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소비 심리

아이루다 2015. 11. 7. 15:19

 
 
많은 사람들은 직업을 가지고 있다. 설령 직업이 없는 사람이라고 해도, 보통은 직업을 가진 사람과 함께 살면서, 그 사람이 번 돈을 공유한다. 보통 가정이 그렇다.
 
우리가 직업을 갖는 이유는 단 한 가지뿐이다. 돈을 벌기 위해서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돈을 버는 이유는 뭘까? 이것은 질문도 아니다. 돈은 자신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과 바꿀 수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된 도구이다. 우리는 돈이 없으면 살아갈 수가 없다. 돈은 쌀과 김치로 교환이 가능하며, 머리를 깎을 수 있으며, 여행도 갈 수 있게 해준다.
 

그래서 돈은 무척 중요하다. 하지만 모든 이들이 돈을 원하기에 경쟁은 치열해지고, 결국 쉽게 돈을 벌기가 힘들지고 만다. 말 그대로 피 같은 돈이 되고 만다.
 
특별한 몇몇을 제외하고, 돈은 매우 귀하다. 그래서 이 귀한 돈을 쓸 때, 우리들 대부분은 신중해질 수 밖에 없다. 우리는 스스로 용납되지 않는다면 단 돈 10원을 쓰는 것도 아까워한다.
 
그래서 우리가 돈을 쓸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무엇일까? 가격? 대상? 아니다.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바로 만족도이다. 즉, 그것이 1억이냐 천원이냐의 문제도 아니고, 가구를 샀느냐, 여행 경비로 썼느냐의 문제도 아니다. 우리는 큰 돈을 쓸 때 단지 좀 더 주의 깊어질 뿐이다.
 
돈을 쓸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돈으로 무엇을 얼마에 샀냐 가 아니라, 얼마나 스스로 만족할 만큼의 거래를 했느냐 라는 뜻이다. 우리는 만족감이 클 수록 더욱 더 돈을 제대로 썼다고 믿는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든다. 우리는 과연 어떻게 이것을 판단할까? 우리는 무엇을 근거로 자기가 가진 돈을 제대로 썼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생각보다 이것은 문제가 되고 만다.
 
왜냐하면 우리의 믿음과 달리 우리가 돈을 제대로 썼다는 근거는 사실상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일반적으로 ‘가치’를 통해서 결정되는데, 문제는 그 가치라는 것이 모든 사람에 따라 다르게 판단된다.

 
매일 10킬로미터를 걷는 사람에게 신발의 튼튼함에 대한 가치는, 하루 겨우 100미터 의 거리를 걷는 사람에게 비해서 상대가 되지 않을 정도로 중요하다. 매일 걷는 사람은 신발을 살 때, 디자인 보다 튼튼함을 좀 더 중요하게 여길 수 밖에 없다. 즉, 가격 때문에 디자인과 튼튼함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면 튼튼함을 선택한다.
 
반대로 100미터만 걷는 사람은 같은 가격이라면, 튼튼함보다는 디자인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혹은 편안함이나 기타 여러 가지 요소들이 튼튼함보다는 좀 더 우선적으로 고려하게 된다.
 
그래서 두 사람이 같은 가격을 주고 서로 다른 제품을 골랐을 때, 서로는 각자 만족스러울 수 있다. 즉, 돈을 제대로 썼다고 느낀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이 만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튼튼한 신발을 산 사람은, 한 달도 못 가서 찢어질 것 같이 생긴 신발을 산 사람을 한심하게 여길 것이다. 돈 낭비를 했다고 생각할 테니까 말이다. 반대로 예쁜 신발을 산 사람은 그런 투박한 신발을 신은 사람을 보고는 상대가 패션에 둔한 사람이라고 판단할 것이다. 그래서 왜 저런 신발을 돈 주고 샀는지가 궁금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상황은 서로 상대의 입장의 설명을 들으면, 어느 정도 이해는 할 수 있다. 하지만 근본적인 공감을 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이들이 서로의 입장을 좀 더 제대로 이해하려면 서로의 상황을 경험하는 수 밖에 없다.
 
이 단순한 예로도, 우리는 그 어떤 돈도 자기 자신의 사고 범위 내에서는 만족스러울 수 있지만, 그것이 자신 이외의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럴 수 있긴 힘들다는 점을 이해할 수 있다.
 
물론 모든 상황이 그런 것은 아니다. 많이 걷는 사람이 많이 걷는 사람들의 모임에 들어가서 자신이 산 신발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거기에 있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 신발의 튼튼함이 가진 가치에 공감을 해 줄 것이다.
 
반대로 적게 걷는 사람 역시도 어딘가 자신이 새로 산 예쁜 신발 사진을 올려 놓으면, 많은 이들이 어디에서 그걸 살 수 있는지를 문의해올지도 모른다.
 
즉, 우리는 이런 식으로 전체는 아니지만, 주변에 어느 정도로 자신이 느끼는 가치에 대한 동조자를 찾을 수는 있다.
 
그런데 이 부분을 잘 생각해보면, 그 동조자의 범위가 얼마나 넓냐 에 따라서 우리가 돈을 쓸 때, 좀 더 쉽게 하거나 혹은 소비를 한 후에도 행동이 달라짐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서 화장실 용 화장지를 산 사람은 그 화장지를 살 때 많은 고민을 하지 않는다. 또한 얼마나 잘 샀는지 따로 말 할 필요가 거의 없다. 물론 큰 폭의 세일을 해서 훨씬 싸게 샀다면, 그것은 정보로써 잠시 이야깃거리가 될 지 모르지만, 평소에 자신의 집에 쓰는 휴지에 대해서 누가 이야기를 하려고 하겠는가?
 
사실 우리가 매일 쓰는 일상의 제품들은 대부분 그렇다. 또한 목욕탕을 가거나 머리를 깎거나 하는 것 등에 쓰는 돈도 비슷하다. 그런 것들은 특별한 곳이 아니라면, 가격도 대략 비슷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냥 만족스러운 소비를 하면 된다. 그래서 우리는 이것을 생필품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 배경엔 동조자의 범위가 거의 대부부의 사람들이라는 사실이 숨겨져 있다. 즉, 우리는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모든 이들이 공감해주는 것에 대해서는 어떤 가치를 부여하려고 하지 않는다. 또한 그것에 대해서 자랑스럽게 여기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냥 필요하기 때문에 돈을 쓰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필요한지, 필요하지 않은지 스스로도 헷갈리는 것들에 돈을 쓸 때 일어난다. 왜냐하면 이때부터는 동조자의 범위가 급속도로 줄어들기 때문이다. 자신도 확신이 없는데, 남들은 더욱 없을 수 밖에 없다.
 
거기에 더욱 심각해진 상황은, 그때 그것을 위해 필요한 돈이 자신의 한계를 넘어설 때 발생한다. 즉, 감당하기 힘든 비싼 제품을 사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잡혔을 때 가장 필요한 것은 돈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위해 쓴 돈이 스스로 아깝지 않고, 또한 주변 사람들에게서도 돈 낭비를 했다는 소리를 듣지 않는 것이다. 비싼 차, 비싼 가방, 많은 경비가 드는 여행 등이 그렇다.
 
사실 그것만 명확하다면, 우리는 빚을 내서라도 그것을 하는데 망설이지 않는다. 하지만 생필품이 아닌 것들에 대해서 빚을 낼 정도로 확신을 갖기는 결코 쉽지 않다.
 
이 현상은 꼭 자신의 한계를 넘어설 때만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것이 화장실 화장지처럼 반드시 필요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 때면 늘 그런 갈등을 겪는다.
 
그리고 이때 가장 넘기 힘든 고비는 바로 자신을 설득하는 것이다. 자신이 무엇인가에 대해 돈을 썼을 때 그것이 아깝지 않아야 한다. 사실 이 과정을 제대로 거치지 못하면, 어떤 제품을 사고 난 후, 무엇인가 불만족스러운 점이 생기면, 그것을 감당하기가 힘들어진다.
 
즉, 우리가 돈을 쓸 때, 가장 중요한 자기 만족감에 생채기가 나게 되면, 결국 돈을 낭비했다는 생각이 들면서 크게 후회가 밀려오게 되는 것이다. 사실 이 느낌은 매우 좋지 않아서 사람들 대부분이 피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우리는 누구나 그런 일을 과거 몇 차례씩 겪었기 때문에, 이젠 본능적으로 피하는 요령을 안다. 그것은 바로 돈을 쓰기 전에 자신을 충분히 설득하는 일이다. 이것은 설령 실패를 하거나 후회를 하더라도 자신을 책망하지 않을 이유를 돈을 쓰기 전에 만드는 행동이다.
 
그리고 이것이 잘 되지 않을 경우엔, 주변 사람들을 끌어 들인다. 그리고 의견을 묻는다는 형식을 취하긴 하지만, 우리는 사실 답을 정해두고 있다. 혹시나 자신의 예상과 달리 사람들의 반대가 많다면, 다른 그룹의 사람들을 만나서 그들의 의견을 듣거나 혹은 자신을 반대한 사람들의 의견을 반박할 근거를 어딘가에서 찾아서 어떻게든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키려고 한다.
 
그리고 결국 자신이 원하는 대상에 돈을 쓴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자신의 돈을 써야 할 충분한 근거를 마련했으므로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쓴 돈에 대한 후회는 좀처럼 생기지 않는다. 심지어 자신이 산 제품의 단점이 있어도 그것을 스스로 옹호하고,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주변에 그 제품의 장점을 홍보한다.
 
사실 이 효과가 얼마나 대단한지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필품에 쓰는 돈과 필요할지 안 할지 모르는 것에 쓰는 돈 차이를 보면 된다.
 
겨우 천원 남짓한 화장지가 가진 기능은 막강하다. 우리는 화장지가 없으면 화장실에서 큰 낭패를 보게 된다. 그런데도 이 화장지를 살 때 쓰는 돈은 아깝게 느껴진다. 사실 전기세, 가스 비, 수도세, 교통비 다 마찬가지다.
 
우리는 한끼 식사에 몇 만원을 쓰기도 한다. 그런데 그 돈은 한 달 분에 해당하는 각종 생필품 가격일 수 있다. 먹을 것을 그나마 괜찮지만, 우리는 일 년에 몇 번도 쓰지 않을 어떤 제품을 사거나, 이미 충분히 다른 비슷한 역할을 하는 제품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이유를 통해 추가적으로 수십 만원을 쓰기도 한다.
 
그런데 이 비용과 우리가 매달 살기 위해서 쓰는 생활 필수 비용을 비교하면, 사실 비교도 되지 않게 생활 비용이 싸다. 한달 동안 삼 만원을 내고 전기를 쓰는 것과 삼 만 원짜리 한끼 식사는 도대체 교체가 불가능하다. 누가 밥 한끼를 먹자고 한 달 동안 전기를 쓰지 않고 살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밥값보다 전기세는 아깝다고 느낀다. 하지만 식사에 쓴 삼 만원이나 옷을 사거나 기타 필요할지도 몰라서 구입하는 수십 만 원짜리 제품은 그다지 아깝다는 생각이 안 든다.
 
그리고 그 배경엔 당연히 자기 만족이 숨겨져 있다.
 
우리는 생필품에는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다. 꼭 써야 하는 것이기에 그렇다. 자신을 설득할 필요도 없고, 다른 이들의 동조를 얻을 필요도 없다. 그냥 쓰면 된다. 그러니 아깝다.
 
하지만 그 외의 제품에 대해서는 자신을 설득해야 한다. 그리고 다른 이들의 동조도 중요하다. 그리고 이 과정을 거친 후 돈을 쓰고 나면, 만족감이 매우 크다. 그러니 돈이 아깝지 않다.
 
여기까지는 그냥 사람들의 일반적인 특성이니까 이해할 수 있다. 문제는 본격적으로 자신이 만들어 낸 가치에 대한 강한 믿음을 갖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발생하기 시작한다. 즉, 자신의 만족을 위해 만들어 낸 논리에 스스로 빠져드는 것이다.
 
필요할 수도 있고, 없어도 살 만한 것들을 위해 돈을 쓰는 것은, 객관적으로 돈 낭비이다. 그것이 아무리 자신을 위해 쓰고, 가치가 있고, 의미가 있고, 쓸모가 있어도 돈 낭비는 맞다.
 
물론 행복하기 위해서 쓴 것이니, 꼭 낭비는 아닐 것이다. 그래도 돈 낭비는 맞다. 우리가 아는 돈 낭비의 개념이 그것이다. '쓸데 없는 곳에 쓰는 돈', 이것이 돈 낭비의 개념이다.
 
그래서 행복하기 위해서 썼다고 해도 돈 낭비는 돈 낭비다. 아니, 행복하기 위해서 썼고, 정말로 행복하다면, 사실 돈 낭비가 아니다. 우리가 돈을 쓰는 가장 원론적인 이유가 바로 행복하기 위해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자신이 행복하기 위해서 돈을 썼다는 사실을 잘 인정하지 않는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지만,무엇인가를 사고 싶다는 욕구를 느꼈을 때, 그것이 누군가의 행복을 따라하는 것임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사실은 어떤 사람의 행복이 부러워서 따라 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자신이 그것을 필요로 한다고 믿고 싶어한다. 즉, 감정적 이유가 아닌, 이성적인 판단이라고 주장한다.
 
우리가 돈을 쓸 때 필요한 자기 만족에는, 합리적 소비라는 항목이 있다. 이 말은 우리가 불필요한 곳에 돈을 쓰지 않았음을 증명해야 하는 내용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의 소비가 기본적으로 필요한 곳에 썼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 심리가 행복하기 위해서 돈을 썼다는 사실을 스스로 부정하게 만든다. 하지만 우리가 합리적으로 소비했다고 해서 행복한 것은 아니다. 우리는 싸게 샀거나, 세일 가격에 샀거나, 옆 사람보다 더 싸게 샀다는 사실로 인해 비교를 통한 여분의 행복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여분의 행복일 뿐이다.

 

아주 대단히 민감한 청각과 절대 음감을 가지고 있어서, 정말로 좋은 오디오 시스템을 갖춰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주 소수지만 존재한다. 그래서 이들은 자신의 귀를 위해서 정말로 많은 돈을 오디오 시스템에 투자를 한다. 그럼에도 이들은 충분히 행복하다.

 

문제는 이것이 부러운 어떤 평범한 사람들로부터 일어난다. 이들 역시도 그 소수가 느낀 행복을 느끼고 싶어한다. 하지만 그 자신은 그런 귀가 없다. 하지만 부럽다. 그래서 결국 자신이 그들과 같은 장비를 사야 할 이유를 만들어야 한다. 그것은 행복하기 위해서가 아닌, 별도의 합리적인 이유가 있고 믿는다. 그래서 자신이 사려고 하는 장비가 가진 장점을 외우듯 말할 수 있게 된다. 이때 그 장점을 자신이 활용할 수 있을지는 별도의 문제이다.

 

또한 행복하기 위해 산 것이 아니니, 비싼 장비를 사고도 제대로 활용을 못해도 상관없다. 왜냐하면 처음부터 그것이 목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엔 문제가 있다. 돈을 썼는데 행복하지 않다는 점이다. 그래서 또 다른 돈을 쓸 대상을 찾아 나선다. 또한 비싼 돈을 주고 산  제품을 제대로 쓰기 위해서 힘들게 노력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스트레스를 받는다. 행복하기 위해서 산 제품으로 인해 불행해지고 만다.
  
이미 말했듯, 우리가 돈을 쓰는 이유는 유일한 이유는 행복하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돈을 쓰고 충분히 행복했다면, 얼마를 쓰든지 상관이 없다. 그것이 남들의 눈에 낭비나 혹은 불필요한 소비로 보일지 모르지만, 사람마다 행복 기준점이 다 다르기 때문에, 그것을 남에게 굳이 납득시킬 필요도 없고, 남을 의식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행복하기 원하는 불행한 우리는 소비 그 자체를 행복으로 여긴다. 즉, 자신이 구입한 제품이 아닌, 제품을 구입하기까지의 과정을 행복하게 여긴다. 사실 이 말이 가진 의미는 조금 무겁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돈을 쓴 후, 생각만큼 행복을 얻지 못한다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분의 행복이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갖고 싶어하는 명분과 가치가 된다.
 
결국 우리는 그것이 왜 필요한지, 얼마나 가치 있는지를 증명하려고 애쓰게 된다. 그래서 더 싼 곳을 찾고, 남들보다 더 싸게 사려고 노력하고, 세일을 할 때를 기다린다.
 
이것들은 모두 명분이 되어준다. 또한 여기에 자신을 설득시킬 수 있었던 가치를 부여하게 되면, 소비는 그 자체로도 충분히 만족이 된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남들에게 이야기를 해야 한다. 혼자서는 납득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제품을 얼마나 싸게, 잘 샀는지를 끝없이 얘기한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자신이 쓴 돈만큼 행복을 얻지 못하면, 여분의 행복은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단지 머리 속에서 계산으로 이뤄진 것이기 때문이다.
 
해외에서 만들어진 비싼 명품을 샀다는 즐거움에 흠뻑 빠져 있을 때, 뉴스에 자신이 산 제품이 국내 업자들이 가짜로 짝퉁을 만들어서 판 것이라는 것을 아는 순간은 재앙이 된다. 이때 설령 짝퉁이라도 진품에 다름없는 견고함과 품질이 보장된다고 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 왜냐하면 제품 그 자체가 아닌, 브랜드라는 것으로부터 가치가 왔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돈을 쓸 때, 과연 그 자체로 만족을 하는지, 아니면 명분과 가치를 찾으려고 하는지를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한다. 정말로 행복하다면, 비싼 가격은 문제가 안 된다.
 
처음부터 말했듯이 우리가 돈을 쓰는 것은 무엇을 얼마나 샀느냐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쓴 돈만큼 만족하면 된다. 그리고 이때 만족의 기준은 자신의 행복이어야 한다. 그것은 명분도, 가치도, 남들의 칭찬도 아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사실 돈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은 별로 없다는 점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 이유는 우리가 스스로 행복하게 사는 법을 알지 못해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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