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철학

다람쥐 왕국

아이루다 2015. 7. 6. 11:21

 
도대체 언제부터 만들어졌는지 아무도 모르는, 오래되고 깊은 숲 속에는 온갖 동물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숲 한쪽에서는 호두 나무에서 열리는 호두를 먹고 사는 다람쥐도 있습니다.

 

이 숲에 사는 다람쥐들은 봄, 여름, 가을 동안 숲 속에서 열리는 온갖 종류의 열매들을 먹고 살지만, 그 중에서도 가을에 풍성하게 열리는 호두를 가장 좋아했지요. 그리고 다람쥐들에게 호두의 의미는 단지 그것만이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숲에 힘든 겨울이 오기 때문이었죠. 다람쥐들은 가을 내내 먹고도 남은 호두를 땅에 묻은 후, 추운 겨울이 와서 먹을 거리가 부족해지면, 땅속에 잘 숨겨둔 호두를 찾아 그것을 먹으면서 겨울을 견뎌내었습니다. 이것은 아주 오래되고, 현명한 겨울나기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재미있게도 다람쥐들은 자신들이 가을 동안 여기저기 숨겨둔 호두가 묻힌 장소를 모두 기억해내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가끔은 겨울용 비상 식량으로 묻혔던 호두들이 겨울 내내 잘 숨겨져 있다가, 봄이 오면 싹이 피어서 나무로 자라기도 했죠.

 

이런 의도하지 않는 결과는 다람쥐와 호두 나무 모두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게 되었습니다. 다람쥐는 호두 나무로부터 호두를 제공받고, 호두 나무는 다람쥐가 자신의 씨를 땅에 묻어서, 새로운 호두 나무가 자라도록 돕기 때문이죠.

 

이것은 둘 모두에게 좋은 일이었습니다. 숲 속의 다람쥐들과 호두나무는 이런 식으로 서로를 도우면서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다람쥐 중에서 호기심이 많은 녀석이 하나 있었습니다. 이 다람쥐는 평소에 맛있는 호두를 먹으면서도 도대체 자신들이 먹는 호두가 열리는 호두나무가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무척 궁금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봄날의 따뜻한 햇살을 쬐면서 졸고 있던 다람쥐의 눈에 갑자기 번뜩 무엇인가가 들어왔습니다.

 

그것은 바로, 새로운 봄에 자라나기 시작한 어린 호두나무의 모습이었지요. 그리고 그 다람쥐는 그 장소가 자신이 작년에 겨울을 나기 위해서 호두를 묻어 놓은 장소라는 것을 기억해냈습니다. 즉, 다람쥐는 그 순간 자신이 호두 열매를 땅에 묻었고, 그것에서 새싹이 나고 있다는 사실을 연결시켜낸 것이었죠.
 
이것은 호기심 많은 다람쥐에게 커다란 충격이 되었습니다. 자신이 숨겨둔 호두에서 호두나무가 자라고, 그 호두나무가 자라서 열매를 맺으면 그것을 자신이 맛있게 먹고 있다는 것이 너무도 신기했습니다.
 
그래서 다람쥐는 자신이 심었다고 생각하는 호두나무를 몇 년 동안 계속 지켜봤습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드디어 호두나무에서 몇 개 안되지만, 열매가 맺히기 시작했죠. 다람쥐는 그것이 너무도 경이롭고 아름다웠습니다.
 
그리고 몇 개 안 되는 열매일지라도 가을이 깊어지면서, 큰 호두나무 못지 않게 잘 익어 갔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잠에서 깨어서 나가보니, 그 호두나무의 열매를 다른 다람쥐들이 모두 따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신도 먹고 싶었지만, 아까워서 먹지 않고 남겨둔 호두를 다른 다람쥐들이 아무런 생각도 없이 가져가 버린 것이죠. 그래서 이 다람쥐는 갑자기 화가 났습니다. 자신이 너무도 소중히 여기던 것을 다른 다람쥐가 함부로 훔쳐간 것이기 때문이죠.
 
그리고 다음 해에 또다시 그 호두 나무에 열매가 맺혔을 때는, 다른 다람쥐가 그 나무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열심히 지켰습니다. 하지만 다람쥐는 잠을 자야 했고, 그러다 보니 결국 어느 날 호두를 모두 도둑맞고 말았죠.
 
그러자 이번엔 다른 방법을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옆집에 사는 다른 다람쥐에게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 하고는, 그 호두나무를 번갈아 가면서 지키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대신 그 나무에서 자란 호두는 서로 나줘 먹기로 했습니다.
 
그러자 이젠 그 호두나무의 호두를 안전하게 지킬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 때문에 다른 다람쥐들과 자주 다퉈야 했지만, 소중한 자신의 호두나무를 지킬 수 있었기에 상관없었습니다.
 
그리고 이 두 다람쥐는 좀 더 크게 자신들의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것은 바로, 호두를 의도적으로 심기로 한 것입니다. 즉, 이들은 이제 단지 겨울을 나기 위해서 호두를 숨겨두는 것만이 아닌, 호두나무를 키워내기 위해서 호두를 심어두기로 한 것입니다.
 
그리고 봄, 여름, 가을 동안 자신들이 심은 호두나무에 물을 주고, 똥을 싸서 거름을 주면서 잘 자랄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그러자 어린 호두나무들은 정성 어린 보살핌 덕에 다른 나무들 보다 더 크게 성장할 수 있었지요. 그리고 당연히 열매도 더욱 더 크고 맛있게 열렸습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다른 다람쥐들이 그 나무들에 접근해 오는 일이 더욱 더 많아졌습니다. 그러자 호기심 많았던 다람쥐는 이젠 둘만으로는 지킬 수 없다고 판단하고는, 근처 다람쥐들을 모두 모아서 자신이 심은 호두나무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고는, 같이 이 호두나무들을 지켜주면 가을에 맛있고 큰 호두나무를 나눠 주겠다고 했습니다.
 
물론 다른 다람쥐들 중에서는 숲 속에서 자라는 호두나무를 가지고 니꺼, 내꺼 하는 행동이 이상하다고 불만을 터뜨렸지만, 대다수의 다람쥐들은 크고 맛있는 열매를 나눠먹을 수 있다는 말에 동의하고는, 같이 호두를 지키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다람쥐의 숫자가 많아지자, 호두를 지키는 것도 수월할뿐더러, 훨씬 덜 일을 해도 충분한 양의 호두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남은 시간이 생기면, 새롭게 심은 호두나무를 가꾸는데 시간을 쏟았습니다.
 
그들에게 호두나무는 생존을 위한 증표이자, 최고의 가치가 되어갔습니다.
 
이렇게 시간이 얼마간 흐르자, 숲 속에는 호두나무를 가진 다람쥐들 무리에 대한 소문이 퍼져나갔고, 그들이 잘 먹고 잘산다는 얘기도 알려졌습니다. 그러자 숲 속에서 힘들게 살던 다람쥐들은 점점 더 다람쥐 무리에 합류하길 원했습니다.
 
결국 이것이 오래 되자, 처음에 호기심 많았던 다람쥐는 다람쥐 왕국의 왕으로 추대되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다람쥐들은 처음 이런 생각을 해낸 그를 추앙하기 위해서 숲에서 가장 크고 화려한 나무 둥지를 그의 거처로 삼게 해줬습니다.
 
호기심 많던 다람쥐는 왕이 되자, 이제 더 이상 호두를 모으러 다닐 필요가 없습니다. 호두는 충분했고 그래서 그는 모인 호두를 다른 다람쥐들에게 공평하게 나눠주는 일만 하고는 그 대가로 자신에게 충분한 호두를 챙길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가끔 탐욕을 참지 못하고 공동의 재산인 호두나무에 손을 대는 다람쥐가 생겨났습니다. 그래서 다람쥐 왕은 그들을 벌할 수 있도록 다람쥐 군대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다람쥐 군대 역시도 도둑 다람쥐를 잡으러 다녀야 하는 일을 해야 했기 때문에, 그들에게 일정량의 호두를 지급했습니다.
 
그리고 좀 더 관리를 잘하기 위해서 숲 속의 모든 호두나무에 순서를 매기고 각 나무의 호두 개수를 세어서 도둑을 방지하고자 노력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다양한 일을 하는 다람쥐들이 필요해졌습니다.
 
어떤 다람쥐는 숫자를 세기 위해서 산수를 공부했고, 어떤 다람쥐는 호두나무 위치를 잘 기억하기 위해서 숲의 지도를 그리는 법을 연구했습니다. 또 다른 다람쥐는 호두나무를 어떻게 하면 잘 키울 수 있을지를 연구했습니다.

 

 

 

 
아무튼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그들이 가꾼 호두나무는 점점 더 늘어났고, 다람쥐 왕국 역시도 점점 번성해갔습니다. 하지만 숲 속의 모든 다람쥐가 행복해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어떤 다람쥐들은 갑자기 숲 속의 모든 나무에 표시를 하고 그것이 자신들의 것이라고 우기는 다람쥐 왕국에 속한 다람쥐들에게 불만이 생겼습니다.
 
아주 오래 전부터 다들 모두 호두나무의 열매를 먹고 살았는데, 이제는 그것을 어떤 다람쥐들이 자신들의 소유물이라고 주장했기 때문이죠. 그래서 숲 속의 다람쥐에게 자주 다툼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많은 다람쥐들이 왕국에 속한 다람쥐들을 싫어했죠.
 
이 대립이 점점 심해지자, 늙은 다람쥐들은 자신들의 숲에서 일어난 이런 사건들에 대해 불안함을 느끼고 숲 속에서 가장 현명하다고 알려진 까마귀 현자에게 도움을 요청 했습니다. 그러자 까마귀는 흔쾌히 이들의 요청을 받아들인 후, 다람쥐 왕국의 왕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왕을 만나서 물었습니다.
 
"왜 이 숲 속의 호두나무를 모두 다람쥐 왕국의 것이라고 주장하시는지요?"
 
"까마귀 현자시여, 저는 어느 날 우리 다람쥐들이 호두씨앗을 땅에 숨겨둔 덕에 이 숲에 이 많은 호두나무가 생길 수 있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후로 다른 다람쥐들과 열심히 노력해서 이렇게 많은 풍성한 호두나무를 자라게 할 수 있었지요. 저에게 호두나무는 최고의 가치입니다. 그리고 저는 늘 공평하게 그 호두를 나눠먹는 답니다. 그 호두가 잘 자랄 수 있도록 애쓴 모든 다람쥐들에게요"
 
"그렇다면 원래 숲 속에서 호두를 먹고 살던 다람쥐들에게는 그 호두를 먹을 권리가 없는 것인가요?"
 
"우리 다람쥐들은 오랫동안 호두나무에 대한 고마움을 잊고 살았습니다. 호두나무는 우리 다람쥐에게 너무도 필요한 존재인데도 말이죠. 그래서 우리 다람쥐들은 이제 호두나무를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을 가지고 그들이 이 숲에서 잘 자랄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일을 하고 호두나무을 사랑하고 그 고마움을 아는 다람쥐만이 호두를 먹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이 숲 속의 모든 호두나무는 당신의 것이 되는 것인가요?"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 모든 다람쥐들의 공통의 소유입니다. 물론 호두나무를 사랑하고, 그것을 위해 일한 다람쥐들에 한해서지만요. 그리고 저는 저 나무들을 소유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 역시 단지 호두나무를 너무도 사랑하고 있을 뿐입니다. 저는 진심으로 호두나무가 잘 자라길 바랍니다. 저는 호두나무를 위해서라면 저의 목숨까지도 바칠 수 있습니다. 호두나무는 저에게 있어서 최고의 가치입니다"
 
"그렇군요. 그런데 정말로 호두나무를 위해서 이런 노력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나요? 아니면 호두나무에서 열리는 호두를 위해서 그렇게 하나요?"
 
"물론 결과적으로 저는 호두를 바라고 하는 일이 맞지요. 하지만 호두나무가 잘 자라길 바라는 마음은 한 점의 의혹도 없이 순수하답니다."
 
"그렇다면 다른 나무는 왜 심고 가꾸지 않지요? 오직 호두나무만 심고 가꿀 뿐, 다른 나무는 전혀 돌보지 않고 있습니다"
 
"그거야.. 호두나무가 우리 다람쥐들에게 훨씬 유익한 나무이기 때문이죠"
 
"알겠습니다. 그런데 한가지만 더 묻겠습니다. 이렇게 다람쥐들이 힘을 모아서 호두나무를 가꾸기 전에도, 다람쥐들은 가을이 되면 호두를 먹을 수 있었습니다. 원래 다람쥐들은 그저 잘 익은 호두를 따서 먹기만 하면 끝이었죠. 호두나무를 가꿀 필요도, 심을 필요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왜 지금은 그런 일들을 해야만 호두를 먹을 수 있나요?"
 
"과거 우리 다람쥐들은 모두 힘들게 살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호두나무를 관리하기 때문에 풍족하고 안전하게 살고 있죠. 이것이 다람쥐들을 위해서 더욱 더 좋은 선택이란 것은 제고의 여지가 없습니다. 이것은 변화이고, 발전이며, 진보입니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의 이 생각이 당신이 죽은 후에도 계속 유지될 것이라고 믿습니까?"
 
"당연합니다. 다람쥐들은 모두 호두나무를 사랑합니다. 그 마음은 누구나 같을 것입니다"
 
까마귀 현자는 잠시 허공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가 곧 날개를 펴고 떠나갔습니다. 하지만 그와 대화를 나눈 다람쥐 왕은 혼란스러움을 느꼈습니다. 왜냐하면 까마귀 현자가 떠나고 난 후, 그의 눈에 들어온 광경은 바로, 여러 다람쥐들이 모여서 호두나무를 심을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서 다른 나무를 갉아서 잘라내고 있는 광경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지휘하고 있는 다람쥐는 다름이 아닌, 자신의 자식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그의 머리 속에는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연 자신의 자식들이 자신이 품은 호두나무에 대한 사랑과 가치를 이해할 수 있을까? 아니, 내 자식들은 그렇다고 쳐도 그 자식의 자식들은 과연 알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든 간에, 이미 숲의 많은 나무들은 호두나무로만 바뀌고 있었습니다.
 
또한 이렇게 바뀐 숲에서 많은 다른 동물들은 호두나무만 있는 숲에서 견디질 못하고 다른 먼 곳으로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언제 시작되었을지도 아무도 모를 아주 오래된 숲은 호두나무를 심는 한 다람쥐에 의해서 큰 변화를 맞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숲은 얼마 지나지 않아, 호두나무 숲으로 변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게 되면, 아마도 호두를 얻기 위해 이 숲에 올 반갑지 않은 손님들이 있을 것이란 것은 다람쥐 왕으로써는 전혀 알 수 없는 미래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 존재가, 이미 오래 전에 다람쥐 왕이 했던 생각과 같은 방식으로 생각을 했던, 바로 인간이란 존재라는 점은 더욱 상상할 수 없습니다. 또한 그 인간들은 그 숲 뿐만 아니라, 이 지구 상에서 나는 모든 것을 사랑하기에 그것들이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는 점 역시도 다람쥐 왕으로써는 전혀 알길이 없는 것은 당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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