들로부터 다양한 반응을 경험하게 된다. 그것은 칭찬일 수도 있고, 비난일 수도 있으며, 무신경함이나, 배려심이 느껴지는 경우도 있다. 또한 아예 그 어떤 관심조차 느껴지지 않는 무관심이나 혹은 기분이 나쁠 정도의 무시일 수도 있을 것이다.
 
특히 사람을 많이 상대하는 직업을 가진 일명 '서비스 업' 에 종사하는 분들은 일반 사람들에 비해서 훨씬 더 많은 종류의 경험을 하게 되는데, 그분들이 하는 말을 들어 보면, 그 반응들이 그다지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이 중에서도 특히 ‘진상’으로 알려진 손님들을 대한 이야기를 듣다 보면, 직접 겪은 것도 아닌데 화가 날 지경이다. 그리고 진상까지는 아니더라도,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이기적인 성향을 띠고 있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돈을 벌어야 하는 아쉬운 입장에 있는 당사자를 지치게 한다.
 
그리고 심한 경우, 너무 큰 스트레스로 인해 결국 그 일을 그만 두는 경우도 생긴다.
 
그런데 이분들이 생업에 종사하면서 대하는 사람의 분포를 단순하게, 일명 좋은 고객, 평범한 수준의 고객, 기분 나쁜 고객 세 단계로 구분해보자. 그리고 그럴 경우 대부분의 고객은 사실 평범한 수준의 고객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아마도 여기에 해당되는 고객에 대해서는 그들을 대하는 일을 할 때, 약간은 힘들 수 있지만 심한 스트레스를 받는 수준은 아닐 것이다.
 
더해서 좋은 고객층에 속하는 사람들은 일하는 사람들을 힘 나게 해줄 수도 있으니, 실제로 서비스 업에 종사하는 분들이 만나게 되는 주요 고객층은 대부분 괜찮은 수준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그것을 명확하게 통계를 낼 수는 없지만, 대충 90% 정도의 고객은 괜찮은 수준이며, 나머지 10% 정도의 고객이 서비스 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스트레스를 받게 할 가능성이 있고, 특히 그 중에서도 특히 1% 정도의 고객은 진상 수준일 것이다.
 
그런데도 일하는 분들이 도저히 참지 못하고 일을 그만 두는 경우가 생긴다면, 그 이유는 바로 이 10%에 해당되는 사람들에 의해 발생하는 스트레스 때문이다. 또한 지금 당장 생계가 걸려서 일을 그만두지는 않고 있지만, 가능하다면 일을 그만두고 싶다는 사람도 꽤나 많을 것이다. 그리고 이들 역시도 같은 이유로 인해 그렇다고 볼 수 있다.
 
누구나 그 일을 할 때 아무리 좋았던 일이 많았더라도, 단 한 차례의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생기면, 더 이상 그 일을 하기가 힘들어진다. 그리고 당사자는 심한 경우,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할 만큼 큰 정신적 충격을 받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인생이란 과정을 살아가면서 이와 비슷한 경우를 겪는다.
 
사람들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다른 사람에게 웃으면서 대하려고 노력한다. 이것은 상대를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 그렇다. 남에게 괜히 인상 쓰고, 화를 내거나, 성질을 부려봐야 결국 자기손해만 생겨난다.
 
우리가 그나마 그럴 때는, 그럴만한 위치에 있을 때이다. 즉, 일명 갑질이라고 불리는 현상이 바로 그것이다. 고객의 입장에서 주도권을 쥐게 된 순간, 우리는 다른 이들에게 자신의 감정대로 대할 수 있다는 권리를 부여 받은 듯 행동한다. 하지만 자신이 불리한 위치에 있어서 갑질을 당할 때는, 아무리 화가 나도 참아낸다.
 
이런 원리로 인해 우리는 특별히 갑을 관계를 맺지 않는 한, 다른 사람들로부터 험한 말을 들을 일이 별로 없다. 설령 사람들은 칭찬은 안 하더라도 비난이나 비판을 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그나마 그런 말을 듣는 장소는 직장이다. 직장은 돈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속마음을 돌려 말하지 않고 그대로 보인다. 또한 직급에 따라 상하 계급이 암묵적으로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삶을 살아가면서 보통은 비난이나 비판보다는 무반응이거나 칭찬에 자주 노출된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우리의 마음을 실제로 지배하는 것은 다른 이들의 칭찬보다는 비난이나 비판이란 점을 깨달을 수 있다.
 
물론 이것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어떤 사람은 칭찬만 기억하고 비판이나 비난은 금세 잊어 버릴 수 있다. 하지만 사실 많은 사람들에게 보통 칭찬은 금세 잊혀지고 비판과 비난만이 오랜 시간 동안 머리 속을 떠돈다.
 
특히나 그 비판이나 비난이 나름 근거를 가지고 있고, 자신도 결국 어느 정도는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사실이라면 더욱 더 그렇다. 오해를 받아서 비판이나 비난을 받는 경우 역시도 마찬가지다. 사실 오해를 받아서 비판이나 비난을 받게 되면, 억울한 마음이 들어서 더욱 더 집착하는 경우가 생긴다.
 
이런 상태가 되었을 때, 우리의 머리 속은 마치 괜찮은 고객을 자주 접하다가 진상 고객을 한 명 상대한 점원처럼 변해 버린다. 갑자기 비수처럼 꽂힌 비난은 그 동안 들었던 수 많은 긍정적 반응들을 모두 한꺼번에 파괴시켜버리고 만다.
 
그런데 우리는 왜 이럴까? 우리는 왜 긍정적 감정보다 부정적 감정에 훨씬 더 민감하게 대응을 하게 될까?
 
사실 우리가 이러는 이유의 한 꼭지는 바로 우리가 들었던 수 많은 긍정적 반응에 대해서 그다지 신뢰를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다른 이들에게 이른바 '립 서비스' 를 한다. 즉, 꼭 그렇게 생각하지 않더라도, 관계를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 좋게 말하는 것이 생활화 되어 있다는 뜻이다. 그 자신이 다른 이들에게 그렇게 말하는 것이 습관화 되어 있기 때문에, 반대로 자신이 다른 이들에게 칭찬을 들어도 그것을 그대로 믿지 못한다.
 
그것은 우리 자신을 칭찬했던 어떤 사람이 나중에 그렇게 말한 사실 조차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경험을 할 때 알게 된다. 그것은 칭찬을 자주해서 나를 좋아하는 줄 알았던 사람이 사실은 잘 이용해먹기 위해서 한 말임을 깨달았을 때 알게 된다. 그것은 과거에 칭찬을 들었다고 좋아했다가, 우연히 칭찬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험담을 하는 것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아서 그럴 수도 있다.
 
아무튼 우리는 다양한 경험을 통해서 칭찬이나 긍정적 반응을 그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 서로 갑과 을의 상태가 아니라면, 우리는 서로 듣기에 기분이 나쁜 말을 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했다면, 그 말이 꼭 필요해서 했을 것이다. 즉, 누군가 관계가 껄끄러워지는 것을 감안한 채, 뭔가 듣기 싫은 비난이나 비판을 했다면, 이 말은 상대적으로 신뢰도가 무척 높다는 것을 의미하게 된다.
 
그 말을 해서 그다지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도 않을 말을 굳지나 하는 이유는, 정말로 그것이 진심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칭찬은 대부분 입에 발린 말이기에 못 믿을 가능성이 높고, 비난이나 비판은 그것이 진심이기에 신뢰도가 훨씬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수 많은 칭찬보다 몇 안 되는 비난이나 비판에 훨씬 더 크게 영향을 받게 되는 것이다.
 
또한 우리는 본질적으로 행복보다는 불행에 훨씬 민감하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행운으로 백만 원을 얻은 경우와 운 없게 백만 원을 잃은 경우는 결코 같지 않다. 물론 백만 원을 주운 그 순간엔 기분이 무척 좋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은 금세 지나가고 어느새 기억조차 희미해지는 반면, 잃은 돈은 그 돈이 필요하다고 느껴지는 순간마다 되새겨지고 만다. 즉, 뭔가 사고 싶을 때마다 그 잃어버린 돈이 아쉽게 느껴지는 것이다.
 
주식을 한 번이라도 해 본 사람은 이 말이 가진 의미를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주식을 투자해서 돈을 번 것은 기분이 좋다. 하지만 원금을 까먹은 경우엔, 그 기분 좋은 것은 사실 별 것이 아니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만, 기분이 나빠지는 것은 한 순간에 별것 아닌 것으로도 일어나는 특징이 존재한다.
 
이것은 이 모든 것은 무엇인가를 만드는 데는 오랜 시간 동안 공을 들여야 하지만, 무엇인가를 부수는 것은 순식간에 일어난다는 현실 세계와도 연결이 된다.
 
뼈가 부러지는 시간은 1초도 안 걸리지만, 부러진 뼈가 붙으려면 몇 달을 고생해야 한다. 힘들게 고생해서 공부를 했을 때, 합격을 하면 행복을 얻지만, 떨어지게 되면 그 만큼의 불행함을 경험해야 한다. 합격과 불합격의 가능성이 각각 50%일 때, 공부하는 도중에 참아야 했던 불행함은 도대체 어디에서 보상받을 수 있겠는가?
 
이 두 가지 사실을 조합하면, 우리가 칭찬에 대한 신뢰가 낮고 비난이나 비판에 대한 신뢰가 높은 것과, 우리가 행복보다는 불행에 훨씬 더 민감하다는 특징이 만들어진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가 행복하게 살기 보다는 불행하게 살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을 만들어 낸다.
 
그런데 이것을 그냥 받아들이기엔 좀 억울한 면이 있다. 이유는 딱히 없지만, 우리는 좀 더 행복하게 사는 것이 좋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 뭔가 대안을 찾아봐야 한다.
 
이때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바로 우리가 비난이나 비판을 좀 더 신뢰하는 것이 과연 제대로 된 판단일까에 대한 것이다.
 
앞에서 우리가 자신에게 나쁜 말에 좀 더 신경을 쓰는 이유를 설명했다. 그리고 나름 타당성은 있다. 하지만 추가적으로 더 생각해야 할 것은, 사람들은 생각보다 깊은 생각을 하고 말하는 것이 아니란 점을 간과하면 안 된다. 즉, 보통 사람들이 나쁜 말을 할 때는, 그것이 상대를 생각해서 해주는 조언이 아닌, 그냥 자신의 성질을 못 이겨서 내뱉는 말들일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이다.
 
즉, 그런 말들은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보여주면서도, 상대로부터 손해를 입지 않아야 하기 때문에 교묘하게 조언이란 이름으로 치장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이것은 대놓고 화를 내면서 자신의 감정을 표출하는 것에 비해서 고단수이긴 하지만, 원리는 같다.

 

사람들이 보통 화를 내면서 하는 이야기는, 나중엔 꼭 너를 위해서 한 얘기라고 설명이 덧붙여 진다. 하지만 이것은 거짓말이다. 우리는 화가 나면, 그 화를 낸 것으로 인해 자신이 손해를 볼 것을 알기 때문에 마음이 불편해지고, 그래서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자신이 낸 화의 정당성을 어떤 식으로든 마련하게 되어 있다. 

 

반면에 진짜 조언은 차분하게 이뤄지기 마련이다. 왜냐하면 누군가에게 제대로 조언을 해준다면, 정말로 충분히 생각했을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누가 살아가면서 그런 진짜 조언을 받아 볼 기회가 있겠는가? 우리들 대부분은 그냥 상대가 화가나서 지껄인 후 포장된 강제로 합리화 된 이유를 들을 기회가 있을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한 이야기를 무조건 신뢰성 높게 받아드릴 필요는 없다. 물론 화가 나서 한 이야기라고 해도 나름대로 합리적인 이유가 있는 비난이나 비판이라면 생각해 볼 대상이 되겠지만, 그것은 그 정도에서 멈춰야 한다. 그것을 과도하게 받아들여서 자기비하나 혹은 본격적으로 불행해질 필요까지는 없다.
 
그리고 그래야 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는, 사람들은 보통 다른 사람들을 잘 모르고 또한 관심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다른 사람들은 우리를 키워주신 부모님의 표정과 그리 달라 보이지 않는 표정을 보여주지만, 사실 부모님의 관심에 비하면 단 1%에도 못 미칠 정도로 관심이 없다. 하지만 우리는 표정에 속아서, 그들이 자신을 키워 준 부모님처럼 관심이 있을 것이라고 착각한다.
 
그런 특징은 우리들 자신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자기가 아닌, 관심을 갖는 유일한 대상은 가족 정도뿐이다. 혹은 자신의 이득과 삶에 크게 영향을 미칠 수준의 관계를 맺은 몇몇 안 되는 사람들뿐이다.
 
우리들 자신을 잘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는 사람들이 화가 나서 내뱉는 말을 귀담아 듣는 셈이 된다. 물론 이들의 말을 통해서 자신을 되돌아 보는 것은 좋으니, 귀를 막을 필요는 없다. 하지만 거기에서 멈춰야 한다.
 
마지막으로 생각해야 할 점은, 어떤 칭찬이나 비판의 기준이 되는 장점과 단점은 상황에 따라 계속 다른 판단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잘 빠진 몸매는 일반적으로는 좋지만, 역도 선수가 되기엔 좋지 않다.
 
그러니 어느 위치에서 어떤 성격적 특징으로 인해서 자주 비난이나 비판을 들었다면, 그것은 그냥 자신이 가진 어떤 특징이 단점으로 작용하는 자리일 뿐이다. 그러니 떠나는 것이 옳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자리를 지키면서 '나는 왜 이런 사람일까' 라고 고민을 한다. 그리고 다른 이들의 비난이 합당하다고도 느낀다. 그래서 끝없는 자기 비하에 시달린다.
 
너무 키가 커서 일반 사람들과 어울려 살기가 힘들다면, 운동을 하거나 모델로 나서는 것이 좋다. 사실 우리 사회는 엄청나게 다양해서 그 어떤 신체적 특징도 다 장점으로 살려낼 수 있다. 너무 소극적인 성격이라면, 최대한 사람을 접하지 않는 직업을 가져야 한다. 소극적인 사람이 서비스나 영업으로 가면 사교적인 사람에 비해서 수 십배 더 힘들 수 있다.
 
결국 우리는 자신에게 잘 맞지 않는 자리나 혹은 자신이 가진 장점보다는 단점이 더 크게 작용하는 곳에서 자신에게 사실은 거의 관심도 없는 사람이 감정적으로 격해져서 내뱉는 말을 괜히 깊게 생각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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