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관계

아이루다 2015. 8. 29. 16:55

 
수박이나 호박과 같은 덩굴 식물을 키워 본 사람이라면, 그 식물들이 얼마나 잘 자라는지를 경험할 수 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대부분의 덩굴식물들은 위로 자라지 않고 옆으로 자란다. 즉, 하늘을 향해 자라는 것이 아니라, 줄기를 끝없이 옆으로 뻗으며, 자신이 자랄 수 있는 방향을 향해 매일 자라난다. 그래서 길이로만 따지면, 사실 웬만한 나무보다도 더 길게 자란다.
 
그리고 수박과 호박과 같은 아주 큰 열매를 맺는다.
 
그런데 이들은 단점이 하나가 있다. 그것은 바로, 버텨줄 줄기가 없기 때문에, 바람이 불거나 비가 심하게 오면 잘못하면 덩굴이 통째로 날라가 버릴 수 있다. 그래서 그들은 그 단점을 보완해 줄 아주 멋진 장치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바로 돼지꼬리처럼 돌돌 말린, 주변 다른 식물들을 붙잡을 수 있는 보조 줄기이다.

 

 
이 보조 줄기는 마치 스프링처럼 생겼는데, 주변에 있는 다른 식물들, 즉 잡초나 나무나 상관없이 다 잡아서 자신을 최대한 고정시킨다. 그리고 그 덕분에 덩굴식물들은 강한 뿌리와 줄기 없이도 비바람을 버텨낼 수 있다. 물론 붙잡힘을 당한 식물에게는 결코 달갑지 않는 짓이지만 말이다.
 
덩굴식물뿐만 아니라, 인간에게도 무엇인가를 붙잡는 것은, 안전함을 보장해주는 매우 중요한 행동이다. 그리고 우리 인간은 안전함을 보장 받기 위해서 여러 가지를 붙잡는다. 그것은 버스를 탈 때 손잡이를 잡는 명시적인 행동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삶 자체를 유지하기 위해서 반드시 붙잡아야 할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이 바로 '관계' 이다.
 
사람과 사람이 관계를 맺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서 가장 기본적인 것은 바로 '안전함' 의 보장이다. 우리가 가정을 꾸리고, 그 가정 안에서 맺어진 관계를 최고의 중요한 관계로 여기는 이유가 바로, 그 어떤 관계도 가족만큼 안전함을 보장해주는 관계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사실 그래서 어떤 심각한 위기를 겪은 사람들은 모두 한결같이 그런 말을 한다. 어려운 일을 겪어보니, 가족만한 것이 없다고 말이다.
 
물론 우리 인간은 즐거움과 행복 그리고 어떤 이득을 위해서 다양한 관계를 맺는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안전함 보장에 대한 가치를 앞설 수는 없다. 은행에 아무리 돈이 많아도 죽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아니 당장 죽지 않더라도 큰 병에 걸려 결국 서서히 죽어가게 된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그래서 관계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개인의 안전함 보장이다. 그리고 그 후에 이득을 얻는 것과 최종적으로는 즐거움을 얻어서 행복해지는 순으로 이어진다. 뭐, 이것은 너무도 당연한 상황이다. 일단 살아 있어야(안전함), 잘 살려고 노력하고(이득), 웬만큼 살아야 즐거움(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결국 인간의 삶은 관계에서 시작되어 관계로 끝난다. 각자 개인의 생존과 행복까지를 모두 관여하기 때문이다. 이 부분을 좀 더 이해하기 쉽게 상상의 날개를 펴서 생각해보자.
 
무한의 공간이 존재하고, 우리는 어디 선가부터 연결되어 끝없이 펼쳐진 공간 속에 자신이 몸을 떨어지지 않게 지탱해주는 줄을 하나씩 가지고 있다고 상상해보자. 그리고 이 줄은 매일 매일 길어지는데, 그 재질, 굵기, 늘어나는 길이의 속도는 모두 각자마다 다르다.
 
이 줄이 끊어지면 우리는 무한대의 공간으로 추락해서 결국 죽고 만다. 그래서 줄은 얇은 것보다 굵은 것이 좋다. 또한 더 좋은 재질로 만들어 진 것이 좋다. 우리는 마치 거미처럼 그렇게 자신만의 줄을 만들어 가면서 살아간다. 이 줄은 사람이 태어남과 동시에 생겨져 있고, 모두 일정 간격을 두고 벌어져 있다.
 
그리고 이 줄은 원래 중력의 영향을 받아 밑으로 길고 곧게 뻗을 수 있지만, 사실 우리는 끝없이 이 줄을 다른 이의 줄과 얽히게 만든다. 그래서 이것이 강하게 얽힌 줄일수록 서로 줄이 끊어질 상황에 놓였을 때, 끊어지려는 쪽을 다른 한쪽이 잡아 줄 수 있다. 이것은 수박이나 호박 줄기들의 전략과 동일하다.
 
그래서 인생의 위기를 만났다고 해도 운 좋게 굵고 강한 줄에 자신의 줄을 묶어 놓을 수 있었다면, 쉽게 그 위기를 헤쳐 나갈 수도 있다. 하지만 반대로 튼튼할 것이라고 믿었던 줄이, 사실상 이미 썩어서 언제든 끊어질 수 있는 줄이어서 같이 추락하게 될 수도 있다.
 
또한 우리는 지속적으로 서로 만나면서 이 줄을 엮지만, 엮은 줄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헐거워지고, 또한 내가 안 보는 사이, 상대는 몰래 몰래 그 엮은 부분을 헐겁게 만들고 있다. 물론 그 짓을 나도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얽어 놨다고 믿었던 사람의 줄이 정작 필요할 때가 되면 이미 헐거워지다 못해 분리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배신감을 느끼기도 한다.
 
이미 깊게 얽힌 사이도 매일 만날 때마다 다시 계산이 되어서 더욱 굳어지거나 헐거워지길 반복한다.
 
이 줄의 굵기와 길이는 개인마다 차이가 큰데, 관계를 많이 맺은 사람일수록 수직 이동보다 수평 이동이 많아서, 같은 높이를 움직였다고 해도 훨씬 더 긴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그 줄은 어쩔 수 없이 다른 이들보다 좀 더 얇아져야 하며 더해서 줄이 가는 만들어지는 방향은 주변의 영향으로 인해 끝없이 흔들리게 된다.
 
즉, 많은 사람들과 많은 관계를 맺으려고 노력할수록, 줄은 아주 복잡한 진로를 갖게 된다. 반대로 다른 사람과 관계를 덜 맺게 되면, 줄의 방향을 자신이 결정하는 경우가 더욱 더 많고, 줄이 짧은 대신 굵게 되는 경우도 많다. 대신 이런 경우, 어느 날 줄이 갑자기 잘리게 되면, 그것을 같이 버텨줄 사람이 없다. 즉, 위기를 극복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
 
이것은 서로 장단점을 가지고 있다. 다른 사람의 줄과 많이 얽히면 얽힐수록 삶은 좀 더 안정적이지만, 문제는 그 얽힘에 의해 다른 사람들의 줄에 일어난 사건들이 지속적으로 그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게 된다. 또한 그 줄의 매듭을 관리해야 하기 때문에, 끝없이 좌우로 움직여야 한다. 결국 그래서 가늘지만 긴 삶을 살 수 있다.
 
줄이 덜 얽힌 사람은 기본적으로 그 자신에게 일어난 문제만을 해결하면 된다. 하지만 이 문제가 혼자 감당하기에 너무 큰 경우, 극복 자체를 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결국 그래서 굵지만 짧은 삶을 살 수 있다.
 
가족은 가장 근처에서 머무는 사람들의 줄이다. 이 줄은 시작됨과 동시에 이미 얽혀있고, 그것을 풀다가 걸리면, 사회적으로 많은 욕을 먹게 된다. 그래서 가족은 어쩔 수 없이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고, 받는 관계가 된다.
 
대신 어떤 면에서 다른 모든 사람들의 줄과 분리가 되었더라도 끝까지 얽혀서 자신의 추락을 함께 감당해 줄 사람들이기도 하다. 물론 그 자신도 다른 가족들의 추락을 함께 견뎌내야 할 의무를 가지고 있다.
 
어떤 사람은 아예 고아라서 그렇게 기본적으로 얽힌 줄조차 없이 살아가야 할 처지에 놓인다. 그래서 이들의 삶은 매우 힘들다. 그것은 오직 자신의 줄만 믿고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마치 고아처럼 스스로 가족과의 줄조차 풀어 버리고 살아간다. 그것은 귀찮음이나 혹은 그런 관계조차도 이어가기 힘든 누군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부모 같지 않은 부모나, 늘 문제만 만들어내는 형제,자매가 있어서 그럴 수도 있다. 물론 그 자신의 문제로 인해서 그런 경우도 많다.

 
그리고 설령 이렇게 살지 않아도, 자식에게 강제로 풀림을 당하고 노년을 홀로 보내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을 독거노인이라고 부른다. 이들의 줄은 이미 오래되고 낡아서 언제 끊길지 모르지만, 그것을 같이 감당해줄 가족과는 이미 어떤 얽힘도 없다. 그래서 이들은 서로를 위로하면서 살지만, 서로가 모두 언제 끊길지 모르기 때문에, 다른 이들의 줄을 감당해줄 수가 없다. 그래서 위로는 하되, 얽히지는 않게 된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들과 많이 얽힌 삶을 선호한다. 그래야 자신의 추락을 최대한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희생해야 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도대체 자신의 줄이 어떤 궤적을 그리고 있는지를 알 방법이 없다. 줄의 방향은 계획될 수 없다. 이것은 주변의 영향에 따라서 끝없이 진로를 바꿀 수 밖에 없다.
 
또한 이렇게 복잡하게 얽힌 줄은 자신의 줄을 다른 이들의 줄과 구분하지 못하게 만들어서, 결국 자신이 어떤 삶을 사는지 조차 알지 못하게 만들어 버리고 만다. 즉, 너무 복잡하게 얽힌 줄에서 자신의 줄은 존재감이 사라진다. 그래서 스스로도 자신이 만들고 있는 줄이 무엇이었는지를 잊어 버리고 만다.


그래서 결국 안전함은 얻었지만, 자신만의 고유한 줄은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줄을 자신의 줄으로 여기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 역시도 자신의 줄을 잃고 남의 줄을 자신들의 줄으로 여기기도 한다.
 
이것이 싫은 사람들은 줄의 얽힘을 회피하려고 애쓴다. 자신이 줄이 다른 이들과 얽혀서 구분되지 못하는 상황을 경계하여, 다른 사람과의 관계는 매우 조심스럽게 맺고 최소화로 유지한다.
 
물론 이들도 줄이 끊어지거나 약해질 수 있음을 알기 때문에, 최소한의 관계는 유지하나 자신의 줄을 결코 잃어버리지 않는다. 하지만 그러다 보니, 상대적으로 안전함은 훨씬 약하다. 대신 몇 사람과 얽더라도 매우 강하게 얽는 경향이 나타난다.
 
또한 어떤 사람들은 아예 그 어떤 얽힘도 사양한다. 아니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이들에게 있어서 줄이 끊어지는 현상은 그냥, 자연스러운 일이다. 낡고 오래된 줄은 당연히 끊어져야 한다. 그래서 이들은 그것을 그냥 받아들인다. 물론 이럴 수 있는 사람은 극히 적다.
 
사람은 시기에 따라서 자신만의 궤도를 가진 채 굵고 짧은 줄을 만들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과 심하게 얽혀서 얇고 긴 줄을 만들기도 한다. 특히 우리 인간이 가장 얇고 긴 줄을 만드는 시기는 바로 청소년기인데, 이때는 관계가 세상의 모든 것인 것처럼 살게 된다.
 
그러다가 많은 경험을 쌓게 되면,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과 얽힌 줄은 자신도 모르게 언제든 풀려져 있음을 알게 된다. 또한 그들은 그들이 감당하기 힘든 무게를 느끼면, 그 줄을 잘라버린다. 그래서 그런 경험이 반복되면 좀 더 가족 중심으로 줄을 단단히 묶는다.
 
그리고 가끔 결혼식, 돌잔치, 회갑연, 장례식 등의 애경사가 있을 때면, 자신의 줄을 힘껏 흔들어서 그 진동이 다른 이들에게 전달되도록 한다. 그리고 그 신호를 받은 사람들은 이미 예정된 대로 와서 애경사를 기뻐하거나 슬퍼해준다. 이때 온 사람들과 얽힌 줄은 좀 더 죄고, 오지 않은 사람과의 줄은 좀 더 헐겁게 만든다.
 
또한 이때 온 사람들의 숫자는 그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줄을 얽어놨는지를 객관적으로 판명 받는 자리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엔, 직장 동료라는, 사실상은 거의 얽히지 않는 사람들이 대거 오기 때문에 그 평가가 확실하지는 않다. 단지,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많이 얽힌 사람처럼 보이긴 한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기회가 된다면 더욱 더 많은 사람들과 줄을 얽는 것을 줄호하기 때문에, 사람이 많이 오는 것을 스스로도, 남들에게도 자랑스럽게 여기게 된다.
 
문제는 이 줄의 재질인데, 이것은 외관으로는 도대체 어떤 상태인지 알 방법이 없다. 또한 얼마나 강하게 얽어져 있는지 그리고 어떤 이유로 인해서 얽혀져 있는지를 알 방법이 없기 때문에, 숫자만 가지고 판단하는 것은 얽힌 줄의 견고함을 판별하기가 무척 힘들지만, 사실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에 그렇게 된다.
 
그리고 모두가 숫자에 연연해 하기 때문에, 사람이 많이 온 사람들은 문득 자신의 삶을 잘 살았다는 생각이 든다. 반대로 숫자가 적은 사람은 부끄럽게 여겨서, 돈을 주고 잠시나마 줄을 얽기도 한다.
 
하지만 줄의 목적은 자신의 삶이며, 줄의 얽힘의 목적은 자신의 안전함 보장이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부부는 그 모든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얽힘 대상이다. 하지만 반대로 갈라서게 되면, 다시는 얽히지 않길 바라는 대상이 되기도 한다. 부부는 극단적이지만, 얽힘을 잘 관리만 하면 그 어떤 관계보다 견고하게 서로를 버텨내 준다.
 
그 다음은 부모와 자식의 관계이다. 그리고 어느 정도의 친구만 있으면 기본적으로 얼마만큼의 안전함을 보장 받을 수 있다. 그리고 이득을 주고 받고 즐거움을 추구할 수도 있다.
 
돈은 줄을 좀 더 강하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한다. 또한 다른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줄을 얽게 만드는 역할도 한다. 기타 여러 가지 이유가 돈과 같은 역할을 한다. 그것은 친절, 도움, 매력, 우연히 비슷한 위치 등이다.
 
이 줄을 어떻게 만들어가고 관리할지는 모두 개인의 영역이다. 그런데 이 줄을 과도하게 자랑스럽게 생각하면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다. 그것은 집착을 낳게 되고, 다른 이들의 줄을 심하게 조정하려는 행동으로 나타난다.
 
사실 그것만 조심하면, 줄은 최대한 다른 이들과 많이 얽어 두는 것이 좋다. 물론 그러다가 자신이 줄이 어떤 것인지 잊어먹는 문제도 생기겠지만, 그것은 어쩔 수 없다. 그것은 안전함, 이득, 즐거움을 얻는 것과 바꾼 것이 되니까 그리 손해 보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런데 또 하나의 숨겨진 문제점이 있다. 그것은 많이 얽히면 얽힐수록 줄 상에서 일어나는 진동이 끝없이 전달되어 진다는 점이다. 즉, 가만히 있고 싶어도 지속적으로 흔들리게 되는 것이다. 이 역시도 안전함을 위해 선택한 것이니, 감수해야 하는 것인 것은 맞다. 단지, 그런 삶을 너무 오랫동안 지속하게 되면, 흔들리는 삶을 정답으로 여기고 살기가 쉽다.


사실, 그런 사람이 꽤나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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