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즐거움과 안전함을 위한 관계

아이루다 2015. 8. 3. 07:24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참 다양한 인간관계를 맺는다. 그것은 학창시절 우연히 결정된 학교에서 만난 친구이기도 하고, 원하던 대학교에 합격한 후, 같이 어울리게 된 친구이기도 하다. 혹은 직장에서 만났지만, 하는 일이 비슷하고 생각이 잘 통해서 평생 친구로 지내기도 하고, 취미 모임에 참석했다가 좋은 인연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또한 그것은 태어나면서 자연스럽게 맺어지는 가족이나 친인척 관계처럼 아주 가까운 관계이거나, 일을 하다가 보니 알게 되는 영업적 관계처럼 먼 관계일 수도 있다.
 
그리고 이 관계들은 마치 살아있는 듯, 끊임없이 변화된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특정한 나이 이후엔 거의 고정되어 살기도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평생에 걸쳐 관계가 지속적으로 변하기도 한다.
 
활동적이고 적극적으로 삶을 사는 사람들은 나이가 적건 많건 간에 상관없이 끝없이 새로운 것들을 찾다 다니고, 그 덕분에 자연스럽게 새로운 관계를 맺게 된다. 또한 새롭게 시작된 일에 집중해야 하기 때문에, 과거의 인연들과는 다소 소원해지기도 한다.
 
반면에 어떤 사람들은 꽤나 젊은 시절부터 관계가 고정된다. 그리고 특히 결혼을 한 이후에는, 직장을 옮기는 변화만 없다면, 학교 동창과 개인적인 모임 등을 통해서 매우 한정적이고 고착화된 관계를 지속한다. 그리고 가능하면 대부분의 시간은 가족과 함께 보낸다.
 
우리 인간이 어떤 식으로든 관계를 맺은 이유는 하나뿐이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이다. 물론 이 이득은 반드시 물질적인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정신적인 만족과 같은 비물질적인 행복까지도 포함한다.
 
그리고 이런 이득은 두 가지 관점에서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바로 즐거움, 즉 행복을 얻는 이득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고난이나 위기 등, 즉 마치 보험처럼 불행함이 닥쳤을 때 얻는 이득이다.
 
즉,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서 관계를 맺거나, 불행함을 조금이라도 피하거나 대비하기 위해서 관계를 유지한다. 이 두 가지 모두 우리들 자신을 위해서 매우 중요한 가치이다. 그리고 관계가 더욱 더 가까울수록 행복보다는 불행에 대비하는 성격이 강하다.
 
즉, 가족은 행복을 위해서도 소중하지만, 불행을 대비하기 위해서 더욱 더 소중하다. 반면에 친구들은 불행에 처하게 될 때는, 사실상 남이 될 수 밖에 없다. 그들은 불행함보다는 행복하기 위해서 좋은 관계이다.
 
그런데 우리는 행복과 불행 중, 행복을 훨씬 더 선호한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어떤 관계를 맺을 때, 그 관계가 즐겁고 행복한쪽이기를 바란다. 즉, 우리는 가족과 함께 충분히 행복하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면 평소엔 가족보다 자신을 행복하게 해주는 친구를 훨씬 더 소중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특히 딱히 어떤 불행을 경험해보지 못한 어린 시절일수록 이런 성향이 훨씬 더 명백하게 나타난다.
 
그래서 학창시절의 친구들은 그리도 소중한 존재가 된다. 그리고 심하면 가족보다도 더 소중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실제로 어떤 위기를 겪다가 보면, 결국엔 친구는 한계가 있다는 점을 알게 된다. 그런 경험을 할 때, 얼마나 가족이 소중한 존재인지를 새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보통 이런 상황이 되면, 소위 말하는 철이 든다.
 
아마도 개인에게 닥친 최고의 불행은 죽음이며, 그 다음은 자신에게 너무도 소중한 사람들, 즉 가족이나 친한 친구의 죽음 등이 될 것이다. 이럴 때, 우리는 심하게 힘들어진다.
 
그리고 이런 불행에 처한 사람들에게, 주변 사람들은 자신의 할 수 있는 도움을 주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은 병문안에 오거나 기타 여러 가지를 편의를 알아봐 줌으로써 그 나름대로 도움을 주려고도 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재미난 상황이 벌어진다. 왜냐하면 평소에 친했다고 느꼈던 사람들 중 일부는, 사실상 외면을 하고, 반대로 그리 친하지 않았다고 느꼈던 사람들 중에서 의외의 도움의 손길이 오기도 한다.
 
이것은 불행에 처한 당사자를 좀 당황시킨다. 사실 우리가 그럴 만큼 큰 고통을 흔히 겪는 것이 아니라서 그것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그것을 경험한 사람들은 대부분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되어 있다.
 
즉, 많이 친하고 신뢰할만한 사람이라고 믿었던 사람들이, 불행에 처해서 도움을 요청했을 때, 성의 없는 모습을 보이고, 반대로 평소에 그냥 아는 사람 정도로만 알고 있었던 사람들에게 큰 기대 없이 그냥 상황이나 문제점을 했는데, 이외로 깊은 마음 씀씀이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래서 이것을 경험을 한 사람들은 사람들에 대한 신뢰 문제를 다시금 생각할 기회를 갖게 된다. 즉, 사람을 바라 볼 때, 과연 무엇을 기준으로 그 사람들을 판단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 새삼스러운 판단을 하게 된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 평소에 어떤 관점에서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 왔는지에 따라 이미 결정되어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끝없이 즐겁고 행복한 것을 추구한 사람들은 대부분 주변에 비슷한 성향을 가진 사람들만 남는다. 그런데 그들이 불행한 일을 당한 사람이 생기면, 당연히 일단 외면하려는 경향이 크다. 왜냐하면 행복하기 위해서 관계를 맺는데, 다른 사람의 불행함으로 인해서 자신의 행복함이 위협받기 때문이다.
 
반면에 평소에 무조건 행복함보다는, 자신이 불행에 처했을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을 주로 사귄 사람들은 불행에 처했을 때, 큰 도움을 받을 기회가 높다. 물론 그것 역시도 실제로 그 입장에 처했을 때, 정확히 판단 되겠지만, 아무튼 무조건 행복을 위해 관계를 맺어 온 사람에 비해서는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이렇게 되는 개인의 성향은 모두 선택 가능한 것이 아니다. 이것은 이미 결정된, 타고난 성격적 문제이다. 사람들은 크게 행복을 추구하지만, 그 행복의 조건을 자극, 모험, 즐거움, 흥겨움 등에 중심을 두는 사람이 있고, 반대로 고정, 안전함, 따뜻함, 보살핌 등에 중심을 두는 사람이 있다.
 
그래서 관계를 맺을 때도, 서로 다른 입장에서 행복을 추구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한쪽은 주로 행복을 추구하는 쪽으로 관계를 맺고, 다른 한쪽은 일반적인 수준의 행복을 추구하긴 하지만, 자신이 어떤 위기에 처했을 때, 배신하지 않고 도움을 줄 수 있을만한 사람을 주로 사귀게 된다.
 
이것은 관계의 깊이와도 관련이 있다. 그래서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경우엔, 얕고 넓은 관계를 유지하는 경향이 많이 나타나고, 불행에 대비하는 사람들의 경우엔, 깊고 좁게 나타나게 된다.
 
이것은 너무도 당연한 결과인데, 우리는 결코 얕은 관계에서 그 사람의 신뢰를 보장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좁고 깊은 관계가 좋은 것만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살 경우, 좁아진 인간관계로 인해서 행복하게 사는 것에는 그리 효율적이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보통 더 많은 사람들과 교류할 수록 더욱 더 행복해질 가능성이 높다. 물론 넓더라도 약간의 깊이 정도는 있어야 한다는 조건은 필요하다.
 
예전에 들었던 이야기 한 편이 있다. 그것은 바로 진정한 친구에 대한 것이었는데, 많은 친구를 사귀는 아들과 단 한 명의 친구가 있는 아버지가 돼지를 죽여서 가마니로 싸서 어깨에 맨 후, 친구들을 찾아가서 실수로 사람을 죽였다고 말하는 내용이었다. 그러자 친구가 많았던 아들은 그 친구들에게 모두 외면 당했지만, 단 한 명의 친구 밖에 없었던 아버지는 그 친구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이것은 얕은 관계보다 깊은 관계가 더 소중하다고 주장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이야기이다. 그리고 불행함, 즉 누군가를 죽여서 살인죄를 저지른 상황이 되었을 때, 누가 자신의 편을 들어줄 수 있는지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서 아들이 맺은 관계가 모두 그렇게 가치가 없을까? 사실 그건 알 수가 없다. 우리 모두는 실제로 정말로 위기에 닥쳐야 비로소 주변 사람들을 구분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실 진정한 친구라고 믿었는데, 결정적인 순간에 뒤통수 맞는 일도 비일비재하기 때문에, 이것을 단순하게 계산할 수는 없다. 또한 모든 사람들에게 그런 위기가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보통은 어느 정도까지만 힘들다.
 
몸이 장애가 되는 위기나, 집안이 한 순간에 망해서 살던 집에서 쫓겨나는 위기, 말기 암에 걸려서 죽을 위기, 젊어서 배우자를 잃는 위기, 가장 마음이 아픈 아이를 잃는 위기 등에 놓을 수 있는 경험은 그리 흔한 것은 아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사실 살아가면서 딱히 관계의 충실성에 대해 그다지 고려하지 않고 살아도 된다. 단지, 경험을 하는 사람에 한해서는 관계가 가진 근본적인 문제점을 느낄 수 밖에 없다.
 
또한 그것이 아니더라도, 인생의 과정에서는 끝없이 작은 위기들이 반복되기 때문에, 우리는 그런 일을 겪고 이겨내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주변 관계를 재정리하게 된다. 그래서 결국 오래된 관계일수록 좀 더 믿을만한 것임은 확실하다.
 
우리의 삶에 큰 위기가 없다면, 우리는 가능하면 더 많은 사람들을 사귀고, 더 즐겁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모두의 바램일 뿐, 정말로 그런 삶을 살 가능성이란 사실 전혀 알 길이 없다. 그래서 우리는 결국엔 어떤 식으로든 자신을 위한 보험을 들어 두어야 한다. 그것은 책임감과 그리 행복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결국엔 그런 관계가 우리를 끝까지 지켜 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보통 불행함과 관련된 많은 것들은 즐겁기보다는 안정적인 것에 훨씬 치우쳐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좋은 사람들은 보통 진지하기가 쉽고 따라서 재미가 없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 사람들은 착하고 한결같음을 유지하지만 그로 인해서 반복적이고 지루하다는 이유로 인해 다른 사람들에게 덜 매력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우리는 틈만 나면 행복하길 바라기 때문에, 자신의 조건이 조금만 안정적으로 변했다는 생각이 들면, 금새 뻔하고 예측 가능한 일을 반복하는 것을 지겨워하고, 무엇인가 자신을 흥분시키고 기대에 차게 만드는 것을 찾으려고 한다.
 
그래서 결국 지켜야 할 소중한 것들을 잊고 살아가게 된다.
 
사실 이런 예는 너무도 많아서 셀 수 조차 없다. 모든 관계의 가장 우선시 되어야 할, 가족에게 조차 소흘한 사람들을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또한 친구를 사귈때도, 얼마나 진실성있고 믿음직한지에 대한 것보다, 얼마나 재미있고 행복할 수 있느냐를 가지고 결정한다.
 
하지만 재미와 행복은 결국 그것을 위한 조건이 유지될때만 유효하다. 아무리 신나는 파티장이라도 단 한 명이 총을 들고 설치면 금새 지옥같은 장소가 되고 만다.
 
그렇지만 이것은 알아도 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행복을 추구하려는 성향은 도대체 제어될 수 없는 본능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결국 더 이상 행복을 추구할 수 없는 상태, 즉 큰 위기를 맞거나 공포에 마주할 때, 그 가치를 스스로 느낄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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