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다른 길, 틀린 길

아이루다 2015. 8. 24. 14:23

 
20대 후반쯤 되는 젊은이들이 명절 때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 중 하나는 바로, 결혼과 취직에 대한 질문일 것이다. 물론 삶의 궤적이 다른 이들보다 조금 더 잘 풀리는 사람일 경우라면, 이런 질문에 떳떳하게 답을 하겠지만, 보통 요즘 사람들 중에서 이 질문 앞에서 당당한 사람들은 그리 많아 보이질 않는다.
 
왜 일년에 한두 번이나 보게 되는 그리 친하지 않는 친척들이, 사실은 별로 궁금하지도 않는 그런 질문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말고, 지금은 왜 그들이 그런 나름대로 민감할 수 있는 질문을 그리 서슴지 않고 할 수 있는가에 대해 생각해보자.
 
과연 그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은 무엇을 근거로 대학 입시, 취직, 결혼은 언제 할 것인지를 묻는 것이 그리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믿고 있을까?
 
이것의 배경엔 자신이 생각하는 옳은 길, 즉 삶을 제대로 사는 방법으로써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라고 믿는 믿음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즉, 우리는 누구나 취직을 하고, 결혼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믿음은 결코 어처구니 없는 것은 아니다. 사실 인생에 있어서 돈을 벌어야 하는 취직과 가정을 꾸리기 위해서 하는 결혼은 인생에 있어서 그 우선 순위가 꼭지에 있을 만큼 필수적인 일이다. 더해서 결혼을 했다면 아이를 낳는 일도 충분히 추가할 가치가 있다.
 
하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취직도, 결혼도, 아이를 낳아 키우는 일도 그리 쉽지 않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그들은 누군가에게 그것들을 언제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때마다 많은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그것은 마치 대머리인 사람에게 끝없이 거울을 보여줘서 그 자신이 대머리임을 알려주는 행위와 비슷하다.
 
그래서 반발심으로 인해서 가끔 이런 생각도 한다. 왜 세상 사람들은 저렇게 짜여진 틀에서만 살아가야 한다고 말을 할까? 자신이 사는 삶이 다른 사람들과 사는 모습과 말 그대로 다른 것 뿐인데, 그렇게 사는 것이 왜 틀렸다고 표현을 할까?
 
물론 그들의 말처럼 안정적인 직장이 있다면 좋겠지만, 젊은 시절 좀 더 많은 경험을 얻기 위해서 다양한 시도를 해보는 것이나, 꼭 결혼을 하는 삶이 아닌, 자신에게 좀 더 집중하고 자신의 꿈을 위해 살아갈 수 있는 삶을 살 수도 있는데, 왜 늘 우리의 삶은 그렇게 고정되어야만 할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주장 역시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니다. 그래서 서로 각자 입장에서 맞는 얘기를 하고 있는 셈이 된다.
 
그런데 여기에서 반발심을 느끼는 사람들이 간과할 수 있는 것이 하나가 있다. 말 그대로 평범한 삶이란 것이 줄 수 있는 행복은, 사실 다른 대안을 찾아서 그것만큼의 행복을 얻기가 무척 힘들다는 사실이다.
 
즉, 우리가 행복할 수 있는 조건들 중에서 어쩌면 가장 쉽게 얻을 수 있는 답이 바로,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취직, 결혼, 육아라는 것을 신중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즉, 그것들은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행복하기 위해서 할 수 있는 가장 흔하고 쉬운 길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인간은 어떤 식으로든 간에 행복을 추구하고, 그것이 오랫동안 유지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가치라는 것이 필요하다. 만약 매일 영화를 보는 것이 행복한 사람이, 그 영화를 보고 난 후,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다면, 과연 그것이 얼마나 많은 시간 동안 유지될 수 있을까?
 
적어도 출연한 배우들에 대한 평가, 감동의 연출 능력, 자신이 생각하는 명작들 목록, 어떤 영화들의 숨막히는 장면에 대한 기억들이 있고, 그것을 글이나 친구들에게 설명하면서 가치를 얻었을 때, 그 취미가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는 것이다.
 
30년 동안 하루에 16시간을 일해서 돈을 엄청 번 사람이 과연 무엇을 위해 그 돈을 쓸 수 있을까? 써 본적도 없기 때문에, 쓸 방법도 없다. 그래서 그들은 결국 평생을 번 돈을 단 한번도 본 적이 없는 대학생들을 위해서 학교에 기부를 하게 된다. 그래야 그 돈이 가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물론 이 돈이 잘 쓰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대학생은 장학금을 받았기 때문에 자신이 낼 등록금을 가지고 해외 여행을 떠날 수도 있다. 이것이 잘못되었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기부를 한 사람은 자신의 돈이 그런 용도로 쓰이는 것을 알게 되면 그리 기분이 안 좋을 것 같기도 하다.
 
우리 인간은 재미를 위해서 돈을 쓸 수는 있다. 하지만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서 반복되는 행위가 주는 재미는 결국 반감될 수 밖에 없으며, 결국에 남는 것은 가치 밖에 없다. 그렇다면 보통 사람들은 그 가치는 도대체 어떻게 만들고 있을까?
 
잘 생각해보자.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려서 아이를 낳고 기르게 되면, 가치는 사실상 저절로 만들어지게 된다. 물론 가정에 불화가 심한 경우엔 가정에 대한 가치는 적을지 모르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이 자기 자식에 대해서 느끼는 가치란 사실 측정 불가능할 정도이다.
 
즉, 아이는 낳고 키워야 하는 것이 아닌, 낳아서 키울 때 그 자신이 행복할 수 있다. 그래서 행복하고 싶다면 아이를 낳아서 키워야 한다. 이것은 아이를 키우는 것을 귀찮게 여기는 사람들이 아주 흔하게 하는 착각이다. 아이는 절대로 의무감이나 남들이 낳기 때문에 낳아서 키우는 존재가 아니다. 아이는 인간의 행복 조건 중에서 가장 높은 순위를 차지할 수 있는 가치이다.
 
취직을 해서 돈을 버는 것도 마찬가지다. 가정을 꾸려서 남편이나 아내와 함께 삶을 살아가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런 선택은 그렇게 살아야 해서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살아야 행복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러니 왜 취직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그것은 마치 행복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과 같다. 그리고 반대로 이런 일을 해야만 한다고 말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 이런 인간의 기본적 행복 과제들을 챙기지 않는 삶은 틀린 것이 아니다. 쉽지는 않지만 일반 사람들과는 다른 행복을 찾을 수 있다면, 충분히 선택 가능한 삶이 된다.
 
그래서 만약 어떤 사람들이 평범한 과정을 거치지 않고도 행복하다면, 사실 그들에게 그런 질문을 던질 필요가 없다. 취직도 안하고, 결혼도 안하고, 아이도 낳지 않으면서 충분히 행복한데, 왜 그들에게 남들처럼 사는 것이 좋다고 조언을 해야 하는가? 노숙을 하든, 어느 깊은 산중에 들어가서 혼자 살든, 본인이 행복하면 끝이다.
 
그리고 반대로 다른 사람들처럼 결혼을 한 것도 아니고, 아이를 낳지 않고 사는 사람들 역시도 마찬가지 관점에서 자신의 삶을 바라봐야 한다.
 
왜냐하면 지금 행복한 것이 과연 가치로 남을 수 있을지, 아니면 한 때 즐거운 삶의 기억으로만 남을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스스로 고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만약 현재 자신을 충분히 행복하게 해주는 일이 설령 지금 당장은 좋더라도, 미래에 어떻게 작용할지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을 해야 한다.
 
예를 들어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지 않고 살기로 결심한 부부는, 아이를 키우지 않음으로써 생기는 시간과 돈의 여유를 자신들의 삶을 더욱 더 윤택하게 가꾸는데 투자를 하게 된다. 문제는 그런 투자가 미래에도 계속 가치로써 남아 있을지에 대해서 고민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만약 그들이 매년 두 번의 해외 여행을 가고, 다른 사람들은 자주 가지 못하는 고급 식당에서 외식을 한다고 했을 때, 과연 그렇게 보낸 시간이 미래에 어떤 가치로써 돌아오게 될지 생각해야 한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그냥 모두 현재만을 즐기면 최고라고 생각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래서 아이의 뒤치다꺼리만 하는 다른 부모들의 모습을 보면서 불쌍하다고 혀를 차면서 자신은 멋진 차를 끌고 우아한 삶을 살 수는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이를 먹으면 먹는 대로 그 삶에 맞춰서 삶을 살아갈 능력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실 이런 능력을 가진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 현실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결국엔 모든 종류의 자극에 익숙해지고 지루해지며 결국엔 행복하기 위해서 가치를 찾아 헤매게 된다. 하지만 대부분의 즐거운 시간들은 사진으로 남아 추억은 될 수 있지만, 삶의 가치가 되기는 힘들다는 점이 문제이다.
 
이것은 가치의 속성과도 관련이 있는데, 보통 어떤 대부분의 가치들은 즐거움보다는 힘든 상황을 견뎌냄으로써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육아를 하는 부모가 겪은 힘듦이 이런 경우에 대한 흔한 예가 된다.
 
가정을 꾸미고 아이를 키우는 것이 혼자 있는 것에 비해서는 불편한 점이 많다. 하고 싶은 일도 제대로 못하고, 버는 돈도 자기가 다 쓰질 못한다. 그렇지만 그런 시간들을 견뎌내고 나면, 가치가 자동으로 만들어져 있다. 그리고 실제로 매우 행복하기도 하다.
 
그래서 만약 자신이 다른 사람들과 다른 길을 가겠다고 마음을 먹었다면, 그 시간과 노력과 돈을 다른 가치를 찾는데 쓰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의 자신의 행동이 과연 대안으로써 다른 길인지 아닌지를 어떻게 판별할 수 있을까?
 
이것의 답은 쉽다. 취직을 하지 않든, 결혼을 하지 않든, 아이를 낳지 않든 간에 상관없이, 그런 행위를 한 것이 직장생활을 하기가 싫어서나, 누군가 책임지는 것이 싫어서나, 아이 뒤치다꺼리를 하는데 삶을 낭비하는 것이 싫어서라면 다른 길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것은 단지 그런 일반적인 삶이 주는 행복에 관련된 의무와 노력이 싫어서 회피한 것뿐이다. 그리고 이런 회피는 결코 대안을 찾는 노력을 하게 하기가 쉽지 않다.
 
이것은 마치 학원을 가는 삶이 싫어서 학원을 가지 않는 대신 그냥 집에서 노는 꼴이다. 학원을 가지 않으려면 그냥 혼자서라도 공부를 해야 한다. 그래야 대안이 된다. 만약 공부에 흥미가 없다면, 그 시간을 노는 것이 아닌,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아서 해야 한다.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말이다.

 

만약 해야 할 일들이 부담되어서 하지 않는 것이라면 그것은 틀린 것이다. 그것은 회피이며 비겁한 행동이다. 반대로 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 남들이 해야 하는 일이라고 하는 것들을 하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산다면 이것은 다른 것이다.
 
해야 할 일을 하는 불행함을 못 견뎌서 하지 않고 사는 삶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을 하는 행복함을 위해서 사는 삶, 그것이 바로 대안이며 다른 삶이 될 후보가 될 수 있다.
 
다른 사람들과 다른 삶은 사는 것은 생각보다 무척 어려운 일이다. 이것이 쉽게 느껴진다면 그것은 그냥 회피를 했기 때문이다. 당장 부담되는 것들을 바라보지 않아도 되니, 단지 마음이 편한 것뿐이다.
 
앞에서도 말했듯, 남들이 하는 대로 사는 것이 흔하지만 가장 쉽게 행복할 수 있는 삶이다. 그런데 이것을 거부했다면, 난관이 있어야 정상이다. 단지 그런 삶은 좀 더 적극적으로 살 수 있다는 장점은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누구나 그렇게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깊은 자기 성찰을 통해서만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것이다. 아이를 낳아 기르지 않아서 해외 여행을 갈 수 있는 여유가 있다고 말하는 것은, 사실 무척 슬픈 일이다. 해외 여행을 너무도 가고 싶어서 아이를 낳지 않는다고 한다면 그것은 이해할 만 하다. 이 둘의 차이는 생각보다 크고, 늙을수록 크게 차이가 벌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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