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안전함에 대한 이야기

아이루다 2015. 9. 17. 06:42

 
갓 대학을 졸업한 한 남자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내려 놓고 무작정 여행을 떠난다. 그 여행은 목적도 없고, 가는 곳도 정해지지 않았으며, 누구를 만날지, 무엇을 할지, 어떻게 먹고 살지조차도 정해지지 않는 여행이었다.
 
그러다가 그는 알라스카로 가기로 했으며, 거기에서 자신이 원했던 것을 찾고, 지난 2년간의 여행을 마무리 한다.
 
이 내용은 실화로써, '인 투 더 와일드' 라는 영화로 제작되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최근에 이 영화를 볼 기회가 있었다.
 
딱히 이 영화의 성격을 규정해야 한다면 아마도 자신을 찾는 여행, 삶의 진정한 의미를 찾는 여행 등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류의 영화들을 보다가 보면, 가끔 우리들 자신도 그런 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도 없는 곳으로, 이 세상이 아닌 듯 느껴지는 곳으로, 문명을 떠나 그야말로 대자연 속으로 말이다. 그렇지만 그런 생각은 이내 접어들고 만다.
 
마음과 달리 결국 포기를 하게 되는 배경엔 많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중에서 가장 우리를 망설이게 하는 것은 바로 '두려움' 인 것은 흥미로운 요소이다. 즉, 우리는 말 그래도 안전이 보장되지 못하기에 떠나지 못한다. 혹은 다른 말로 불편하고 고생할까 봐 걱정스러워서 떠나지 못한다. 이 역시 두려움의 일종이다.
 
영화 속처럼 무작정 아무도 없는 곳을 향해서 떠나는 여행이 아니라, 비교적 안전하다고 알려진 6개월간 유럽 여행을 떠나기 위해서 중요하게 필요한 조건들을 생각해보자. 그것들은 여행의 욕구, 시간, 돈, 건강 등이 될 것이다. 특히나 이 중에서 욕구와 시간과 돈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요소이다.
 
그렇지만 그 조건이 다 갖춰진다고 해도 혼자서 선뜻 그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사람은 생각보다 드물다. 특히 여자는 더욱 더 그렇다. 그런데 그 여행지가 유럽 같은 그나마 안전하다고 알려진 곳인 아닌, 아프리카나 혹은 아마존 밀림과 같은 곳이라면 더욱 더 줄어들게 된다.
 
사실 여행에 있어서 안전함은 꽤나 중요한 요소이다. 시간과 돈과 가고 싶다는 욕구가 있어도, 안전함이 보장되지 못하면 선뜻 나서기가 힘들 정도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 안전함에 대한 부분을 명시적으로 원하지 않는다. 사실 그것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안전함은 준비할 수도 없고, 따로 대책에 있을 수도 없는 점이 크다. 어떤 면에서 보면, 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욕구만이 유일하게 안전함에 대한 걱정을 넘을 수 있게 해준다. 즉, 우리는 하고 싶다는 강한 욕구로 인해 불안함을 뛰어 넘을 수가 있다. 아니, 잊을 수 있다.
 
우리는 사실 일상을 살아갈 때도 안전에 대해서 거의 신경 쓰지 않는다. 물론 차를 운전하거나 조금 위험할 수 있는 스포츠를 즐길 땐, 안전장비를 갖추고 대비를 하긴 하지만, 사실상 현실 속에서 살아갈 때 안전함은 꽤나 후 순위로 밀린다.
 
왜냐하면 안전함만 생각하면, 하루 종일 집에서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집을 떠나 밖으로 나갈 때, 조금이라도 더 위험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집에서만 살아서는 행복하기가 힘들다. 돈도 벌기 힘들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기도 힘들다. 우리는 결국 행복하기 위해서 밖으로 나간다. 이것 역시도 일종의 욕구이다. 욕구가 있기 때문에 밖으로 나가는 불안함을 잊는다.
 
그래서 어딘가 등산을 할 때, 등산을 하지 못하는 이유가 안전함일 가능성은 낮다. 보통은 시간, 게으름, 돈, 같이 갈 친구, 의지 등이 주로 결정 요소가 될 뿐, 안전함은 거의 고려되지 않는다. 물론 히말라야 산맥에 있는 산들을 갈 때라면 다를 것이다.
 
하지만 결코 안전함은 중요한 요소가 아닌 것이 아니다. 사실 산행을 할 때 안전함이 고려되어야 할 목록에서 뒤로 밀리는 이유는, 안전함이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안전함이 기본적으로 어느 정도는 보장되기 때문일 뿐이다.
 
사실 그래서 이것은 공기와 같다. 우리는 공기가 없으면 5분도 채 안 되서 죽는다. 우리 인간이 가장 빨리 죽는 외부 조건이다. 그 중요하다는 물이나 먹을 것도 10일 이상 버텨낸다. 하지만 공기는 5분도 못 버틴다. 그렇지만 우리 생활에서 공기를 고려하는 경우가 얼마나 될까?
 
위험한 오지 여행을 떠나야 할 때 조차도 물과 식량 그리고 라이터 와 같은 생존 장비들을 챙기지만 그때 누구도 공기를 챙기지는 않는다. 하지만 우주 여행을 하게 될 때라면 다르다. 우주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장비는 바로 산소 발생기가 될 것이다.
 
하지만 우주나 물 속의 여행이 아니라면 공기를 고려할 필요가 없다. 고려하지 않아도 충분히 공급되며, 또한 문명에서 멀어지면 질수록 공기의 질은 더욱 더 좋아질 뿐이다. 그러니까 삶에서 공기의 중요도는 늘 후 순위로 밀릴 수 밖에 없다.
 
문제는 그러다 보니, 우리는 공기가 필요하다는 사실마저도 망각한다. 비슷한 원리로 평소 살아갈 때도 안전함이 정말로 중요한 요소라는 것을 망각한다.
 
그래서 마치 우리는 안전함이 문제가 되어서 무엇인가를 하지 못하는 경우가 없다고 느낀다. 이것은 우리가 공기가 우리들에게 있어서 필수요소라는 것을 잊어 먹는 것과 비슷하다.
 
어딘가 여행을 떠나고 싶을 때, 가지 못하는 이유가 같이 갈 사람이 없어서라고 느끼지, 혼자 가면 안전함에 문제가 생겨서 가지 못한다고는 잘 생각되지 않는 것이다. 물론 여행의 동행자는 안전함만을 보장하는 역할은 아니다.
 
같이 떠날 수 있는 사람은 여행의 동반자로써 같은 것을 보고, 느끼고, 대화할 수 있는 존재이다. 그리고 그것들은 행복이다. 즉, 우리는 시선을 행복에 두기 때문에, 안전함이라는 불행함에 관련된 내용을 잊는다. 그래서 원래 안전함을 아예 고려하지 않는 듯 믿는다. 또한 더해서 안전할 것이라고 믿기도 한다.
 
하지만 혼자서 여행을 떠날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의 머리 속을 가장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어떤 경로로 어떻게 이동하게 될지에 대한 것보다도, 과연 낯선 곳을 여행할 때 어떻게 안전함을 보장받을 수 있을지에 대한 두려움이다.
 
하지만 그것은 걱정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기에 결국 그 걱정은 최대한 깊이 숨겨 둔다. 그리고 마치 그런 걱정이 없는 듯 행동한다. 여행을 앞두고 흥분되고, 기대 된다고 생각한다.
 
사실 흥분이나 기대는 우리가 두려움을 떨치고 앞으로 나갈 수 있게 만드는 힘이 되어 준다. 즉, 우리는 무엇을 할 때, 큰 기대를 가지면 가질수록, 더 크게 흥분될수록 과감하게 추진할 수 있다. 이것은 인간이 가진 어떤 무모함인데, 이 특징으로 인해 우리 인간이 이렇게 발전해온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즉, 우리는 무엇인가에 대한 기대와 흥분으로 우리가 가진 원초적 두려움을 떨치고 먼 거리를 이동하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면서 현재 문명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그것의 흔한 예로, 비행기를 만든 라이트 형제 이야기를 들 수 있다. 인간이 나는 것은 대단한 흥분과 기대를 갖게 만드는 일이었다. 하지만 비행 중 실패는 죽음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일이었다. 이 두가 지 충돌 상황에서 라이트 형제는 결국 두려움을 이겨내고 비행기를 발명하는데 성공한다.
 
그렇지만 이것은 정확히 말하면 두려움을 극복한 것이 아니다. 두려움을 뒷전으로 미뤄둘 만큼 하고 싶은 일에 대한 욕구가 강했던 것뿐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마치 두려움을 극복했다고 믿는다.
 
물론 우리는 처음 하는 일에 불필요한 두려움을 갖는 경향이 있다. 경험하지 못한 일에 대한 두려움은 늘 존재하니까 말이다. 그리고 막상 그 일을 하면, 생각보다 두려운 일이 아니란 것을 알게 되고, 조금 더 편해진다.
 
그러다 보니, 마치 두려움을 극복한 것처럼 느낀다. 하지만 이 경우 역시도 두려움을 불필요하게 느끼다가, 그것이 없어진 것뿐이다. 즉, 과도한 걱정을 하다가 그것이 사실상 기우였음을 알게 된 것이다.
 
냉정히 말하면, 우리 인간은 그 어떤 경우에도 두려움을 떨칠 수 없다. 사실 미친 짓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고층 빌딩에서 안전장비도 없이 위험한 행동을 즐기는 사람들을 보면, 마치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들은 남들보다 높은 곳에 대한 두려움이 덜한 사람들일 뿐이다.
 
고소공포증을 가진 사람은 아무리 많은 돈을 줘도 그 짓을 못한다. 그것은 그냥 그 사람들의 타고난 특징이다.
 
사실 인간들에게 있어서 두려움 자체는 공통적이지만 어떤 대상에 두려움을 느끼는지는 모두 제각각 이다. 그것은 타고난 유전적 특징에도 관련되고, 태어나고 자라면서 경험한 것에도 좌우된다.
 
그래서 누군가는 물을 두려워하고, 누군가는 불을 두려워한다. 또 다른 누군가는 쥐를 무서워한다. 아주 특이한 사람은 달을 무서워하기도 한다. 이런 식으로 두려움의 대상은 무척 다양하다.
 
낯선 곳에서 거의 아무런 두려움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친밀한 사람들과 있음에도 혹시 자신이 그 자리에서 떨려나가지 않을까 두려워하는 사람들도 있다. 가족이 자신을 버리지 않을까 두려워하는 사람도 있고, 잘 다니던 직장에서 잘리지 않을까 두려워 하는 사람들도 있다.
 
인간이 두려움을 느끼는 이유는 단 하나뿐이다. 살고 싶어서 이다. 죽고 싶지 않아서 두려움을 느낀다. 그러니 어떻게 우리가 두려움을 극복하겠는가? 우리는 단지 경험으로 두려움을 대상이 실체를 알았을 때, 조금 덜 두려워질 뿐이다.
 
낯선 환경으로 여행을 떠나기 전, 많은 걱정을 하다가 실제로 가보니, 거기도 그냥 사람이 사는 곳이란 것을 알게 되면서 그런 변화가 생긴다. 그것은 단지 부족했던 정보가 경험을 통해 채워지면서 나타나는 변화일 뿐이다.
 
결코 두려움 자체는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가 정말로 두려움을 벗어났다고 말하려면, 죽음의 공포를 뛰어 넘어야 한다.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 하다.
 
사실 문명을 이룬 인간들은 어려서부터 너무 오랫동안 안전함에 길들여졌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 안전함에 대한 무의식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다. 강도를 만나면 경찰이 도와줄 것이고, 불이 나면 소방차가 와서 불을 꺼 줄 것이라고 믿는다. 이것이 문명이 가진 힘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잘 만들어진 시스템이다. 우리가 두려움을 떨친 것이 아니라, 두려움을 느낄 만한 것에 대한 대비를 해놓은 것이다. 이것은 보험이다. 자동차 보험을 들었다고 해서 차 사고가 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단지 사고가 났을 때, 여러 가지도 도움이 된다.
 
그러다 보니, 차 사고에 연관된 몇 가지 두려움이 줄어든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차 사고가 나서 우리 몸의 일부가 망가지거나 혹은 죽음까지 당할 수 있다는 점은 결코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아마도 우리들 대부분은 평생 동안 문명 안에서 살아갈 것이니, 사회가 주는 안전함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유지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좀 더 안전함에 대해 덜 걱정하고 살 수 있다. 이것이 우리가 세금을 내는 이유이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아주 약하고 겁이 많은 존재라는 점을 스스로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약한 존재들이다. 그래서 마치 죽음을 무시하는 듯한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 강한 육체나 평소에 죽음 따위는 자신과 먼 일처럼 여기도 사는 그런 행동들 말이다.
 
암이 걸리거나 몸이 불구가 되는 일은 나 자신과는 아주 먼 그런 생각들 말이다. 하지만 병에 걸리거나 사고를 당한 사람들 말을 들어보면, 모두 그런 얘기를 한다. 그 일이 자신에게 일어날 줄은 몰랐다고 말이다. 그런 것들이 모두 남 일인 줄 알았다고 한다.
 
우리는 어떤 면에서 심한 착각에 빠지고 말았다. 그리고 자신이 속한 사회가 가진 안전함을 마치 스스로 그것을 이뤄낸 듯 행동한다. 이 착각은 결국 자신을 과도하게 평가하는 용도로 사용되고 만다. 즉, 우리는 스스로를 매우 용감하고 실제보다 훨씬 더 위대한 존재로 평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