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마지노선

아이루다 2015. 9. 25. 08:38

 

마지노선은 사자성어처럼 느껴져서 마치 원래 우리나라에 있는 말 같다. 특히 뒤의 두 글자, 노선은 그야말로 우리말 같은 느낌이 든다. 우리가 흔히 쓰는 표현 중에서 어떤 어떤 노선이란 말을 많이 쓰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지노선은 사실 '마지노' 와 우리 말인 '선'을 합친 말이다. 원래 마지노는 프랑스와 독일 간의 국경에 쌓은 긴 요새라고 한다. 1930년대에 만들어진 이 국경선은, 꽤나 대규모 공사였고, 독일군이 프랑스로 넘어오지 못하도록 하는 용도였다고 한다. 중국의 만리장성과 비슷한 목적인 셈이다.

 

아무튼 그 후로 마지노선은 '넘어서는 안 되는 최후의 선' 이란 의미로 사용되기 시작했고, 영어로는 '마지노 라인(Miginot Line)' 이다.

 

그런데 나라와 나라 사이의 절대로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이 있듯이, 우리의 삶 속에서도 마지노선은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고 있다.

 

이것을 가장 쉽게 이해할 수 있으려면 폭력에 대한 마지노선을 생각해 보면 된다. 우리는 살다가 보면 사실 어쩔 수 없이 다양한 형태의 싸움을 하게 된다. 그것이 정신적이든 육체적이든 상황에 따라서 서로에게 크게 상처를 주게 된다. 그런데 여기에서 마지노선은 존재한다.

 

그것은 바로 그 폭력이 얼마나 강했느냐에 상관없이, 그 폭력을 당한 사람이 과연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면 원래 상태로 복구될 수 있느냐를 더욱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

 

즉, 서로 치고 받고 싸우더라도 눈을 완전히 멀게 만든다든가, 여자인 경우엔 얼굴에 큰 흉터를 만든다든가, 신체 일부분을 아예 쓰지 못하게 한다든가, 뇌를 다쳐서 평생 보통 사람의 삶을 살기가 힘들게 한다든가 하는 정도가 되면 이것은 마지노선을 넘은 것이 된다.

 

심한 경우, 그 폭력의 끝이 죽음으로 향하게 되면, 그것은 마지노선을 넘다 못해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경우가 될 것이다.

 

이것은 단지 육체적 폭력만이 그런 것이 아니다. 정신적 폭력도 마찬가지 인데, 문제는 정신적 영역에 대한 사람들의 마지노선은 매우 다양해서 육체적 영역처럼 명시적으로 그 한계를 정하기가 힘들다는 점이다.

 

사실 그래서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어떤 면에서 육체적 영역에서 마지노선은 잘 넘지 않는데, 정신적인 영역에서는 자신도 모르게 넘는 경우가 꽤나 된다. 문제는 그것을 스스로 인식하지 못한다는 점이며, 사실 조심한다고 해서 잘 지키기도 힘들기 때문에 그 경계를 넘지 않기가 매우 어렵다는 점이다.

 

우리가 보통 평균적인 상식을 가진 상태에서 이 마지노선을 넘는 사람을 보면 '진상' 이라고 정의한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진상으로 정의된 사람들에게 대해서 동조하는 모습을 보인다.

 

사실 많은 진상은 자신에게 주어진 배려나 타인이 베푼 작은 친절을 권리로 인식하면서 나타난다.

 

즉, 쉽게 말해서 음식점에서 서비스로 뭔가를 주면, 다음엔 그 서비스를 주지 않으면 화를 내는 것이다. 사실 이런 경험은 장사하는 사람이라면 거의 100% 경험을 하게 되는데, 생각보다 이 세상에 진상이 많기 때문이다.

 

결혼한 부부의 마지노선이라면 아마도 두 가지 정도 있을 것이다. 그것은 바로 상대 배우자를 배신하고 다른 사람과 바람을 피는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경제적으로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될 것이다. 그리고 이 두 경우가 이혼 사유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바람을 피우는 경우는 사실 어떤 이유를 가져다 대도 거의 핑계에 불과하지만, 어떤 경우엔 이해가 될 수 있는 경우도 있으니, 그것이 반드시 마지노선은 아닐 수 있다. 사실 이것은 어떤 면에서 사회적 통념에 의해서 만들어진 인위적 마지노선일 수 있다.

 

하지만 경제적 손실은, 그것도 도박이나 유흥, 중독 등에 의해서 가진 돈을 다 쓰고 빚까지 내서 쓰는 경우라면 그것은 사실상 한 가정이 유지되어야 할 가장 중요한 이유를 파괴한 것이 되어서 마지노선을 넘어 선 것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그리고 이 두 경우에 모두 상대 배우자가 그것을 참고 살아간다면, 그것도 문제이다. 즉, 어떤 나라가 다른 나라의 침공을 받은 것이 확실한대도 불구하고 전쟁이 두려워서 그냥 아무 말도 안하고 있는 셈이기 때문이다.

 

사실 그 때는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그것은 전쟁을 하든, 아니면 그 땅을 떼어서 넘겨주든 말이다. 하지만 과연 누가 땅을 떼어주겠는가? 그 땅을 떼어주고 나면, 다음에 또 다른 땅을 넘볼 것이 뻔한데 말이다.

 

가정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이해와 용서는 마지노선을 넘지 않았을 때 가능한 말이다. 일단 그것을 한 번이라도 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아무런 거리낌없이 넘는다.

 

즉, 바람 핀 사람을 용서하면, 그 후로는 대놓고 바람을 피게 되는 것이다.

 

물론 한 번 정도는 실수로 넘어가 줄 수 있다. 마지노선을 정했는데, 상대 편 병사가 술 먹고 취해서 걷다가 그 경계를 넘어 설 수는 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그것이 반복되면 그것은 의도적인 것이라고 봐야 한다. 즉, 그때는 경고 사격이라도 해서 다시는 그런 짓을 못하도록 해야 한다.

 

친구 사이의 마지노선도 존재한다. 사실 친구뿐만이 아니라 모든 관계에서 마지노선이 존재한다. 그리고 거꾸로 그 마지노선이 어떻게 정해졌느냐에 따라 관계의 종류가 결정된다고도 볼 수 있다.

 

그것은 우선순위와도 연결이 되는데, 보통 우리는 관계의 종류에 따라 우선순위의 한계점을 정한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마지노선이 된다.

 

아마도 친구와의 마지노선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바로 돈이 될 것이다. 사실 돈만 빼면, 친구는 가족과 크게 차이가 날 것이 없다. 물론 친구 간에도 돈을 쉽게 주고 받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런 사람들은 극소수이다. 그리고 보통은 친구간의 돈 거래는 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많은 사람들이 조언을 한다.

 

이 차이는 부모와 자식간과 그 자식들 사이의 관계에서도 나타난다. 같은 가정이라도 해도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와, 형제들 사이의 관계는 돈의 공유가 과연 어디까지 될 수 있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이 또한 매우 우애가 깊고 신뢰가 높은 형제들이라면 서로 돈을 주고 받겠지만, 사실 이런 경우도 드물다고 봐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흔히 자식들간의 유산 분쟁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는 것이다.

 

아무리 친한 친구도 그 친구가 번 돈은 그 친구 것이다. 아무리 형제라고 해도 그 형제가 번 돈은 그 형제의 것이다. 물론 그 이득의 일부를 받을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은 자신의 권리가 아닌 상대의 배려이다. 이때 만약 권리를 주장했다가는 바로 진상이 된다.

 

이런 마지노선은 단지 사람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식품을 만드는 회사도 마지노선이 있다. 그 회사에서 만들어 내는 제품들이 몸에 도움은 되지 않아도 몸에 해롭지는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아니, 해가 되더라도 그것이 몸에 영구적 손상을 입혀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기업의 양심이란 말로도 표현이 가능한데, 요즘 시대엔 그것 조차도 그리 쉽지 않아 보인다.


집을 지어 파는 건설사라면, 그 집에 사는 동안 가장 기본적인 문제들로 인해 삶이 힘들지 않도록 해야 한다.  층간소음 등이 그것에 해당 된다. 층간소음은 심할 경우, 살인을 부른다. 더욱 더 심한 경우 방사능이 나오는 아파트가 있을 정도이다. 그리고 그것은 아마도 시멘트 회사가 마지노선을 넘겨서 그럴지도 모른다.

 

자동차를 만드는 회사라면, 그 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의 안전을 최소한은 보장해야 한다는 마지노선이 있어야 한다. 즉, 차를 몰고 다니다가 핸들이 불량하거나, 브레이크가 잘 듣지 않거나, 엔진이 꺼지거나, 바퀴가 빠지거나 해서 운전자의 생명을 위협받게 한다면, 그것은 마지노선을 넘은 것이다.

 

이때 연비가 광고만큼 잘 나오지 않거나, 와이퍼가 작동하지 않거나, 실내등이 잘 켜지지 않는 문제들은 귀찮기는 하지만 괜찮다. 문제는 이 중요한 마지노선을 넘은 차들이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즉, 우리는 아무런 사고도 없는 상황에서 비싼 돈을 주고 산 차로 인해서 자신의 목숨을 위협당하는 상황에 놓여 있는 것이다.

 

각종 전자제품도 마찬가지다. 어떤 전자제품을 샀다면 적어도 10년 정도는 별 다른 문제 없이 동작되어야 한다. 우리는 낡고 성능이 떨어져서 그 제품을 바꿔야 하지, 중간에 고장 나서 그 제품을 바꿔서는 안 된다.

 

우리는 서로 이득을 얻기 위해서 각종 거래를 한다. 그러다 보니, 자잘한 사기를 친다. 사실 사기라고 하긴 그렇고 눈속임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행동에서 마지노선은 분명히 있어야 한다. 이것을 상도덕이라고 한다.

 

몇 년 전 어떤 회사가 자사의 제품을 대리점에 안하무인 격으로 떠 안기면서 비 인간적인 욕설까지 한 음성 파일이 떠돈 일이 있었다. 이것도 역시 마지노선을 넘어 선 것이다.

 

농부가 가진 마지노선을 생각해 보면, 이것이 쉽게 이해가 간다. 올해 아무리 배가 고파도 내년에 뿌릴 씨앗까지 먹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이것은 황금 알을 낳는 닭의 배를 가르는 행동이다.

 

사실 마지노선 이런 식으로 매우 다양한 분야에서 매우 다양하게 정해지지만, 처음 말했던 육체적 기준점하고 원리상 비슷한 경향이 있다. 그것은 바로 모든 분야의 마지노선은 복구 불가능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차의 안전성 문제로 인해서 사람이 죽었다면, 그것은 복구 불가능 하다. 어떤 식품의 원료에 문제가 생겨서 사람들이 상했다면 그것 역시도 복구 불가능 하다. 본사에서 자사를 쥐어 짜서 결국 그 자사들이 버텨내지 못하고 망하게 되면, 그 역시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프랜차이즈란 명목으로 사업을 하는 많은 본사들이 이런 짓을 한다. 문제는 어떤 존재가 어떤 분야에서 마지노선을 넘었을 때는 그에 해당되는 응징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거의 없다. 특히 기업이 저지른 문제에 대한 응징이 거의 없는 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이것은 바람을 핀 배우자를 그냥 두고 보는 것이고, 국경을 넘어선 다른 나라의 군대를 바라보는 것이다. 이것은 자신의 돈을 다 빼가서 엉뚱한 곳에 쓰는 배우자를 멍하게 바라보는 짓이며, 자신의 얼굴에 칼을 그어서 지워지지 않는 흉터를 만드는 사람을 말리지 않는 꼴이다.

 

사람을 고용할 때는 적어도 그 사람이 먹고 사는데 큰 지장이 없을 정도의 비용은 지불해야 한다. 이것을 법적으로 최저임금이라고 정해놨는데, 사실 우리나라의 최저임금은 그 수준 자체가 이미 마지노선을 넘어가 있으며, 그조차도 최저 임금으로 정했더니 그것을 평균 임금 개념으로 받아 들이고 있다.

 

하지만 최저임금을 받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소비자 구매력이 떨어진다. 그래서 결국엔 기업이 만든 물건을 살 사람이 줄어드는, 소위 말해서 내수부진이 일어난다. 즉, 이것은 농부가 매년 다음해 심을 씨앗을 당장 배고프다고 해서 먹어 치우는 경우가 된다. 그리고 이것이 쌓이고 쌓이면 결국 언젠가는 심을 씨앗 자체가 없어지는 경우가 될 수 밖에 없다.

 

정치인들의 마지노선은 개인적 비리와 권력 남용이 될 것이다. 뇌물을 받거나 자신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각종 이권에 개입하는 것이 바로 그런 행동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만큼은 이것조차도 마지노선이 되지 못하고 있다. 정치인은 무능력하거나, 간사하거나, 고지식할 수는 있다. 하지만 도덕적인 것은 정치인으로써 가장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할 소양이다. 비도덕적인 정치인은 말 그대로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꼴이다.

 

각종 범죄들 중에서도 마지노선이 존재한다. 물론 모든 범죄는 다 나쁜 것이긴 하지만, 그 중에서도 절대로 하면 안 되는 범죄가 있다. 그런데 그것이 살인은 아니다.

 

그런 범죄 중 가장 첫 번째는 바로 소아 성폭행이다.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이 범죄에 대해서 너무 가볍게 다루는 경향이 있다. 소아 성폭행은 그 어떤 이유를 대도 합리화 될 수 없다. 그 대상이 성인이라면 그나마 아주 약간의 이해를 해줄 수 있지만, 소아의 경우엔 불가능 하다.

 

그리고 두 번째는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서 저지른 범죄들에 대한 것들인데, 왕따와 같은 것이 이것에 포함이 된다. 이것은 인간의 본질적 잔인함으로부터 발생되는 것인데, 그렇기에 더욱 더 강력한 처벌을 해야 한다. 만약 이것을 방치했다가는 나중에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를 일이다.

 

이런 식으로 범죄의 마지노선은 바로 어떤 목적으로 했느냐에 따라 결정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성적 만족이나 타인을 괴롭히는 데서 오는 즐거움을 얻기 위한 것이라면, 정말로 강하게 처벌을 해야 한다. 그것은 유흥비를 벌기 위해서 사람을 죽이는 것과 종류만 다를 뿐, 본질적 차이가 전혀 없다.

 

종교 분야의 마지노선은 아마도 신앙과 돈 사이가 될 것이다. 물론 각종 종교단체들이 운영이 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한 것은 맞다. 하지만 사실 요즘 세상 속의 많은 종교 기관을 보면, 신앙을 위해서 돈이 필요한지, 아니면 돈을 벌기 위해서 신앙이 필요한지가 헷갈릴 수준이다.

 

많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뒷담화를 하는 것을 좋아한다. 사실 회사 상사를 씹는 일은 말단 직원들의 낙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역시도 마지노선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 마지노선을 인식하는 것은 몹시 힘들다.

 

그나마 이것에 대한 마지노선을 정해야 한다면, 인간적으로는 비웃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다. 즉, 어떤 사람의 뒷담화를 할 때는, 에피소드나, 무능력함이나, 어떤 행동의 어리석음 정도를 비웃는 수준으로 끝나야지 왜 사는지 모르겠다거나, 그 가족이 불쌍하다거나 하는 등의 표현은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 수준을 훨씬 넘기는 표현을 들어서 마땅한 진상들이 있으니, 이 역시 명확한 기준은 될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그 사람이 보통 사람 수준이라면, 뒷담화에 한계가 있어야 하는 것은 맞다.

 

자신에 대한 합리화나 자기용서 역시도 마지노선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자기 자신이기 때문에 그 마지노선을 한없이 밀 수 있다. 기준을 자신 스스로 정하는데, 그것을 하는 것이 무엇이 어렵겠는가?

 

사실 사람들이 나이를 먹으면서 하는 일이 바로 이것이다. 자신이 젊은 시절에 가졌던 도덕적 기준이나 양심과 같은 내부적으로 가진 마지노선이 자신의 행동이나 이득을 추구하는 방향과 상충될 때, 조금씩 그 기준점을 약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마지노선을 점점 더 멀리 이동시키는 행동이다.

 

물론 우리는 살기 위해서 비겁하게 행동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나이를 먹으면 젊은 시절의 호기조차도 없어져서 더욱 더 그래진다. 하지만 반대로 나이를 먹는 것은 살아온 날이 살아갈 날보다 많아졌다는 뜻도 된다. 즉, 걱정을 해야 할 날이 줄어 든 것이다.

 

이것은 슬픈 일이기도 하지만, 또한 스스로 편해질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많은 것이 고정되었지만, 그 고정된 현재 속에서 점점 줄어드는 미래를 좀 덜 걱정하고 살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것을 얻으면 '어르신' 이 되고, 얻지 못하면 '늙은이' 가 되면서 늙어간다.

 

여기에 언급된 것들 말고도 많은 분야에 마지노선이 존재할 것이다. 그리고 그 마지노선들은 모두 우리 인간이 세상을 사는데 있어서 가장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것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야 우리가 새로 지은 집에서 방사능이 나오는 않는 것을 믿을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각 구성원들은 이 마지노선을 지키고 높이기 위해서 노력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것이 어떤 면에서 한 사회에 구성원으로써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의무에 대한 마지노선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