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중독에 대한 약간 다른 관점

아이루다 2015. 11. 13. 07:27

 
최근 우연히 쥐를 대상으로 한, 중독에 대한 좀 색다른 실험 결과를 본 일이 있다. 1970년대쯤 브루스 알렉산더라는 심리학자가 한 실험인데, 그는 철창에 홀로 갇혀 불행한 쥐와 다른 쥐와 함께 놀 수 있는 행복한 쥐 모두에게 마약이 섞인 물과 일반 물을 주고는 그것을 스스로 선택해서 마시게 했다.
 
그런데 혼자 있는 쥐는 끝까지 마약이 섞인 물을 선택했고, 심지어 마약이 섞인 물을 마실 때마다 강한 전기 충격을 주는 일종의 체벌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고통을 참으면서 마약 섞인 물을 선택했다.
 
여기까지는 참 당연한 이야기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중독에 대한 흔한 현상이니까 말이다.

 

그런데 다른 쥐와 함께 있던 행복한 쥐에게는 변화가 일어났다. 이미 마약이 섞인 물에 중독되어 있던 쥐는, 다른 쥐들과 함께 행복할 수 있는 공간에 들어가자 스스로 마약이 섞인 물을 거부하고는 일반 물을 마시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두 가지 상반된 결과는 기존에 우리가 알고 있던 중독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중독 상태에 놓이는 것은, 중독 대상이 주는 쾌락을 잊지 못해서 그러는 것보다는, 더 행복할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좀 더 일반화 시키면, 어떤 사회의 행복지수가 낮으면 낮을수록 그 어떤 것이든 중독자들이 점점 더 많아질 수 밖에 없다는 상황을 예상할 수 있게 해준다.
 
물론 이 이론은 일종의 비주류 의견이다. 즉, 학계에서 정설로 받아들여진 것은 아니란 뜻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단순한 실험 결과에 대해 생각은 해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중독은 남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는 사실 모두 중독자이다. 하지만 우리가 자신을 중독자라고 느끼지 않는 이유는, 그 일 말고도 다른 일들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우리는 중독 정도가 약한 중독자들이다.
 
요즘 많은 사람들은 스마트폰에 중독되어 있다. 스스로 인정을 하든 안 하든,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다. 사람들은 스마트폰을 너무 자주 써서 나타나는 여러 가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쉽게 그것을 포기하지 못한다. 그런데 이 상황을 쥐의 상황으로 대치하면, 전기 충격을 당하면서도 마약이 섞인 물을 선택하는 것과 거의 같다.
 
그럼에도 우리가 그 불쌍한 쥐처럼 비참한 결과를 맞지 않는 이유는, 우리는 아주 행복한 공간에 있지는 못해도, 가끔 스마트폰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다른 행복거리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까지는 말이다.
 
또한 우리는 소비에 중독되어 있다. 무엇인가가 필요해서 돈을 주고 사는 행위가 소비인데, 이제는 사는 것 자체를 행복으로 여긴다. 그래서 살 것만 생기길 바란다. 필요한 것이 생기길 바란다. 그리고 많은 정보들을 통해 싸고 질 좋은 제품을 샀다면, 무척 행복해 한다. 이때 그 제품이 정말로 필요한 것인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래서 집에 안 쓰는 물건들이 지속적으로 늘어나게 되면, 이런 사람을 쇼핑 중독이라고 한다. 하지만 단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많은 현대인들은 쇼핑 중독 상태에 놓여 있다.
 
우리는 먹을 것에도 중독되어 있다. 그리고 이 먹을 것은 앞의 두 개에 비해서 훨씬 당위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TV에서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그리고 자극한다.
 
우리는 먹어야 산다. 아니 이 자연계 전체가 그렇다. 이것은 본능이고 본질이다. 그래서 우리는 먹을 것에 중독된 것을 전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 더 이상 배고픔을 채우기 위해서 먹을 것을 찾지 않는다.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서 맛있는 먹을 것을 찾는다.
 
우리는 이제 저렴하게 맛있는 먹을 것에 목을 맨다. 돈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사실 스마트폰 중독이나 소비 중독이나 먹을 것 중독 모두 공통으로 존재하는 키워드는 바로 '저비용' 이다. 스마트폰은 그 가치 대비 가격이 무척 싸다. 소비는 싼 것을 샀다는 즐거움이 가득하다. 먹을 것도 싸고 맛난 것을 찾는 것에 목을 맨다. 심지어 비싼 식당에 가서도 쿠폰이나 카드사에서 제공하는 각종 혜택을 챙김으로써 만족감을 얻는다.
 
돈이 너무도 중요한 사회라서 모든 행복의 기준점에 돈이 자리잡고 있다. 행복하기 위해서 돈을 쓰는 것이 아니라, 돈을 조금 써서 행복한 사회로 바뀌고 있다.
 
물론 우리 사회가 한 세대 전엔 이것이 당연했다. 먹고 살기조차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미 풍족한 사회가 된 지금도 역시나 똑같이 그렇다. 단지 다른 모습으로 포장되어 있을 뿐이다.
 
우리는 이것들 이외에도 게임에, TV에, 자전거에, 달리기에, 헬스장에, 몸매 만들기에, 성형에, 각종 모임에, 술에, 담배에, 각종 커뮤니티 사이트에, 댓글에, 재미에, 포탈에, 정치에, SNS에 중독되어 있다.
 
사실 우리가 행복을 느끼는 것들 중에서 중독이 아닌 것은 없다. 우리가 행복하기 때문에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하려고 하는 것은 모두 중독이다. 사랑에 빠진 젊은이는 사랑에 중독되어 있는 것이고, 아이를 낳아 키우는 부모는 아이에 중독되어 있다.
 
중요한 것은 중독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중독 말고도 다른 일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여부이다. 우리는 사실 잠에도 중독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끝없이 자고 싶지만,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일어나게 된다. 사실 이럴 수만 있다면 그 어떤 종류의 중독도 상관없다.
 
하지만 쥐의 실험 결과를 가지고 모든 중독자가 다른 행복이 없어서 그렇다고 단정할 수 만은 없다. 사실 많은 중독자는 행복한 공간에 있어도 계속 자신을 중독시킨 온갖 것들에 집착을 보인다.
 
앞에 소개한 실험을 진행했던 박사는 그 실험 말고도 베트남 전에서 헤로인에 중독되었던 미군 병사들 중에서 90% 이상이 전쟁 후, 헤로인을 끊었다는 통계를 통해서도 자신이 주장하는 것을 뒷받침했다.
 
즉, 전쟁이라는 스트레스 속에서 마약에 손을 댔던 미군 병사들이 전쟁이 끝나고 평화로운 집으로 돌아오자, 대부분 마약을 끊었다는 것이다. 이 역시도 우리가 어떻게 중독이란 상황에 놓이고, 이로부터 빠져 나오거나 나올 수 없거나 하는 원리를 설명해주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에서 주의 깊게 봐야 할 것은 90%가 아닌, 10%의 사람들이다. 즉, 10%의 사람들은 계속 중독상태에 놓였던 것이다.
 
이것은 사람마다 고유 특징일 수 있다. 즉, 어떤 사람은 중독을 나름 쉽게 빠져나올 수 있는데, 어떤 사람은 결코 쉽게 빠져나올 수 없다. 그것은 중독 대상이 주는 쾌락에 대한 욕구 때문일 것으로 추측되는데, 도박을 싫어하는 사람은, 도박을 무척 좋아하는 사람과 시작부터 다를 수 있다.
 
우리는 모두 중독이 되어 있고, 단지 강도의 차이이며, 모든 종류의 중독의 공통된 문제점은 바로 '집착' 이다. 즉, 자신을 행복하게 해주는 대상에 대한 약간 심하거나 심각하게 심한 집착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약간 심한 사람과 심각하게 심한 사람의 차이는 사람의 고유 특징에 따라 차이가 난다. 즉, 그냥 타고난 것이란 뜻이다. 그래서 같이 도박을 해도 적당히 하고 마는 대다수의 사람들과 끝을 보고 마는 소수의 사람들로 나뉜다. 베트남 전에 참전한 사람들을 기준으로 보면 이 비율이 9:1 정도 되는 듯 하다.
 
아무튼 우리는 대부분 90%에 속하기 때문에 자신이 중독된 것에 의해서 현실 생활이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아니, 사실은 도움이 된다. 왜냐하면 그 중독으로 인해서 삶이 행복하고, 행복하기 때문에 일을 하거나 기타 힘든 삶을 살아도 버텨낼 수 있기 때문이다.
 
단지 문제는, 우리가 그런 것들에 중독이 되어 있지 않다고 생각하거나, 혹은 그런 것들은 그 정도의 집착을 할만큼 가치가 있다고 느낄 때, 폭주가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이다.
 
하루에 2시간 정도 스마트폰을 보는 사람은 그것이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어느 날 자신이 친구를 만나서 얘기를 하다가, 어느새 서로 자신의 스마트폰만을 바라보고 있는 상황을 인식할 수 있으면, 그것이 행복단계를 넘어서 집착 단계로 가고 있음을 스스로 알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그 모습은 너무도 익숙해져서 스스로 알 수 없다. 이것은 비단 스마트폰의 문제만이 아니다.
 
또 다른 형태의 중독은 가치에 대한 중독인데, 특히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에게 심하게 나타난다. 이것은 사랑에 빠진 남녀에게도 나타나는데, 다행스럽게 사랑은 강렬하지만 비교적 유효기간이 있다. 그리고 한쪽이 너무 심하게 집착하면, 자연스럽게 헤어짐으로써 해결이 된다.
 
하지만 자식에게 중독된 부모에겐 유효기간이 없다. 또한 관계 자체가 부모가 자녀를 쥐고 흔드는 구조이기 때문에 자녀에게는 선택의 폭이 없다. 그래서 집착이 심할 경우, 자녀의 최종 선택은 자살일 수 밖에 없다. 이것이 요즘 청소년들이 많이 자살을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학자들의 지식에 대한 집착도 같다. 삶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정보나 지식을 추구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것을 과도하게 추구하고 그것이 가진 의미에 과도한 가치를 부여하는 사람들은, 본격적으로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수준 낮게 보고 경멸을 하게 된다.
 
이것은 학자들만 그런 것이 아니다. 일반 사람들도 자신보다 조금이라도 무식하게 보이는 사람들이 있으면, 그 사람들을 한없이 내려다본다.
 
우리는 그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에게 중독되어 있다. 즉, 우리는 자신의 잘남, 자신의 성공, 자신의 존재감, 자신에 대한 타인의 관심 등에 엄청나게 중독되어 있다. 이것은 예외 없이 그렇다.
 
그리고 평생 이 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살아간다. 그리고 그 안에서 기쁨과 슬픔, 분노와 두려움을 가진 채 살아간다. 하지만 결국 또 죽고 만다.
 
하지만 이 중독은 마치 먹을 것처럼 우리의 본질적 욕구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것을 상대적으로 적극 권장한다. 즉, 꿈을 가지라고 하고, 야망을 가져야 한다고 한다. 성공해야 한다고 하고,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많은 것들을 참아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이것에 심하게 중독된 사람들은 다른 모든 중독 대상을 거부하고는 이기기 위해서, 성공하기 위해서 살아간다. 그리고 그런 이들의 삶은 성공한 후, 우리들에게 멋지게 포장되어서 알려진다.
 
하지만 이 중독에 대한 전체적인 이야기는 단 한 가지 사실만을 설명해주고 있을 뿐이다. 그것은 우리가 어느 방향으로 달리든 간에 결국엔 우물 안 개구리 같은 신세란 점이다. 즉, 우리는 어떤 중독을 피하기 위해서 다른 것을 선택하지만, 사실은 그 역시도 중독이며, 중독이 아닌 것은 세상에 없다는 점이다.
 
단지 우리는 좀 더 좋은 것에 중독될 필요는 있다. 그것은 사랑, 가족, 운동, 취미 같은 것이 될 것이다. 그것들은 술, 담배, 마약, 도박 등에 비해서 좋은 중독이다.
 
그래서 지금 좋은 것에 중독되어 있다면, 운이 좋은 것이다. 우리는 끝없이 행복하기 원하기 때문에, 그 행복이 어느 길로 갔느냐에 따라 차이가 나게 될 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좋은 것에 중독되어서 잘 살고 있다면, 나쁜 것에 중독되어 있는 사람들을 비웃거나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자신이 좋은 것에 중독되어 있음에 대해 감사해야 할 것이다. 그러면 자신의 중독을 통해서 좀 더 행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또한 그들이 왜 그런 나쁜 중독 상태에 놓일 수 밖에 없었는지에 대해서 조금 더 관심을 가지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 역시 똑같이 행복하고자 했을 뿐인데도, 스스로를 망치는 것에 중독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들이 정말로 원했던 것들은 아니었을 것이다.
 
누가 자신을 망치는 것에 중독되길 바랄 것인가.
 
중독은 생각보다 개인의 문제가 아닌, 그 사회 전체의 문제일 수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아마도 앞으로 우리 사회는 점점 더 중독 현상이 심화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전체적으로 점점 더 불행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들 스스로가 만들어 낸 거대한 문제들은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끝없이 커져만 가고 있다.

 

그리고 이 사회의 중독지수가 높아지고 있는 것은 사실 쉽게 판별이 된다. 요즘 우리들 각자의 삶을 되돌아 보면 된다. 요즘 시대엔 중독이 최고의 가치가 되어가고 있다. 아니, 중독된 모든 것을 가치화 시키고 있다. 그것이 무엇인든 상관이 없이 그렇다. 같은 중독이라도 가치화된 중독이기 바라는 마음에 이젠 모든 것을 가치화 시키고 있다.

 

이것이 큰 문제는 아니다. 단지 슬픈 것은, 우리가 그만큼 불행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럴수록 더욱 더 크게 웃으면서 행복한 척을 하고 있다. 우리는 자신의 행복을 점점 더 과대포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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